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러분도 알겠지만 나는 겸손한 사람이예요. 듀게에 글을 쓰면서 '저건 내가 만들어도 저것보다는 낫겠다'같은 말을 한 적이 없죠. 딱 하나...스타워즈 8편만 빼고요.


 그야 나한테 스타워즈 7-8-9 트릴로지의 서사를 다 짜고 트릴로지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10-11-12로 이어질 다음 트릴로지로 가는 이야기의 방향을 멋지게 제시해주는 패스를 하라고 하면 별로 자신은 없어요. 



 2.하지만 나한테 스타워즈 7편을 보여주고, 9편의 마무리는 책임질 필요 없으니 사람들이 스타워즈 9를 보러 오도록 8편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면 중간계투 역할을 라스트 제다이보다는 훨씬 잘 수행할 수 있어요. '수행할 자신이 있다.'도 아니예요. '수행할 수 있다.'죠. 뭘 만들어도 라스트 제다이보다 재밌게 만들 자신은 있거든요.


 라스트 제다이의 문제는 주인공들에게 적절한 미션이 주어지지 않았고 적절한 갈등 관계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야기의 목적도 불분명하고 흥미가 돋게 만드는 방향성도 설정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밀도조차 부족해요. 하다못해 8편을 못 만드는 대신 9편으로 가는 징검다리, 예고편 역할만 잘 수행했어도 9편의 흥행이 성공했겠죠.



 3.라스트 제다이를 잘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돈만 보자고요. 1-2-3편의 트릴로지에서 흥행을 결정하는 건 해당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전작이예요. 스타워즈 9편의 흥행이 7편에 비해 반토막난 건 8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타워즈라는 프랜차이즈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죠. 


 영화라는 건 돈, 돈이란 말이예요. 예술이라는 것도 돈이고요. 새로운 화가를 발굴하고 그림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은 학예회 수준의 그림을 보면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지만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이거 얼마예요?'라는 말부터 하니까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재미있게 만들고 흥미롭게만 만들면 관객들은 지갑을 열어서 흥행으로 보답하니까요. 



 4.휴.



 5.내가 영화에 돈을 쓰는 기준은 그리 높지 않아요. 자의식 강한 평론가들이 마구 씹으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데 써먹는 헐리우드 영화도 나는 감히 '내가 하면 저것보다 잘 만든다.'라는 말은 안 하거든요. 그 영화에 들어가는 각본, 촬영 실력, 캐스팅, 편집, CG후처리 기술...이 모든 최고수준의 기술들을 단돈 만원에 구경할 수 있는 게 헐리우드 영화란 말이예요. 팝콘 값에다 같이 보는 사람 티켓값까지 해봐야 3만원이고요. 3만원을 내면 무려 두 시간 남짓 그럭저럭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게 영화예요.


 한데 이런 나조차 다른 스타워즈 팬처럼 8편을 보고 흥미를 잃었어요. 8편을 싹 무시하고 9편을 만들지 않는 이상 9편은 망한 트릴로지를 짬처리 하는 것뿐이니까요. 패전투수의 투구 치고는 괜찮은 영화인 거지, 어쨌든 패전투수가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등판일 뿐인 거예요. 


 스타워즈 본편 프랜차이즈의 실패는 당연히 파생 작품(한 솔로 스토리)의 실패로 이어졌고요. 만달로리안 드라마로 제법 회복한 게 간신히 요즘이죠. 



 6.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스타워즈는 다루기 쉬운 프랜차이즈란 거예요. 완성도가 아주 높지 않아도 '스타워즈 같기만 하면' 사람들이 화낼지언정 관대하게 지갑을 열어 주는 영화죠. 


 김치찌개를 예로 들면, 간판에 김치찌개라고 써있는 가게에 들어와서 '맛은 별로지만 어쨌든 김치찌개이긴 하군.'정도의 만족감으로도 계속 소비되는 프랜차이즈라는 거죠. 



 7.이렇게 관대한 소비자층을 만들어낸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공로를 인정해 줘야 하죠. 이런 사업을 꾸리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요. 스타워즈는 어쨌든 너그러운 팬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세계관이예요. 한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너그러운 팬덤을 '나이먹은 철부지' '새로운 것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같이 폄하했어요. 인터넷에서 흔히 있는 조롱, 갈라치기죠.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편을 보면 알듯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최대 장점은 영화 자체를 조금 모자라게 만들어도 영화가 지닌 테이스트와 노스탤직을 잘 유지해 주면 그것을 소비하러 와주는 너그러운 사람들이죠.


 김치찌개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인수했으면 좋은 김치찌개를 만들어서 팔면 돼요. 그럴 자신이 없으면 그래도 프랜차이즈를 믿고 먹으러 와주는 사람들을 위해 좀 맛없는 김치찌개라도 만들던가요. 어쨌든 김치찌개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김치찌개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한데 라스트 제다이는, 능력이 한참 안 되는 사람들이 김치찌개도 아닌 맛이 없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는 김치찌개를 먹으러 온 사람들에게 너희가 틀렸다, 너희가 늙어서 그렇다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8.정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랜차이즈 간판을 사서 굳이 바꿔 달 필요가 없어요. 그런 실력을 지닌 사람이 뭐하러 프랜차이즈 인수비를 내가면서 굳이 간판을 바꿔 달겠어요? 그냥 자기가 새 프랜차이즈를 내서 새로운 SF영화를 만들면 되죠.


 한데 디즈니는 스타워즈의 팬덤과 명성을 안고 가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내가며 프랜차이즈를 사놓고는 실무 담당자들을 잘못 앉혀서 이 사단을 내버렸어요. 디즈니는 큰 회사니까 디즈니의 모든 사람이 잘못이 있는 건 아니겠죠. 애초에 디즈니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사들인 목적은 이미 거대 팬덤을 형성한 프랜차이즈를 사서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먹는 거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남의 돈을 가지고 자기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사고를 친 거죠. 사실 그것도 재능있는 사람이 하면 괜찮아요. 재능있는 사람에게 기존 프랜차이즈와 자본이 주어지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일어나니까요. 한데 재능이 아니라 자의식만 가진 사람들이 남의 돈을 가지고 자기 예술을 하려고 들 때...그건 큰 문제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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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간하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말하지 않는데 라스트 제다이는 벌써 세번째 글인 것 같네요. 라스트 제다이는 영화 하나를 망친 게 아니라 사업을 망쳤다는 점에서 좋게 봐주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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