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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제라르, 줄리에트 레카미에의 초상, 1802,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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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제라르, 마리 발롱의 초상,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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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투안 장 그로, 크리스틴 부아예의 초상, 1801,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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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제라르, 탈레랑 페리고르 부인 노엘 카트린 벌리, 180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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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여인의 초상, 마리 드니즈 빌레르, 1801, 루브르 박물관

( 한 때는 다비드의 작품으로 오인 받았으나 훗날 무명의 여성화가로 밝혀짐, 다비드 작품이라고 알려졌을 때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가 여성화가 빌레르의 그림이라고 알려지자 갑자기 좋은 평들이 싹 사라져서 화재가 되었음, 그러니까 이거 성차별이라고요...)

 

 

 

 

믿기 어렵지만, 한때 유럽의 여성들은 속옷에 가까운 옷을 입은 적이 있답니다. 심지어 이 옷들은 속살이 훤히 비치기도 했죠. 이런 스타일의 옷을 제국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Empire Style. (1789~1820) 

프랑스 대혁명 기간(1789~1799)부터 집정 정부(1800~1803)를 거쳐서 나폴레옹의 제 1제정기(1804~1815)까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일련의 의상 양식을 말합니다. 물론 상류층 여성들에게서만 유행했구요. 한 눈에 봐도 이전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로 대표되는 로코코 스타일과는 정말 천양지차의 의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서양의 옛날 귀족 여성들의 의복 하면 우선 무엇부터 떠오르시나요? 커다랗게 퍼지는 드레스 자락? 촘촘히 박힌 보석 장식들? 아니면 리본이나 자수 장식이 가득한 화려한 무늬? 하지만 이 초상화들의 드레스들을 보시면 지금 언급한 것들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드레스라는 걸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정말 색깔도 가볍고 무늬없는 흰색이지요. 직물도 투명해서 팔뚝의 속살이 휜히 비치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실내복이거나 속옷으로 입는 슬립 드레스가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하지만 이 옷들은 분명 속옷이나 실내복이 아니라 엄연한 외출용 드레스입니다. 파티용 이브닝 드레스이기도 하구요.

 

 

세상에, 어떻게 요즘 시절도 아니고 무려 200년 전의 옛날에 저런 의상이 유행했을까 싶은데 말이죠. 물론 그 때라고 이런 옷들에 대해 말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무슨 여자들이 속옷을 다 입고 돌아다니느냐고 비난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이 의상은 궁정의 여인들이 주도한 것이었고 순식간에 프랑스 일대를 비롯, 유럽 전역에 퍼집니다. 그런데, 이 드레스의 선구자는 무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혁명 이전의, 프랑스의 구체제의 왕비이죠. 물론 왕비가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었던 건 아니구요. 당시의 유행답게 농가 분위기를 내기 위해 바로크의 장엄함과 로코코의 인공미를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당시 꽤 유행하고 있었죠 - 마리 앙투아네트는 잠깐 간소한 모슬린 드레스 아무런 장식이 없는 - 를 입고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 드레스가 이 제국 스타일의 모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유행이든 중간단계나 시초가 필요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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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르브렁, 마리 앙투아네트, 1783,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왕비 ( 훗날 그려진 마리 발롱의 초상화와 옷이 비슷합니다.), 루브르 박물관

 

( 이 초상화는 마냥 아름답게만 그려진 것이 아닌 농촌 경제를 걱정하는 국모의 모습이 담긴 정치 선전화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왕비가 얻은 거라곤 실크 가격 하락을 우려한 업자들의 거센 항의와 다들 왕비를 따라서 실크 드레스 안 입고 수입산 모슬린 드레스만 입을 거라나 뭐라나 - 왕비의 친정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여제께서(마리아 테레지아) 일갈하신 것 밖에 없네요. -

 “얘야, 넌 무슨 왕비가 된 애가 속옷을 다 입고 초상화를 그리냐?”

