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캔디맨 


 - 영화는 넷플릭스에 없어요. 1992년작이고 런닝타임은 99분.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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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불러봤어요 다섯번. 시카고에서 한국이 너무 멀어서 그런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 배경은 시카고이구요. 주인공 '헬렌'은 도시 전설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이미 결혼도 했고 남편은 같은 학교 교수네요.

 암튼 논문을 위해 인터뷰로 이런저런 도시 전설을 듣다가 인근 빈민가에서 떠도는 '캔디맨'이라는 이야길 듣게 되는데, 뭐 별 거 아닙니다. 거울을 보고 다섯 번 '캔디맨'이라고 말하면 그놈이 나타난다는 거죠. 나타나서 할 일이야 뻔하구요. 물론 주인공은 안 믿고 '캔디맨'이 저질렀다고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사건을 현실 논리로 설명해내려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대략 그걸 해내는데 성공합니다만. 그러고 신나서 거울 앞에 서서 깔깔 웃으며 '캔디맨' 5회 복창을 해버리는 바람에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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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결국 모든 사단의 근원은 주인공입니다. 공포 영화 주인공들 하는 짓이 다 그렇죠 뭐.)



 - 저희 집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었습니다. 사실 오래 전에 이 게시판에서 여러 번 했던 얘기지만 아버지께서 대우 전자에 다니던 친구에게 낚여서 '이게 미래다!'라며 베타맥스 방식 플레이어를 사오시고 '이미 있으니까 됐다!'며 평생 VHS 플레이어 구입을 거부하시는 바람에 말이죠. 덕택에 전 친구들 대비 굉장히 건전한 어린이 시절을 보냈고. 또 그만큼 영화를 덜 보고 자랐어요. 특히 한국에선 극장보다 비디오로 더 인기 있었던 이 '캔디맨' 같은 영화는 볼 기회가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 보고 다섯 번 이름을 부르면' 어쩌고 하는 공식은 알고 있었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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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갬성 뿜뿜하는 또 다른 버전의 포스터. 왠지 지난 여름 일도 잘 아실 것 같고 그런 느낌이 좀 있네요.)



 - 어쨌든 1992년 영화를 2021년에 본 것이니 거의 30년을 채우고 본 것인데요.

 음. 뭔가 좀 흥미롭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80~90년대 괴물 살인마가 나오는 슬래셔 무비 같은 걸 생각하며 봤는데, 결이 많이 달라요. 좋게 말해서 상당히 지적이고, 또 그 시절 기준 상당히 정의롭고 공정하려 애를 쓰는 이야기더라구요.


 일단 주인공 캐릭터부터가 그렇습니다. 그 시절 호러 영화 주인공답게 금발 미인이긴 한데 일단 당시 기준으로 버지니아 매드슨의 나이가 이미 30을 넘겼을 때니 그렇게 젊진 않아요. 섹스 어필을 통한 관객 서비스(...) 장면도 뭐, 없진 않지만 노골적이지 않구요. 또 뭐 그렇게 막 바보 같은 짓을 하며 꺅꺅 도망다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홀연히 나타나서 도와주는 남자 캐릭터도 없네요. 오히려 늙은 교수에게 젊은 여자라고 무시당하자마자 면전에서 쏘아붙여주는 식으로 여성들이 겪는 애환 같은 것도 살짝 보여주는, 뭐 그런 92년 기준 정치적으로 공정한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영화 내내 인종 차별, 흑인(빈민)들의 비참한 현실 같은 걸 아주 중요한 소재로 삼아서 진지하게 계속해서 보여줘요. 그냥 대충 무서운 이야기 들려주면서 양념으로 덧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그게 주재료입니다. 등장하는 흑인들이 아주 직설적으로 그런 부분을 표출해주고, 주인공도 거기에 동의하는 쪽이구요. 심지어 엔딩 장면도 그거랑 관련지어서 끝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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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바네사 윌리엄스입니다. 포카혼타스 주제가 안 불렀구요.)



 - 다만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한계는 아주 명백합니다. 일단 주인공부터가 금발 백인이잖아요. 부자까진 아니어도 괜찮은 경제 환경을 지닌 지식인 엘리트이기도 하구요. 이런 형편 넉넉한 백인의 시각으로 인종차별을 다루는 데다가 막판에는 이 양반이 뭔가 좀 그 동네 흑인들의 구원자 비슷한 행동을 하는 전개까지 있어서 2021년에 보기엔 좀 민망한 느낌이 있습니다. 뭐 그래서 조동필씨가 이 프랜차이즈를 가져다가 신작을 만들어서 내놓게 된 거겠죠. 신작 소식을 듣고는 첨엔 그냥 '이 영화 팬이셨나?'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납득했습니다. 아마 어렸을 때 이 영화 재밌게 보다가 막판 전개 보면서 막 화내셨을 것 같아요 조동필씨. ㅋㅋㅋ


