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밭입니다.




'다크나이트' 이후- 배트맨은 고담시의 백기사, 하비 덴트를 살해한 공공의 적입니다. 하비 덴트가 죽은 후, '덴트 액트'라는 특별법이 발효되어 고담시의 조직 범죄는 뿌리 뽑힙니다. 부모를 잃고, 연인을 잃고, 영웅이었던 배트맨조차 고담시를 위해 내어준 브루스 웨인은 껍데기만 남아 유령처럼 웨인 저택을 배회합니다. 평화의 시기, 너무나 평화로워서 전쟁 영웅 고든 경감조차 더이상 필요없어진 고담시엔 이제 시민의 목숨을 위협하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때, 가난 때문에 시작했던 도둑질이 주홍글씨가 되어 범죄자 낙인이 찍힌 채 삶의 기회를 잃은 캣우먼(셀리나 카일)이 웨인가에 침투합니다. 웨인가의 지원이 끊긴 고아원에서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하수구로 모여듭니다. 그곳엔 팀버튼의 펭귄맨이 그러했듯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존재들을 거둬 그들을 버린 세상에 한 방 먹일 준비 중인 악당 베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흙 구덩이에서 태어나 배트맨 손에 아비를 잃은, 라스 알굴의 딸 탈리아 알굴(미란다 테이트)이 나타납니다.


탈리아 알굴은 라스 알굴만큼의 카리스마도, 여느 악당과 같은 물리적 힘도 없습니다. 시시한 반전이라고 지적받듯, 막판에 탈리아에게 수장의 지위를 내어주는 베인은 악당이라기보다는 한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feat.박신양),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일선에 나선 죄밖에 없는 가엾은 사내였죠. 캣우먼은 애초에 전혀 미치지도 사악하지도 않은 그저 솜씨좋은 좀도둑, 로빈훗이었고요.


그래서 영화는 처음부터 기대를 배반합니다. 과연 크리스 놀란이 조커보다 더 미친 악당을 그릴 수 있을까, 투페이스보다 더 끔찍한 비주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팔코네-마로니를 잇는 조직 범죄의 큰 손은 과연 누구일까- 더 끔찍한, 더 사악한, 더 정신나간 악당이 나오길 설레며 기다리던 모두에게 이 시리즈는 빈 손을 내보이는 겁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한 편처럼 '범인은 바로 나'라고, 손 끝으로 배트맨-브루스 웨인을 지목하면서 말입니다.


모든 영웅은 고난을 겪지요. 영웅에겐 시련이 따릅니다. 온 세상을 뒤져봐도 상처 없는 영웅은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여전히 놀란의 시리즈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영웅담보다도 잔인합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스크린의 막이 오르고 모든 것을 잃은 브루스 웨인이 유령처럼 배회하는데서 영화는 시작하지만, 시작하자마자 영화는 따지듯 묻는 겁니다. 정말로, 정말로 모든 것을 잃은 게 맞냐고. 정말로 고담시를 위해 네 모든 것을 다 내주었냐고. 주머니 뒤져서 뭐라도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이라고 윽박을 지르면서 말이죠.


주머니에서 뭐가 나오든, 그게 배트맨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그는 속이려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순진하게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뭔가가 나온다면 가장 당황스러운 건 배트맨 자신일 겁니다. 진짜 다 줬는데, 껍데기만 남아 엉망진창이 돼버렸는데, 심지어 이제 십 원에 한 대씩 맞기까지 해야하니까요. 

그런데 가엾게도 정말로 뭐가 나왔습니다. 십 원 정도가 아니죠, 고담시 최고의 갑부 아닙니까. 액수로만 따진다면야 부관 참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죠. 


악당은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더이상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없으리라 여겼죠.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 뛰어다니는 괴물들의 쇼가 끝나고 총을 흔들며 위협하는 악당들이 사라지자 평화로운 세상, 그냥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묵인하는 보통의 무사한 세상이 그 사악한 정체를 드러냅니다.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빈곤, 가난과 절망 말이죠. 배트맨이 신념마저 꺾고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까지 지켜낸 사회 구조는 그 자체가 특정 계층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거대한 악입니다. 그 구조 안에서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상대적 박탈자이고 악의 축이며, 그 정점엔 고담시 최고의 갑부 브루스 웨인이 있는 거죠. 사악한 사회 구조를 수호하는 배트맨이든, 그 구조의 최상층에서 호위호식하는 브루스 웨인이든 어느쪽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네, 범인은 바로 나.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는 최종 보스로 배트맨-브루스 웨인 자신을 지목합니다.


