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비주얼에 상당히 힘을 주고 있는 작품이고 하니 트레일러를 한 번 구경해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네 뭐 독자적이고 독보적이고 그런 건 아니죠. 로토스코핑 기법은 꽤 오래된 기법이니까요.

 뮤직비디오나 광고 같은 데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고 영화로도 '스캐너 다클리'나 '바시르와 왈츠를' 같은 선례가 있고 뭐 그러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흔한 기법은 아니니까요. 기법 특성상 그냥 드라마로 찍어 버리고 특수 효과를 입히는 게 돈이나 노력이 덜 들었을 것 같은데. 역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쪽은 독자 컨텐츠 제작에 돈을 꽤 (넷플릭스 대비) 풍족하게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간단한 줄거리 이야기를 해 보죠. 주인공 앨마는 2010년대 후반 들어 클리셰화 되어가고 있는 흔한 '여성 중심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성격 괴퍅하고 시니컬하면서 멈출 줄을 모르는 입담으로 시청자를 웃기고 주변 사람들을 들이받죠. 순탄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본인 앞가림은 알아서 잘 해주고, 평범한 사람들 대비 상당히 충동적이고 그래서 실수도 많이 저지르지만 늘 자신의 신념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랬던 앨마가, 어느 날 운전 중에 길가에 홀연히 나타난 사별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전신주를 들이받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인데, 아까 봤던 그 아빠가 태연하게 찾아와서 말을 겁니다. 사실 자기의 죽음엔 비밀이 있대요. 그리고 너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자길 도와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한 번 그 능력을 발동하면 다시는 예전의 삶으론 돌아갈 수 없다며 약을 파는데, 자신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게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앨마는 아빠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 스포일러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잡아야할지 애매한 시리즈입니다. 제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결말과 결말까지 밝혀지는 진실만 스포일러로 잡는다면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할 말이 많은데, 중반부쯤 밝혀지는 이 이야기의 진짜 소재(?)도 스포일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기왕 볼 거라면 그 부분도 모르고 보는 편이 훨씬 좋겠죠.

 그래서 일단 제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나서 요 아래부터는 그 '진짜 소재'와 관련된 약한 스포일러 이야기를 포함해서 떠들어 보겠습니다.

 결론은 일단 추천입니다. ㅋㅋ 나름 개성이 확실하고 이야기도 괜찮아요. 뭔가 좀 '독특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예 영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시도해보실만 하죠.

 ...라고 열심히 이야기를 해보아도 어차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이용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으셔서 누가 보실지는(...)


 암튼 이 아래부터는 이제 비교적 편하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물론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구요.












 - 보면서 예전에 했던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이요. '왓 리메인즈 오브 에디스 핀치'라는 게임도 시각적 연출 면에서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소재면에선 아무래도 헬블레이드 쪽이... 근데 또 사실 듀게에 이 게임을 해보신 분의 숫자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가입 중인 회원 분들의 숫자랑 삐까삐까할 듯 한데(...) 그러니까 결국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대단히 신비로운 체험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주력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들 주인공이 조현병이라고 생각하는 상황. 물론 주인공도 주변의 그런 시선을 알고 있기에 1. 주변에 티를 안 내기 위해 노력하고 2.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할 일(?)을 해치우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여기에서 시청자들은 당연히 주인공이 신비로운 힘을 손에 넣었다는 쪽이 사실이길 바라게 되고, 그래서 각본가는 그런 심리를 이용해 계속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냅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거죠. 조현병인 것 같다가, 초능력인 것 같다가를 중요한 장면마다 오락가락하며 헷갈리게 만드는데... 결론이 무엇인지야 스포일러이니 말씀해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의외로 막판까지 긴장감이 꽤 잘 유지가 됩니다.

 

 또 당연히도(?) 주인공이 겪게 되는 괴이한 체험들은 그 분이 처한 상황과 그 분의 내면 심리와 연결이 되고, 또또 당연히도 이런 부분들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사람들의 감정 이입을 자아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이로 인해 등장하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로토스코핑 기법과 어우러져 시각적으로 꽤 볼만한 구경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죠. 가만 생각해보면 굳이 로토스코핑을 써야할만한 이유는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냥 cg로 처리했으면 유치했을 텐데 이 기법 덕에 살아나는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재를 박박 긁어내는 가운데 또 실제로 조현병을 앓고 계신 분들을 크게 불쾌하게 만들만한 내용들은 조심스럽게 잘 피해가요. 

 여러모로 소재의 가능성을 끝까지 알차게 잘 써먹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죠.



 - 또 하나의 장점은 캐릭터입니다. 아까 처음에 주인공의 캐릭터가 요즘엔 거의 클리셰급이다... 라고 투덜거리며 시작했지만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로 장르적 도구처럼 사용되는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등장인물들(엄마, 동생, 남자 친구와 직장 상사 등등) 대부분이 다들 개성이 확실하면서도 현실적인 디테일을 갖고 있어서 마치 이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 감각이 환상으로 도배가 된 이 이야기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고요.


 예를 들어 주인공네 집안 식구들에게 메스티소의 피가 흐른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 특이할 거 없으면서도 묘하게 생소한 설정을 풍부한 디테일로 살려내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잡고 또 전개에까지 유용하게 써먹습니다. 위에서 '자전적 문예 영화 느낌'이라고 말했던 게 이런 부분인데요, 작가들 중에 실제 메스티소 혈통의 사람이 없다면 과연 이런 쌩뚱맞은(?) 소재를 골라서 이렇게 잘 써먹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 암튼 뭔가 흔히 접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소재 하나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그렇게 특이할 건 없는 것도 같은데 그 부분들의 총합이 그래요.

 SF, 추리, 호러 같은 장르들의 '분위기'를 잔뜩 가지고 온 후 '사람간의 믿음과 유대, 사랑'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지만 그 분위기가 아주 그럴싸하며 또 그 평범한 이야기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려주니 깔 필요가 없죠.

 전체 8화에 각 에피소드의 길이가 24분 정도 밖에 안 돼서 후딱 봐버리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꽤 큰 장점이구요.

 솔직히 결말은 제가 좀 싫어하는 스타일의 결말이었고 그래서 결말을 본 직후의 기분은 좀 거시기했는데. 애초에 이 작품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 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또 최선 같아서 지금은 그 결말도 그냥저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에 가입 상태인데 볼 게 다 떨어진 분들이라면 한 번 시도해 보세요. 꽤 괜찮은 작품입니다.



 - iggy님 추천글 고맙습니다. 존재도 몰랐던 작품인데 덕택에 재밌게 잘 봤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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