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기독교

2011.07.17 02:27

bulletproof 조회 수:4304


오바마에게 있어 종교는 그의 대권행보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과제였습니다.

무신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과 다양한 종교를 접할 수 있었던 어린시절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오바마는 미국의 '국교' 기독교와 친숙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죠.

그는 젊은 시절 사회운동을 하면서 교회가 가진 영향력과 비기독교인으로서의 벽을 실감했습니다.


지역조직운동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가 있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죠.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의 특징은 한 마디로 '흑인신학'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세상을 억압자와 비억압자로 구분짓고 예수를 비억압자들의 구세주이자 해방자로 인식한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사상과 흑인민권운동 그리고 전통 기독교의 메시아적 사상이 뒤섞어있죠. 일반적인 교회와 다르게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는 여성의 낙태권, 동성애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오바마가 대권후보가 된 이후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를 다녔던 경력은 곧바로 보수 기독교계와 공화당의 일차적인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오바마의 경쟁상대였던 매케인은 종교를 정치적 목표달성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점잖은' 보수주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를 옹호하던 오바마도 라이트 목사의 거침없는 화법 - God damn America! - 이 자신의 정치적 앞날에 부담이 될 거라고 판단했는지

오랜 세월 자신의 영적 고향이 되어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오바마는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믿기 시작하며 그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한 뒤로도  언제나 이성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로마서의 애매한 문장 하나가 기독교를 정의할 순 없다.'고 말하는 오바마를 단순한 기독교인으로 얘기하긴 힘들 겁니다.

그는 오히려 오늘날 종교를 자기 취향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소위 '쇼핑'하는 미국 젊은 세대들의 포스트모던한 종교관을 가졌다고 볼 수 있죠.

젊은 시절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방황의 시기에서 기독교를 통해 위안을 얻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긴 했지만 오바마에게 있어 종교는 인생의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나침반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부시와 정반대되는 점이죠.)


종교의 영향력과 힘을 경험한 오바마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를 떠난 뒤로도 기독교 자체를 멀리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종교를 정치활동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에 동의하기도 했죠. 다만 비종교인들도 수긍할 수 있도록 종교적 색채를 지우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보수기독교계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만...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어 오바마의 이런 종교관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기도 하면서 엄격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수하는 민주당의 가치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죠.

어쨋든 종교를 아예 언급조차하지 않으려했던 하워드 딘의 선거정책보다는 오바마의 적극적인 종교적 어필이 선거에서의 승리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민주당도 점점 종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좌파기독교'의 등장입니다.


무신론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 현실적 필요성으로 기독교에 몸을 담기 시작했고 결국 기독교를 진심으로 믿기 시작한 오바마의 종교적 여정은 참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양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할 때 부친의 종교를 이어받는 이슬람의 전통으로 오바마의 학생부 종교란에는 이슬람교가 적혀있었죠.

학교에서 이슬람 수업을 듣기도 했던 그가 어린 나이에 이슬람적 종교관을 내면화했는지는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알 수 없지만... 그가 이슬람 신자였다는 가정을 세우면

이슬람 신자였기 때문에 미국 기독교계에서는 '죽일놈'이고 훗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슬람계에서는 진짜로 '죽일놈'이 됩니다. 

재미있게도 얼마 전에 공개된 오사마 빈라덴의 살생부에 오바마가 적혀있긴 했다는군요.





이글을 왜썼냐구요?

전 오바마의 스토리가 재밌습니다. 오바마에게 있어 스토리는, 그리고 그 스토리를 정갈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그의 필력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죠.

취업시장에서도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는 요즘... 오바마 나이대의 정치인들 중에서 오바마만큼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전세계에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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