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부조리에 대해서

2021.08.01 21:13

적당히살자 조회 수:810

제가 입대했을 적에 한참 좌빨뽕(?)에 물들어서 군대라는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체제에서 구르게 될 병사들이 서로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과 연대의식을 가진다면 군생활도 해볼만 할 것이다. 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이브한 기대는 훈련소때부터 무너졌죠. 요즘은 공익이나 상근은 훈련소도 따로 배정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는 다같이 함께 훈련 받고 잤습니다.

당연히(?) 사회에서 좀 놀던 양아치랑 조폭(문신도 있고 등치는 산만한) 출신의 훈련병들이 공익 등 약한 사람들을 타겟 삼아 괴롭히곤 했고 따돌리곤 했습니다.

전 제 앞가림도 벅찬 상황이었지만 괴롭힘 당하던 애들을 뭉치게 했고 적어도 지네들끼리 괴롭히는?(A가 타겟이 되면 B, C, D가 놀리고 B가 타겟이 되면 A, C, D가 놀리는 상황에서) 행위를 멈추게 하고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가해자들과 신경전을 벌이곤 했습니다.

처음엔 이를 성가셔하던 가해자들도 꾀가 생겼는지 자신들이 괴롭히고 따돌리던 애들을 회유해서 저만 따돌리도록 상황을 바꿨고 그때까지 따돌림 당하던 애들은 좋다고 절 배신하고 따돌림에 가세했죠.

왕따 가해를 주도하던 이들과 같은 부대에 배정되었고 그 가해자들은 저에 대한 안좋은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뜨려 전 부대 가자마자 왕따가 되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가 속한 소대는 후에 후임이 폭력을 신고해 공중분해되는 내무부조리가 심한 소대였고...

전 욕설과 폭력과 비웃음 따돌림 속에 하루하루가 힘겨웠습니다. 제가 입대전 생각했던 나이브함이 견딜 수 없이 미웠습니다. 군대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우선 간부들의 성과주의와 부추김이었지만 그걸 몇배로 악화시켜 악습을 만들고 되물림하는 병사들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죠.

전 병사생활의 절반이상을 관심병사로 보내야했고 제가 당하는 여러가지 폭력에 못 이겨 자살시도도 했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 소대는 폭력을 못 이긴 후임의 보고에 의해 공중분해되고 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임 동기 후임들은 영창으로 보내진 뒤 타중대로 보내졌죠.

연대고 나발이고 제가 가진 좌빨뽕이 허무맹랑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전 당장 병사들이 제게 아낌없이 쏟아내는 악의를 감당하기에도 힘에 벅찼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제 손에 피를 안 묻히는 것. 제 손을 물로 씻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선임들에게 혼나고 맞으면서도 후임에게 손찌검을 안했고 욕설도 안(제 기억으로는 아예 안했는데 이건 폭력을 안한만큼의 확신은 없네요.) 했습니다. 묘한게...그걸 비웃는 선임은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후임들도 절 무시하고 비웃더군요...ㅋㅋ아 저 선임은 착하니까 막대해도 돼...선임들에게 인정 못 받으니까 무시해도 돼...

그렇게 적어도 나는 내무부조리를 행하지 말자는 신념은 겨우 지켰고 군생활 후반부엔 그나마 말이 통하는 후임을 만나서 우정?도 나름 쌓고 할 일은 하고 전역했습니다...

군대라는 체제는 한국식 사회화를 시킵니다. 강압적인 명에 복종하도록. 폭력에 무감각해지도록. 약자가 도태되고 강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승자독식사회를 수용하도록. 약자를 혐오하고 강자에게 굽신거리도록.

이걸 1년 반에서 2년 길게는 3년이 넘는 시간을 성인 남성들에게 세뇌를 시켜왔죠. 전 입대당시 이념적으로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고 신념이 강했지만 저 혼자의 양심을 지키는 것도 고전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 체제의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만 많은 사람들을 동정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억압적 체제를 결정적으로 더 지옥으로 만든 것은 '주적'이라 불리는 간부가 아닌 병사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이 바뀌려면 결국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개개인의 용기있는 병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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