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 여러분, 안녕하세요!

2008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이 게시판(이전 버전)에 세 개의 글을 남겼었어요.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page=1&sn1=&divpage=21&sn=on&ss=off&sc=off&keyword=crumley&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9218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page=1&sn1=&divpage=21&sn=on&ss=off&sc=off&keyword=crumley&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0133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page=1&sn1=&divpage=22&sn=on&ss=off&sc=off&keyword=crumley&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1119

 

그때 듀게분들은 저와 함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해주셨고 저에게 정말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나서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요.

저는 그 이후로 파킨슨씨 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어요.

11월 12일 월요일 새벽에 저로서는 놀라운 일이 있었고 그 경험이 너무 놀라와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었는데요.

문득 어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주셔서 저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셨던 듀게분들에게도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일은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글은 이미 페이스북에 올린 것에서 첫 문장만 약간 바꿔서 그대로 올립니다.

여기에 연애 관련글을 포함해서 일상에 대해서 여러가지 글들이 올라오잖아요.

그냥 그런 글들 중에 하나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올리기는 하는데 글이 너무 길어서 읽으시라고 말씀드리기는 죄송하네요. ㅠ

이번 경험은 저에게는 참 기쁜 일이었는데 듀게분들에게도 살아가면서 이런 기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쓰다가 보니 본의 아니게 무지 길어졌어요. 읽으시라고 말씀드리기가 죄송스럽네요. ㅠ)


11월 12일 월요일 새벽에 나로서는 너무 놀랍고 기쁜 일이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아버지 때문에 속상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신 이래 가장 심하게 침대에 오줌을 싸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꿈 속에서 오줌을 누실 곳을 찾다가 장소를 찾지 못해서 그냥 아무 곳에서 누셨는데 그게 현실로까지 이어지셨다는 것이다. 침대 시트까지 다 젖어서 아버지 옷을 포함해서 몽땅 세탁기에 집어넣고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다. 그리고 피곤하신 것 같아서 새로 침대 시트를 깔고 다시 주무시게 해드렸다. 그러고 나서 몇 시간 뒤 다시 안방에 가보았는데 세상에! 또 다시 지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줌을 통에 누시다가 흘렸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다시 이불이며 아버지 옷까지 다 젖어 있어서 젖은 것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다시 한번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하루 동안 아버지가 두 번이나 오줌을 싸신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된 나는 누나와 요양보호사 아줌마에게 전화를 했다. 두 명 다 기저귀를 사서 아버지에게 채우라고 했다. 그리고 누나는 요양원을 알아보겠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기저귀를 차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처음으로 기저귀를 사러 갔다 왔다.


하루가 지나고 밤 12시가 다 되어서 아버지가 주무시려고 하는데 누나와 아줌마의 부탁도 있었고 나는 이번만큼은 아버지의 고집을 꺾어서 반드시 기저귀를 채워드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아버지는 역시나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셨다. 나는 아줌마가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신다고, 아줌마가 안 오시면 이제 더 이상 집에 올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실 거냐고 아버지의 행동에 책임을 지시라고 했다. 아버지는 오늘은 절대 안 찬다고 버티셨다. 나는 다시 아줌마와 누나가 부탁했다고, 세번째 그러시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꿈쩍도 안하셨다. 아버지가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누우려고 하셔서 나는 이불을 저 멀찌감치 던져놓고 아버지가 기저귀를 안 차시면 나도 여기서 밤새도록 안 나가고 계속 있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가라고 손짓을 하시고 내가 아버지가 꿈을 꿔서 오줌 싼 걸 가지고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화를 내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소리도 질렀다가 다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설득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누나가 아까 전화 통화때 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속상해서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는 심정이 누나가 속상해서 나에게 소리 지르는 심정과 같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하신 말씀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누나와 아줌마에게 알린 것은 맞지만 내가 아버지를 더 이해하고 그냥 조용히 이 일을 넘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좀 약해졌는지 아버지의 고집을 역시 꺾을 수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한 걸음 물러나서 아버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앞으로 한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기저귀를 차기로 약속하자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도 좋다고 하셔서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이제 아버지를 주무시게 해드리려고 눕혀드렸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근육이 땡겨서 아프다고 하셨다. 나는 아줌마에게 그 사실을 말씀드리겠다고 얘기하고 이불을 정성스레 덮어드렸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 기억으로는 지금껏 단 한번도 자발적으로 아버지에게 한 적이 없는 행동을 했다. 나는 갑자기 아버지를 꼭 껴안고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상에! 내가 아버지의 입과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건 나에게는 기적이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고 약간 과장해서 비유를 하자면 로미오의 가문과 줄리엣의 가문이 서로 화해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일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에게 닥친 것이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던 내가 이렇게 북받쳐서 펑펑 울었다는 것 자체도 너무 신기했다. 내가 아까 갑자기 아버지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여전히 논리적으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건 정말 진심이었다. 정말 내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너무 놀랍다. 정말 내 생애에 일어날 수 있을까 의문시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아버지에게 노골적인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책임을 아버지에게 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아버지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로 인해 평생 고통 받으시다가 돌아가신 모습을 지켜봤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셨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폐섬유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이 병의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원인이 있다면 스트레스라고만 알려져 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많은 스트레스를 준 원인들 중에 어제도 문제를 일으켰던 아버지의 바로 그 이상한 '고집'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버지의 고집은 정말 주변 사람들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늘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자신이 옳다고만 하신다. 그런 아버지에게 모든 사람들은 지쳐서 나가 떨어지고 만다. 이런 아버지를 내가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에는 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갑작스럽게 불가능의 벽이 깨졌다. 이제 나는 아버지를 난생 처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를, 아버지의 그 잔인한 고집마저 사랑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오줌을 싸시더라도 이제 소리 지르지 말고 다정하게 대해드려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 일어났던 그 놀라운 일 하나로 인해 올 한 해, 아니 내 인생은 가치있게 되었다. 나는 영화의 그 어떤 명장면보다도 짜릿했던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펑펑 울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났다. <매그놀리아>에서 아버지를 증오하던 탐 크루즈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울던 모습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나를 꼭 껴안으며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셨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내가 흘린 눈물은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렇게 사랑을 가르쳐 주고 계셨다. 하나님은 아주 은밀하게 내 마음을 움직이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기적적으로 화해를 하셨다. 살면서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지금까지 마음의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어느새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비호감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런 내가 어제 스크루지 영감이 흘릴법한 눈물을 쏟고 처음으로 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내적인 과정을 글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지만 어제의 경험을 통해 난생 처음 나는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낀 것 같다. 그것은 너무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기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 감정이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든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을 향해 열리기 시작한 문도 닫히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 더디 갈지라도 이제는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경험한 그 기적적인 순간은 나에게 놀라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 잠을 못 이룰 만큼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순간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이 유명한 말을 떠올려본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너무나 놀라웠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무지 길어졌어요. ㅠ 읽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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