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즘 들어 노인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제 모습이라서겠죠.

그중 최근에 일정한 주기를 갖고 연달아 일어난 노인 3명에 대한 에피소드가 인상이 깊게 남았기에 써봅니다


2달 전, 직장의 유관기관으로 외근을 나간 중에 버스를 환승하려고 정류장에 서 있었어요. 출퇴근처럼 복잡한 시간대는 아니었기에 잠깐 멍 때리며

곧 도착할 버스를 대기하고 있는 중에앞 버스에서 내린 듯한 할아버지가 몇 걸음 걸어오다가 아스팔트길에 그대로 몸이 정면충돌 되는 것을 봤어

. 노인이 쓰러지기 직전, 이제 출발하려고 막 시동을 걸었던 뒷 버스가 급정거를 하지 않았더라면 번화가 한복판 백주 대낮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상상만 해도 끔찍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이상한 것이 사람이 쓰러지거나 넘어지려고 하면 균형을 잃고 허둥거리는 어떤 전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은 너무 반듯하게 걸어오다가 정면 그대로 쓰러진 거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아스팔트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으니 이마나 머리가 찢어졌는지 그 와중에 정신을 차려보겠다고 얼굴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선홍색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데, 그 광경에 다들 질려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상황. 가장 근거리에 있던 저조차 다가가서 부축할 엄두를 못내고 괜찮으

시냐고 묻기만 할 뿐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 지 몹시 당황스러운 중에, 119신고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살면서 119

전화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게, 신고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주변에서도 119에 신고를 좀 해달라고 저에게 종용을 하니 버튼을

누르고, 저는 외근 중이고 바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 길게 체류하지 못하는데 다행히 금방 연결이 곧 출동한다고 10분내로 도착 한다고 위치

확인을 정확히 해달라 해서 연결해 주는데, 때마침 가야할 노선의 버스가 와서 주변 분들께 이양을 하고 올라탔어요. 그렇게 내 갈 길 가는데 손가

락 새로 흐르던 피와 하얗게 질린 노인의 얼굴이 생각나서 마음치 않더군요.


두 번째는 바쁜 아침 출근길 회사근처 도착역에 내렸는데 어떤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고 뭐라고 호소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고 지나치는

상황. 저도 처음엔 정신이 온전치 않은 분싶어 지나가려다,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시냐 여쭤보니 전철에서 내려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 당신을 부축하거나 바퀴 달린 짐가방을 좀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 해당 구간은 엘리베이터 연결이 제대로 안 되어 다른 구간으

로 안내를 하기엔 나도 출근을 해야 해서, 부피가 좀 있어 보이는 짐가방을 들어주고 뒤따라 오시라 했는데, 제가 나서니 저보다 좀 더 연배 있으신

아주머니께서 같이 따라서 도와주시더군요


그런데 앞서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봤더니, 두 팔과 손으로 계단바닥을 사지로 엉금엉금 짚으며 기어 올라오는 모습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이 

느껴졌습니다. 보다 못해 내려가서 같이 부축을 해드렸는데 세상에나 몸이 진짜 얼마나 작고 말랐는지 이 할머니는 도대체 이런 몸으로이런 혼잡한 

시간부터 어디를 가시는지. 이 짐가방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서 감당을 못하는지, 혹시나 이 연세와 몸상태에도 생계 때문에 매일 나와야 한다면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하는 등 별별 생각과 약간의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구간이 끝나 에스컬레이터가 보이는 지점까지 모시고 

왔을 때 몇 번 출구인지는 몰라도 또 2개의 계단구간이 남아있기에 회사에 전화하고 아예 지상으로 모셔다 드려야겠다 싶었는데, 그 와중에 얼마나 

체면을 차리시는 지 한사코 손사레를 치시며 괜찮다고 하셔서 그냥 왔지만 아침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죠.


마지막 인상은, 회사 후배들과 점심을 먹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층계참에서 마침 할아버지가 서 있길래 옆으로 살짝 피해서 먼저 내려왔는데 좀 있다

 !” 하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달려보니 노인이 계단에서 굴러 바닥으로 나뒹군 것이었습다. 일행이 있어서 다같이 달려가 괜찮으신 지 여쭙고

부축을 해서 겨우 일으켜 세워드렸지만, 예전에 목도한 기억으로 혹시 어디를 다치신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머리나 얼굴을 살펴도 다행히 혈흔은 없

더군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시는데 몸의 중심은 잘 못 잡으시고, 그래서 제가 자제분들이나 보호자에게 연락을 드려야 하지 않느냐 여쭸더니 보

청기를 낀 귀로 잘 못 들으시는지, 아니면 연락할 곳이 없으신 지 별다른 대답이 없으셔서 그냥 오긴 했습니다만….


