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시설vs서비스)

2019.09.27 14:17

안유미 조회 수:340


 #.은하영웅전설에서 양에 관한 농담중에 이런 문답이 있죠. '어이, 양 제독의 최고의 작전이 뭐지?'라고 한 병사가 물으면 다른 병사가 '뻔하잖나. 그의 다음 작전이지.'라고 대답하는 거죠. 뭐 이건 소설 속 양빠들의 문답이고...이 문답을 호텔에 대한 걸로 살짝 바꿔보면 이거예요. 


 '어이, 제일 좋은 호텔이 어디지?'라고 누군가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거죠. '뻔하잖나. 가장 최근에 지은 호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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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물론 '좋다'라는 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호텔을 처음 지을 때 확보한 부지 자체의 크기나 뷰, 접근성은 변하지 않는 조건이니까요. 그리고 호텔을 지을 때 다는 브랜드도 포시즌스나 반얀트리 같은 걸 갖다가 달면, 차라리 닫으면 닫았지 시설이나 서비스의 수준이 일정 이하의 퀄리티로는 떨어지지 않고요. 호텔에 쉬러 가거나 특유의 독특한 느낌, 수준 높은 서비스정신을 즐기러 가던가...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확실하게 선호하는 호텔이 있겠죠.


 하지만 나는 호텔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서비스보다 시설이예요. 사실 시설도 일종의 서비스이긴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죠. 왜냐면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거슬리지만 않는' 수준이면 신경쓰지 않는 편이예요. 호텔이란 곳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이기 위해'가는 곳이지 직원들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니까요. 버틀러서비스같은 걸 이용하면 또 모르겠지만.


 한데 호텔이 호텔인 이상 그렇거든요. 5성 안에서도 급은 나눠지지만 5성을 일단 찍었다면, 내가 작정하고 직원을 못살게 굴기 전까지는 직원들은 친절해요. 호텔을 갔다와서 블로그에다가 직원의 서비스를 프레임 단위로 트집잡는 사람을 보면 참 이상하단 말이죠. 그렇게까지 엄청난 접객을 바랄 거면 수천만원 내고 24시간 버틀러서비스가 되는 룸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2.하여간 그래요. 호텔에 남겨진 평들 중에 '직원들의 응대가 별로다.'라는 평들을 보면 대체 얼마만한 친절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야 나는 직원들과 굳이 말을 잘 안섞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5성 호텔 중에 별로다라고 콕 찝어서 말할 만큼 친절이 부족한 곳이 과연 있을까요? 글쎄요. 



 3.뭐 어쨌든. 그야 모텔과 호텔의 경계를 나누는 건 객실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숙박 이외의 시설들이예요. 요즘은 모텔의 룸도 어지간한 호텔의 디럭스룸 이상으로 완비해 놓으니까요. 객실만 보면 디럭스룸을 갈 바엔 모텔을 가는 게 낫긴 해요. 그래서 호텔에 갈 때는 객실보다 사우나 피트니스 수영장 이그제큐티브라운지 스파...등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을 중요하게 여겨요.


 그리고 저런 요소들만큼은 호텔의 브랜드나 클래스보다도 '언제' 지었느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되는 요소죠. 똑같은 특급이라면 좋다고 소문난 브랜드호텔도 최근에 야심차게 지은 호텔보다는 떨어지거든요.


 왜냐면 아무리 초기에 시설투자를 많이 해도 그 후에는 결국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하게 되는 데 그치게 되니까요. 노후화되거나 트렌드에 안 맞게 됐다는 이유로 마음먹고 시설을 싹 갈아엎는 건 어떤 업장이라도 어려워요. 왜냐면 호텔사업도 결국 돈벌자고 하는 거지, 가오잡자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이유로 똑같은 5성이라면 결국 시설은 최근에 지은 호텔의 시설들이 좋을 수밖에 없죠. 요전에 800억을 써서 갈아엎었던 메리어트도...흠...뭐.



 4.휴.



 5.그리고 위에는 전통 있는 호텔이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 낫다...라는 듯 썼지만 글쎄요. 나는 호텔같은 서비스업에도 '권태기'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소프트웨어적으로 말이죠. 아무리 좋은 호텔도 오랫동안 돌아가면 안정감은 생기겠지만 그냥 맨날 돌아가는 대로 돌아가게 된단 말이죠. 


 소공동에 있는 호텔들의 이그제큐티브라운지에 가보면 맨날 뻔한 샌드위치...맨날 뻔한 쿠키...맨날 뻔한 음료...이렇단 말이예요. 해피아워에 가봐도 뻔한 술...뻔한 먹거리 이렇게 나오고요. 왜냐면 걔네들은 거기서 몇십년동안 호텔장사를 해먹었으니까요. 관성이 생겨버린 거죠.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특급 호텔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뭔가 차별성을 기대해요. 호캉스로 왔든 아니면 여행을 와서 묵든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윤기와 때깔이 모자란 듯한 시설...좀 너무 뻔한듯한 음식...그런 걸 보면 좀 실망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호텔에 가끔 오는 사람들이야 가끔 오는 거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매일매일이 똑같이 일상이니까요.



 6.그래서 연 지 얼마안된 호텔을 가보는 걸 좋아해요.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호텔을 새로 열면 맞춰지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일하면서 맞춰가고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 부분들 말이죠. 그리고 오히려, 그런 걸 맞춰가는 과정인 동안이 호텔이 자리잡았을 때보다 더 활기넘치곤 하죠. 그냥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나오는 음식이나 주류의 가짓수도 좀더 기합이 들어가 있고요.


 

 7.어쨌든 그래요. 내가 호텔에서 제일 보기 싫어하는 건 '세월의 흔적'인거죠. 아무리 관리와 보수를 잘하고 직원교육을 잘해도 그것만큼은 어쩔 수 없거든요. '아예 새것인 것'과 '헌것을 잘 관리한 것'은 때깔이 다르니까요. 


 뭐 언젠가 어른이 되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호텔을 찾아갈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호텔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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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하네요. 이따 출격하기 전에 위에 배리어를 쳐야 해요. 고기나 먹으러 갈건데 같이 드실 분 계시면 쪽지주세요. 6시까지는 확인할 수 있어요. 반띵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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