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의 법칙'과 같은 1994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5분. 장르는 코미디/호러구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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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도 이 영화에서 제작비를 가장 많이 들였음직한 저승 세계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도착해선 간단히 혀를 자른다거나 하는 벌을 받고요. 벌벌 떨며 한 곳에 모여 있다가 훈련소 교관 같은 저승사자들의 안내를 받아 갈 곳으로 떠나요. 그리고 독고 영재씨가 등장하는데, 저승사자 넘버 69번인가 96번인가 되는 이 분은 번호가 96번인가 69번인가 하는 다른 저승사자로 오인되어 '인간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마지막 구미호놈을 잡아와라'는 미션을 강제로 부여 받고 인간 세상으로 떨어집니다. 


 장면이 바뀌면 또 다짜고짜 성폭행 시도 장면(...)이 전개되네요. 구미호 고소영씨 남자 친구가 한참을 사귀었는데도 한 번도 안 해주는 애인에게 열받아서 숲속에서 성폭행을 하려 하고, 한참 최선을 다하다가 결국 구미호로 변신한 고소영에게 간을 파먹히고 죽어요.

 그리고 대략 그 시각쯤에 우리의 정우성씨(직업:택시 기사)는 길 가다 마주친 불량배들에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카리스마 터프남 대사("이 세상엔 두 가지 밖에 없다. 길을 비켜 주는 것과 아니면 내 구두축에 짓뭉개지는 것!!!")를 날린 후에 멋지게 싸우는 듯 하다가 허망하게 두들겨 맞고 칼침까지 맞은 채로 도망치다가... 고소영을 만나 탈출하게 됩니다. 뭐 이렇게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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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 돈 들이고 노력한 티가 났던 도입부 장면... 짤을 올리고 싶었는데 인터넷에 있는 게 이것 밖에;;)



 - 뭐 좋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가치는 한국의 충무로판에서 '우리도 헐리웃처럼 cg랑 특수효과 왕창 쓴 영화 한 번 만들어보자!'는 시도를 시작한 첫 작품이라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그 부분은 분명히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 눈으로 볼 땐 티비 드라마에 써도 제작비 회식 논란! 같은 기사가 뜰 수준이지만, 심지어 그 당시 기준으로도 일반 관객들 눈으로 보기에도 허접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시도도 하고 덕택에 경험도 쌓았고. 그게 수십년치가 쌓여서 지금의 한국 장르 영화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 좋은데요.


 ...그래도 명색이 '영화'를 만든다는 프로들이 모여서 만들었는데. 각본을 이렇게 허접하게 쓰면서 대체 뭘 바랐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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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보도 CG에 맞춰졌던 기억인데. 음. 참 소탈하죠 아무래도. ㅋㅋㅋ)



 - 그러니까 아이디어는 대충 알겠습니다.

 독고영재와 방은희가 연기하는 저승사자와 무당 커플로 코미디를 하구요. 동시에 고소영과 정우성을 데리고는 진지한 멜로를 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웃기고 울리고 다 하면서 또 cg와 특수 분장들로 볼거리를 와장창 펼쳐주면 모두가 좋아하겠지! ...에다가 베드씬 몇 번이랑 여배우 신체 노출도 넣어주면 정말들 좋아할거야!! 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럼 일단 뭐, 볼거리야 당시 여건상 한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코미디는 웃기고 멜로는 슬퍼야죠. 근데 둘 다 정말로 철저하게 실패합니다. 안 웃기고 안 슬퍼요. 