이것도 무슨 선행이라고 늘어놓는 얘기는 아니지만, 2달 사이에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노인들의 모습은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저에게 적잖은 경각심과 두려움을 주었습니.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은 가급적 하지 않겠지만, 스스로 원하는 나이 이후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
아무 미련없는 1인으로서, 노년이 멀지 않은 지금 내 연령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새삼 암담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2. 지난 3월, 봄부터 금주를 시작했어요, 퇴근 후 집에서 마시는 약간의 와인은 제외하니 8할의 금주인가요. 위의 노인들 에피로 받은 경각이나 특별한
기가 었던 아니에요. 다만 살면서 그동안 너무 많은 술을 마셨고, 지나치게 사랑했고, 그리고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대부분의 술끝은 씁쓸하거
무거웠고 늘 그렇듯 직접 듣지 못한 후일담은 흉흉했겠죠. 이젠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일부러 괴로운 일을 만들 필요는 없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요 
기호나 주량에 상관없는 술잔을 다 받지 않아도 될 직급도 됐지요. 무엇보다 내 소중한 시간을 나누며같이 술잔을 기울일 만큼 깊고 따뜻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도 흘러갔기 때문이겠죠. 이건 누구의 잘잘못이 아닌 그냥 자의적 선택에 따른 결과죠.

여전히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고 출장도 가고 운동도 발레도 하고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삶의 한 켠에 사람이든 감정이든 뭔가를 끼워 넣는 것은, 설사
습자지 만한 두께라도 지독하게 인색해졌고, 벽돌공장처럼 찍어내는 일상이 1이라도 틀어지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졌어요. 예전엔 퇴근하고 다들 누구와 
노는지, 나는 왜 같이 놀 누구가 없는지 비애를 느끼는 글을 썼던 세월을 거슬러 보기가 무색하게, 나와 상관없는 누구라도 할 말이 없어서 단지 어색함을 
깨기 위해 던지는 쓸데없는 말 한마디라도 나한테 걸지 않기를 바라며 살고 있어요 

 

3. 영화 기생충을 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가 그냥 별로였어요. 영화는 물론 재미가 있고, 유기적 구성과 완벽히 계산된 연출과는 사뭇 다른 결말로 

내내 흥진진하지만 내가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좋아했던 포인트가 이 영화에서는 제로였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에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너무 상하고 빤해서 실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제게 이 영화는 이렇게 느껴졌어요. 요즘 시류에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 넘 예쁘고 반짝이던 소녀가 연예기획자의 눈에 띄어 특훈을 

거치고 오디션에 뽑혀 1등을 하고(이게 칸을 의미하는 건 아님) 스타가 되어 그 세련됨과 아름다움이 더 배가 됐지만, 어쩐지 본연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뭔가 시들해느낌이죠. 그리고 저는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계급의식을 건드리는 주제에 감흥이 없어요. 이미 감독 그 자신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계급을 누리고 있으면서(그가 영화적인 성공가도를 달려 받는 온당한 혜택을 비꼬는게 아닙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

었죠.

 

더욱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계급간의 체급도 너무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고요. 실제적인 상류층에서는 저렇듯 순진하거나 어리숙하게 대응하지 않았

것이라는 현길감이 바로 느껴지는 건, 이미 재벌들의 일상은 TV 드라마에 산재해 있으니(실상은 알 수 없지만) 영화적 흥미와 효과를 위해 젊은 신흥부자

치환한 계급 같지만 어쩐지 제게는 실패한 설정처럼 느껴졌거든요. 어쨌든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약하고 선량하다 또는 부자들은 하나같이 사악하고 

악랄하니 당해도 싸다는 통념을 전복시키는데 영화의 목적이 있었다면 그 부분은 성공한 셈으로 치죠.

        

그런데 종종 찾아가는 네일샵의 디자이너가 이 영화 얘기를 했어요.  최근 자기 고객중 2명이 연달아 이 영화 봤내고 물었는데, 한 명은 시궁창봤어? 나머지 

또 한명은 곰팡이봤어? 라고 했다고요.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는데 영화제목의 착각에서부터 이 영화가 주는 연상작용의 파급은 지금껏 이 영화

두고 무수히 많이 듣고 보고 읽었던 어떤 리뷰보다 가장 와 닿았어요. 더욱이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디자이너가 제목을 착각한 자신의 고객들의 연

와 사는 수준을 얼핏 귀뜸해 줬을 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이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를 증거한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았거든요. 급 마무리로, 원래 

사람 아닌가 싶을 만큼, 이선균의 재발견 정도로 해두죠.             ,


4. 예전보다 요즘 더 자주 느끼는 것인데,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낯섦을 종종 느껴요. 유난히 더 맛있었거나 

했던 풍미의 기억이 나라고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게 음식이란 생존을 위해 살 만큼만 먹는 개념이라, 정도 이상의 메뉴도 섭취도 불필요한 것이거

든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온오프라인 곳곳에 범람하는 맛집 정보에 음식 정보에, 머릿속에 방대한 맛집 지도와 메뉴 리스트를 정해 놓고 도장깨기하듯 

섭취를 수행하는 것은 요즘 특히 더 활성화 된 시류인가 싶어요.


유명하다는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끼니 이상의 음식은 사치라 여기는 나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굳이 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차피 주어진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끌고 가는 동력은 어쩌면 본능에 충실한 것이고 식욕은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

욕구 중 하나일 텐데, 그렇게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섭취한 에너지로 수행할 만한 삶의 내용이 나에겐 애초부터 공백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식욕은 아니

었을 테지만, 내 묙망은 무엇이었고 그것은 어떻게 표출되다가 사라졌는지, 물기 마른 뒤 소금처럼 형체를 알 수 없네요.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성과를 내고 인정도 받으며, 간혹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내 자신는 살아있다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종종 느껴요.

그런데 이것은 자조도 비관도 아닌 이제는 익숙해진 제 삶의 옹이 같은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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