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어요.



 - 때는 현재.

 1. 우주 갑부집 싸가지 없는 딸래미로 sns '인플루언서'로 성공하겠다는 퍽이나 대단한 꿈을 가진 '코코'라는 여성이 개인 비서(라고 적고 '시종'이라고 읽는)를 거느리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with 나머지 가족)에게서 연락이 오는데 지금 핵전쟁이 일어났대요. 거기도 곧 불바다 돼서 다 죽을 텐데 다행히도 자기가 이런 일 있을까봐 보험 삼아 비밀 벙커를 예약해놨답니다. 그런데 자기랑 가족들은 너무 멀리 있어서 입장이 불가능하니 너라도 얼른 가서 살아남아라... 뭐 이렇게 되구요. 결국 가족 수대로 자리가 남으니 본인 + 비서 + 미용사를 데리고 벙커로 갑니다.

 2. 평범한 가정의 훈남 젊은이 하나가 방금 인터넷으로 대학 합격을 확인하고 가족들과 함께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핵전쟁이 일어났대요. 가족이 다함께 패닉하는 와중에 갑자기 정부 기관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미래를 대비해서 우월한 유전자를 남길 계획인데 너님 당첨!' 이라면서 그 훈남만 끌고 갑니다. 훈남이 도착한 벙커는 대피 시설이라기보단 쌩뚱맞은 지하 철창 감옥 같은 곳인데 거기에서 자기랑 같은 이유로 소환된 여성 한 명을 만나구요. 몇 주 뒤 '저 좋은 시설로 옮겨주겠다'는 사람들을 따라 중세풍의 음침한 지하 시설로 옮겨가게 되지요.

 3. 핵전쟁은 일어났고 70억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미리 준비된 벙커로 피신한 선택받은 자들만이 그럭저럭 목숨을 이어가고 있죠.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은 1과 2의 인물들이 모여 있는 벙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벙커의 책임 관리자들이 좀 정신 나간 사디스트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설정해 놓고 귀한 생존자들을 그냥 막 죽여요. 그러는 와중에 정체불명의 '연합'이라는 곳에서 파견왔다는 금발의 젊은 청년이 나타나 '이 곳의 사람들 중 최고를 선발해 훨씬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겨주겠다'면서 구성원들 면담을 시작하는데 당연히 이 청년이 좋은 사람일 리는 없겠죠...



 - 위에서 길게 도입부를 설명해 놨지만 사실 다 의미 없습니다.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암튼 그래요. 이 시리즈가 늘 그렇듯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충격적인 전개!!!'를 빙자해서 계속해서 산을 타는 스토리거든요.  전부터 들던 생각인데 이 시리즈의 작가들은 혹시 '릴레이 소설'을 쓰는 식으로 각본을 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 명이 쓰다가 다른 한 명이 이어받아서 맘대로 쓰다가 다시 또 다른 사람이... 그냥 결말 정도만 정해놓고 진짜 그때그때 땡기는대로 막 쓰는 느낌. ㅋㅋㅋ



 -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시즌은 시리즈의 첫 시즌과 세 번째 시즌의 크로스오버 시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 시즌의 찝찝한 마무리를 세 번째 시즌의 캐릭터들을 동원해서 수습하는 이야기죠. 고로 1, 3시즌 중 하나라도 안 보신 분들은 애시당초 관심도 주지 않으시는 게 현명합니다. 동시에 이 시즌을 보기 위해 1, 3시즌을 봐야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시즌도 아니에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물론 거꾸로 말하면 1, 3시즌을 재밌게 보신 분들에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시즌이구요.



 - 거기에 덧붙여서 이 시즌은 이 시리즈의 팬들을 위한 시즌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자체도 원래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팬픽 수준 느낌이고, 또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밀어 붙이는 시즌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똑같은 배우들이 매 시즌마다 다른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며 끌어간다... 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개성을 이 시즌은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뽕을 뽑습니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구성상 1, 3, 8시즌에 다 출연한 배우들 중 다수가 1인 3역을 맡게 됩니다. 그래서 장면이 바뀌고 시점이 바뀌어도 배우는 그대로... 라는 상황이 자꾸만 벌어지죠. 이게 무슨 예술적인(?) 의도와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해버려요. 보통의 정상적인 마인드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라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ㅋㅋ 그러다보니 티비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과 별개로 시트콤을 보고 있는 기분이 자꾸만 듭니다만. 어차피 거의 전체 시즌을 다 보고 있는, 그래서 이 시리즈의 성격에 익숙한 시청자 입장에선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별로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피식피식 웃으면서 재밌어했지만, 이게 뭐 좋은 거라고 남에게 추천은 못 하겠네요. ㅋㅋㅋㅋ



 - 그 외엔 대체로 평소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입니다.