부모를 잃은 게 브루스에게 영웅이 되는 목적이 되었듯, 쓸모없이 태어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존재하던 탈리아에게 아버지를 죽인 배트맨은 악당이 될 목적을 주었죠. 선과 악의 경계에서 갑부가 배부른 고민을 하는 동안, 그의 가벼운 무관심만으로도 생존권을 잃은 고아들은 그들에게 할 일을 주는 유일한 곳인 하수구로 향합니다. 새 삶을 찾고 싶어도 이미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지 오래인 캣우먼에게 유일한 삶의 방식은 계속 범죄자로 살아가는 것 뿐이죠. 그들 모두에게 선과 악은 애초에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살얼음 위에서 추방이냐 추방령으로 사망이냐를 던져주고 선택지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또 하나의 가면 쓴 미치광이인 줄 알았던 베인에게 가면은 생명 공급장치나 다름 없었죠. 역시 철학적인 고뇌가 끼어들 틈이 없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브루스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듯, 어떤 이들은 악의 소굴에서 범죄자가 되도록 태어납니다.


브루스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블레이크에게 '배트맨'이라는 상징의 의미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가면이란 건 그들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은 의미일 뿐 진짜 동기는 따로 있었죠. 누가 배트맨인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누구든 배트맨일 수 있다는, 그리고 누구라도 배트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는 것. 그러나 애초에 선과 악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던 자들에게 '누구든 배트맨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냥 기만입니다. 열 여섯이 되면 맨몸으로 거리에 던져져야 하는 고아들에게 '나도 고아여서 아는데~ 너는 왜 최선을 다해 배트맨이 되는 걸 선택하지 않았냐'는 물음은 그냥 폭력인 거죠. 그리고 자신을 지목하며 조여오는 일련의 사건과 물음들을 통해 브루스는 스스로의 순진한 태만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사회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닌 히어로물입니다. 대중의 환상을 투영한 정의로운 갑부를 세워놓고 적당히 폼만 재도 먹고들어갈텐데, 감히 그 갑부 영웅을 한 가운데 세워둔 채 계급 혁명을 이야기하는 패기가 놀랍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히어로물이지요. '비긴즈'의 디비디 서플을 보면 공동 각본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게 좀 의외입니다. 크리스 놀란이 배트맨 코믹스의 설정들을 잘 몰라서 진성 덕후인 자신에게 공동 각본을 제의했다는 거죠. 보통 이 정도로 몸집이 큰 히어로물이 시리즈로 만들어질 땐, 태어날 때부터 이걸 만드는 게 꿈이었던 팬보이가 감독이 되어 저지른 성공한 덕질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크리스 놀란은 공동 각본가의 대본 감수가 필요할만큼 배트맨 세계관에 젬병이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래서 가능했을 겁니다. 팬보이였다면 신성시했을 히어로를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검증해보이는 집요함, 시리즈 전체 그림을 위해 코믹스의 기본 설정조차 왜곡시켜버리는 무모함, 빌런과 사이드킥을 원작에서 이름과 껍데기만 들고와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든 뒤 자신의 세계관에 포섭시켜버리는 패기. 코믹스의 팬들에겐 악몽같겠지만, 일반에겐 히어로물의 문법과 상식을 깨부수는 거의 혁명적인 작품- 놀란 프랜차이즈의 괴물같은 시리즈가 탄생한 겁니다.


