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웠던 기억

2020.12.09 13:37

Sonny 조회 수:502

호주에서 워홀을 하면서 아주 뜻하지 않게 꿈이 이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워홀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상의 직업인 백팩커스 리셉셔니스트(폼나보이지만 그냥 창구 직원)를 잡으로 구할 수 있었는데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동물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정말로 사장님이 고양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제 소원을 들어준 건 아니고 그냥 건물이 워낙 낡아서 쥐가 자주 출몰했었으니까요. 그 고양이는 건물의 안보를 위한 파수꾼의 역할을 도맡게 되었습니다. 워낙에 건물이 후지고 딱히 풀어놓을 데도 마땅치 않아 고양이는 한동안 좁아터진 리셉션 창구 안쪽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털이 복실복실한 포유류 동물과 함께 생활한다는 건 이상한 충만감이 있었습니다. 일단 뭘 하든 그냥 마음이 쏠리고 걱정이 되는 그런 상태가 되더군요. 그게 불편한 게 아니라 뭔가를 이뻐하고 염려하는 일종의 다정함이라서 제가 아주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색다른 온기를 배워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아깽이 상태였던 그 고양이는 낯선 환경이 불안해서 이불들을 포개놓는 곳 안쪽에 숨어서 꺙꺙 대더군요. 한 이틀간은 계속 숨어서 울기만 해서 걱정도 했는데 나중에 나와서는 밥도 먹고 물도 먹으면서 점점 적응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저에게도 익숙해졌는지 밤 열한시쯤이 되면 제 무릎 위에서 식빵을 구으며 고릉고릉 소리를 냈는데 그 규칙적이고 야성가득한 평화가 신기해서 동영상으로 찍어두기도 했습니다. 손님들도 오며가면서 제 무릎위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흐뭇해했습니다. 그는 사냥에 그렇게 익숙하진 못했습니다. 쥐가 나타나서 풀어주면 생각보다 덩치가 큰 쥐는 자신의 본능과 반대로 고양이를 노려보았고 고양이는 이 난생 처음 본 생물체가 사냥감이라는 걸 인지못한채로 얼어있곤 했습니다.


저는 고양이 장난감을 흔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하찮고 단 둘만이 진지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일이 바쁜 곳은 아니었거든요. 고양이를 안고 거실로 나가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며 놀기도 했습니다. 헤이 키티~ 하면서 많은 분들이 이 작은 고양이의 머리를 간질거리고 쓰다듬으려고 했었습니다. 좀 걱정도 됐습니다. 건물이 워낙 후지고 벌레들이 미친 듯이 출몰하는 곳이라 고양이가 잘 버틸수 있을지 모르겠더군요. 제 걱정은 의미가 없던 게, 고양이가 발정기 어느날 탈주를 해버렸습니다. 아무리 부르고 찾아도 보이지 않더군요. 사장님 고양이가 사라졌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자 아이고 또 도망갔네~ 하면서 그냥 혀 한번 치고 말더군요. 알고 보니 그 고양이가 세번째 고양이였던가 그랬다더군요. 정이 들기도 전에 훌쩍 떠나버린 그는 다시 나타나진 않았습니다. 그 뒤로 사장님이 고양이를 또 데려왔지만 그들도 역시 오래 붙어있진 않았습니다. 한마리는 발정기 탈추, 또 한마리는 다른 곳에 입양... 어쩌면 고양이들한테는 그런 자유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죠.


고양이를 키우면서 제일 골 때렸던 건 "고양이 할머니"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라는 이벤트와 거의 동시에 출몰하는 NPC 캐릭터 같더군요. 그 고양이 할머니는 머리가 새하얗게 빛나고 키는 작고 왜소한데 한가운데에는 아주 작고 단순한 꽃무늬 하나가 자수로 되어있고 하얗고 부드러운 재질로 짜진 원피스를 입고 다니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등장하자 다른 사람들이 아오 또왔어... 하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리셉션의 저와 다른 사람들을 붙잡고 영어로 꾸지람을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또 고양이를 이렇게 키우냐, 여기는 고양이한테 너무 좁고 필요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다, 너무 불결하다, 어떻게 저런 그릇에 저런 밥만 주느냐... 알고 보니 호주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조건이 법적으로 더 까다롭다든가 하던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사장님이나 다른 직원들도 섣불리 내쫓을 수 없던 모양입니다. 자꾸 이러면 난 너희들을 신고할 수 밖에 없겠네... 이러면서 말을 하는 게 괜한 위협같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다른 직원들은 저보다 영어를 못했고 그래서 그 할머니를 달랜다면서 하는 말들이 모두 선을 넘은 무례한 언동이 되었습니다... 뭐 그런 간섭을 받는 것만으로도 짜증은 났겠지만 영어로 곤란하고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려는 짜증까지 겹쳐서 말이 더 단호하고 냉랭하게 나갔던 것입니다. 아임 쏘리, 벗 잇츠 낫 유어 비즈니스, 디스 캣 이스 아우어즈, 디스 캣 이즈 해피, 유 돈노우 디스 캣즈 라이프... 이런 식으로요. 꼭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언어적 한계 때문에 다른 직원들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등장해서 인사를 하니 이 할머니가 조금 신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이 분에게 ma'am이라는 호칭을 안썼거든요. 이 야만족들 사이에서 그래도 예의를 배운 야만족이 있구나 싶었는지 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든 대화의 기초 전략인 "일단 네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내가 들어보겠다"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들었죠. 어느 정도 문법을 갖추고 could와 would를 섞어쓰며 저를 통해 고양이 행복추구권을 둘러싼 외교분쟁은 진전을 보이는 듯 했습니다. 끝내...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그래도 예의를 갖춘 야만족인 너라면 이 고양이를 이렇게 키우는 게 얼마나 심각한 학대인지 너는 모르지 않을 거 아니냐는 역공격이 펼쳐졌던 것입니다. '오마이 갓, 당신도 결국 똑같군요...' 저는 헐리웃 오리엔탈리즘 영화에 나오는 흔해빠진 야만족 통역관이 되었습니다.


저 작고 어린 것한테 이런 호러블한 환경을 어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요 젊은이? 아... 저희는 당장 작고 어린 저희조차도 이런 호러블한 환경을 참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마담... 가슴 속에서 맴도는 말을 다 뱉지 못한 채 저희는 고양이 할머니와의 지난한 대결, 아니 대화를 마치고 모두 정신적 케이오를 당했습니다. 어쩌면 동물권을 두고 휘말린 최초의 PC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그 할머니를 마냥 욕하기는 그렇더군요. 물론 더러운 환경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선택을 한 사장님이 만악의 근원이긴 합니다만, 애정과 돌봄만으로 어떤 동물의 소유권, 혹은 실질적 책임을 모두 내세울 수 있는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I thoroughly understand your concern, ma'am. 그 할머니의 오지랖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를 더 이상 안키웠으니까요!  



@ 해변에서 저희끼리 놀 때, 어떤 백인 여자들이 와서 저희한테 뭐라고 하더군요. 불가사리를 함부로 그렇게 던지고 놀면 너희 벌금맞는다고. 저희는 다 식겁했습니다. 그 때도 야만인 아시안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네요.



http://www.djuna.kr/xe/index.php?mid=board&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B%B0%9C%EB%AA%A9%EC%97%90%EC%9D%B8%EC%96%B4&document_srl=1385929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