 - 정치라는 거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여성들 의상의 파격적인 변화는 그냥 한 때의 유행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시민혁명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이 컸죠. 혁명으로 왕정이 순식간에 몰락하고 봉건적인 신분제가 폐지되자, 거기다 왕족과 귀족들이 혁명세력들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하면서 귀족들의 화려하기 그지없던 로코코 스타일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게다가 시절이 이렇다 보니 의상으로 자신이 귀족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주 위험한 시대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남성복 같은 경우는 귀족의 표상이었던 반바지와 타이즈가 사라지고 대신 노동계급 남성이 입던 긴 바지를 입었고, 자수나 리본 혹은 프릴이나 레이스 같은 화려한 장식들 역시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무채색의 신사복이 남성복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 혁명기에 있었던 남성복의 이런 급격한 변형을 두고 서양 복식사에서는 우아한 장엄함의 포기라고 한답니다. 오늘날 남성복의 원형이 이 시절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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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폴 프뤼동, 조지 안토니의 초상, 18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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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폴 프뤼동, 루거 장 쉬멜페닉과 그의 가족, 18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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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에 등장한 새로운 남성복 ( 1789년, 혁명 중 신분에 따른 복식규제법 폐기)

 

 

그럼 여성들의 의상은? 기존의 로코코 스타일에서 남성들 옷처럼 장식과 레이스만 제거하면 끝이었던 걸까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은 단지 무엇인가 없애는 것 이상의 것을 원했죠. 그녀들은 자신의 옷에서 어떤 시대정신을 구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럼 남자들처럼 노동계급의 긴바지를 입는 걸로...물론 그건 아니구요! 이런 상황에서 여성복에게 어떤 전형을 제시한 것은 바로 고전시대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전, classic이란 고대 그리스 로마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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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긴 마블즈,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출토, B.C. 5세기경, 대영박물관 

 

 

당시 유럽에서는 고전 그리스와 로마 제국이 큰 유행이었습니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루이 15세 때 있었던 로마의 폼페이 유적 발굴(1748, 당시 이탈리아의 남부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주도함)의 영향과 이후의 프랑스의 혁명정부가 지향했던 정치체제와도 연관이 큽니다.(1789년의 대혁명) 독일의 고전학자 빙켈만의 연구로 유명해진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실제했었음을 당시 유럽인들에게 생생하게 알려주었고, 혁명정부가 지향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부활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엄연히 닥쳐온 정치적 현실이었습니다. 시민혁명세력은 구체제를 일소하고 고대 그리스식 민주정, 아니 더 나아가서 로마 공화정 체제를 모델로 새로운 시민국가를 만들려고 하였고, 이런 정치적 분위기가 여성들 사이에서 대유행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여인들이 입었던 키톤과 히마티온을 모방한 새로운 드레스가 드디어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토가는 남성복이라 유행 안 함. 저 개인적으로는 이게 좀 아쉬운데...당시 작품들 보니 왜 남성복은 유행 안했는지 알겠습니다...원, 남자들이 죄다 벗고 있으니...대체 뭔 옷이 유행하겠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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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긴 마블즈, 대영 박물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고 이들 유적들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멋진 근육질 남자들의 조상이 드러나자 18세기 말의 유럽인들은 이들 고대 조각들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영향 받아 새로운 예술사조가 일어났는데, 바로 신고전주의 운동이죠. 고전 그리스 로마의 정신을 그들의 시대에 되살리는. 16세기의 르네상스와는 차원이 다른 고전 고대의 복원 운동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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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의 개선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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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박물관,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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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통령 관저 백악관,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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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연방 대법원 ( 특히 미국이 서구 최초 공화국을 건설했다고 이렇게 고대 로마식 건물들을 엄청 지어댔습니다. 이른바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천명한 것인데...고대 로마도 노예제 경제고 미국도 노예제 경제로 출발한 거 보니, 정말 뭔가 많이 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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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 내외관, 가르니에, 1860년, 파리

 

 (그런데 이 건물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 때인 제 2제정기 때 세워졌습니다. 나폴레옹 3세의 정치 자산이란 워낙 그의 삼촌에게 기댄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프랑스 인들에게 제 1제정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강력한 뭔가가 필요했죠. 그런데 황후 유제니는 이 건물의 도면만 보고 무척 싫어해서, 이런 양식으로 건물을 짓는 걸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녀 얘기로는, " 이게 뭐냐?  이것은 양식이 아니다. 이것은 루이 14세도, 루이 15세도, 16세도 아니다." 라는 겁니다. 황후 폐하께서 신고전주의 건축을 대단히 싫어했음을 알 수 있죠. 그녀는 기존의 로코코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아닌 익숙치 않은 스타일에 놀랐던 것이죠. 그것도 고대의 로마식 건물이라니! 하지만 이것이 바로 '황제, 그러니까 제국 스타일'이라는 건축가의 소리에 할 수 없이 물러섰다는군요.)