'다크나이트'의 엔딩은 추악한 진실을 거짓으로 덮어 얻어낸 가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거짓된 평화는 예정된 수순대로 파괴되죠. 하비 덴트 덕에 사회가 정의로와졌다고들 떠들지만 정작 내 앞엔 동전 한 닢도 떨어지는 게 없었던 극빈층과, 하비 덴트 특별법에 의해 사면의 기회마저 잃은 채 8년간 갇혀있던 범죄자들로 인해 고담시는 무정부주의적 혼란에 사로잡힙니다. 사회가 그들에게 한 짓을 생각한다면야 어쩌면 이대로 고담시를 폐허로 만든 뒤  재건하는 게 정의로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편리한 절망에 사로잡힐 즈음, 싸우기를 포기하고 집안에 숨은 동료 경찰 폴리에게 우리의 고든 경감이 말합니다. '이걸 무슨 계급 혁명같은 거라고 생각해? 이건 그냥 한 사람이 도시를 파괴하려는 수작일 뿐이야.'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은퇴한 배트맨의 유일한 근심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기술과 무기가 악당의 손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죠. 그러나 악당의 손에 넘어간 건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고든의 말처럼 이것은 계급 혁명이 아닙니다. 물론 사회 구조로 인해 고통받는 다수가 존재하고, 그것은 시한폭탄처럼 지난 8년간 쉬지 않고 째깍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다수의 개인들일 뿐, 어떤 조직된 힘이 아니었죠. 배트맨의 기술력이 폭스를 통해 탈리아에게 흘러 들어갔듯, 살상 무기들이 베인을 통해 탈리아에게 넘어갔듯, 절망한 계급의 조직 가능한 힘 역시 배트맨이 그 파괴력을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탈리아의 손에 넘어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추락하는 비행기에 남았던 청년의 단호함은 베인을 향한 공포도 충성심도 아닌 절망이었던 겁니다. 


이것은 마치 코믹스의 세계관이 뒤틀린 채로 던져진 일종의 평행우주처럼도 보입니다. 배트맨이 거짓된 희망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부패한 사회와 맞서기 위해 그 절망한 계급의 힘을 조직하고 마침내 지하 세계의 수장이 되는 것이 코믹스 '다크나이트 리턴즈'의 엔딩이었으니까요. 놀란의 시리즈에서 이야기는 정반대로 흘러갔죠. 거짓된 희망으로 대중을 기만한 것도, 부패한 사회 조직을 수호하는 것도, 지하 세계와 대척하는 것도 영화에선 모두 배트맨 자신의 몫입니다. 이번 '라이즈'를 보면서 가장 의외였던 건 놀란의 지난 두 편의 영화가 거의 놀란 프랜차이즈의 전혀 새로운 배트맨으로 보였던 것에 비해 '라이즈'는 코믹스 '다크나이트 리턴즈'와 '나이트폴'을 상당 부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은퇴하여 쇠약해진 브루스 웨인, 배트맨의 활동 자체가 낳은 미치광이 악당들이 창궐하고, 극빈층의 돌연변이와 범죄자들이 궐기하고, 매스컴은 가짜 희망을 주입하고, 선한 자의 희생으로 사막(바다) 한 가운데에 떨어지는 핵탄두, 브루스 웨인의 죽음, 대적하던 거리의 아이들을 거둬들이는 브루스, 최측근들만이 알게 되는 브루스 웨인의 생존사실... 거의 씬 바이 씬으로 대조할 수 있는 설정들이 난무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미 리뷰는 길어질대로 길어졌고, 코믹스와의 비교는 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다만 제가 덧붙일 말이 있다면 영화가 충실하게 코믹스의 재료로 잔치를 벌인 것은 맞지만, 정작 품고 있는 질문과 답은 80년대 중반 냉전 시대에 그려진 코믹스와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하며 19세기 산업 혁명의 폐허 위에 20세기 냉전 시대의 틀을 가져와 21세기 테러와의 전쟁을 그려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코믹스에서처럼 소외된 자들은 고통받고, 고담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며, 사회는 거짓된 희망으로 대중을 기만합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배트맨이 하수구로 기어들어가 지하 조직의 수장이 되게 하는 대신, 그 반대편에 세워놓고 오히려 묻습니다. 이번엔 너를 그들의 반대편에 서게 한 것이 무엇이냐고. 일차적인 대답은 고든의 대사와 같습니다. 영화 속 소외된 자들의 궐기는 계급 혁명이 아니라, 계급 혁명이란 미끼로 사람들을 미쳐 날뛰게 한 뒤 고담시를 파괴하려던 탈리아의 음모였죠.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거짓으로 대중을 기만한 건 탈리아나 니들이나 양쪽 다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영웅이고 탈리아는 악당인 근거가 무엇이냐. 그러자 영화는 아주 단순한 메세지를 답으로 내놓습니다.


