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했는지도 모르게 주말이 가는군요.

 

 

1. 듀게에서 유기견 버리고 가는 주인 사진을 보고 분노에 차서 이번주 MBC스페셜을 받았어요. 전 저를 잘 아니까,

분명히 눈물 콧물 쏙 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프로그램 시작한 2분째부터 울기 시작해서 중간도 못 돼 엉엉엉 소리내며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내 코를 풀게 되더군요. 라탄하우스 1, 2층에서 각각 낮잠을 청하던 우리 고양이들이 저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이 동그래갖곤  '방금까지 잘 놀다가 왜, 왜그랴;;?' 라는 표정으로 번갈아 한 번씩 왔다 갔어요.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 대부분의 생각들에 대해 저는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화만 더 나더군요. 그런 류의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어졌어요.

 

 

이 세상의 많은 유기동물들에겐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 애들만은 잘 멕이고 잘 재우고 잘 놀고, 암튼 행복하게 살다 가게 키우리라:(............

(죠지 너의 뱃살은 내가 꼬옥 유지시켜 주겠어-___-! 불룩한 배는 부의 상징....웬 쌍팔년도 드립;;;;)

 

 

2  엉엉 울고 나니 염치없게 배가 고파져 옵니다. 꼬르륵 소리가 나네요. 애인님이 집에 잠깐 들렀는데 코를 풀고 있는 절 보고

혀를 찹니다. 양손에는 재래시장에서 장 봐온 것들이 들려 있군요. 회사에 도시락을 싸서 다닌지 일주일인데, 애인님이

일요일마다 찬거리를 사다 줍니다. 저번주에 사다준 것들이 좀 남아서 이번주는 세 가지만 사 오고 부스럭부스럭 뭘 더 꺼내는데

카레용 쇠고기(무려 A+한우;;;), 브로콜리, 감자, 양파, 그리고 '카레여왕' 이군요.

 

-카레?

-어 카레여왕 먹어봐 완전 맛있어. 나는 고기를 볶을테니 양파랑 감자를 까시게.

 

원래 요리하는 거 좋아하는 양반이라 가끔 육개장이니 장조림이니 닭볶음탕이니 하는 것들을 잘 만들어줍니다.  불쑥 나타나 카레 한솥

만들어 두고 가는 건 이분 주특기. 전 그동안 바몬드 고형 카레나 인델리를 애용했었지요. 카레여왕은 마트에서 살까 하다가 짱 비싸길래

헐. 소리와 함께 내려놨었죠. 뭐 카레 맛이 그게 그거려니.

 

육수분말, 카레분말, 스파이시분말 셋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똑같아요. 마지막에 스파이시 분말을 조절해서

매운 강도를 조절하면 됩니다. 전 매운 걸 좋아해서(코코이찌방 가면 5신을 먹지요) 전부 넣으라고 했어요.

 

 

뚝딱뚝딱 30분만에 완성. 애인님은 때깔이 마음에 들었는지 뿌듯한 표정을 하곤 락앤락에 사온 반찬 옮겨준 뒤

'내일 카레 싸 가' 하고는 저녁 약속 있다며 가버립니다. 이...이것은 주말 도우미 아저씨:(?

잔뜩 울고 배는 고프고, 어쨌거나 얼려둔 밥을 데워서 카레에 김치 덜렁 놓고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밥 반 공기에 카레 투척. 밥은 유기농 현미랑 백미 6:4 비율로, 현미 비율을 차차 늘릴 생각이에요.

흠, 맛이 무척 '찌인'해요. 야채를 버터로 볶아서 버터향도 많이 나고. 스파이시 분말을 다 넣었더니 뒷맛이 꽤 매콤합니다.

확실히 어렸을때 먹던 멀겋고 샛노란 카레 시절을 생각하면 맛이 많이 고급스러워졌습니다. 뚝딱뚝딱 만들기 편한 음식인 건 변함없지만요:)

먹고 남은 건 락앤락 세 개에 나눠 남았는데, 제 양이면 이걸로 나흘은 지낼 수 있겠군요.

 

 

 

3. 3년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지인이 있는데, 학원강사 알바할 때 같이 근무하면서 가까워진 사람이에요. 헌데 올봄에

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연락이 끊겨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가, 거짓말처럼 듀게 덕에 극적으로 상봉한 특별한 인연.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괜찮은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곳에 자꾸 미끄러지다

제가 취업한 얼마 전 그사람도 합격을 했어요. 이것도 또 거짓말처럼, 둘이 사회생활 시작한 첫 출근날이 같았습니다.

어제 저희집에서 족발 놓고 조촐한 취업파티를 했어요. 얼굴이 확 피었던데, 사실 전 제가 취업한 것보다 그사람이 취업한 게

훨씬훨씬 좋았어요. 좋은 곳 붙어서 재밌는 업무 하고 있다니 그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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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있는 그녀의 뼈다구샷. 이날의 그녀는 제가 알던 3년동안의 그 어느 날보다도 호탕하고 밝았어요. 기분이 좋으니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안 취하더이다.  이분을 시작으로, 그간 죽어라 안 풀리기만 하던 제 지인들 팔자가 좀 화통하게

빵 뚫렸으면 좋겠군요.

 

 

4  그나저나 저번주 금토일 연짱 마시고 이번주 수목금토 마시고( ..) 술 좀 그만 마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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