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을 둘러싼 논쟁들

2021.10.06 22:10

Sonny 조회 수:1976

저는 아직 안봤습니다!! 스포일러 금지에요!!! 


어떤 작품이 흥행을 대규모로 기록할 수록 대중 대 비평가의 구도가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명량>이나 <국제시장> 같은 경우 이런 퀄리티로 저런 흥행을 하는 게 과연 온당하느냐는 이야기부터 해서 1000만이나 보고 눈물을 흘린 영화를 감히 전문가의 권위를 이용해 깔아뭉개려한다는 반 비평의 움직임까지, 인기와 비판적 분석은 늘 서로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일으켰죠. 저는 사실 이런 논쟁이 좀 지겹긴 합니다. <트랜스포머1> 때부터 익히 느낀 건데, 아무리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라도 어떤 비평가들은 그냥 익숙하고 뻔하고 지겨워한다는 그 명백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전문가에 대한 지적열등감 이상으로는 안보입니다. 자기의 취향이 전문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 그걸 견디지 못하는 그 자존심은 사실 대중으로서 자신의 호오에 자신감을 갖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 같아요.


비평과 인기의 충돌은 단순히 평론가 대 일반 관객(시청자)의 자존심 싸움으로만 가지 않죠. 그건 여러가지 정치적 움직임과 결합됩니다. 평론가들을 식겁하게 만들정도로 뜨거웠던 대중들의 반 평론가 무브먼트는 먼저 심형래의 <디워>가 생각납니다. 하필이면 심형래가 무릎팍도사에 나가서 충무로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발언을 한 것 때문에, 그리고 이 영화가 한국의 기상을 서방세계에 알리고 싶어한다는 애국심 고취의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논쟁은 훨씬 더 타올랐죠. <디워> 논쟁은 단순한 비평가 대 일반관객의 구도에 미학 대 국가주의, 혹은 미학 대 정치적 감흥의 구도로 번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앞서 예로 들었던 <명량>이나 <국제시장>도 다 이 국가주의와 비평의 대결양상을 띄고 있던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다른 예들도 있죠. <변호인>을 둘러싼 '좌빨' VS '애국보수'라든가... 


오징어게임이 유례없는 세계적 히트를 기록하면서 (전 한국인이라 오히려 이게 잘 체감이 안됩니다 ㅋ) 다시 한번 비평가 대 대중의 구도가 짜여졌는데요. 제가 여기서 흥미롭게 느끼는 지점은 이게 일반적인 정치적 대결이 아니라 오타쿠 대 일반인의 관점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을 가지고 분석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데스게임 장르의 오타쿠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비평가까지 거슬러가기도 전에 오징어게임의 레퍼런스이자 원작이 되는 다른 작품들을 거론하며 오징어게임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뭔가 재수없는 사람들이 되는 거죠. 사실 양상은 똑같습니다. 내가 재미있다는데 왜 아는 척 하고 까부느냐는 그런 반지성주의에 가까워보이니까요.


여기서 논점이탈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장르적 정통성에 대한 비판과 섞어서 반격하는 모양새랄까요. 저는 오징어게임을 아직 안봐서 디테일한 비판들은 할 수 없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데스게임 장르의 팬으로서 이런 점이 아쉬웠다고들 하시더군요. 이 때 장르적 정통성은 꼭 장르 매니아들에게만 절대적인 장르 내 규칙이 아니라 외부적으로 작품 전체의 완성도와도 연결이 되는 지점입니다. 왜냐하면 장르라는 것은 곧 그 작품의 지향하는 바를 얼마나 충족시켜주느냐는 완성도에 관한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액션 영화를 보면서 호쾌한 액션을 기대하는 것이 꼭 액션매니아라서 그런 게 아니듯, 데스게임 스토리를 보면서 데스게임의 치밀함이나 인간군상을 비판하는 것은 곧 작품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데스게임 팬과 대척하는 사람들(일반인)의 입장은 비슷해보여요. 나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뭐하러 시비냐. 이런 안티 비평의 주장에는 딱히 대적할만한 논리가 없습니다. 취향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미학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논의를 가로막아버리니까요.


저는 <신이 시키는 대로>라는 영화를 예전에 봤었습니다. 미이케 다카시의 팬이기도 하고 원작을 그래도 인상깊게 봤어서 어떻게 영화로 구현될지 기대도 품었었으니까요. 그러나 영화는 원작에 비해 대단히 시시했는데 물론 제작비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한 반, 한 학교의 학생들이 게임마다 죽어나가는 그 규모부터 제대로 구현이 안되었었기 떄문이죠. 이걸 아마 데스게임의 장르적 정통성으로 비판한다면 이런 비판이 가능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군중이 성립되지 않은 채 벌어지는 데스게임은 그 충격이 약하다, 왜냐하면 누구 하나가 죽어나가는 그 순간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그 모습이 바로 데스게임의 장르적인 재미이기 떄문이다, 라고요. 그리고 영화는 만화 원작에 비해 신파가 좀 강했는데 그것 역시 데스게임의 장르적 전통성으로 비판이 가능할 것입니다. 데스게임은 막 슬프고 서럽고 하면서 개인의 사연에 너무 빠지면 안된다고요. 그 드라마성은 오로지 그것조차 무참하게 짓밟히는 호러적 허무를 위한 재료로만 기능하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데스게임의 장르적 재미가 퇴색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데스게임은 말 그대로 사람이 게임이라는 형식 안에서 죽어나가는 그 가학적인 쾌감을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 만화에 비해 소리를 너무 지르거나 질질 짭니다. 이러면 데스게임이 가지고 있는 허무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희석되어버리죠. 이 모든 것들은 장르적인 규칙이기도 하지만 그 규칙을 따랐을 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작품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작품도 간츠의 아류작이기 떄문에 아주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었지만요)


그래서 저는 아직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지만, 제가 기대하는 재미가 꼭 장르매니아로서만 품고 있는 기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르적 규칙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품은 있을 수 없는데다가 규칙에서 자유로운 것과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거든요. 저는 이 작품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한 비판이 조금 더 작품 내부적인 근거로 차있기를 바랍니다. 작품은 작품 하나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레퍼런스들과의 계보안에서, 혹은 그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작품의 헐거움과 대중성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르적으로 "빡세게" 잘만든 영화들도 얼마든지 흥행하고 열풍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엑소시스트>가 대흥행을 했던 게 아무렇게나 엑소시즘 영화를 찍어서 그런 건 아니었잖아요? 


@ 듀나게시판에서 비평의 기능을 통째로 무시하는 발언들을 보니 좀 묘한 기분이 들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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