베인은 말합니다. 가장 잔인한 건 온전히 절망만이 남아있는 가운데 사람을 기만하는 한 줄기의 희망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체험시키기 위해 완전한 감옥에 브루스를 던져넣습니다.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우화가 되죠. 결국 우리의 영웅이 그 절망 속에 던져진 기만적인 희망에 목숨을 걸고 투신하는 순간, 다크나이트는 날아오릅니다. 순진하고 예측가능하며 현실적으로 터무니없는 전환입니다만, 히어로물의 한 가운데에 배치된 우화로써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절망을 믿는 자들에게 희망은 단순한 기만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믿는 자가 다수일 때는 그 희망쪽이 현실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요. 고담시라는 절망에서 탄생한 배트맨, 부패한 경찰청의 마지막 보루 고든, 황폐한 웨인 저택의 파수꾼 알프레드, 탐욕스런 웨인 엔터프라이즈 자본가들 사이의 폭스, 궁핍한 고아원 출신의 경찰 블레이크, 무너진 블랙게이트의 범죄자들 속에 섞여 탈출한 셀리나... 산재한 절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보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실재하는 한 줄기 희망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믿는 자가 있는 한, 절망쪽에 서있는 자는 악당이 되고 희망쪽에 선 자는 영웅이 됩니다. 정의란 무엇인지 고뇌하고, 선과악의 모호한 경계에서 줄을 타고, 온갖 심오한 철학을 다 갖다 붙여 사회 체제와 이데올로기와 계급 갈등을 논해도 좋을 이 거대한 서사의 결말로는 사뭇 평범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악이 아니라, 절망을 낳는 것이 악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말입니다.


하비 덴트의 신화가 모두 허구였음을 알게 된 블레이크는 고든에게 분노합니다. 대중을 기만하고 가짜 희망을 선전하는 건 불의한 일이라는 자명한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나 핵폭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고, 외부로 통하는 다리마저 단절되자 블레이크는 고든이 했던 바로 그 선택을 합니다. 고아원 아이들을 버스에 태우는 거죠. 마치 다음이 있다는 듯, 가짜 희망으로 기만하며. 진실은 옳고 거짓은 나쁘다는 그 단순한 선악 구분을 넘어서 희망을 선택했던 그때, 블레이크는 진짜 영웅이 됩니다. 


여기서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고담시에 평화를 선사하고 배트맨마저 내어준 브루스 웨인은 모든 것을 잃은 절망 속에 8년을 삽니다. 그런 그를 찾아온 블레이크는 당신이 놓친 디테일들엔 여전히 배트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하죠. 브루스 웨인이 놓친 디테일이란, 그가 은둔하는 동안 웨인 재단의 지원이 끊긴 고아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들- 맨몸으로 거리에 내몰린 극빈층이야말로 브루스가 그토록 악당의 손에 넘어갈까 두려워했던, 그리고 결국 넘겨주고 말았던 이 영화의 진짜 폭탄이었습니다. 저마다 배트맨이 될수도 있었을 아이들, 그러나 브루스가 거대 담론에 파묻혀 눈 감고 있는 동안에 악당이 되어버린 아이들. 브루스에겐 무심결에 챙기지 못했을 뿐인 작은 디테일이, 당사자들에겐 생존권을 박탈해간 절망이었습니다. 이 건에 있어서 브루스 웨인은 명백한 유죄입니다.