 자극적이고 잘 먹힐만한 소재를 골라서 그럴싸하게 스타트를 끊은 후 자극과 반전에 집착하느라 끊임 없는 개연성 날림과 설정 붕괴로 일관하다 쌓이고 쌓인 떡밥을 마지막 한 회 동안 후다닥 급전개로 거칠게 마무리해버리고 끝나는 용두사미 막장 드라마요. 제가 비록 지금껏 넷플릭스에 공개된 8개 시즌 중 7개 시즌을 다 보고 언젠가 나올 9시즌도 반드시 볼 예정인 사람이지만 평가는 냉정해야죠. 이건 원래 그런 재미(?)로 보는 시리즈인 것입니다(...)



 - 아. 그러고보니 신선한 게 하나 더 있긴 했네요. 후반 전개에서 보면 작정하고 그냥 코미디로 전개되는 분량이 상당한데 그 코미디가 대부분 자학 개그입니다. 이번 시즌의 빌런이자 절대 존엄이신 그 존재를 멍텅구리 취급하는 얼간이들(...)의 모습이 한참 동안 나오는데 나름 웃겼어요. 동시에 작가들 본인들도 자신들이 쓰는 이야기가 얼마나 허랑방탕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구나... 라는 깨달음도 얻었죠. 솔직히 궁금했거든요 그게. ㅋㅋ



 - 배우 엠마 로버츠의 팬이라면, 또는 시즌 3 매디슨 캐릭터를 좋아했던 분이시라면 꼭 보셔야 합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가장 재밌는 캐릭터를 맡아서 활약하고 비중도 이 시리즈에서 엠마 로버츠가 맡았던 역할들 중 가장 커요. 심지어 에피소드 하나에선 아예 원탑 주인공으로 내내 활약해주니 참 뿌듯하더군요.

 이 분과 타이사 파미가의 비중 변화도 좀 웃겼네요. 원래는 타이사 파미가 쪽이 시즌 1과 3에서 주인공급 역할이었고 엠마 로버츠는 시즌 3으로 늦게 데뷔한 경우였는데, 이후로 엠마 로버츠가 꾸준히 출근 도장을 찍어줘서 개근상이라도 주고 싶었던 건지 타이사 파미가는 이번 시즌에선 그냥 병풍. 엠마 로버츠가 주연급 조연입니다. ㅋㅋㅋ

 에반 피터스와 함께 나오는 장면도 나름 사악한 재미꺼리였죠. 둘이 약혼까지 했다가 안 좋게 헤어진 사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둘 다 이번 시즌 내내 큰 비중으로 활약하는데도 둘이 마주쳐서 대화 나누는 장면은 딱 한 번, 아주 짧게 지나가는 부분 뿐이더군요.

 암튼 적어 놓은 걸 보면 아시겠지만 전 엠마 로버츠가, 특히 이 시리즈에서의 싸가지 캐릭터가 좋아서 아주 흡족했습니다.

 다만 저는 타이사 파미가도 좋아했는데 그건 좀 아쉽...



 - 언제나 그렇듯 대놓고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동시에 대놓고 트럼프와 공화당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장면과 대사들이 여럿 나옵니다. 이야기가 좀 더 그럴싸해서 정서적 울림까지 따라 붙었다면 좋았겠지만...



 -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시즌과 3시즌, 특히 3시즌을 재밌게 보셨거나 최소한 거기 마녀 캐릭터들에게 호감을 품으셨던 분들이라면 볼만합니다.

 그 외엔 보지 마세요. 정리 끝. ㅋㅋㅋ



 - 이런 거 따지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시즌 3의 엔딩을 생각하면 시즌 8의 세계와 마녀 학교가 그런 모습이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 따지면 안 되겠죠. 이건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니까요.



 - 시즌 3에서도 그랬지만 마녀들 능력에 대한 묘사가 좀 지나치게 무성의합니다. 그냥 짱 센 애면 처음 보는 마법도 시키면 그냥 다 척척 해내구요. 이런 어마무시한 능력에다가 시즌 3의 결말을 생각하면 역시 이게... 음... 아니죠.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럴 게요.



 - 유난히 현실 세계에 대한 언급이 많은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유명 인사들, 유명 기업이나 제품들에 대한 드립이 수시로 나와요. 그 중 상당수는 한국이었음 명예 훼손급이었는데, 표현의 자유가 좋긴 좋구나 싶었습니다. ㅋㅋ 그리고 맥북... 핵전쟁 아포칼립스가 찾아와 밤 되면 촛불 켜고 사는 세상에서도 거침없이 뽐내던 그 뚜껑의 사과 불빛. ㅋㅋㅋㅋ



 - 생각해보니 본격 예산 절감 시즌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배우 한 명당 역할을 세 개씩 시켜 먹는 데다가 세트도 재탕이 많구요. 야외 장면이 많지 않은데 대부분 산이나 황무지 내지는 시골 길 같은 곳. 에피소드 숫자도 다른 시즌들에 비해 비교적 적은 편이고 그 중 몇 개는 런닝타임이 40분이 안 되기도 합니다. 듣자하니 다음 시즌은 컨셉이 슬래셔 무비라고 하니 그 역시 저렴하게 찍을 수 있겠어요. 이러다 시트콤 될 기세.



 - 결론은 엠마 로버츠. 엠마 로버츠 만세. 나중에 넷플릭스에 볼 거 없어지면 이 시즌 6화만 다시 볼겁니...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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