 그래도 뭐. '시절이 시절'이잖습니까. 올해 나온 영화라면 모를까 30년 늦게 보면서 그걸 단점이라고 하면 좀 그렇겠죠. 그 시절에 백인 남성 감독이 인종차별과 여성의 애환(?)을 소재삼아 이 정도로 뽑아냈으면 오히려 칭찬을 해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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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 생각해보니 이 영화 역시 나오는 남자의 거의 대부분이 진상 민폐. 그리고 갸들 땜에 여자들이 고생. 뭐 이렇네요)


 

 - 또 한 가지 특이하게 재밌는 건 영화 제목에 이름을 박아 넣고 있는 이 영화의 괴물 '캔디맨' 캐릭터입니다.

 이 분이 아주 거한 멜로드라마 배경을 깔고 계신 분이거든요. 어쩌다 노예 출신이었다가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제대로 교육 받으면서 잘 자랐고. 그래서 화가가 됐다가 부자 백인네 딸과 사랑에 빠졌고. 그걸 들켜서 손목 잘리고 온몸에 벌꿀을 칠한 채 벌통에 던져지고... 뭐 이런 겁니다만.

 ...본인이 거기에 별 신경을 안 씁니다? ㅋㅋㅋ 


 말로는 뭐 이러쿵 저러쿵 그 설정에 대해서 떠들어대긴 하는데요. 실제로 관심을 갖는 건 그저 본인이 영원히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 그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란 게 바로 '도시 전설'이에요. 사람들이 계속 자신을 기억해주고 두려워하면서 이야기를 해줘야 본인은 존재할 수 있다는 거죠. 자기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출동해서 죽여버리는 이유도 그겁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서도 그런 짓을 하는 놈이라면 자기 존재를 안 믿는 놈이기 때문에, 그런 놈들을 아주 혼내줘야 사람들이 계속 자길 기억하고 두려워할 거라는 거죠. 생전에 겪었던 일에 대한 복수라든가, 백인들에 대한 증오라든가 그딴 거 없습니다. 이쯤 되면 사실 도시 전설은 그저 도시 전설일 뿐이고 캔디맨의 과거지사도 다 걍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일 뿐인데 그 도시 전설이 생명력을 얻어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게 아닌가... 라는 의심까지 하게 되더군요.


 암튼 그래서 이 캐릭터는 뭔가 좀 묘하고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인종 차별의 희생자 맞는데요. 위 문단과 같이 생각하면 그냥 '도시 전설' 그 자체를 의인화한 캐릭터 같기도 하고. 또 극중에서 실제로 벌이는 행각들을 보면 그냥 힘 없는 여성들 괴롭히는 악질 변태 스토커 같단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영화 내용상으론 자기 의지로 죽인 사람이 몽땅 여자들 뿐이기도 해구요.

 아마 영화가 재미가 없었으면 '뭐 이도 저도 아니고 좀 삑사리 캐릭터네' 했겠지만 다행히도 영화를 재밌게 봐서 그냥 '다양한 의미를 품은 재밌는 캐릭터'라고 주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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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지고 카리스마 쩌는 척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걍 진상 민폐 캐릭터라고 밖엔...;)



 - 아. 근데 가장 중요한 걸 아예 얘길 안 했네요. 이게 공포 영화잖아요?

 음. 안타깝게도 그게 그리 무섭지는 않습니다.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게 공중 화장실 장면이었는데 이유는 너무 초현실적으로 더럽게 잘 표현해놔서... 였구요. ㅋㅋ 호러가 특별히 구리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만. 특별히 훌륭하단 생각도 안 드는 뭐 그 정도랄까요.

 그냥 캔디맨 아저씨가 적당히 간지나긴 했습니다. 하는 짓을 보면 별로지만 걍 대사도 멋들어지게 읊고 폼도 꽤 잘 잡고 그래요. ㅋㅋ



 - 대충 종합하자면 이랬습니다.

 되게 무서운 호러냐. 고 하면 상당히 자신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또 분명히 재밌는 호러 영화이긴 합니다.

 제 생각엔 그 시절에 본 것보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보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당시에 봤더라면 그냥 감독님 의도대로 순수하게 아 흑인 차별 나쁘구나! 그래도 주인공은 착하구나! 이러면서 봤을 걸 지금 시점에선 좀 잘난 척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트집도 잡고 또 칭찬도 하며 볼 수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따져가며 볼만한 떡밥들이 풍부하고, 그렇게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거 진지하게 칭찬이에요. 어떤 작품이 감상자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는 게 얼마나 좋을 일인가요. 그 이야기 자체도 분명히 준수하고 말이죠.