사실 브루스 웨인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내내 우리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알프레드와 폭스는 아비된 심정으로 브루스에게 짝(미란다)을 찾아주고 평범한 삶을 돌려주려 하지만, 그것이 브루스를 나락으로 몹니다. 브루스는 미란다를 믿고 그녀에게 원자로를 넘겼지만, 결국 그게 고담시를 파괴할 핵무기가 됐죠. 셀리나는 그저 살기 위해 배트맨을 베인에게 넘겼지만, 그것은 고담의 마지막 희망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블레이크는 경찰 병력을 지하에 침투시킬 묘안을 내지만, 이는 악당들의 함정에 경찰들을 내모는 것이었습니다. 고담을 지키려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추앙했던 고든의 거짓말은, 리더가 부재하는 고담의 무정부주의적 혼란을 가중시키게 되죠. 악당들은 그다지 미쳐 날뛰지도 않는 가운데, 주인공들과 고담 시민들이 저마다 열심히 삽질을 하며 저 스스로 몰락해갑니다.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고 모두가 유죄이지요.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 한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손에 넣기 위해 영화는 싸우기를,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환상을 투영한 히어로물입니다. 범인은 나였어, 죽음으로 갚으마, 하고 끝내는 건 태업이죠. 저는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으로 끝나는 영웅담은 거의 믿지 않습니다. 대체로 그건 너무 쉬우니까요. 이 시리즈는 그 점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직시한 바 있죠.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남아 악당이 되거나.' 내가 다시 배트맨이 되어 세상에 나갔다가 질까봐(죽을까봐) 두렵냐는 물음에,  너 스스로 지는 걸 원할까봐 그게 두렵다던 알프레드에겐 브루스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구원입니다. 경찰청 내부마저 부패한 고담시에서 고독한 싸움 중인 고든에겐 타락하지 않는 불멸의 영웅이 구원이죠. 그러나 '영웅으로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 단순히 영웅인 것을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영웅으로 죽기 위해 평범한 브루스 웨인의 삶은 배트맨을 감추는 가면으로 희생시키라던 레이첼의 충고는 (비긴즈)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내 손에 사랑하는 이들의 피를 묻혔으니 나도 악당이라는 (다크나이트) 손쉬운 체념으로부터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불의와 싸워 영웅으로 죽는 것을 지나, 악당으로 살아남는 것을 뛰어넘어 그 다음을 묻습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다 내주었느냐, 아직 내어주지 않은 것이 남아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많은 영웅담이 되풀이 했던 '마지막으로 내 목숨을 내어주마'가 아닙니다. 그 답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었습니다. 싸우다 죽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살아남아 보살피는 것에 깃들어 있는 영웅적인 살뜰함. 있는 힘껏 모두에게, 마지막 한 사람에게까지, 그래서 마침내는 브루스 웨인 자신에게까지 삶을 선사하는 것이 아직 배트맨이 해주지 않은, 여전히 배트맨이 해줄 수 있는 '작은 디테일'들인 거죠. 같은 원한 아래서도 웨인의 아이는 웨인이 되고, 알굴의 아이는 알굴이 됩니다. 그리고 누구의 아이도 아닌 아이들은 부모 잃은 새끼 오리처럼 먼저 손내밀어 보살피는 자의 아이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은 싸우는 정의가 아니라 보살피는 정의, 보살피기 위해 싸우는 정의입니다. 거대 담론 하에 숭고히 죽는 것보다 번거롭고 시시하지만 그보다 훨씬 어려운.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 대신 치열하게 발버둥쳐 끝내 영웅으로 살아남는 자의 우화를 완성하기 위해 영화는 부지런히 모두를 위한 해피엔딩을 준비합니다. 배트맨이 지켜낸 세계가 정의롭다면, 정의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그 안의 개개인들이 지금껏 그토록 불행해선 안 되는 거였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3부작 내내 유예해왔으니까요.


