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이게 올해로 20주년 되는 영화랍니다 여러분! ㅋㅋ 장르는 호러이고 런닝타임은 1시간 53분. 스포일러 없이 얘기하기가 참 힘든 영화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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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토끼 역할 청년이 슥슥 그린 걸 그냥 그대로 영화에 써먹었다는 저 전설의 흉칙 토끼!)



 - 배경은 1988년. 조지 부시와 듀카키스가 천조국의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격돌하는 중이네요. 그리고 평범하게 잘 사는 중산층 가정이 나옵니다. 사이 좋은 부부에 큰 딸, 중간 아들, 어린 막둥이 딸로 5인 가정 구성이구요. 이 중 아들래미의 이름이 도널드 다코. 그러니까 도니 다코입니다.

 근데 첫 등장부터 애가 좀 이상해요. 인성이 완전 개판이랄까. 자기 엄마한테 대놓고 들으라고 'Bitch!'라고 욕을 날리는 아들인 것인데요. 잠시 후에 알게 되지만 우리 도니 다코군은 인성 이전에 정신 건강에 심대한 문제가 있는 녀석입니다. 영화 자막 기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고 그로 인해 과거에 거하게 사고를 쳐서 지금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끌려다니며 약도 복용하고 있죠. 그리고 그러던 이 녀석이 어느 날 밤 자다 말고 다 큰 성인 남자 사이즈의 토끼옷을 입은 괴인의 목소리를 듣고 나가서는 '앞으로 28일, 몇 시간 몇 분 몇 초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듣고 그 자리에 쓰러지구요. 그 순간 난데 없이 하늘에서 비행기 '엔진'이 낙하해서 도니 다코의 방을 박살냅니다. 토끼 덕에 살았죠. 그리고 이후로 자꾸만 그 토끼가 나타나서는...


 ...대략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에요. 이후 전개는 워낙 지 맘대로라 시작만 설명하는 걸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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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스타 제이크 질렌할!)



 - 나름 전설의 영화죠. 2001년에 나왔지만 영화엔 정말 그 시기에만 강력하게 득세했던 세기말 갬성이 가득하구요. 한 번 봐선 뭘 어쩌라는 건지 알아먹기 힘든 난해한 이야기에 어디 예전에 있었던 다른 영화에 비할 곳을 찾기 힘든 유니크한 비주얼과 분위기를 뽐내구요. 극장서는 재미를 못 봤지만 이후 컬트로 등극한, 당시 호러 매니아 청춘들의 필수 영화... 뭐 그렇습니다.

 그런 걸 맨날 죽어라고 호러만 봐대는 넌 왜 이제야 봤니? 라고 물으신다면 뭐. 할 말이 없죠.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취향에 맞는 영화라도 존재조차 모르고 그냥 살기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라도 당시에 타이밍 한 번 놓치면 이렇게 20년이 흘러 있기도 하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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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때부터 이미 빌런 연기가 잘 어울렸던 제이크 질렌할!!!)



 - 두 가지 해석 가능성을 던져 놓고 관객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주인공은 중증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요.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상황이 그냥 이 놈의 망상이나 꿈 내지는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가 워낙 괴상하니 간단하게 이렇게 생각해버려도 문제는 없죠. 근데 그게 아니라 이게 다 실화다! 라고 생각하며 이야기 앞뒤를 따져 보면 또 나름 들어 맞는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 분석하며 따지고, 떡밥 풀이하며 '숨겨진 의미' 찾아내는 걸 좋아하는 분들에겐 '실화다!' 쪽이 훨씬 매력적이겠죠. 그래서 전 어떻게 봤냐 하면... 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ㅋㅋㅋ 근사하고 괴상한 분위기에 빠져서 재밌게 시간 보냈음 됐죠. 더 이상의 생각은 제 늙은 뇌에 무리를 준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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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니의 누나 역으로 나오는 누나 질렌할)



 - 일단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이겁니다. 아 이 감독 민주당 지지자구나.

 앞서 말했듯이 조지 부시 vs 듀카키스의 대선 언급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이후에도 등장 인물들이 거기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이 선거는 미국 선거 역사에 남은 선거였죠. 레전설 네거티브 전략이 세상에 선을 보인 선거이기도 했고. 그래서 진짜 극적으로 역전이 벌어진 선거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이후 미국 정치판에 큰 영향을 줬던 선거잖아요. 시종일관 '악몽'의 분위기로 흘러가는 이 영화의 스타트를 그 선거 얘기로 끊은 건 당연히 의도적이었겠구요.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리숙한 사람들 등쳐먹는 희망 전도사(...) 캐릭터에게 '난 네가 적그리스도로 보이는 걸?'이라고 일갈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그렇고. 좌파적인 성향의 교재로 수업을 하다가 곤경을 당하는 젊은 교사라든가. 어린 여자애들이 어른들 섹시 댄스를 흉내내는 공연 모습을 괴상하고 불편한 느낌으로 잡아내는 연출이라든가... 어찌보면 이 영화는 걍 미국 리버럴의 입장에서 1988년이 얼마나 악몽 같은 시대였던가! 라는 걸 문자 그대로 악몽으로 표현한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잘라 말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도니가 바라보는 세상의 썩은 모습들이 정말로 대부분 다 '공화당스러움'으로 귀결이 되니까요. 실제로 토끼에게 홀린 도니의 기괴한 테러들의 방향도 빠짐 없이 그 쪽을 향하구요.


 게다가 이 영화가 2001년에 나왔잖아요. 투자자를 못 잡아서 헤매다 간신히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헤맨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암튼 2001년은 아들 부시가 임기를 시작한 해입니다. 선거 결과는 당연히 2000년에 나왔구요. 이게 다 우연일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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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풋풋한 제나 말론이라니!!)



