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 여덟개, 편당 44분 정도 되구요. 불행히도 클리프행어 엔딩입니다. 안 끝나요.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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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에피소드마다 저 부분을 다양한 방법으로 가립니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들은 다 그냥 'Kevin can f himself'라고 적어 버리더군요)



 - 주인공 앨리슨은 평범한 30대 기혼 여성입니다. 남편 수입도 별로 좋지 않지만 본인도 친척 가게에서 얹혀 일하는 정도이니 부자가 될 일은 평생에 없구요. 누가 봐도 (일단 비주얼 면에서는) 남편 입장에서 대박 결혼인데 그 안 잘 생기고 안 유능하며 안 성격 좋은 남편에게 완전히 붙들려 혼자 고생 다 하고 남편 뻘짓거리들 수습해야 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뭣보다 큰 문제는 본인이 거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없어요. 자기 삶이 매우 암울하고 한심하다는 걸 어렴풋이 인식은 하고 있지만 그냥 부동산에 나온 매물들 보면서 '저런 멋진 집으로 이사를 가면 새 출발이 가능할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 하나에 매달리고 있죠.

 그러다 결국 그 이사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는 순간, 10여년의 결혼 생활 동안 꼬박꼬박 저축해 온 통장의 돈을 남편이 자기 몰래 말도 안 되는 하찮은 물건들 사모으는데 다 날려 버리고 심지어 빚까지 진 상태라는 걸 알게 됩니다. 결국 그동안의 억눌린 분노와 무의식에 묻어왔던 피해의식이 한 순간에 폭발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굳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건 이혼으로 될 게 아니야, 저 놈을 죽여버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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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트콤 모드의 주인공님)



 - 이미 Lunagazer님께서 리뷰를 올려주셨던 적 있는 시리즈입니다. 그 글 덕에 알게 되어 어제 보기 시작해서 방금 전에 끝냈네요. 그 리뷰는

 http://www.djuna.kr/xe/board/14001305

 요기에서 보실 수 있구요.


 말씀대로 이 시리즈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겁니다. 80~90년대풍 시트콤 형식과 그냥 요즘 드라마의 형식이 뒤섞여 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주인공의 남편 '케빈'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시트콤입니다. 그리고 케빈이 사라지면 바로 일반 드라마로 전환이 돼요. 그냥 화면만 바뀌는 게 아니라 장르가 바뀌어 버립니다. 남편과 함께할 땐 옛날 시트콤 화면 그대로에 배우들도 모두 시트콤 연기를 하고 방청객 효과음이 삽입되구요. 남편이 사라지면 그냥 궁서체로 진지한, 심지어 좀 어두운 톤 화면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식입니다.


 그리고 스토리 소개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앨리슨의 삶은 아주 어둡습니다. 어쩌다 모자란 남자에게 말려서 결혼해버린 죄 & 거기서 떠날 용기가 없었던 죄로 인생 10년 이상을 암흑으로 살고 있는 여성이니까요. 그리고 이 케빈이란 인간은 현실 세계 기준으로 볼 때 그냥 무시무시한 빌런입니다. 세상 일 뭐 하나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걸 모두 아내가 대신 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죠. 가끔 스스로 뭔가 벌이는 일들은 모두 대재앙으로 끝나고 그 수습은 당연히 아내 몫. 그렇게 철저하게 아내에게 의존해서 살면서도 '결혼은 남자에겐 감옥' 같은 드립을 입에 달고 다니고 아내를 따돌리고 무시하면서 옆집 사는 자기랑 똑같은 수준의 친구랑 시시덕거리기만 해요. 그나마 이 인간이 정말 철저하게 멍청하다는 게 앨리슨 입장에선 아주 조금 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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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모드의 주인공님)



 - 처음엔 이런 형식 실험이 그냥 단순하게 재밌는 아이디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리즈를 보다보면 작가들이 저따위보단 역시 연구를 많이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케빈이란 놈의 삶은 시트콤 세상에 있습니다.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고 인생은 웃기는 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의 댓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무적의 빌런인 거죠. 반면에 앨리슨의 삶은 현실에 있고, 남편의 뻘짓으로 인한 문제들은 모두 심각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걸 바로잡으려고 해도 불가능해요. 자신이 남편과 함께하는 순간 세상은 남편이 주인공인 시트콤이 되어 버리니까요. 저 망할 놈의 악마 같은 남편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뭔 짓을 해도 시트콤 버프로 멀쩡한데. 본인은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서 뭘 해보려 노력해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겁니다.


 굉장히 노골적이고 단순한 풍자지만 직접 보고 있으면 그 효과는 상당히 괜찮습니다. 너무나 괜찮아서 사실 좀 보기 부담스럽고 피곤할 정도거든요. 시트콤을 형식에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무거운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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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겁고 심각한 드라마 맞습니다?)



