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세종의 신하들 쥐어짜기 ABC

2011.11.10 05:17

LH 조회 수:6872

 

세종은 사람 다루는 게 험하기로 레전드급인 인물이었습니다. 아니 뭐, 매질을 혹독하게 했다거나 괴롭혔다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인재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빨대를 푹 꽂아놓고 그 능력의 바닥에 바닥까지 쭥쭥쭥쭥 빨아내는 정도가 좀 많이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영의정 황희의 눈물의 사직서 행렬이야 유명하지요. 저 늙었어요, 이제 일 좀 그만하고 싶어요. 이젠 글씨도 잘 안 보인단 말여요, 네? 다른 사람은 정치적인 이유나 기타등등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곤 했지만 황희는 나이가 나이다보니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미 관에 한 발 넣고 두 발째까지 넣을 듯한 나이인 여든 너머까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18년동안 영의정 했다는 게 기록이지만, 생각해보세요 18년 근속... 얼마나 지겨웠을지. 나중엔 세종도 좀 심하다 싶었는지 자가용... 자가 가마도 내려주고 일주일에 한 두번 출근하도록 했습니다.

왜 이렇게 황희를 부려먹었나, 하면... 그건 황희 자신의 특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니 말도 옳고 니 말도 옳다'라는 에피소드는 어느 정도 실제의 황희를 반영하는데요, 당시 세종의 조정에는 (굉장히 길긴 했지만) 허조 외에도 사육신이나 신숙주 외에도 정인지, 하연 등등 웬만큼 이빨 잘까는 사람들이 더글더글 몰려있었고, 세종은 이들끼리의 토론을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정책이 결정되기까지는 깔대기와 이빨의 각축전이 벌어졌고, 이 때 앞에서 교통정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며 황희는 여기에 적임자였던 거지요.
(물론 인간 황희의 성격은 꽤 거셌습니다. 이 이야기까지 너무 하면 길어지므로 시간 없어서 생략)

 

그런데 시달린 건 황희 뿐만이 아니죠.
이건 그나마 약과입니다.
김종서 쥐어짜인 건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어찌 다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고려사 제작하다가 세종한테 빠꾸 먹은 게 몇 번이요, 문신이었는데도 어라라 함경도로 부임하여 구르고 또 굴러 고생한 게 한 바가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시묘살이도 못하고 장례식만 치르고 또 추운 동네로 갔습니다.

외국어 잘한다는 이유로 일본 중국에 출장 전문이었던 신숙주도 있고, 당시 집현전이 개고생하며 밤낮으로 의례/언어학/지리학/기타등등 분야를 연구하며 혹사당한 결과가 세종실록예의지/지리지/훈민정음/자치통감... 더 이야기하자니 길어져서 생략합니다 ^ㅂ^
(훈민정음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이 언어학/음운학 연구에 몰두한 결과물 동국정운을 보면 이것이 훈민정음의 기반이 된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장영실은 과로사의 위기에 몰렸을 겁니다. 자격루/금속활자/해시계... 박연은 각종 악기 제작에 합주 지휘에, 악사들 교육에...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이런 쥐어짬에 순종(?)했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간이 부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천문학 연구로 유명한 이순지라는 인물이 있지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유명한 수학의 천재이지요.
세종 당시, 이 사람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사직서를 냅니다. 뭐 옛날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무조건 벼슬 버리고 무덤 옆에서 움막 짓고 시묘살이 해야 했지요. 그걸 안 하면 불효자라고 매도받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 몇몇 장군들은 상을 당했는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적과 싸웠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하여간, 그래서 이순지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우리 세종 마마님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너 아님 누가 천문학 하니, 걍 일해라."

 

그러자 이순지, 입술 쭉 내밀고 뻗댑니다.

 

"즤는요, 5살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울 엄마가 날 유모에게도 안 맡기고 직접 키웠거든요? 그랬던 울 엄마 돌아가셨는데 전 일 못해요!"

 

라면서 구구절절한 마마보이 인증을 공식적으로 거하게 한 뒤 무단으로(...) 벼슬을 때려치고 떠나버립니다. 이렇게 되자 세종도 어쩔 수 없어서 이순지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고 상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칠정산이었죠 아마...

 

세종 때 탐관오리나 부정부패로 걸린다? 그런 신하들 의외로 많습니다.
위에서 말한 신하들은 모두 결점도 있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능력이 있으면 잘못도 커버가 된다는 그런 느낌보다 저렇게 쥐어짜이는데 일부러 부정을 저질러 그걸 빌미로 일을 때려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마저 있습니다...
글쎄요, 이런 류의 상관은 별로 두고 싶지 않습니다. 사소한, 때론 큰 잘못도 눈 감아주고 때때로 맛난 것도 잘 먹여주고 좋은 선물도 주는데, 산더미 같은 일감을 가져다 안겨주고 밤마다 딴짓 안 하는 지 감시하며 가끔 일처리에 빠꾸를 먹여 처음부터 다시하게 하는 정도?
묘하게 일찍 죽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과로사 때문이 아닐런지.


여기까지 쓰니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많이 쓴 것 같은데 내용이 또 없네요.
그래도 쓰면서 즐거웠어요. 보시는 분들도 즐거우셨기를.

 

p.s :

 

우선.

엄청 오랜만입니다.

 

진짜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써야 할 지 서먹해져버렸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라고 하면 이거 꼭 써야지, 하고 메모를 적어두지만 생활에 치여서 이거저거 써야지! 했던 의욕들이 색이 바래고 시들시들해집니다.

...엉엉엉.

그러다 갑자기 컴 앞에 앉으니 필신님이 흐물흐물 내려와서 정리해봤습니다. 사료를 재확인하지 못했기에 숫자 부분에서는 잘못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 근래는 책이나 논문 뒤져가며 재미난 이야기 좀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왕비나 후궁이 임신을 하면 5개월 즈음부터 내시나 신하들을 시켜 낮밤으로 명심보감, 소학들을 밤과 낮동안 읽어줬다고 합니다. 인간 mp3로 태교를 감행한 건데... 과연 얼마나 효험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더 재미난 건 임신이 진행되면 콩이나 고기류를 오히려 안 먹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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