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작이고 런닝타임은 103분. 장르는 SF/호러/스릴러 정도 됩니다. 스포일러는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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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짤 죄송합니다!!!)


 - 영화가 시작되면 한 흑인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뭔지 모르겠지만 최첨단처럼은 안 생긴 조그만 기기 하나를 두고 거기에 연결된 커다란 바늘 같은 것을... 정수리에 꽂습니다. 피가 주욱. 으엑... 그러더니 혼자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거리며 이상한 표정을 지어요. 

 장면이 바뀌면 그 분이 이제 서빙 일 하는 분 같은데. 총을 챙겨갖고 일터에 들어가다가 문득 옆에 놓인 칼을 집어들고. 어떤 남자에게 돌진해서 다진 고기를 만들어 놓습니다. 역시 피가... 으엑. 그러고는 총을 입에 물고 자살하려고 하는데, 부들부들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진입한 경찰들에게 총 맞아 죽네요.


 ...장면이 바뀌면 왠 백인 여성이 등장하는데. 음. 여기서부턴 걍 요약 설명하자면 이 백인 여성은 킬러입니다. 킬러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그 방식이 독특해요. 다른 사람의 의식에 본인 의식을 주입해서 지배한 후 타겟을 죽이고, 깔끔한 처리를 위해 자살 처리하면서 본인은 복귀하는 겁니다. 제목의 '포제서'란 건 그렇게 남의 의식을 지배해서 몸을 차지하는 걸 얘기하는 것 같네요. 시간 제한이 있어요. 이게 원래 몸 주인 의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걍 억눌려 있는 거라 그 안에서 며칠 이상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성이 '보스'라서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이 킬러는 본인 일에 애착이 큰 것 같고. 자기 직장에서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여러 여건상 좀 문제가 있다고 그 분의 상관인 제니퍼 제이슨 리께서 말씀하세요. 암튼 일단 임무 하나는 무사히 끝냈으니 일단 집으로 귀가하고. 아내가 뭔 일 하는지도 모르는 가정적인 남편에게 '일 그만 두면 좋겠어'라는 말도 듣고, 귀염 깜찍한 아들래미도 돌봐주고... 그러다가 두 번째 임무를 맡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당연히 위에서 이야기한 주의사항을 지키지 못하게 되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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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주인공의 멀쩡한 이미지.)



 -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당황스러운 건 이겁니다. 음. 아니 획득 형질도 유전이 되나요. 아님 크로넨버그는 원래부터 그런 변태가 될 유전자를 타고난 건가요. 영화 스타일이 너무 자기 아버지 스타일입니다. ㅋㅋㅋ 그냥 아빠가 만들었다고 속여도 이상하다 느낄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그냥 아빠 스타일은 아니고 아빠가 지금보다 젊었을 적 스타일입니다. '비디오 드롬' 같은 거 만들던 시절 말이죠. 그래서 보면서 더 반가웠네요. 아빠 크로넨버그의 근작들은 젊은 시절의 그 괴상한 상상력 굴러다니는 스타일에서 많이 멀어졌잖아요. 근데 아들이 그 시절 스타일의 영화를 들고 나타난 겁니다. 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어요. ㅋㅋ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 or 초능력 같은 걸 손에 넣은 주인공이 그 힘에 빠져들다가 원래의 자신을 잃고 뭔가 다른 존재로 변해가고. 그 와중에 기계와 몸이 아주 기괴한 모양으로 융합되고... 뭐 이런 게 다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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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크로넨버그스럽게 하나도 안 첨단으로 생긴 첨단 기기)



 - 어쨌거나 그래도 다른 사람이고 새로운 아티스트인데 너무 아빠 스타일 판박이라 아쉬울... 일은 일단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름 본인 스타일 같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시각적인 측면이 그렇습니다. 뭐랄까, 요즘 하트하우스 호러물들 잘 만들어내는 감독들과 약간 비슷한 느낌인데, 제가 미술이나 이런 쪽으로 워낙 문외한이라 뭐라 설명은 잘 못하겠네요.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21세기 트렌드를 반영해 비주얼을 업데이트한 90년대 크로넨버그 영화 같달까요. 

