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번역 논쟁 관련

2014.04.12 23:42

autechre 조회 수:6444

오마이뉴스  - 카뮈의 <이방인>이 어려운 이유, 이것 때문이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54&CMPT_CD=P0001


경향 - 김화영 교수의 카뮈 ‘이방인’ 번역에 이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42009255&code=960205




몇 달 전부터 출판/번역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방인 번역 논쟁입니다.

한 '익명의' 번역자가 김화영의 '이방인' 번역이 완전히 엉터리라면서 블로그에 글을 연재했고

그러다가 얼마전 새 번역본을 내놓은 거죠.

이분은 '이방인' 번역이 첫 번역이라고 하고요.

(문제의 블로그. http://saeumbook.tistory.com/)



그 블로그에서는 논쟁이 계속되었지만 언론에서는 일방적으로 비판자(번역자/출판사) 측의 주장을 받아쓰던 중 

불어 전공자가 아닌 로쟈의 반론 비슷한 글이 있었고

http://blog.aladin.co.kr/mramor/6966576


한겨레에 어제 (영역본과 일역본을 비교한) 에두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김화영 비판자'에 대한 반론이 올라왔습니다.


한겨레 -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엉터리가 아니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2347.html


각론은 직접 읽어보시고 한겨레 기사의 입장은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로쟈 글에서 재인용)




이정서씨의 <이방인>도 숱한 번역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씨가 좀더 주목받는 이유는 ‘내 번역이 낫다’는 번역 논쟁에 그치지 않고 ‘권위자 김화영 교수의 번역은 엉터리다’라며 일종의 ‘문학권력 논쟁’으로 나아간 데 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25년을 속아 온 번역의 비밀, 이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움출판사의 마케팅 띠지 문구다. 이씨가 오역의 주체로 지목한 인물은 김화영(73)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다.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카뮈 대표작을 모두 번역해 전집을 낸 한국의 대표적인 프랑스 문학자·번역가다. 여러 권의 산문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씨의 익명 논쟁 방식도 논란이다. 이씨는 본명과 과거 문학가로서의 경력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름과 권위가 아니라 문장을 보자는 취지라고 이유를 밝혔다. 정혜용씨는 “창작 비평은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읽는지를 다루는데 번역 비평은 어떤 번역의 나쁜 점을 지적하는 걸 먼저 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자에겐 늘 자기를 옹호하고 항변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서씨가) 이름도 밝히지 않고 김 교수를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 번역 비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전자우편으로 이씨에게 재차 학벌 등을 제외하고 번역가나 작가로서의 배경을 추가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씨는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정혜용씨는 “이씨의 논쟁은 ‘번역도 문학’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알린 점에서 재밌는 현상”이라고 긍정적 측면을 짚었다. 번역가들의 노력은 창작에 버금간다. 번역이 지식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인권’ ‘사회’ ‘국회’ 등은 모두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이 발명한 번역어였다. 그 번역어로 한국인은 사고하고 말한다. 프랑스어 번역문학계에서 이번 논쟁이 건설적인 번역 논쟁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굳이 새 번역서를 사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저 블로그의 김화영 비판글을 몇 개 봤는데

경력에 비해 종수는 많지 않지만 (10여년간 열댓권) 그래도 오래 불어 번역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사람으로서 참 답답하더군요.


(굳이 '제가 볼 때는' 같은 말을 달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저 익명 번역자의 비판 중에 옳은 것도 있습니다. 김화영이 잘못한 게 있죠. 

김화영 판에 수십개의 오역이 있다면 아무리 권위있는 영역본이라도 수십개의 오역이 있겠지만 모든 번역에는 오역이 있다는 일반론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틀린 건 틀린 거죠. 욕먹을 건 욕먹어야 하고요.


하지만 저분이 저렇게 쌍심지를 켜고 비판하는 구절 중 상당수는 쉽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자기가 절대 옳다고 주장하고 있고 특히 몇몇 부분은 비판자의 불어 실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더군요.


얼마 전 40대에서 60대까지 중견 불어 번역자분들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중 몇 분이 저 블로그를 가보셨던데 다들 비슷한 말을 하시더군요. 번역 경험도 없고 불어도 못한다고.



물론 이해합니다. 처음으로 번역서를 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직역주의, 원문지상주의에 빠져있고 실제 어학/번역 실력은 형편없고 (평소에 그 언어를 아무리 잘 해도 번역을 위한 어학 실력은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최고인 줄 알게 마련이니까요. 저만 해도 첫 번역서 내고 몇 년간은 명번역이라는 식의 자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번역서가 나올 무렵 첫 책의 재판이 나와 다시 보는데(약 4년후) 수정할 엄두가 안 나는 수준이더군요. 오역은 거의 없었지만 말도 안 되게 딱딱하게 해놨더라고요. 그래도 당시 작업중이던 두번째 책에 대한 자뻑은 있었는데 책 나오고 석달쯤 보니까 역시 개판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뻑이 절대 오지 않습니다.^^



이런 논쟁이 있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기존 번역본 중에 엉망인 게 한둘이 아니니까요.