 - 동시에 이 영화는 되게 낭만적인 틴에이지 무비이기도 합니다. 울퉁불퉁 근육질 토끼옷 남자와 수시로 정신이 홱 돌아서 징그러운 표정을 짓고 여기저기 테러를 가하고 다니는 주인공의 상태 때문에 확 드러나진 않습니다만. 정작 도니 다코의 학교 생활을 보면 낭만적 학원물의 필수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세상에서 버림 받은 가련한 청춘들이 운명적으로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그러면서 갖은 곤경을 다 겪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런 것들이요. 심지어 도니에겐 좀 찌질하지만 어쨌거나 자기 곁에 늘 함께 있어주는 친구도 둘이나 있고, 엄마 아빠 누나 동생도 다 괜찮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은 다 도니를 아껴주고 심지어 도니도 (비록 말로는 빈정거릴지언정) 그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참으로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은근히 착한 영화에요. 포스터의 토끼 느낌처럼 그렇게 독하고 살벌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뭐랄까... 영화가 참 예쁩니다? ㅋㅋ

 괴상하고 불길하고 불쾌한 가운데 참 이상하게 예뻐요. 하늘에서 슈웅~ 하고 떨어지는 비행기 엔진도 그렇고. 멸망 다가와서 세상을 감싸는 구름(?) 같은 것도 기이하게 예쁘고. 또 풋풋하던 시절 배우들의 그냥 예쁜 얼굴도 예쁘구요. <- 암튼 뭐랄까. 그동안 전설로 들어오던 그 기괴함! 기이함!! 이런 얘기들로 인해 생겨난 제 머릿 속 이미지에 비해 영화가 생각보다 되게 착하고 예뻐요. 심지어 결말도 그렇지 않습니까. 결말이 예쁩니다. 아주 낭만적이구요.


 암튼 이건 뭐라 설명하기가 힘든데 뭐... 역시 영화는 그 시절에 얼른 봐줘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구요. 그 때 봤음 지금이랑은 되게 다른 느낌으로 봤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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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이지옹... 그립읍니다.)



 - 지금 시점에서 보면 또 배우들 보는 맛이 있는 영화입니다.

 고인이 되신 패트릭 스웨이지가 본인 옛날 이미지를 잘 활용해서 정말 훌륭하게 꼴 보기 싫은 캐릭터를 소화해 주시구요. 영화 총제작자로서 흥행과 홍보 위해 출연해주신 드류 배리모어의 풋풋한 (총 제작자라고 해봐야 나이가 20대...) 모습도 반갑구요. 현실 자기 동생과 극중 남매로 나온 매기 질렌할은 제가 그동안 봐 온 중에 비주얼상으론 가장 반짝반짝 예쁘고 매력적이네요. 제나 말론의 이렇게 청초하게 예쁜 소녀 모습도 신선하구요. 그리고 뭣보다... 당연히 주인공인 제이크 질렌할이요. 아역 배우가 아니라서 이런 표현 안 어울리지만 거의 연기 신동급이네요. 풋풋하게 평범한 청소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 세상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십대, 정체불명 거대 토끼에게 휘말린 싸이코까지. 영화 한 편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각각 다 그럴싸하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잘 붙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활약이 이때 기대치에 비해 좀 모자란 상태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 마무리를 짓자면 전 이랬습니다.

 제가 볼 땐 솔직히 좌파 젊은이의 분노 & 투덜투덜이 핵심인 영화가 맞아요. ㅋㅋ 그런데 그게 그냥 투덜거림으로 끝나지 않고 나름 마지막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넣어주는 게 괜찮았구요.

 도무지 비교할만한 비슷한 영화가 별로 없다! 는 게 제겐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호러 영화로서 유니크하고 괴이한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은 아직 안 보셨으면 한 번 보셔도 좋겠구요.

 또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고, 불길하고 불쾌한 분위기만 잔뜩 깔지 전형적인 호러 영화식 장면 연출이 거의 없으니 걍 '그게 대체 무슨 영화요?'라는 호기심 드는 분들도 부담 없이 한 번 도전해보실만 하겠습니다. 심지어 은근히 건전하고 감동적인 영화라니깐요 이거.




 + 감독은 이 영화 다음 작이 폭망해서 그 다음엔 걍 무난한 호러 하나 만들고 영업 정지 상태시라죠. 음... 근데 솔직히 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면 무슨 기본기가 되게 탄탄하다기보단 독특한 갬성과 아이디어가 핵심을 이루는 영화인데. 다른 건 몰라도 감성이란 건 바꾸기 힘들잖아요. 2021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영화 같은 감성으로 뭐가 하나 더 튀어나오면 그게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요.



 ++ 2009년에 속편(!)이 나왔었군요? 제작진은 다르지만 주인공은 이 '도니 다코'에서 동생 역을 맡았던 배우가 다시 맡았구요. 영화 제목은 'S. 다코'. 동생 이름이 Sㅏ만다거든요. 하하하. 얼마나 괴작일지 아주 조금 궁금합니다.



 +++ 듀게에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셔서 아예 본인 닉으로 삼으셨던 호러 매니아 회원분이 계셨죠. 떠나신지 오래지만 문득 생각나네요. 오겡끼데스까!



 ++++ 위에서 배우들 얘길 한참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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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은 진짜 긴가민가 설마설마해서 다 보고 나서 따로 검색해서 확인도 해봤네요. 허허. 

 오히려 나이 먹고 훨씬 인상도 좋아지고 호남 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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