영화의 엔딩씬을 다 읊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조커가 이기게 둘 수 없다는 이유로 악당의 오명까지 쓰고 고담을 떠났던 배트맨이 아닙니까. 이번엔 알굴 부녀가 틀렸음을 증명할 차례입니다. 그건 바로 알굴 부녀가 믿기를 거부했던,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저마다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해 붙들고 있던 가짜 희망들을 정말로 실현시켜주는 것이죠. 영화 초반 블레이크의 지적처럼 그 '작은 디테일'들에 배트맨이 나설 때가 마침내 온 겁니다. 이렇게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시리즈 중 하나는 끝을 향해 갑니다. 이야기의 거대함에 비해 최종 메세지는 소박해보이기까지 합니다만 어쩌면 바로 거기에 이 모든 소동의 핵심이 들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최대한 모두를 위해 사소한 대사, 작은 바람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사려깊은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바람에 등장인물 모두가 배트맨을 수 천배는 더 좋아하게 됐을테고, 팀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을테고, 그러므로 후속편을 수십편은 더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아무튼 여기서 끝입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아직 남아 있는 분량이, 빠뜨린 얘기가 있습니다. 절름발이가 배트맨이고 브루스 웨인이 유령이고 범인은 바로 나인 것이 이 시리즈의 반전이었으니까요. 자, 여기 부모를 잃고 세상 전부를 잃은 것만 같았던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시련이 소년을 단단하게 벼른 끝에 단순한 복수심은 악에 대한 증오로 변모하고, 마침내 그는 악을 소탕하는 영웅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영웅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어느 누구일 수도 있다는 메세지를 위해 가면을 뒤집어 쓰고 상징적인 익명의 존재, 배트맨이 되는 거죠. 그러나 바로 그 메세지- 우리 주위의 어느 누구든 배트맨일 수 있고, 누구든 배트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은수저 물고 태어난 브루스 웨인의 안일한 착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순간에도 그는 정말로 모든 것을 잃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지요. 현실은 이렇습니다. 여기 부모를 잃고 세상 전부를 잃은 것만 같았던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재정 지원을 해주던 갑부의 애인이라도 죽으면, 하수구로 기어들어가 범죄 조직에 가담하는 것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입니다. 그런 소년에겐 추상적인 정의가 아니라, 당장 입에 빵을 넣어주는 범죄자들이 희망입니다. 굶어죽든 얼어죽든 착하게 살라며 나쁜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는 배트맨이란 그저 산타클로스같은 기만적인 도시 전설, 가짜 희망일 뿐이죠. 이쯤에서 이 이야기 속의 소년이 자신인 줄 알았던 브루스 웨인은 깨닫습니다. 이제 소년 쪽이 아니라, 그 소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을 생명줄을 쥐고 있는 갑부 쪽이 자신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절망으로부터 소년을 구하는 길은 단순히 백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정의의 사도 배트맨으로 남아 고담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배트맨의 전설을- 그 가짜같던 희망을, 뭣모르고 떠벌린 허황된 약속을 진짜로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스파이더맨은 할 수 없고, 아이언맨은 하지 않을 그 일을 다행히 배트맨은 할 수 있습니다. 절름발이가 배트맨이고 브루스 웨인이 범인이었지만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갑부인 브루스 웨인과 정의의 사도인 배트맨의 공조만이 그 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브루스 웨인의, 배트맨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약속은 이행됩니다. 가진 것도 없고, 엄마도 없고, 존경할 구석이라곤 없는 아비는 눈 앞에서 죽고, 그런 것도 아비라고 복수심은 들끓지만 방법도 없고, 집도 없고, 할 일 없는 갑부의 호의로 간신히 유지되는 고아원은 갑부의 변덕으로 언제든 문 닫을지 모르고, 세상에 나와봐야 받아주는 곳도 없는 막막한 절망의 구렁텅이. 그 진창에서 구르면서도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정의의 편에 서서 영웅이 되길 꿈꾼다면, 누구든 정말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약속. 브루스 웨인이 그 나락에서 걸어나온 한 소년, 존-로빈-블레이크에게 들려주었던 바로 그 약속 말이죠. 라스 알굴의 말처럼 불멸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웨인가의 진정 위대한 유산은 수 조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지는 건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편안한 죽음 앞에서 배트맨으로 하여금 끝내 처절한 삶을 향해 기어오르게 또 날아오르게 했던 바로 그 손내밈이었습니다. 그 불멸의 손내밈으로, 원한과 원망에 사무쳤던 소년은 몇 번이고 잿더미에서 끌어올려졌습니다. 그러니 마치 고든이 브루스에게 했듯 이번엔 브루스가 소년의 어깨에 외투를 덮어주며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줄 차례인 겁니다. 그 외투가 이왕이면 검은색에 방탄 기능까지 갖췄다면 더 좋겠죠.








+ 이 얘기가 게시판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금고털이 툴이 장착되어 있고 머리 위로 올리면 고양이 귀가 되는 캣우먼의 썬글래스가 정말 근사했습니다

+ 탈리아는 처음부터 배신의 포스를 풀풀 풍기고, 그럴 듯한 허수아비를 세워 정체를 숨기는 트릭은 아버지 라스 알굴이 '비긴즈'에서 했던 트릭과 똑같지만, 그럼에도 베인 우화에 속은게 저 뿐은 아니겠지요.

+ 정체가 발각된 뒤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가 조금 더 미쳤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확실히 감독이 배트맨을 숭배하는 팬보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문자 그대로 케이지 파이트까지 시키다니. 심지어 배트맨이 져!

+ 역시 다크나이트 이상의 무엇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크나이트를 뛰어넘는 게 이 작품의 존재 이유는 아니죠 :)

+ 동기를 설명하는 빌런, 인간의 회복력을 뛰어넘은 히어로 등의 클리셰가 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걸로 놀리고 싶은 건 별개의 문제죠 :)

+ 스케어크로의 재판을 조커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케어크로가 아쉽다는 게 아니라요,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 이렇게, 쓰다가 장황해져 지워버리는 포스팅이 한 둘이 아닙니다만 저는 여전히 빠뜨린 게 뭐 없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 아무튼 그 모든 절망의 끝에서 배트맨이 고든에게 (비유적으로) 가면을 벗어보이며 아주 사소한 사건에 대한, 아주 오래된 감사 인사를 전할 때 어쩔 수 없이 속이 저릿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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