 + 솔직히 버지니아 매드슨은 그냥 제가 좋아하는 마이클 매드슨의 동생... 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젊었을 때 이렇게 미인이었는지 몰랐네요. 약간 질리언 앤더슨 젊을 때 생각도 나는데 그냥 '누가 더 예쁘니' 라고 따지자면 버지니아 매드슨 쪽이 더 예쁘시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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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고전 영화 속 미인 느낌 낭낭하지 않습니까)



 ++ 도입부에 나와서 여자랑 나쁜 짓(?)하려다가 목숨을 건지는 나쁜 남자... 를 연기한 게 테드 레이미입니다. 가만 보면 레이미 형제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들 같습니다. 덕업일치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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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형을 잘 만난 게 가장 크죠. 그건 좀 부럽네요. ㄷㄷㄷ)



 +++  주인공 남편 역을 맡은 잰더 버클리는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는 가운데 제가 바로 얼마 전에 봤던 '다크 앤 위키드'에도 출연하셨고.

 헬렌과 엮여서 곤경에 처하는 흑인 여성 역할 맡으신 분은 이름이 '바네사 윌리엄스'이고 직업이 배우 겸 가수라고 적혀 있어서 제게 잠시 충격을 주셨습니다.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ㅋㅋㅋ 결국 동명이인이었어요. 그럼 그렇지. 어쨌든 이쪽(?) 바네사 윌리엄스는 올해 공개됐던 '아메리칸 호러스토리즈'에도 출연하셨네요.




2.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


 - 한 시간짜리 다큐... 라기엔 너무 가볍고. 그냥 '교양 프로' 정도 호칭이 어울리겠네요. 로브 로가 진행을 맡았구요. 중간중간 인터뷰로 많은 평론가들과 앤디 맥도웰, 플로렌스 퓨, 마크 스트롱, 앤드류 가필드 등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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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코미디' 스페셜이니 당연한 얘기를...)



 - 제목 그대로 헐리웃 영화들 클리셰에 대해서 알려주는 건데... 그냥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클리셰 이야기하며 수다 떠는 거. 딱 그 수준입니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 되게 심각하게 파헤치는 것도 아니고 전체를 관통하는 무슨 주제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깊이가 있다든가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정말 그냥 재미로 보는 오락성 강한 교양 프로 정도랄까요.


 로브 로가 계속해서 드립을 날리는데 솔직히 타율이 낮아서 종종 민망하지만 뭐 덕택에 심심하진 않구요. 클리셰 하나 설명할 때마다 실제 영화 장면들을 예시로 보여주는데 거의 모두가 메가 히트작들이라 익숙하고 반가워서 좋습니다. 해당 클리셰에 맞게 되게 적절하게 딱 잘라서 보여주는 센스도 좋구요. 특별히 뭘 더 알게된 건 없지만 그냥 시시콜콜한 느낌으로 재밌어서 한 시간은 잘 보냈어요.


 그리고 뭐냐 그, 역시 21세기 컨텐츠답게 여성 차별, 인종 차별에 대한 파트 비중이 큽니다. 여성 차별 부분은 거의 다 여성이, 인종 차별 부분은 거의 다 흑인들이 코멘트를 하게 구성해 놓은 것도 참 21세기다웠구요. 플로렌스 퓨가 여성 비하 클리셰 얘길 하면서 '진짜 구림!! 난 저런 장면은 절대 안 찍을 거라능!!!' 하고 흥분하는 게 귀여웠네요. 근데 플로렌스 퓨 인터뷰 중 가장 재밌었던 건 그레타 거윅 감독에 대한 코멘트였어요. 스포일러(?)인 셈치고 이건 얘기 안 하는 걸로. ㅋㅋ


 이걸 어제 보고 오늘 캔디맨을 봤더니 여기서 흑인들이 '백인 구원자' 클리셰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빡쳐하던 게 생각나서 웃기더라구요. 거기 주인공님이 정말 노골적인 '백인 구원자'이다 보니... ㅋㅋ 위에서 한 얘기지만 92년에 백인 감독이 만들었잖아요. 그 정도는 이해를!!



 - 암튼 그래서 뭐 '심심풀이 땅콩'. 딱 이 정도 되는 컨텐츠입니다. 안 봐도 그만인데, 봐도 후회는 없을만한.

 넷플릭스 켜놓고 뭐 볼까 고민하느라 시간 다 보내서 '아 이제 한 시간 뒤엔 자야하는데!!!' 싶을 때 틀어보면 적절할 것 같네요.



 + 아 그런데.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유 아 넥스트, 해피 데스데이, 레디 오어 낫 등의 영화 결말 장면이 나옵니다. 스포일러성이 강하니 관람 여부 결정에 참조를.

 킥 애스, 다이하드 1, 2나 기타 등등의 다른 영화들도 나오긴 하지만 갸들은 장르상 결말이 너무 뻔하니 괜찮거든요. 하지만 먼저 말한 저 영화들은 아주 조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나 싶어서요. 최종 빌런이 누구인지, 주인공의 생사는 어찌되는지 등을 알게 되는 장면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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