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집 (The House of the Devil, 2009) ☆☆☆


   좀 더 일찍 나와서 VHS 시대를 만날 수 있었다면 [악마의 집]은 제 동네 비디오 가게들에서 아주 알맞은 주거 장소를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비디오 가게에서나 성인용 영화들처럼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나 할로윈 시리즈와 같은 80년대 저예산 공포영화들은 유유상종하기 마련이었고, 본 영화 비디오를 어느 정해진 구석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있곤 했던 그들과 같이 배치해두었다면 별 괴리감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영화는 그 시대 스타일에 충실하고 그 충실함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좋은 공포 영화에게 요구되는 걸 잘 수행했습니다. 


   무대부터가 1980년대인 가운데, 우리의 여주인공 사만다(조슬린 도나휴)는 그 당시 저예산 공포영화들의 전형적 주연이었던 '위험에 처한 젊은 여주인공'이고 따라서 그녀는 본인에게 기대된 경로를 착실하게 밟아갑니다. 주변에서 온갖 불길한 징조들이 구석구석에서 살며시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웬만한 여대생들이라면 가능한 피하고 싶을 알바를 받아들입니다. 캠퍼스 게시판에 걸려 있는 전화번호 적힌 베이비시터 광고를 통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으니 하도 안 받아서 그냥 가려고 했는데, 공중전화가 느닷없이 울려서 받아보니  자신이 연락하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누굴 돌볼지는 몰라도 이 정도만 해도 꽤 이상하지 않습니까?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지금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녀는 지겨운 룸메이트와 같이 기숙사에 사는 대신 근처에 있는 좋은 집에서 세내어 살려고 하는데 부모님 도움 받기 보다는 본인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서 집세를 내고 싶어 하거든요. 이러니 사만다는 친구 메건(그레타 거트윙)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 어둑한 밤중에 음침한 숲 속에 나있는 도로를 따라 문제의 저택으로 향하고 길 바로 옆에 있는 공동묘지도 지나치기도 합니다.

  우거진 숲 속 한복판에 홀로 잡고 있는 그 큰 집은 외관이나 실내장식에서나 묘한 기운으로 가득한 가운데 집주인인 울만 씨(톰 누난)는 보기만 해도 수상한 구석이 다분한 대머리 아저씨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모습을 보이는 울만 부인(매리 우로노프)도 남편만큼이나 친절하면서도 꺼림칙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울만 씨가 원하는 건 베이비시터가 아니고 실은 저 위 2층에서 연로한 장모님을 자신과 아내가 앞으로 곧 있을 개기월식을 보러 외출하는 동안에 봐달라는 겁니다.


 이러니 그녀의 친구나 본인도 상당히 찜찜해 하지만 사만다는 울만 씨의 거래 제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무 좋다는 점을 넘어간 채 제안을 수락합니다. 그리하여 메건은 나중에 사만다를 데리러 오기로 약속한 가운데 다시 차를 몰고 떠나고 그에 이어 울만 부부도 외출하하고, 그리하여 사만다는 1층에 홀로 남게 되어 긴 시간을 때우기 시작하면서 피자도 시킵니다. 자신이 돌볼 대상인 울만 부인의 어머니는 외부인과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아서 2층의 한 방에만 틀어 박혀 있을 것이고, 굳이 2층으로 올라가 그녀와 대면할 필요가 없으니 이 알바는 의외로 쉽게 보입니다. 썰렁한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결국엔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게 되고 이 저택이 그냥 평범한 장소가 아님을 깨달아 갑니다. 분명 애는 없다고 하는데 왜 어린 애 방이 있을까요?


 그러다가 그녀는 아주 무서운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이거야 오프닝 크레딧에서 이미 예고했으니 스포일러도 아닙니다. 각본과 편집도 맡은 감독 타이 웨스트는 오프닝 크레딧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들 면들에서 복고풍 스타일을 충실하게 유지하면서 충격보다는 충격 전의 서스펜스에 더 바탕을 두는 좋은 호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슈퍼 16로 찍은 화면부터 낡은 분위기가 돋아나오는 가운데 의상과 헤어스타일과 소품들에서 그 옛날 티가 절로 나오고 제프 그레이스의 스코어는 이 부류 영화들에서 딱 기대할 법한 저예산 음악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나 요즘 고문 포르노 영화들의 무분별한 아작내기와 달리, 본 영화는 상영 시간 절반 이상을 들여 준비운동을 착실히 해서 우릴 긴장시키고 두렵게 만들다가 예상된 종착점에서 일을 터트립니다. 쇼크는 그저 한 순간이지만 서스펜스는 실력 있는 손길 아래에서는 얼마든지 길게 늘어질 수 있는 가운데 보는 사람을 계속 안달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준비하는 동안 영화는 캐릭터 성립에도 신경 쓰고 캐릭터들은 단순하지만 선명합니다. 주연인 조슬린 도나휴는 꽤 그럴듯한 80년대 여대생으로 보여 지는 가운데 혼자서 해내야 하는 여러 장면들을 잘 이끌어갑니다. 톰 누난은 정중하지만 그의 저택만큼이나 음험한 중년 신사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가운데 매리 우로노프는 그런 모습의 누난과 잘 어울리는 불편한 배우자이고, 오프닝 크레딧이 주는 인상과 달리 디 월레스는 잠시만 등장하고 물러납니다. 

 
  별별 호러 영화들이 리메이크되고, [쏘우]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고, [13일의 금요일] 시리즈가 다시 재부팅되는 요즘, 호러 장르가 그 옛날과 달리 많이 가라앉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정말 그렇게 많이 아작 내면서 피를 튀김에도 불구 지금도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고전 공포영화들에 비하면 그들은 상당히 유치한 편이고 그러다보니 문제의식 있는 다큐멘터리들이 호러의 영역을 위협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고전적 호러를 갈구하는 관객들을 만족시켜 줄 영화들은 여전히 간간히 나오고 본 영화는 그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경의를 표하는 영화들의 영역 안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줄거리를 다루긴 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범적인 공포영화이긴 하지요.      


P.S.

 도나휴는 제작 준비 중이라는 심형래의 영화 [The Last Godfather]에 나오기로 되어 있더군요. 행운을 빌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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