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스트 Beast (2017)

2018.09.29 19:43

Q 조회 수:323

비스트   Beast    


영국, 2017.     


A 30 West/Roadside Attractions/Film 4/The British Film Institute Presentation, a Stray Bear/Agile Films Co-Production.   화면비 2.35:1, 1 시간 46분.


Director & Screenplay: Michael Pearce 

Cinematography: Benjamin Kracun 

Costume Design: Jo Thompson 

Editor: Maya Maffioli 

Music: Jim Willliams 


CAST: Jessie Buckley (몰), Johnny Flynn (파스칼 르너프), Trystan Gravelle (클리포드), Geraldine James (힐라리), Oven Fouéré (테레사 켈리), Emily Taafe (타마라) 


photo BEAST- YES YOU CAN DO IT_zpsnwlvy7fv.jpg 


[비스트] 는 역시 마케팅 전략의 여부 또는 내용을 어떻게 요약하느냐에 따라서 그 진정한 장르적 정체성이 허투루 전해질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연속 살인범이 나오는 스릴러라고 규정한다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며, 약간 우화적인 성격이 가미된 러브 스토리냐고 물어오신다면 그 레벨도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작품은 사실 일부러 장르적인 규격에 어거지로 맞추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 진가를 음미하기 힘들 것이니, 그런 노력은 그냥 방기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법이다. 캐릭터들의 심리와 동기를 관객들이 추찰하는 과정에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고, 비극적인 플레이버를 첨가된 로맨틱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며, 한 여성의 진취적이고도 상처를 입은 자아를 탐구하는 모더니즘적 아트 하우스 영화이기도 하다. 일단 깔끔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었고, 그 시선에는 캐릭터들에 대한 배려심과 존중이 있으나, 반드시 관람하고 난 다음에 어떤 강렬한 감동이나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그런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몰이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은 저지 자치령 (Bailiwick of Jersey) 이라는 프랑스의 노르만디 해안 바로 옆에 있지만 영국령이고 영국 이민자들이 주된 구성원을 이루는 독특한 섬에서 가족들과 함께 투어리스트 가이드를 하면서 (본인은 "알바로 그냥 잠깐 하는 일" 이라고 주장하지만 보아하니 이 일 이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살고 있다. 20 대인 그녀 (아마도 첫인상보다 상당히 나이가 들어있는? 플롯에서 추리하자면 20대 후반인 것 같다) 는 영화의 모두에 자신을 위해 열린 동네 생일 파티에서 전혀 주인공 스럽지 않은 불편한 얼굴로 동참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파티에서 생일 축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결혼한 그녀의 동생 폴리 (동생이냐 언니냐라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늘상 하는 얘기지만 유럽-미국에서는 "형제" 의 경우 누가 위고 아래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있고, 반대로 그 형제의 위계 때문에 플롯이 가동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한편은 전자에 속한다) 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엄마가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자면서 막상 생일파티의 당사자인 자신을 가사도우미처럼 부엌에 보내버리자 몰은 폭발적으로 화를 내면서 파티에서 나가버린다. 나이트 클럽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새벽이 다 될 때까지 춤을 추던 몰은 바닷가에서 갑자기 정신이 든다. 그녀는 몰이 자신에게 대주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엉겨붙는 추잡남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하는데, 그 부근에서 밀렵을 하던 약간 너절한 몰골의 남자 파스칼이 엽총으로 추잡남을 위협해서 쫓아버리게 되자, 약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문제는 섬에서 어린 여성의 연속 실종-살해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며, 몰을 짝사랑하고 있는 동네 친구인 클리포드를 위시한 경찰 세력은 파스칼을 용의선상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photo BEAST- WE ARE EXPECTING TWINS_zpsoh3yph7e.jpg 


각본과 감독을 맡은 마이클 피어스는 원래 이 저지 자치령에서 자라났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면 파스칼과 많이 닮은 분위기다 (좋은 의미로 "야성적" 인 스타일). 몰과 파스칼 둘 다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아니 할 수 없는데, 피어스의 접근 방식은 기본적으로는 로컬 칼러를 적확하게 집어서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기조를 유지하되, 조금씩 환상적이고 주관적인 필터를 통해서 사물을 투영하는 "소프트 모더니즘" 이라고 할까, 그런 플레이버를 지녔다. 몰의 "꿈" 장면을 중심으로 한 주관주의적 터치에는 의외로 잉마르 베르이만의 [외침과 속삭임] 등에서 볼 수 있는 북구적으로 드라이하고 신랄한 측면이 느껴진다. (남성 감독이 바라본 여성의 욕구 불만과 정체성의 혼동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의 요소가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겠다) 


