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짓'을 보고

2023.02.09 13:45

thoma 조회 수:330

Transi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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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펫졸트 감독의 '트랜짓'입니다. 소설을 먼저 읽어서 견주어 쓴 부분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영화이지만 스포일러 의식 않고 쓰려고 하니 주의하시길.

설정이 특이합니다. 시간적으로 현재인데 펼쳐지고 있는 사건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 상황입니다. 그래서 유태인 포함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죽음과 수용소행을 피해 유럽을 떠나려고 국제선이 운항되는 마르세유에 모여듭니다. 


주인공인 독일인 게오르그는 다친 사람을 데려다 주라는 부탁을 받고 마르세유에 오게 됩니다. 그 사람은 오다가 죽고요. 게오르그는 파리에서 우연히 손에 들어온 자살한 작가 바이델의 신분증으로 비자 신청을 하고 그 덕분에 마르세유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떠난다는 증명서가 없으면 외국인은 숙박도 어렵거든요. 그리고 거리에서, 식당에서 누군가를 찾아 다니는 마리라는 여자와 자꾸 마주치게 됩니다. 마리는 의사 남친과 지내고 있는데 자신이 헤어지자고 한 남편이 마르세유에 왔으나 자신을 피한다며 계속 찾으러 다닙니다. 마리의 의사 남친은 꼭 떠나고 싶고 여러 가지 서류 조건도 갖추었으나 주저하는 마리 때문에 괴로운 상태입니다. 마리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 같고요. 게오르그는 꼭 떠날 생각은 없으나 마리를 알게 되면서 바이델의 조건을 이용해 자신(바이델)과 마리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사관을 들락거리게 됩니다. 떠나려는 사람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서류 문제들, 그러는 중에 오가며 마주치는 낯선 이들. 이 정도가 영화의 표면적 내용을 이루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현대적인 항구 도시 마르세유의 거리와 경찰차 사이렌을 동시에 배경으로 깔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이렌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대사관들의 긴 줄을 잇는 건 유럽인들, 백인들이고요. 유럽 대륙의 난민들이 유럽인들인 것입니다. 

원작이 있습니다. 동독 작가인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입니다. 이 책은 작가의 실제 경험, 그러니까 공산주의자로서 나치에 저항한 부부와 자식들의 마르세유 경유 탈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쓰여진 소설입니다. 책은 1944년에 망명지인 멕시코의 스페인어, 영어, 불어로 먼저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안나 제거스는 1946년 동독으로 돌아가서 작가 활동을 계속하며 작가동맹 등에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라고 하네요. 소련에서 훈장도 줬다는 걸 보면 투철한 공산주의자로 평생을 산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 사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전혀 없어요. 소설은 상당히 혼란한 상황을 묘사하는 가운데 우울하며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오래 전에 사서 보관하다가 최근에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었는데 책도 좋았고 영화도 좋았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소설이 조금 더 마음에 남았지만요. 

원작을 가져오되 영화는 시간을 현재로 해서 당면한 유럽의 난민 문제를 치환해 보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도 한때 난민이었다는 것이죠. 거리에서 쫓기고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하며 대사관과 경찰서와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존재를 서류화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취소되고 또 기다리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가족이 잡혀가기도 하는 상황을 아프리카나 아랍쪽 사람이 아니라 인종이 백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겪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게오르그가 만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떠나서 종적을 알 수 없습니다. 내레이터를 맡은 피자집 주인만이 죽지 않고 게오르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나머지 날들을 전해 주는 모양새입니다. 떠나고자 하나 떠날 수 없는 상황, 기약도 없으나 기다려야 하는 가운데 죽음이 도처에 널리게 되는 상황입니다. 종국엔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었으나 기다림의 형벌을 받은 것 같은데, 이는 죽은 작가 바이델의 작품에서 이러한 영문 모를 기다림이 바로 지옥이라고 언급됩니다. 난민의 처지를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 단출합니다. 많은 인물들이 추려졌고 따라서 이야기들도 단선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윗 문단에 언급한 기다림의 문제도 소설은 훨씬 더 인물들에게 혼란을 안겨주며 진을 빼는 식으로 전개 되었거든요. 영화가 소설에서 추려 버린 것들 중에 밤의 거리와 카페들과 화덕이 있는 피자집 풍경이 사라졌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소설에서는 배경이 마르세유 중에서도 카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물이 정말이지 많은 카페들을 돌아다닙니다. 인물이 처한 혼란상의 상당 부분이 카페를 배경으로 드러납니다. 그곳에서 온갖 정보를 주워 듣기도 하고요. 헤매 다니면서 원래 알던 사람들, 새로 알게된 사람들, 사랑하게 된 여자와 그의 남자 등등을 마주치고 다닙니다. 그리고 피잣집의 화덕 불빛은 인물들이 마음 붙이는 소중한 소재라 영화에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어요. 영화에서도 피자는 나오더군요. 마르게리따 피자. 


아래 두 사진 중 위는 대사관에서 호명되자 저요, 하고 나서는 게오르그(바이델) 역의 프란츠 로고스키. 이 배우의 몸씀과 얼굴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얼굴이 약간 고대 조각처럼 보입니다. 잘 생기고 아니고를 떠나 배우의 매력이 매우 충만합니다. 아래 사진은 마리 역의 폴라 비어입니다. 영화 속의 정체성과 잘 맞는 사진이라 가져와 봤어요. 니나 호스와 더 이상 영화 안 하나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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