 이틀 연속으로 이런 얘길 하자니 좀 미안(?)한데. 정말로 각본이 허접합니다. 독고영재가 열심히 몸 바쳐 날리는 개그들은 주로 등골이 오싹한 썰렁함에 그치구요. 그래서 뭔가 배우가 불쌍해지고.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그냥 의무적으로 흘러갑니다. 두 인물이 서로에게 끌린다기 보단 그냥 '너 여자 주인공? 난 남자 주인공이야. 그러니까 우리 사랑하자!!!' 라는 느낌만. 그 과정에서 둘에게 생기는 사건들도 정말 재미도 없고 신선함도 없고...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다 디테일은 없고 하찮은 설정들만(풍선껌에 집착하는 저승사자! 웃기지!!! 응??) 덕지덕지라서 정도 안 붙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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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재 아저씨의 난감한 캐릭터 vs 정우성의 난감한 연기)



 - 물론 연출도 각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냥 간신히 정보만 전달하는 수준이고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이나 괜찮게 연출된 액션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텔 미 썸딩' 때 했던 얘기처럼 뭔가 이야기가 강약 없이 무덤덤하게 줄거리만 전달하며 흘러가는 느낌. cg와 분장이 들어간 장면들도 그 효과들의 기술적 퀄리티에 대한 부분들을 떠나서 그냥 다 연출이 구립니다. 80년대 '전설의 고향'식 연출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난 퀄이었습니다. 거기에 그냥 cg만 좀 들어간 거죠. 그런데 런닝타임은 거의 두 시간이니 한밤중에 불 끄고 보면 상당히 졸립니다. 솔직히 중간에 한 번 졸아서 30분을 되감기 하는 바람에 결국 두 시간 반 동안 감상한 영화가 되어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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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다 잊고 (배우들) 비주얼만 봅시다 비주얼. 그런데...)



 -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뭐였냐면.


 아. 고소영과 정우성의 비주얼 리즈는 이 때가 아니라 몇 년 후였구나. 라는 거? ㅋㅋㅋ 고소영은 이게 '영화' 데뷔작이고 이미 '내일은 사랑'으로 비주얼을 뽐내고 '엄마의 바다'로 꽤 인기를 끌던 중이었죠. 정우성은 이게 아예 연기 데뷔작이었구요. 둘 다 연기는 잘 못합니다만 뭐 그거야 보기 전부터 감안했던 부분이니 괜찮았(?)는데, 둘 다 이 때보다 몇 년 후가 훨씬 예쁘고 잘 생겼더라구요. 특히 정우성은 많은 장면에서 꼭 정우성이 아니라 장혁 같아 보입니다. (장혁씨 죄송...;) 두 사람의 연기를 놓고 평하자면 아무래도 그래도 경력이 좀 있는 고소영이 나아요. 정우성 연기는 정말 나쁜 의미로 대단합니다. ㅋㅋㅋㅋ '본 투 킬'이나 '비트'에서도 딱히 잘 했던 건 아니지만 이 영화에 비하면야 뭐. 알고 보니 성실한 성장형 배우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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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권해효가 특별 출연했구나!!! 가 아닙니다. 그냥 당시에 무명이셨던 것...)



 그리고 권해효, 안석환 같은 배우들이 마치 카메오 같은 비중으로 나오는데 카메오가 아니라 그냥 단역이었다는 거. 이 분들이 유명해진 게 대략 언제쯤 부터였더라... 라며 기억을 돌이켜보는 게 영화 감상보다 몇 배는 더 재밌었네요.


 마지막으로 영화 등급이 말이죠. 제 기억엔 이게 중고딩 관람가였고 지금도 15세인 걸로 나오는데. 대역을 썼다지만 주인공 커플의 베드씬도 몇 번 나오고, 방은희씨는 진짜 별 의미 없는, 그래서 의도가 더 선명해 보여서 보기 난감한 상체 노출씬이 짧지 않게 나옵니다. 요즘에야 15세 등급이 참 이래저래 말이 많다고 하지만 1994년에 이게 중고등학생 관람가였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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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좀 확실히 덜 잘 생긴 느낌의 정우성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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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영은 이뻤습니다.)



