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성에 대하여

2020.02.20 05:50

어디로갈까 조회 수:895

1. 생각하니, 하루에 보통 대여섯 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즐기는 성향이 아니라서 머리 쓰는 것보다 그 점이 더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업무가 끝나면 세상을 탁! 닫아버리죠. 
퇴근해 돌아오면 인터넷도 하지 않고 휴대폰도 꺼버립니다. (욕과 원망을 엄청 듣는 부분. - -) 감정이 순할 땐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거품이 제거된, 허위없는 의식의 상태를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저는 그 진실과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져버려서 저 자신의 움직임들을  잘 견딜 수 없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외면의 삶을 우리는 과연 어느만큼 자신의 것으로 여겨도 좋을까요.  제가 이 나이의 여자로, 이런 외모와 이런 직업과 크고 작은 결함들과 호오好惡의 기호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그런 것들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개개인의 삶은 그 편차가 얼마나 크든지 간에,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 고유성이 잘 읽히지 않습니다. 밖에서만 바라볼 때, 삶의 면면이란 제아무리 달라도 결국 다르지 않은 것이죠. 밖에서만 바라볼 때, 각각의 삶은 삶의 여러 유형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이니까요.
제가 '나'라고 세상에 명시하는 것과 내밀한 '나'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나'는 분류된 유형 중 하나에 갇혀 버린 '나라는 사물'에 대한 고독한 자의식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자기만의 생>이란 불안하고도 유구한 외로움의 역사일 뿐인 것 아닐까요.

2. 삶의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은 망각과 추락의 지점을 동경하거나 또는 예감합니다.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거나, 마음을 홀리는 그 무엇을 잡고 망각이나 외로움의 소멸을 기대하죠. 자기만의 고유한 삶이 홀연히 자신의 외면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붙들리는 것으로 보이는 면면입니다.
이 새벽, 삶과 맞서 있던 고독한 응시자인 마음이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제 '생의 한가운데'에서 삶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이전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꿈꾸거나 깨어있는 동안, 누구나 계속해서 그런 순간들을 향해 있는 법이니까요.

3. 고유한 삶에 대한 동경은 실은 '고유한 삶이란 없다'는 사실 앞에서의 외로움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유한 삶의 순간이 와줄 거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가죠.
그러나 내부에서 분출한, 혹은 어떤 만남들을 통해 도달한 '고유한 순간들'조차 그것이 이루어진 순간엔 이미 '사물들'로 변하고 만다는 느낌을 요즘 자주 받습니다. 다시 말해 사실성의 세계가 되어버리고, 그 세계는 다시 자신의 마음에 맞서는 어떤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 같아요.
빛을 찾는 마음이 실은 이미 유일한 불빛이듯이, 고유성이란 고유성을 꿈꾸는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어떤 사물과 세상도 경유하지 못하는 외롭고 투명한 마음 그 자체로.

0. 몇달 만에 인터넷 신문 지면에서 지인의 고정칼럼을 읽었어요. 그는 제 지인들 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고유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어요. 
표현 감성이 매우 뛰어난데, 정작 너무 좋은 그 스타일이 그를 고민케 하고 움츠리게 만들고 있는 것 같네요. 스스로 인정하든 않든, 저는 그의 몸에 시가 가득차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피어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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