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E9F4475E4A74752A

(여기서 맨 왼쪽 분! 옥밥!!!!!)


 -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이라고도 적고 '추띠몬 쯩짜런쑥잉'이라고도 적나 본데 뭐가 정답인가를 떠나서 이거나 저거나 제게 어렵긴 마찬가지라 태국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다는 '편하게 부르는 이름'만 기억합니다. '옥밥'이요. 암튼 '배드 지니어스'의 돈은 없지만 가오는 넘치는 천재 고등학생 역으로 이름을 알린 그 분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스포일러는 없게 적을게요.



 - 주인공 '이야'는 젊고 인기 많은 패션 모델입니다. 잘 나가는 패션 디자이너 고모를 빽으로 두고 라이벌들의 시기를 사면서 잘 살아요. 다만 이 분은 어려서 외딴 시골 섬에 살던 시절, 엄마가 아빠를 비롯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찔러 죽인 후에 집에 불을 질러서 그 집에 있던 아기까지 죽게 만들고는 사라져 버렸다는 드라마틱한 경험을 한 덕에 밤에 잠을 못 잡니다. (그래서 제목이...) 그나마 간신히 잠이 들만하면 늘 악몽을 꿔서 금방 깨어 버리죠. 그렇게 몇 년을(!!) 수면 부족 상태로 살다 보니 이제는 뭐가 꿈인지 뭐가 현실인지도 헷갈리고 일상 생활도 힘들고... 뭐 그런 상태인데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신문 기자가 '너는 니 고모가 누군지 아니?'라면서 이상한 서류를 던져주고, 어찌저찌 일이 꼬이다가 결국엔 모든 것(=엄마 사건)이 시작된 곳인 시골 섬마을로 날아가 7년만에 재회한 어색어색한 옛 친구들과 함께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뭐 이런 기본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 글 제목을 보고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보기로 맘 먹은 건 순전히 주연배우 때문입니다. 제가 '배드 지니어스'를 보면서 이 분에게 좀 꽂혔었거든요. ㅋㅋ 워낙 캐릭터 자체가 멋지기도 했지만 배우의 비주얼이 또 그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아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모델 출신(...이라고 적지만 겸업 중인 것 같더군요)답게 늘씬하고 길쭉한 기럭지에 소박한 듯 하면서 동시에 위풍당당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마스크도 좋았구요. 암튼 뭐 그렇게 '완성도가 부족하면 배우 비주얼 뜯어 먹으며 보면 되는 거지 뭐'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드라마가 되게 별로였던 건 아닌데, 그래도 주인공이 옥밥이 아니었으면 한 회 보고 때려 치웠을 거라는 건 분명한지라(...)



 - 일단 초반의 주 실망 포인트는 장르였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패션 모델!! 화려한 무대 뒤에서 찾아오는 불면과 악몽의 밤!!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어가며 알 수 없는 음모에 빠지는 우리의 주인공!!! 이런 설정으로 시작하면 당연히 초현실적 분위기와 화려한 그림이 어우러진 악몽 같은 느낌의 호러를 기대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인공의 모델 놀이는 첫 회에 몇 분 보여주는 걸로 끝이고, 이후론 쭉 그냥 태국의 시골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이랑 아웅다웅하면서 고생하는 게 다에요. 초현실적인 뭐... 그런 거 없구요. 악몽은 한 회에도 몇 번씩 계속 나오긴 합니다만 그냥 딱 봐도 개꿈이어서 모호한 맛도 없구요. 한 마디로 제가 기대했던 장르가 아니었던 거죠.



 - 그럼 진짜 내용은 뭐냐면... 이런 내용에 따로 장르명이 붙어있진 않은 것 같은데, '폐쇄적 시골 마을 스릴러'라고나 할까요. 넘나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서 제대로 된 사법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들은 뭐 대표작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죠. 지푸라기 개라든가, 이끼라든가, 베이츠 모텔이라든가... 암튼 주인공이 찾아간 그 동네가 바로 그런 동네이고, 그런 위험 속에서 자기 엄마의 결백을 밝히려드는 주인공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싫어하겠죠. 또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예상치 못 했던 마을의 비밀이 막 드러나겠구요. 특히나 사람 좋아 보이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덤벼드는 게 포인트가 되어야할 겁니다. 이것도 딱 그런 이야기에요.