 - 암튼 뭐 그렇게 한국형 블럭버스터 오락 영화의 시도로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고. 또 고소영의 영화 데뷔작이자 정우성의 배우 데뷔작으로 의미가 있고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서 이제 몇 년 뒤에 '은행나무 침대'도 나오고 그랬던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모로 뜻 깊은 영화이고 그건 다 인정합니다만. 어쨌든 잘 만든 영화도 아니고 재밌는 영화도 아니었다는 거. 그래도 제겐 역시 숙제(...)로서 또 한 편 해치웠다는 보람 정도는 남았습니다만. 그런 경우가 아닌 세상 거의 모든 분들에게 '보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냥 그 의의만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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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스캔 이미지를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니 고교생 관람가였군요. 그래도 역시 놀랍습니다만.)





 + 위에 적었듯이 성폭행 '시도' 장면으로 막을 열고. 방은희씨의 무의미한 흥행 버프용 노출씬이 나오고. 나중에 정우성과 고소영이 다투는 장면에선 정우성이 고소영에게 싸대기를 몇 대를 쫙 쫙 날리고선 계단에서 굴려 버리고 그럽니다. 아아 우리들의 20세기란(...)



 ++ 영화를 보는 내내 구미호의 인간 이름이 '헤라'라고 생각했는데. 정우성이 그렇게 부르는 걸로 들렸거든요. 근데 다 보고 나서 영화 정보를 찾아보니 '하라'였네요. 그 시절 인터뷰 기사에도 다 '하라'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게 맞겠죠. 정우성 발음 때문에 괜히 살짝 울적해진.



 +++ 절대 겸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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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아요. (끄덕.)



 ++++ 도대체 이런(?)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님은 지금 뭐 하고 사실까? 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필모그래피에 반전이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 '주노명 베이커리' 등을 만들며 그냥 고만고만하게 잊혀지셨는데. 지금은 대학 교수이신가봐요? 근데 그래서 이름을 올려 놓은 작품들이


 제작책임 :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연애담, 어른도감, 죄 많은 소녀

 지도교수 : 보희와 녹양, 아워 바디, 야구 소녀, 윤시내가 사라졌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등등등. 솔직히 뭐 제가 저 직책들이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라인업이 쟁쟁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 그래서 스포일러 구간인데요. 여기까지만 그냥 적자면 결말 진짜 맘에 안 들었습니다. ㅋㅋㅋㅋㅋ


 결국 저승사자와 무당은 지들끼리 웃기지도 않는 개그하느라 바빠서 구미호를 잡을 틈이 없어요. 막판에 저승사자가 정우성에게 찾아가서 '갸가 사실 구미호이고 니 간 빼먹고 인간 되려고 널 꼬신 거야'라고 말해주는 게 다였죠. 그것 때문에 정우성이 고민하다가 막판에 사랑을 택한다... 뭐 이런 전개를 노린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게 흘러가지만 아무 감흥 없구요.

 구미호가 인간이 되기 위한 데드라인을 몇 시간 남겨 놓고 주인공 커플은 영화를 보러 가고, 당연히 퇴마 커플도 따라가서 또 몸개그를 하며 고소영을 건드립니다만. 결국 빡친 구미호의 분노로 분위기는 갑자기 코미디에서 전설의 고향으로. 근데 여기서 웃기는 게 무당은 그렇다 쳐도 저승사자가 구미호에게 완전히 아무 쪽도 못 써요. 대체 그동안은 어떻게 잡겠다고 그렇게 여유를 부렸는지. ㅋㅋㅋ

 암튼 대략의 혈투 끝에 무당이 구미호가 날린 공격에 맞고 장렬히 사망. 그리고 정우성에게 구출 받은 구미호는 마지막 순간에 자기 목숨줄을 정우성에게 건네주고 여우 귀신 얼굴이 되어 사망합니다. 슬퍼하는 두 남자의 모습. 특히 정우성의 짧은 샤우팅을 하늘에서 비추며 그렇게 그냥 새드 엔딩으로 끝나 버립니다. ㅋㅋㅋ 차라리 어떻게든 두 커플 다 살아서 꽁냥거리며 끝나면 그래도 좀 나았을 것 같은데. 참 난감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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