 생각해보면 그냥 비주얼만 업데이트한 건 아닌 듯 하기도 하네요. 일단 주인공이 여성이잖아요. 게다가 보다보면 이게 결국 '가정과 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는 유능한 커리어우먼'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그런 스토리가 있어요. 하하;


 그리고 그 시절 아빠 영화들에 비해 이미지들이 좀 예쁩니다. 물론 피칠갑에 신체 손상 & 변형이 난무하는 기괴한 예쁨입니다만. 어쨌든 예쁩니다. 미장센도 좀 더 신경 쓰는 느낌이고 색감도 일관성 있게 통일해서 잘 쓰는 것 같구요. 그 색감들이 많이 인공적으로 예쁜 느낌이라 보다보면 이게 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렇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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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과 유리를 활용하는 장면들도 그 활용 방식 자체는 뻔한데도 느낌이 독특합니다.)



 - 아. 그리고 뭣보다 재밌습니다.

 기괴하고 헷갈리고 종종 도 닦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재밌어요. 되게 많은 사건이 숨 막히게 막 들이닥치는 거랑은 거리가 멉니다만. 그냥 장면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가 신선한 맛이 있어서 별 큰 사건 안 벌어져도 그냥 집중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더군요. 아빠 영화들도 그랬듯이 아이디어의 사이즈에 비해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은 규모가 참 작습니다만. 그래도 그 안에서 볼 거리,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알차게 뽑아내서 심심하지 않아요.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좋았어요. 그냥 애초에 생긴 것부터 뭔가 신비롭게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분을 뽑아서 신비롭고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캐릭터로 밀고 나가고, 이야기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그 속마음을 알게 해주는데. 이렇게 주인공의 마음 속을 미스테리로 삼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게 나름 신선하고 재밌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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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연기 분량이 가장 큰 건 저입니다만...;)



 - 대충 정리하자면요.

 아빠 크로넨버그가 비교적 젊던 시절 만들던 그 괴상한 영화들을 좋아하는 분들은 꼭 보세요. 

 그 외에도 뭔가 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볼만 하실 거구요. 근래에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아트하우스풍 호러 영화들 좋아하셔도 볼만 합니다.

 다만 고어에 내성이 없으신 분. 기괴하고 부도덕한 스토리를 싫어하는 분들은 안 보시는 게 좋습니다.

 전 아주 맘에 들어서 이 양반의 신작은 언제 나오나... 하고 검색해보고 있습니다. ㅋㅋ




 + 숀 빈이 나옵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아빠 크로넨버그는 '크라임스 오브 퓨쳐'라는 영화를 다 찍고 후반 작업 진행 중이군요.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트, 비고 모텐슨 등등이 나오고 시놉시스를 보면 뭔가 다시 옛날 스타일 영화를 하나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데... 사실 이게 크로넨버그의 아주 옛날 작품이랑 제목이 똑같아요. 시놉시스를 보면 다른 작품인 것 같은데 뭔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어쨌든 이제 여든을 눈앞에 두고 계신 분이라, 건강하게 영화 더 많이 남겨주길 빕니다.



 +++ 보면서 '공각기동대' 생각도 많이 들었더랬습니다. 되게 다른 이야기지만 또 은근히 닮은 점이 많아요. 설정도 좀 그렇지만 특히 시각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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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역시 아주 기분 나쁜 버전으로 닮았습니다.)



 ++++ 아. 주인공 역할 여배우를 분명 어디서 봤는데??? 하면서 봤는데. 확인해보니 블랙미러 '악어' 에피소드 주인공이셨군요. ㅋㅋ

 맞아요. 그 때도 분위기 참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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