한가지 흥미 있는 점은 [비스트] 라는 제목과 캐릭터들의 디자인 (파스칼의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키는 수염과 머리 모양, 몰의 불이 붙어서 타는 것 같기도 하고 피범벅이 된 것 같기도 한 붉은 머리, 토끼 사냥 장면 같은 부위의 격하게 포식동물적인 감정의 고양 등) 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한편을 [미녀와 야수] 의 변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인데, 단지 "미녀" 에 해당되는 몰 자신이 "야수" 인 파스칼에게 끌리는 이유는 자신의 반테제로서의 "괴물" 에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인간화 시킬 수 있다는 "문명화" 의 프로젝트와는 별로 관계가 없고, 오히려 자신 안의 "야수성" 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의 "동류 의식" 에 가깝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만 해두자. 디즈니판 [미녀와 야수] 같은 전개와 결말을 예상하셨다면, 또는 히치코크의 걸작 [의혹의 그림자] 같은 우수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를 기대하셨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만 말씀 드려둔다. 


벤저민 크라쿤 촬영감독 (이 한편이 데뷔작인 감독과는 달리, 과격하게 주관주의적 모더니즘 영화의 형상을 지닌 경찰 드라마 [하이에나] 등의 이색작에서 이미 실력을 발휘했다) 이 맡은 영상미가 뛰어나다. 저지 자치령이라는 배경의, 약간 황량하고 추레하기도 하면서, 햇볕을 오래 쬐어서 색깔이 바랜 옷감 같은 독특한 질감과 아침 햇살을 연상시키는 금빛과  시들은 잔디에서 보이는 누런 빛을 오가는 색감을 잡아내고 있다. 반면 로맨스가 진전되는 장면의 핸드헬드 카메라를 다용한 몽타주 등의 기법은 그다지 독창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전반적으로 스릴러적인 요소와 몰의 심리적 기복을 다룬 부분의 안배도 더 효율적이거나 더 강력한 임팩트를 꺼집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감독이 지나치게 신중하거나 경험 부족 (내지는 지나치게 아트하우스적인 감성에 치우쳐서?) 으로 산만해지는 부위는 고맙게도 제시 버클리와 쟈니 플린 두 연기자들의 열연과 카리스마가 많이 메꿔주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캐스팅이 이 한편의 성공의 최고 요인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특히 몰이라는 어떻게 보자면 "문학적" 인 방향으로 치우쳤다고 볼 수도 있는 캐릭터를 약간 무서울 수 까지도 있는 박력을 발산하면서 연기한 버클리의 공이 아주 크다. 버클리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원래 가수 지망생이고,  BBC 의 탤런트 쇼에 출연해서 2등을 차지하면서 갑자기 젊은 연기자로 물망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TV 와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10년이 넘게 경력을 쌓았으니 "신인" 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 영상 등을 보면 날카로운 눈매에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몰처럼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 깊이 침잠한 채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어떻게 보자면 답답하고 불쌍한 여성을 아주 날이 서 있으면서도 취약한 상황을 그대로 민낯으로 드러내는 역연을 선보인다. 연속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소녀의 나체의 시신이 발견된 흙구덩이에 몰래 들어가서, 입에 흙덩어리를 스스로 집어넣고 잠에 빠지는 등의, 잘못하면 지극히 자의식 강하고 (감독의 입장에서 보나 몰의 입장에서 보나) 작위적으로 비칠 수 있는 장면도 버클리의 거의 육감적인 연기에 의해 자연스럽고 공감할 수 있게 다가오게 되니까. 앞으로 많은 극영화 작품에서 더 보고 싶은 연기자임에 틀림없다. 


photo BEAST- NOTHING IS WRONG WITH ME_zpsus0ecjdy.jpg


결론적으로, 피어스 감독의 선택지에 반드시 찬성할 수 없는 부분도 눈에 뜨이긴 했지만, 버클리와 플린 (이 분도 경력이 꽤 오래되었는데 본업은 가수고, 뮤지컬 배우 집안이며, TV 를 중심으로 일을 해왔다는 점에서 버클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을 뽑는 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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