 여기에서 약간의 차별점이 있다면 주인공의 불면증 + 현실 구분 불가 증상을 이용해서 호러 장면을 종종 넣어준다는 거랑...

 그리고 주인공을 돕는 친구놈들이 죄다 마을 유력가의 자식들이라는 겁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착한 놈들인 건 분명하지만 주인공이 진실을 찾아낼수록 배후로 드러나는 게 이 놈들 부모거든요. 그리고 이 놈들의 우정이란 게 애초에 그렇게 믿음직스럽지가 않아요. 그래서 시종일관 '저 중에 누가 뒷통수 칠 텐데...' 라는 맘으로 보게 되니 의외로 스릴이 있고 그로 인한 재미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런 식의 전개가 몇 번씩 포인트가 되어주기도 하구요.



 - 잘 만든 드라마일까요?

 그건.... 음. 그렇게 말하기는 좀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일단 '외딴 섬마을의 폐쇄적 공동체'라는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과 전개들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경찰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주인공 무리들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상식 밖의 대처를 하기도 하구요. 악당 무리들 역시 너무 과감한 짓들을 자주 저지르고 거기에 따르는 위험 부담 같은 것도 너무 심하게 없어요. 한국 막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어쩌다 엿듣기'와 '하필 그 타이밍에 나타나기'가 뻑하면 튀어나오는 것도 큰 단점이겠죠.


 그런데 또 이런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한계를 일단 눈감아주고 나면 의외의 장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캐릭터들이 의외로 납득이 돼요. 찌질한 놈이든 모자란 놈이든 당당한 놈이든 사악한 놈이든 메인 캐릭터급이 되면 딱히 납득이 안 되는 괴상한 짓을 하는 놈들은 없습니다. 그럴만한 상황에서 그럴만한 이유로 그럴만한 짓을 (좀 과하게) 하죠.

 그리고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선역들이 시종일관 꽤 강하고 당당하게 묘사가 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게 일종의 복수담인 건데, 자기 연민에 빠져 찌질거리거나 괜히 착한 척 하느라 해야할 일을 안 하고 머뭇거리면서 보는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캐릭터가 없어요.

 또... 보다보면 각본이 생각 외로 그렇게 멍청하지만은 않습니다. ㅋㅋㅋ 기본적으로는 여러모로 신빙성이 없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스스로 그걸 알고 어떻게든 괜찮은 부분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써요. 예를 들어 바로 위에서 지적한 '어쩌다 엿듣기' 같은 경우에, 정말로 전개의 편의를 위해 개연성 없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나중엔 또 그게 의도된 행위였다... 라는 식의 전개도 나오고 이야기의 반전을 위한 트릭으로 쓰이기도 하는 등 꾸준히 변주가 되구요. 매 회마다 끊임 없이 국면 전환을 넣어서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솜씨도 나쁘지 않구요. (물론 그 국면 전환들에서 또 개연성 문제가 발생하긴 합니다만...;) 또 주연급 몇몇 캐릭터의 성격 묘사가 꽤 괜찮습니다. 보는 사람이 정들게 만들어서 멱살을 휘어잡고 최종화까지 시청하게 만드는 거죠.



 - 글이 또 쓸 데 없이 길어지니 일단 종합을 해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렇게 잘 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솔직히 한 3회까지는 정말 옥밥 하나만 믿고 '견뎌내는' 시간이었고, 이야기가 조금 재밌어진다 싶은 4화에 가면 결말까지의 진상이 빤히 다 보여요. 도대체 앞으로 남은 9화를 (전체 13화, 한 회당 45분쯤 됩니다. 인트로, 엔딩 다 쳐내면 40분 남짓 정도) 끌고 가려나 싶었죠.

 핵심 미스테리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데다가 종반의 몇몇 화는 정말로 억지가 심해서 피식 비웃음도 나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중 몇몇의 매력과 화학작용이 꽤 좋고, 이야기의 허술함과는 별개로 시청자를 낚아서 끌고 가는 전개 스킬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나름 허를 찌르는 장면 같은 게 종종 나와요. 그래서 어찌저찌 낚여 버린 저는 이틀만에 다 봤지요(...)


 뭐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옥밥'씨의 팬이 아닌 분에겐 추천하지 않습니다. ㅋㅋㅋ 아마 4화 이후까지 견디기가 힘드실 거에요.

