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존경심과 연기력

2020.11.25 04:36

여은성 조회 수:401


 1.오늘은 29를 가로수길에서 만났어요. 가로수길에서 제육 백반을 먹고 압구정로데오쪽으로 걷다가 중간에 헤어졌어요. 29가 패딩을 안 입고 나와서 너무 추워하더라고요. 모레쯤 다시 혼자 가서 이번엔 끝까지 걸어야겠어요.



 2.서울에 있는 이런저런 산책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루트는 가로수길에서 시작해 대로변에서 떨어진 뒷길을 통해 압구정로데오로 걷는 거예요. 어떤 블록을 따라 걷느냐에 따라 나오는 게 달라져서 다채로워서 재미있죠. 


 다른 곳들은 너무나 상권의 냄새가 짙거나 너무 사람이 많거나 너무 부산스럽거나...하는 단점이 있는데 그쪽 산책로는 사람이 조금 많다 싶으면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걸으면 되거든요. 오늘은 걷다가 삼원가든이라는 고깃집을 봤는데 혼자 갈만한 분위기는 아니더군요.



 3.오늘은 바깥에서 좀 많이 걸었으니 내일은 길거리 대신 몰을 걸어볼까 해요. 코엑스에 갈 건데 '가득드림'이라는 한식뷔페집 메뉴가 뭘지 궁금하네요. 생선 메뉴가 없으면 들어가서 한끼 먹고 나오려고요. 생선 메뉴가 있으면 아웃백에 가고요. 식사 좀 하고...세일하는 옷가지가 있으면 몇개 사와야겠어요.



 4.휴.



 5.이번에 거리두기가 발령된 김에 잠실의 롯데타워도 오랜만에 가보고 싶은데...너무 멀어서 꺼려져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가면 미아가 된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꿀꿀! 하거든요. 스파는 시그니엘에 있는 에비앙스파가 제일 좋은데 멀어서 몇번 못가봤어요. 뭐 비싸서 안 가는 거기도 하지만...맨땅으로 간다고 하면 그래도 시그니엘이죠. 겔랑스파는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별로고 록시땅스파는 동대문에 있으니까 별로. 아예 호텔에서 하루 묵을 게 아니면 꺼려지는 곳들이죠. 호텔에 묵지 않고 스파를 간다...고 하면 에비앙스파가 좋더라고요. 그러고보니 소공동롯데가 리뉴얼된 뒤로 설화수스파를 안 가봤네요. 우울하네요. 


 롯데타워에 오뎅식당 가고싶네요. 한 5년전에 가봤는데 다시 가서 부대찌개 먹고싶어요. 부대찌개야 뭐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하겠지만...부대찌개가 목적이 아니라 추억을 건져 올리러 가는 거죠. 옛날의 장소에 가서 다시 똑같은 부대찌개를 먹음으로서요.


 

 6.어쨌든 내일은 코엑스에 가서 돌아다닐 텐데...생각해 보니 초계국수도 먹고 싶네요. 빙수 먹으러 라이브러리를 못 가고 있으니 밀탑 빙수라도 먹고오고싶고...뭐 그래요. 코엑스에 가면 밀탑 빙수는 반드시 먹고 돌아오려고 하는 편이예요.


 그러려면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말이죠. 한식뷔페도 먹고...쇼핑 좀 하다가 배가 꺼지면 초계국수도 먹고...디저트로 밀탑 빙수도 먹으려면 1시쯤엔 도착해야 할 텐데.



 7.우울하네요. 나는 잘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요. 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살려면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장치로서 살아가야 하죠.


 물론 아무나는 아니고...나를 사랑하거나 나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소원 말이죠. 그들의 소원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만큼은 이루어주기 위해 돈도 열심히 벌고 열심히 이야기도 써야 해요.


 왜냐하면 그들의 기대에 걸맞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들이 느끼는 기쁨과 고마움이 나에게도 전이되는 거니까요. 그런 방식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거죠. 요즘은 여자도 별로고 돈도 별로거든요. 아니 그야 밀탑 빙수 먹을 돈은 있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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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쓴 존경이라는 표현은 너무 거창하긴 하네요. 존경이란 게 별 건 아니예요. 나를 실제보다 더 좋게 봐주면 그게 존경인거죠. 


 그야 그런 사람에게 '이봐,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해도 되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나를 연기해도 돼요. 하지만 어찌됐든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밝히면 김이 빠지고...거기서 끝이니까요. 상대가 실제보다 좋게 생각하는 나를 연기하려면 열심히 살아야 하거든요.


 물론 위에 말한 연기라는 건 사실에 근접한 연기를 말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훌륭한 만화가를 연기하려면? 일단 만화를 잘 그려야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을 연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미뉴엣을 잘 켜는 사람을 연기하려면 일단 미뉴엣을 잘 연주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하고요. 


 이렇게 쓰면 여러분은 '뭐야, 만화를 실제로 잘 그리면 그건 훌률한 만화가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훌륭한 만화가인 거잖아.'라고 하겠죠. '미뉴엣을 잘 연주할 줄 알면 미뉴엣을 연주하는 게 연기인 게 아니라 진짜로 잘 연주하는 거잖아.'라고 말할 거고요. 하지만 아니예요.


 왜냐면 애초에 그런 기대가 없었으면 그렇게...연기력을 끌어올릴 수 없었을 거니까요. 관객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거니까 실제로 만화가를 하든 소설가를 하든 바이올린을 연주하든, 그것은 무대 위에서 하는 연기에 가까운 거죠.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는 건, 그냥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무대로 불려나와서 하는 것이 되니까요. 아무리 진짜처럼 보여도 일단은 '누군가가 원했기 때문에' ...라는 사실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거거든요. 차이점을 잘 알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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