 

 

그리고 혁명정부와 집정정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나폴레옹 제정기까지 프랑스의 정국을 주도한 혁명가와 권력자들 그리고 위정자들은 온갖 건축물과 도시의 시설물에 이런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공화정의 분위기를 담으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19세기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건축물들이 갑자기 고대 로마의 신전같은 건물들로 뒤덮히기 시작합니다. 특히 정부 부처 관공서들 - 여성들도 이 운동에 동참하기를 적극 권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 있는 권력자들 중에서는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나폴레옹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처형된 자코뱅 정치가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동생의 친구였지만...프랑스 혁명에 고대 로마 공화정의 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처음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이 로베스피에르였죠. 이후 나폴레옹도 그 뜻에 적극 동감하고 더 나아가서 이것을 하나의 정치선전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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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1799, 루브르 박물관

 

 

 당시 정치선전의 주요 매개체는 미술작품을 통한 정치 선전화들이었는데, 나폴레옹은 마침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신고전주의 미술 양식을, 당시 프랑스 화단에서 주도하고 있던 화가 다비드를 적극 기용하여 자신의 정책을 선전하는 일련의 미술 작품들을 그리는 것을 적극 후원하게 됩니다. 다비드가  물론 한 시대를 대표할 정도의 위대한 화가라는 건 누구나 동감하는 사실입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나폴레옹의 제정기 공식 어용화가라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나폴레옹의 정치선전과 절대로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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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 1785,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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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긴 마블즈, 대영박물관

 

 

그리고 또한 나폴레옹은 여인들의 드레스에도 자신의 제국이 가진 이러한 이상주의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드레스란 권력과 영광의 상징이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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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핀과 나폴레옹, 폐하의 젊은 시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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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알베르 뒤농 주연)

 

그러니 이 유행을 주도한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황제 나폴레옹의 아내 조제핀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누이들도 이 제국 스타일의 유행에 앞장서 나갑니다. 여성들의 제국 스타일드레스는 나폴레옹의 집안 여성들이 주도하면서 대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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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폴 프뤼동, 황후 조제핀, 1805,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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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틀담 성당

 

특히 이 대관식의 정치선전 효과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선전화 그리는데 다비드 따라올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복지에 신고전주의 사조를 전파하는데도 열심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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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부분도, 18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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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식 부분도, 황후의 대관을 받는 조제핀

 

 

조제핀은 1796년에 나폴레옹과 결혼하기 전부터 파리 사교계를 대표하는 유명인사였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와 재기발랄한 지성으로 불혹을 훌쩍 넘은 중년의 나이임에도 국모라는 신분 때문에 조제핀은 변함없이 파리 사교계의 중심 인물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때는 20대의 젊은 쥴리에트 레카미에가 새로이 파리 사교계의 명사로 떠올랐지만 당시 나폴레옹은 쥴레에트의 살롱이 워낙 인기를 끌자 좀 짜증이 났었는지, 집무실을 그녀의 집으로 옮겨야겠다고 불평을 할 정도였죠. 무슨 일 좀 하려고 장관들이나 장군들을 찾으면 다 쥴리에트의 살롱에 모여 있었으니 말입니다 여튼 중년의 조제핀과 젊은 쥴리에트는 이 드레스 유행의 표본같은 사람들이었죠. 거기다 나폴레옹도 이 드레스의 유행에 대찬성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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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레스의 옷감에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옷선과 조각들은 키톤이 면과 얇은 모슬린으로 만들어져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곡선미를 낼 수 있었던 것이었죠. 그러니 이 얇은 옷감이 입은 사람의 속살이 훤히 비칠 정도였다는 게 젤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우아한 곡선미를 살리려니, 제정 시대의 여인들도 고대 그리스 여인들을 답습하여 그렇게 속살이 훤히 비칠 정도로 얇은 옷감으로 이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녀들은 안에 속 드레스를 받쳐 입어서 몸 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나 아니면 조제핀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쇼올이나 큰 두건으로 어깨나 등을 감싸서 자연스러운 옷차림을 하려고 했지만, 바람이라도 심하게 불어서 옷자락이 날리거나 아니면 추운 날씨에 큰 벽난로 앞에서 불이라도 쬐다가는 불빛에 비쳐서 드레스 위로 몸의 전신이 드러나는 불상사를 겪어야 했습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거리나 살롱에서 이런 소동을 겪은 뒤의 사람들의 반응이 조롱 일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휴전협정을 타고 프랑스로 놀러온 영국의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들에게 이런 프랑스 여성들의 드레스는 신나는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녀들의 대담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아름다움에 탐복하기도 하고, 그런 한 편으로는 너무 나간 거 아니냐고 여성들의 노출에 대한 야유와 함께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었죠. 그러니 이에 대해 나폴레옹의 염려도 일견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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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이 제국 드레스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고 (스타일 자체야 그 자신도 적극 찬성한 것이었지만 ) 특히 그는 그 옷감 얇은 면과 모슬린 이 그의 프랑스 제국의 실크 산업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여성들이 겨울에도 이런 옷차림을 고수하자 그는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나폴레옹은 저녁 시간에 그가 좋아하던 연극을 보다가 주변의 귀부인들이 추위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연극 상연을 중지하고 모두를 귀가 하도록 조치를 취한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여인들은 저 드레스 위에 따뜻한 모피나 코트를 입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프랑스의 겨울 추위는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어서 많은 여성들이 감기에 걸렸고, 그들 중 몇몇은 심지어 목숨도 잃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니 나폴레옹은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 이건 진짜 여자들의 패션테러라고 생각한 듯.)