 한, 중, 일이 아닌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의 드라마가 궁금하시거나 아님 익숙하고 좋아하시는 분들, '배드 지니어스'에서 옥밥의 매력을 느끼신 분들, 많이 허술하고 덜컹거려도 속도감 있게 쫙쫙 달려주는 미스테리극에 관대하신 분들... 이라면 한 번 시도 정도는 해보실만도 할 것 같다.... 라고 아주 소심하게 말씀드려 봅니다. 물론 저는 책임은 1도 안 집니다만. ㅋ

 




 + 넷플릭스에서 제목이 'Sleepless Society : Insomnia' 로 되어 있는데 뭔가 동어반복의 느낌이죠. 사실 이 중에서 'Sleepless Society'는 프로그램 제목이고 뒤에 붙는 것만 이 시리즈의 제목인 것 같습니다. 'Sleepless Society : xxxx' 라는 식의 제목을 단 태국 드라마 시리즈가 두 개 더 있더라구요. 그것까지 챙겨볼 생각은 안 들구요. ㅋㅋㅋ

 아. 한글 번역제도 있긴 합니다. '밤을 잃은 사람들 : 악몽의 진실'이래요. 넷플릭스의 신작 업데이트 알림에는 이 제목으로 나오는데 정작 메인 메뉴의 썸네일엔 그냥 영어 제목만 적혀 있고 재생을 해도 한글 제목은 안 나옵니다. 왜죠. 



 + 좋은 사람 역할, 매력적인 역할, 카리스마 있는 역할 등등은 거의 다 여자가 합니다.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것도 주인공과 주인공의 여성 동료들이 거의 다 하고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도 거의 여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요. 남자들은 빌런이거나 병풍이거나 아님 멱살 잡고 끌고 갈 대상이거나(...) 또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수난들이 전체 스토리 속에서 정말 중요하게, 아주 큰 비중으로 다뤄져요. 이쯤되면 정말 넷플릭스측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 같은 거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작품은 아니긴 합니다만. ㅋㅋ 



 + 제가 이 글에서 계속 옥밥 옥밥거리고 있지만 배우 말고 캐릭터의 매력은 옥밥보다 다른 분이 더했는데. 생각해보면 아주 대놓고 노린 캐릭터였어요. 부잣집 화려한 미녀 캐릭터인데 말이 직설적이고 조금 거만하지만 정의롭고 화끈하며 위풍당당하며 알고 보면 정도 깊은... 미끼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결국 물게 만드는 캐릭터였네요. 파닥파닥.



 + 자막에서 주인공 이름을 계속 '이야'라고 표기하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아야' 내지는 '아이야'로 들리거든요. 워낙 정보도 소감도 없는 드라마라 열심히 검색을 하다가 영문 소개 페이지를 보니 주인공 이름을 'AIYA'라고 표기하네요. 도대체 넌 이름이 뭐니.



 + 결말이... 스포일러를 피해 말씀드리자면 뭐랄까. 분명히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모든 떡밥이 다 확실하게 풀리지만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 식의 결말이어서 시즌 2를 만들려면 못 만들 것도 없지만... 안 나올 겁니다. 저~~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게 독립적인 시리즈가 아니라 어떤 프로그램의 한 시즌이기도 하고. 또 그게 막판에 반복해서 제시되는 작품의 주제(?)와도 잘 맞는 결말이어서요.



 + 제목이 '불면증'이고 실제로 주인공이 꾸준히 불면증으로 괴로워하긴 합니다만. 드라마 내용을 보면 그보다는 '기억상실'이 더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시종일관 주인공이 '7년 전 그날'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 해서 단서를 찾으러 다니는 내용이거든요. '인썸니아'도 간지나는 단어이긴 하지만 '암네시아'도 괜찮지 않나요. 본토 발음으로 '앰니샤'하면 좀 별로이긴 하지만 콩글리시 발음으로는 꽤 괜찮... (쿨럭;)



 + 혹시나해서 다시 강조합니다만, 저는 절대로 이 드라마가 되게 재밌으니 한 번 꼭 보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추천하지도 않았어요. 정말입니다!!! 혹시라도 이 드라마를 시청함으로써 발생할 인생의 손실에 대해선 저는 저얼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거 궁서체에요. 그렇게 읽어 주시길. ㅋㅋㅋㅋ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