 - 하지만 뭐 이게 그렇게 현실적인 드라마는 또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주인공은 '남편을 죽여버리겠다!!'는 아주 드라마틱한 결정을 내리게 되고 시즌 내내 그걸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거든요. 하지만 당연히 그 노력은 계속해서 의도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러면서 주인공의 인생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블랙코미디 & 스릴러가 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앨리슨이 그 과정에서 믿고 의지할 친구 하나를 만들게 된다는 건데. 이 친구가 참 캐릭터가 좋고 또 둘의 관계 묘사도 좋아서 보는 사람 입장에선 숨통이 좀 트입니다. 또 그 친구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앨리슨이 성장하는 걸 보는 보람도 있어요. 앞서 말했듯이 사실 앨리슨은 딱하긴 하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이 자업자득인 캐릭터거든요. 미성숙하고 통찰력도 없고 자기 주관도 없으며 주변을 살피지도 않는 등등 모자란 구석이 참 많습니다만. 자기랑 많이 다른 친구와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위기에 휘말리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그게 이 암울한 드라마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동력 중 하나죠.



 - 두 여성 캐릭터가 하드 캐리를 해야 하는 드라마인데. 다행히도 둘 다 참 좋습니다. 전 둘 다 몰랐던 배우인데, 그래서 이 분들 원래 연기 스타일이 저런 건지 이 작품을 위해 의도한 연기인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드라마와 그 캐릭터들에 정말 딱 맞아요. 앨리슨의 어벙벙하고 좀 답답 불쌍하면서도 종종 충동적인 캐릭터도 좋고. 친구님의 쏘쿨 시크한 척 하면서도 심약하고 정 많은 캐릭터도 좋구요. 이 둘의 가까운 듯 먼 듯 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관계도 좋습니다. 앞에서 잔뜩 칭찬해놨지만 이 두 캐릭터 보는 재미가 아니었음 조금 보다 때려 치웠을 거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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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무거워서 숨 쉴 틈은 줘야 주인공도 살고 관객도 안 떨어져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근데 한 가지 좀 괴상한 점이 있습니다. 계속 말하듯이 이게 시트콤과 현실의 결합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생기는 위화감 같은 게 있어요.

 이게 형식만 놓고 보면 시트콤 장면은 풍자 같은 거고 현실이 현실(뭔 소리여;)이어야할 것 같은 조합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케빈과 친구놈이 시트콤 상황에서 계속 저지르는 시트콤에서나 가능한 황당한 행동들이 결국 현실로 그대로 이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양쪽 다 현실인 거고 오히려 시트콤 속 상황 쪽이 주도권을 잡고 전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케빈이 세상 제일 맛있는 칠리를 만들겠답시고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들고 와서 통구이를 빙자한 돼지 잿덩어리를 만들어 놓으면, 현실의 앨리슨은 그걸 치워야 하는 거죠. 그런데 케빈과 친구가 워낙 황당한 짓들을 많이 저지르다 보니 그게 궁서체로 진지한 현실 파트로 그대로 이어지는 게 좀 어색할 때가 있어요. ㅋㅋ


 그래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보니 이 드라마에 대한 평들 중에 그런 게 보이더라구요. 이 시리즈 자체가 수십년간 수백 수천의 시트콤들에서 묵묵히 고생하고 희생되어온 '시트콤 와이프' 캐릭터들에 대한 헌사 같은 거라는 거죠. 철 없는... 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엄청나게 자기 중심적 민폐 덩어리 남편(=주인공)들 옆에서 추임새나 넣고 하하 웃으면서 묵묵히 집안 꼴 건사해 온 (그리고 그런 모습을 쇼에서 전혀 안 보여주는) 시트콤 속 아내들의 오랜 원한을 풀어주는. 뭐 그런 아이디어라는 건데,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형식이 확실히 말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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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tcom Wife'라는 게 아예 원래부터 있던 개념인가 보더라구요.)



 - 대충 정리하면요.

 이야기의 절반을 차지하는 발랄한 시트콤 파트는 사실 웃긴다기 보단 발암(...) 파트 역할을 하구요.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 파트는 그냥 아주 다크하고 심각해서 여러모로 보기 편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론 속터지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다행히도 매력적인 두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를 보며 으쌰으쌰 응원하다 보면 어느새 꽂혀서 달리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전반적으로 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만 매우 치명적인 문제가... 시즌 마무리가 클리프행어라는 거겠죠. ㅠㅜ

 천만 다행히도 다음 시즌은 확정이 되어 지금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만. 뭐 빨라도 내년은 되어야 나오겠죠. 이제 각본 쓰고 있나봐요. 허헐.

 그러니 각자 취향대로 판단해서 보시면 되겠습니다만. 아마존 프라임 쓰시는 분들이라면 첫 회라도 한 번 보세요.

 그리고 같이 죽어요 우리.




 + 사실 어찌보면 주인공 캐릭터는 좀 많이 민폐 캐릭터이고 전 대체로 그런 캐릭터 싫어하는데요. 보면서 자꾸 제가 괴상할 정도로 주인공에게 친근감이 들고 편을 들게 되는 게 신기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네요. 제가 아는 사람이랑 엄청 닮았고 특히 표정 짓는 게 똑같아요. 그래서 친근했던 것... ㅋㅋㅋㅋ



 ++ 여자 배우 두 분 칭찬만 했지만 사실 '케빈' 역할 배우도 참 대단합니다. 이 분은 어차피 가볍게 팔랑팔랑한 시트콤 연기만 하긴 하지만 뭐랄까... 그냥 생김새가 워낙 압도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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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렇게 생기셨을 수 있죠. 그냥 실사가 아니라 만화책 그림이 튀어나와서 말하고 움직이는 느낌. 특히나 저 눈동자 때문에 시트콤 모드만 들어가면 혼자서 완전히 시선을 강탈하십니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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