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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최명희문학관이 있습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주말에 가도 상대적으로 한적한 곳이죠.

작가의 생전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소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 중 선생이 절친이었던 이금림 작가에게 보낸 엽서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선생의 젊은 시절 자기애가 강하면서도 예민한 성정이 엽서글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가만히 읽고 있으면 마치 선생과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ㄱ)장 하단의 한자는 뭔가요. 무슨 理 같은데 한자 까막눈이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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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램프를 하나 샀었다.

비가 몹씨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구월 오후, 시장에 들렀다가 문득

충격처럼 사고 싶어졌었다.

현란한 빛깔의 옷과 옷들, 싱싱한 채소,

푸성귀값을 깎는 중년 여인네, 역하면

서도 생명력에 넘치는 市場의 비린내

속에서 어쩌면 그처럼 조그맣고 아늑한

램프를 구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밤, 비밀스러운 축제를 준비

하는 마음으로 심지에 불을 당기었다.

아아,

내 영혼의 어둡고 좁은 회랑 벽

한쪽에서도 그처럼 누군가 점화시켜준

램프가 빛을 밝혀 주었으면.

나는 요즘 아주 형편없이 질컥질컥한

어둠 속에 버리워진 채 무질서한

彷徨과 집념에 감겨 날마다 피로

한 얼굴로 혼자 몰래 울곤 한다.

너는 내게, "네 삶은 클래식이야"

했었지 않니.

지금도 네가 나를 보면 그렇게 말할까...



ㄴ)


나는, 오만하고 우아한, 견제와 위엄을

지닌 여자이고 싶었다.

감정보다 理性이 나를 지배하는,

자기를 낭비하지 않는 여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금림아.

나는 어째서 이토록 自己를 풀어던지고

자기의 올가미에 묶여 허덕이고 있을까.

다시 나를 오그리고 싶다.

차디 찬 理性, 가슴 시린 理性과

論理가 제발 나를 지배해줬으면.

한때 나는 무섭게도 계산에 치밀

하고 나에게 지극히 충실한 에고이스트

였었다.

나는 그것이 지겹고 싫고 그 고리가

내 목을 숨막히게 조이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 온 몸의 힘을 다 해 그 벽

을 깨뜨려 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어이없게도 허물어진

나의 흔적이 너무 가엾어 괴롭다.

이제 가을, 낯 선 거리를 떠돌던

나그네들은 귀가의 길을 서두른다.

나도 다시금 나의 모습, 차디차게

문들 닫은 얼굴로 돌아가야지.


ㄷ)


만나 차분히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학교 다니는 것도 아주 지질해서 싫고,

네가 下鄕했을 때 내가 안고 있던

어지러운 문제, 그것은 아주 간결하게

끝났다.

내가 그처럼 혹독하게 시달린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게, 아주 담담하고

지극히 무심하게 내가 정리되어버

린 것은, 참 잘 된 일이었다.

나는 그의 소식을 아주 오래 전에부터

듣지 않고 있다. 최근에 들은 소식이라면

얼마 전에 한 아이가 그를 만났는데

내가 자기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맥주 산댔어요. 우리 모두 갑시다.

하고 동행들을 끌고 우리집 쪽으로 왔

었다 한다.

"정말이야요?"

그 아이가 반가운 마음으로 되묻자

우울하게 웃으며

"내게 전활 할 리가 있어요?"

하더니 중앙동 Salon에서 자기끼리

맥주를 마시고 말없이 헤어졌었단다.

별로 마음이 좋지 않더라만 그것도

잠시일 뿐 금방 잊고 말았다.

내가 나쁜가? 내가, 나쁜가-?


ㄹ)


너는, 고등학교 때,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뺨이 붉은 아이야.

이담에 내가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때까지 너는 이렇게 젊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여라."

나는 그말을 오래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경림아, 나는 정말 네 말대로,

늙어 쇠잔하게 사라져 갈 때까지

붉은 뺨을 가진, 사과같은 여자여야겠다.

이렇게 지쳐있는 얼굴은 내것이 아니야.

나는 건강한 여자, 生命에 넘친

고귀한 여자이고 싶다.

흘려버린 눈물이 던적스럽듯 쏟아

버린 감정은 추하고 끈적인다.

우아한 여자.

그윽한 여자.

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나는 알고 있다.

生命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처럼 풍요로운 기대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의 30代를 위해서

나는 좀 더 나를 아껴야해.

<이번에 약간 좋은 일이 있었어.

'전국 대학생 문화 예술제'에 문예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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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날이나 네 주변에서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自己를 마무리할 줄 몰라, 미친 팽이처럼 채찍을

맞으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회오리 돌고 있었다.

내가 내 머릴 싸안고 울면서, 기도하듯이, 어떻게, 내가 어떻게

를 외우곤 했었다.

3월 26일로 기전여고를 그만두고 전북대학교로 편입해갔다.

意識, 내 生에 대한 나의 野望, 그리고 허영심, 정말이지

야망이란 허영인 것, 나의 生이 화려하고 찬란하기를 열망한다.

처음에는 도무지 초조하여 견딜 수 없었던 아르바이트도

내가 기전학교에 나갈 때 정도의 수입을 줄 수 있는

것이 생겨 감사하고 있다.

理性? 금림아, 너는 나한테 그렇게 고귀하고 창백한

理性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아아, 얘야, 금림아. 明姬는 바람개비란다.

실낱같이 가느다란 바람에도 몸살앓듯 돌고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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