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어제는 이혼 각서 초안도 작성했고, 오늘 사인을 하면 됩니다.

이번 주말에 지금 머물고 있는-3년간 살아왔던-나라에서 아이와 함께 귀국하면 되구요.

아이 아빠는 당분간 이곳에서 계속 머물 듯합니다.

 

 

남편이 많이 잘못했어요.

누구라도 들으면 제가 많이 힘들었겠다 여길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자기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얼마나 저를 힘들게 했는지,

가정생활이란 것에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를 더욱 절망하게 했고,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되었지요.

아이 아빠도 고치겠다, 노력하고 있다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그 말이 일주일도, 심지어 하루 이틀도 못 가는 일도 있었구요.

그렇게 잦은 다툼 속에서 아이 아빠도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저에게 '정이 떨어졌'나 보아요.

남편도 이제는 이혼에 대한 태도가 단호합니다. 강행하는 쪽으로요.

 

 

그런데...저는 아직도 남편이 자꾸 눈에 밟히고, 헤어지면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이럴까요.

 

이런 말을 한다면, 많은 분들은 아이도 있는데 마음도 정리 안 된거면 이혼하지 말고 접고(또는 참고)살아라, 고 하시겠지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되게 신기한게요. 남편에 대한 마음이 두 갈래로 갈려서 제각기 뚜렷해요.

혼자 가만히 있으면 남편이 그간 저에게 한 잘못들, 반성도 자각도 없는 태도, 이런저런 것들에 분노가 치밀어요.

그건 정말 너무도 화가 나는 일이거든요.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망쳤다고 여길 정도로.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남편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몹시도 사랑했던 그의 품, 손, 냄새,

티브이 보며 나누었던 쓰잘데 없던 잡담, 이곳의 햇살 눈부신 주말 아침 같이 차를 타고 나갈 때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오던 길의 눈부신 햇살.

 

 

저는 남편을 몹시도 사랑했어요. 처음부터.

아마 남편보다 제가 더 많이 좋아했던 것 같네요. 남편은 좀 냉정하고 독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고,

제가 마냥 무르고 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지금의 차이가 더 뚜렷하겠지만요.

연애할 때 매주 남편의 학교 앞으로 한시간 반을 들여 버스를 타고 갔어요.

남편은 교문 앞 커피숍에서 기다리는 저를 이미 알아보았으면서 모른 척 지나치다 '어!'하고 알아보고서 씩 웃는 놀이(?)를 즐기곤 했죠.

요즘 '밀회'를 보면서 이제껏 자신이 살아왔던 화려하지만 가식적인 세계를 두고 선재 집에서 행복을 느끼는 혜원을 보면

예전의 제 모습이 떠올라 저들의 사랑의 끝이 염려스러워요.

저도 한때 혜원과 꼭 같았어요. 제가 그때껏 살아왔던-다른 연애 때에도 깨지지 않았던-취향도 습관도 버리고,

지금의 남편과 함께했던 조금은 비루하지만 소박한 환경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하게 받아들였었죠.

 

그렇게 연애를 하고, 조금은 어렵게 결혼을 하고, 결혼하자마자 타국에서 또 어려웠고, 그 와중에 아이를 가져서

힘든 임신기간 끝에 아이를 낳고, 울고 싸우며 키우고...

 

그 3년이 '실패'란 이름으로, 제 인생에서 지우거나 잊거나 해야 하는 것으로 탈바꿈해 버린 것이 괴롭고요.

아직 저는 남편을 사랑했던 시절, 우리 서로 사랑했던 시절이 기억나는데,

이제는 제 삶에 너무나 큰 자욱을 남긴 채 그걸 다 잊어버려야 하는 것도 괴로워요.

 

 

이쯤 되면, 그렇게 미련이 많은데, 게다가 '아이도 있는데' 이혼은 다시 생각해 보라는 충고를 듣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이혼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어요. 제 쪽에서...게다가 저는 이혼이나 이별통보 등으로 상대방을 겁주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어요.

정말 같이 살 수가 없어서, 같이 이대로 살면 제가 미쳐 버릴 것 같아서 견디다 못해 했던 말이었어요.

일례로, 어젯밤에도 남편은 제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하고 들어왔어요.

그런 시간을 겪는 동안, '아, 이래서 나는 이 사람과 같이 살 수가 없겠구나,정말 내가 이런 일을 계속 겪으면

미쳐 버리겠구나.' 저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더라구요.

 

 

저는 이곳에서 정말 열심히, 제가 이제껏 살아왔던 날들 중에 가장 열심히 살아왔어요.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괴로워하며 내내 든 생각이, '내가 이곳에 와서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다른 곳에서도 성실히 살아간다면, 무엇이라도 잘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도요.

이혼을 결심할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이혼 후에도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혼이 결정되고 남편을 다시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자꾸만 괴로워져 잘 다잡은 마음도

자꾸만 축축 무너지려 드네요.

 

원래 이혼 중에 이런 감정도 겪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좀 별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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