저도 몇몇 번역에 대해서는 '쓰레기'라는 말을 참지 않거든요. 


특히 문학이든 철학이든 전공자의 번역이라는 것이 갖는 위험성은 늘 존재합니다. 텍스트의 반복된 독서가 이해를 심화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러 곳에 맹점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저자에 대한 체계적 관점 때문에 특정 구절의 결을 못 보는 일도 흔하고요.



하지만 (적어도 제 전공인 불어 번역을 보면) 90년대에 비해 명망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의 평균 수준은 확연히 올라갔고 지금 와서 옛날 번역을 트집잡는 건 좀 비겁합니다. 그 사이에 번역자-편집자-시스템이 동반성장을 했거든죠. 90년대 초반 이명세 영화보다 지금 평균적 영화의 때깔이 좋다고 해서 이명세를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비록 번역자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터무니없는 수준이고, 유명 번역자 중에도 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좋아졌고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김화영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방인'은 자주 손을 봐서 다시 내놓는다고 하고 있으니 비판을 면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해야했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화영의 번역 스타일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교수 번역자 중에는 언어권을 떠나 특급으로 통하고 있지만 성역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하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굉장히 잘 하는 분이죠. 


작년에 일 관계로 민음사에서 나오고 있는 프루스트 번역본(외대 김희영 교수)과 몇 년 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김화영(고대) 교수의 프루스트 번역을 상당 부분 원문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김창석 번역(요즘 세대에게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말투지만 탁월하고 정확한 번역입니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두 분의 번역을 읽는 작업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두 번역자가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프루스트의 문장을 무리없이 소화해서 자기 색깔대로 제시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김화영 교수는 연재가 중단되었고 출간이 되지 않고 있으니 앞으로 프루스트 번역의 정본은 민음사본입니다. 완역에 칠팔 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한두 구절을 더 정확히 할 수 있다고 해서 나머지 수천 구절을 그 수준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물론 비판을 할 때 꼭 비판대상의 수준이 되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도 번역자로서 책을 낸다면 상황이 좀 다르죠. 

문제 삼지 않은 다른 구절에 대한 이분의 번역을 보면 허술한 게 보이거든요. (실제로 이게 첫 번역서라고 합니다) 

설사 지적한 부분이 전부 옳다 해도 책 전체로 통계를 내보면 이분의 오역이 훨씬 많을 겁니다. 기존의 번역들을 보면서 했음에도 말이죠. 


무엇보다 비겁한 건 오역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무슨 문학권력 같은 쪽으로 몰고간다는 점입니다. 자기는 거룩한 성전을 수행중이고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기득권에 빌붙은 사람이 되는 거죠. 

예컨대 "로쟈의 명성과 권위 (...) 그렇다면 김화영의 이 오역의 시발은 어디서부터일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로쟈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 무슨 소린가 하면, 김화영 교수 역시 자신의 스승인 이휘영 교수의 번역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 나라의 도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학문 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같은 말이 그렇죠. 

저도 로쟈는 크게 신뢰하지 않지만 그 사람이야 말로 남의 번역 씹기로는 일가를 이룬 사람 아닙니까? 로쟈를 비판하면서 왜 명성과 권위를 언급하는 건지.

게다가 분명 도제 관계로 인한 문제는 심각합니다만 그건 '스승이 번역을 했으니 새 번역을 할 수 없다'이지 '새 번역을 하면서 스승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아닙니다.




사실 가장 안타까운 건 저 익명의 번역자분입니다. 젊은 혈기에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저도 학부 때와 석사 때는 이 땅의 번역서들을 죄다 쓰레기 취급하고 다녔거든요) 10년쯤 후에 번역과 불어 실력이 좋아진 다음에 이 일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신원이 끝까지 비밀로 부쳐진다 해도 결국 자기 인생의 핵심적 사건이 말 그대로 Much Ado About Nothing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말이죠. 





사실 이 논쟁에 관해 게시판에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은 전부터 있었는데 요즘 바빠서 구체적인 분석을 할 틈이 없고 (그래서 이렇게 두루뭉실한 인상비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업계에서 이 논란을 그냥 노이즈마케팅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그냥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겨레의 기사를 보고 결국 몇 자 적게 되었네요.










덧글. 

(꼼꼼히 대조한 뒤 실명으로 글을 써서 프레시안 북스 같은 곳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만 하필 너무 바쁜 시기인데다 결정적으로 까뮈를, '이방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귀찮네요ㅠ.ㅠ 제가 무슨 권위있는 중견 번역자도 아니고.)


덧글 2.

지금 저 블로그에는 주요 비판글 대부분이 비밀글로 돌려져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책을 사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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