 

 그 첫 번째 시작은 조제핀의 친구 테레즈 탈리앙에 대한 공식적인 문책에서 부터였습니다. 테레즈는 오페라에 참석하면서 거의 나신이나 다름없는 차림의 다이애너 여신으로 분장했다가 나폴레옹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죠. 그리고 친구인 조제핀도 엄격한 의상으로 모범을 보이라는 남편의 명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황후가 황제의 이런 충고를 듣기까지는 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804년 레지옹 도뇌르 수여식장에서나 이듬해의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후 열린 기념파티에도 조제핀은 남편의 지시와는 달리 은색 별이 새겨진 장밋빛 얇은 명주 드레스를 고집했습니다. 불빛이 비칠 때마다 드레스 전신 자락 사이에서 황후의 나신이 슬쩍 슬쩍 드러나자 사람들이 좀 심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했고 결국 나폴레옹은 폭발하고 말았죠.

 

 

황제와 황후의 부부 싸움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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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서는 조제핀이 너무 젊게 그려져 있네요. 실제 조제핀은 나폴레옹 보다 여섯 살 연상입니다.)

 

생각 외로 그렇게 젊잖거나 우아하진 않았습니다. 부부싸움인데요 뭐, 나폴레옹은 체통에 걸맞는 점잖은 옷을 입으라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승질 끝에 그녀의 드레스를 찢어버리거나 불태워버렸는데, 그럴 때마다 조제핀은 조용히 물러나 옷장에서 다른 드레스를 꺼내 입으면 그만이었죠. (그녀의 옷장에는 겨울 드레스만 600벌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여름 드레스도 230벌이나 되었다고 하고요.) 물론 나폴레옹도 이 싸움에서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는 조제핀과 함께 외출하려다가 그녀가 입은 드레스를 보고 화가 치밀어 속살이 훤히 비쳤거든요. 그래도 속살이래 봤자 팔 다리가 드러나는 정도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젤 큰 문제라서 - 그만 그녀의 드레스에 잉크병을 부어 버렸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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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끝에 정신을 잃은 조제핀, 그런데 이렇게 싸운 건 훗날 이혼 문제 때의 일이기도 합니다.

 

