추운 일요일 아침. 볼일은 있는데 움직이기가 귀찮아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는데 전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 아가씨한테 알로하오에! 하고 이메일이 왔어요.


둘다 같은 학교를 졸업해서 (저는 대학원 그친구는 학부) 학교 housing registry를 통해 계약을 하고 지난 8월까지 1년을 함께 살았어요. 처음에 전혀 모르던 사이라서 같이 살면서 절친이 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큰 문제 없이 잘 지냈어요 (뉴욕에서 떠도는 온갖 희한한 룸메이트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문제없이 지낸 건 아주 잘지낸 거죠. 암요). 나이는 저보다 몇 살 어린데 같이 살면서 이것저것 배우는 게 많았어요.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David Byrne이 상사(!)라고 하고 회사 사람한테서 선물 받았다고 그림 같은 걸 막 가져오고, 우리 회사에서 앨범 나왔어, 이런 거 보니 음악관계인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늘 집에 오는 길엔 gym에 들르고, 독서량도 많고, 성격도 깔끔해서 주말엔 쓸고 닦고 그러는 게 집에 와서는 완전히 늘어져있는 저한테 큰 귀감;;이 되었더랬어요. 평일 저녁에 운동하고 아스파라거스를 구워서 몸에 좋고 맛도 있어보이는 저녁을 해먹는 걸 보면서, 아 이런 게 똑똑한 뉴욕아가씨의 모습이로구나, 나도 따라해야지, 싶었다니깐요. 게다가 올해초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반짝반짝 작은별부터 열심히 연습하는 걸 보고 나도 악기나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실은 이 아가씨보다도 이 아가씨의 고양이랑 많이 친했는데, 내년까지 고양이 Lucy는 뉴욕에 남아있거든요. 어제는 Lucy를 봐주러 다녀왔죠.


하여간 이 아가씨가 갑작스럽게 하와이에 가서 살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는데, 사실 해비타트로 집지으러 한달 넘게 다녀오기도 하고 해서 하와이가 많이 좋았나보다 싶었더랬어요. 아무리 그래도 뉴욕에 한참 살다가 하와이로 가다니 많이 용감하다 싶어요. 그냥 혼자 하와이 가서도 재미있게 잘 살길, 이렇게 바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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