이 일화들은 모두 나폴레옹의 비서였던 부르스의 회고록에 나오는 얘기들인데, 그는 황후의 사저인 말메종에서 있었던 황제 부부의 싸움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황제는 국내의 실크 산업 진흥에 대한 의지가 컸고 게다가 때마침 영국과 사이가 틀어져 이 섬나라를 고립시키기 위한 대륙봉쇄령에 대한 칙령을 내린 상황이었죠. 이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국내 섬유산업에서 프랑스산 직물만 이용해야 한다는 명도 발표했구요. 황제로서는 파리 패션계를 지배하는 황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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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핀은 결국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했는지, 디자이너 르로이의 충고대로 옷감이 바뀌어서 더욱 두터워지고 더 이상 선도 하늘거리면서 늘어지는 스타일이 아닌, 천의 무게 때문에 똑바로 떨어지는 제정 시대의 변화된 드레스를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덕분에 의상비는 더 올라갔지만. 조제핀은 남편의 의향을 온전히 받아들인 걸까요? 오히려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조제핀의 나이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고 자신이 더 이상 젊은 시절만큼 날씬하지도 우아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패션에 있어서는 더 신중해 지려고 한 것이었죠. ( 제국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이 코르셋은 입지만 속옷으로 패티코트나 허리받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커트를 부풀릴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신체에 살이 찌면 찐대로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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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프랑스 민중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두건입니다. 모자도 있구요. 저 두건이 실은 빨간색이랍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복식에 대한 어떤 금지령을 내린 건 이게 처음은 아닙니다. 그는 쿠데타로 집정부의 권력을 장악한 뒤 행한 일련의 조치들 중에서, 당시 민중들 사이에 유행하던 빨간 모자를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빨간 모자는 역시 고대 로마에서 유래한 것이었는데, 해방 노예들이 '본인이 해방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표식으로 쓴 빨간 두건'에서 모방한 것이었죠.

나폴레옹은 특히 이 빨간 모자를 싫어해서 거리에서 못 쓰게 하는 것 뿐 외에도 벽화를  비롯해서 공공 건물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이 빨간 모자를 쓴 그림이 있으면 몽땅 지워버리라고 명령할 정도였는데, " 언제는 노예였어? 왠 오바질? " ....아마도 이 빨간 모자가 지난 시절의 공포정치를 연상케 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동조하고 혁명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평가했지만, 그걸 드러내놓고 주장하기는 싫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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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이들 옷차림입니다. 그런데, 여자 애들은 진짜 잠옷 입고 있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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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여성들은 대체로 이정도 드레스를 입었던 것  같군요. ( 드라마로 제작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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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이 정도 옷들을 입었던 것 같구요. (그런데 사진의 저 여성들은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입니다. 일할 때 입는 편한 옷 보고 추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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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오스틴 시절 ( 영화 비커밍 제인 중에서) 부르주아들 정장과 드레스입니다. ( 저는 학교 다닐 때 귀족과 부르주아를 구분하지 못해 아주 애를 먹었었죠. 아니, 이렇게 차려 입고 근사한 춤을 추고 궁궐같은 집에서 사는데, 귀족이 아니라니! 부르주아는 뭐고 귀족은 뭐지? 여튼 이 둘을 구분 못하면, 서양 근현대사의 시민혁명기 전후부터는 아예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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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연들을 뒤로 하고 여튼 제국 스타일에도 종말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 이름이 제국이듯이, 이 드레스는 나폴레옹의 1815년 몰락과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합니다. 이후 돌아온 부르봉 왕정은 지난 시기의 혁명에서 그 어떤 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공헌하며 시민혁명과 나폴레옹 제정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여인들도 그리스 식 여신들의 옷을 벗고 다시 돌아온 로코코 스타일의 반복인 로맨틱 스타일, 크리놀린 스타일, 버슬 스타일의 다양한 복고풍 의상들을 입기 시작했구요. 하지만 무슨 유행이 그렇게 어제까지는 이거 입다가 오늘부터는 이걸 입는다고 딱 변할 수는 없는 것이죠. 결국 이런 의상의 문제는 세대간의 소소한 갈등을 낳았는데, 당시는 이런 농담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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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너무 벗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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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소리,  네가 너무 많이 입은거야!"

 

 

 

젊은 딸들은 어머니들이 속옷이나 다름없는 드레스를 입고 외출하는게 창피했고 어머니들은 딸들이 촌스럽게도 옷을 너무 껴입는다고 비웃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과장된 얘기겠지만, 당시의 급격한 유행의 변화에 따른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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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후 제국 스타일의 옷은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아니오, 이 드레스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이후 유럽을 비롯한 전 서구사회에서 다시 민주주의의 열풍이 일자 이 드레스는 현대에 다시 부활합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공식석상에서 입는 드레스들은 모두 제국 스타일입니다. 물론 이 스타일의 전형은 신부의 결혼 의복인 하얀 웨딩드레스에서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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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민주주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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