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활 (김기덕)

2013.04.21 02:22

비밀의 청춘 조회 수:11528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은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이다. 극 초반, 카메라는 푸른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큰 배 한 척을 잡는다. 영화  는 겉만 보았을 때는 평안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배 안에는 욕망이 강하게 도사린다. 카메라의 담담하지만 집요한 응시, 강한 욕망과 염원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영화가 바로 이 이다.

    이 영화에서 중심인물은 할아버지이다. 그는 일곱 살짜리 소녀를 데려와 대략 십 년 동안 키웠다. 그는 소녀가 열일곱 살이 되면 결혼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의 모습은 언뜻 보면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잠든 소녀의 길이를 줄자로 재고, 일 나가기 전에 소녀를 위해 상을 차려주는 그만의 보살핌은 따스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달력의 하루하루를 빨간 펜으로 지워나가며 소녀와의 결혼을 기다린다. 할아버지는 소녀를 닦아주고, 같은 공간에서 매일 잠을 잔다. 그러나 언제나 소녀의 손을 꼭 잡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성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에게 소녀는 지켜줘야 하는 신붓감이다. 심지어 소녀에게 손을 대기라도 하면 배를 찾아온 낚시꾼들에게 경고의 활을 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소녀를 자신과 배라는 일종의 팬옵티콘적 구조에 가두어 둔 상태이다. 절대적 보호자인 자신이 소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한다.

    그러나 팬옵티콘의 죄수와도 같은 소녀는 자신이 응시의 대상인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할아버지와 소녀는 세상과는 다른 질서를 가진다. 그 둘의 관계는 외부인들에게 의심과 편견이 가득 찬 판단하는 시선의 대상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소녀는 서로 바라보는 방식에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는다. 사회의 도덕질서가 적용된 시선을 갖게 된다면 할아버지와 소녀는 그 배에서 같이 살 수 없다. 존 버거의 보는 방식이 말하는 것처럼, 할아버지와 소녀는 외부인들과는 다른 사회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외부의 윤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둘의 관계가 일반인들과 다름을 묘사하는 부분은 할아버지와 소녀가 치는 활 점을 보여주는 데서도 나온다. 활 점을 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방법을 대충 요약해보자면, 소녀가 그네를 탈 때 할아버지가 활을 쏘아 부처 그림을 맞춘다. 할아버지가 활을 세 번 쏘고 있는 동안 소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유혹하듯 미소 짓는다. 활 점을 치고 난 후의 결과는 소녀가 할아버지에게로, 할아버지가 다시 활 점을 의뢰한 사람에게 귓속말로 전달하며 이루어진다. 요컨대 소녀와 할아버지의 소통은 다른 이들이 큰 소리로 감히 들을 수 없는 것이며 소녀와 직접 소통하는 것은 할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허락받지 못한 일이다. 소중한 신붓감이 할아버지와 나누는 교류의 정점이야말로 활 점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는 남성의 근원적 욕망을 대변하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팬옵티콘이며 소녀를 자신의 것으로 교육시킨 내용 그 자체이다.

    혼인 날짜가 다가오던 어느 날, 외부 세계에서 젊은 대학생이 오면서 이들의 세계에는 균열이 가게 된다. 대학생은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외부 세계의 질서를 대표하는 그는 할아버지에게 소녀를 놓아달라고 항의한다. 대학생의 말들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의 시선을 상징한다. 그뿐 아니라 소녀의 자발성으로 유지되던 팬옵티콘도 소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객체성을 깨고 여자로서의 주체적인 시선으로 대학생을 응시하기 시작하며 완벽히 불안해진다. 할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이 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애욕은 이를 불쌍하게 여긴 소녀가 결국 그와 혼례를 올리고, 배 위에서 죽은 할아버지의 영혼과 섹스하면서 해소된다.

    이 영화에는 남성 위주의 욕망이 극단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다. 할아버지가 만든 배 위의 팬옵티콘적 세계는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만들어놓은 사회 구조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들은 능동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구속한다. 여성은 그에 길들여져 있으며 담담하고,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소녀와의 성적 결합을 지향하는 할아버지의 욕망은 그 위에서 정당성을 갖게 된다. 할아버지가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동등한 존재를 바라본다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정권을 가진 그에게 소녀는 자신의 감옥에 갇힌 죄수이자 신부이다. 그런 그녀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며, 배신행위이다. 그들의 관계는 명백히 불평등하다.

    배 위에서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남성 전체의 욕망의 시선이 담겨 있다. 다른 남자들에게 역시 소녀는 응시의 대상이며 특히 그녀의 젊은 육체가 그렇다. 그들에게 그녀는 늙은 남자의 애첩에 불과하며, 철저한 소유물이다. 그녀를 만지는 그들의 손은 인간이 아니라 장난감을 만지듯 거침이 없다. 단지 할아버지라는 주인에 의해 제지될 뿐이다. 그녀를 그나마 욕망의 시선보다 동정이라는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젊은 대학생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녀가 오줌을 싸는 모습, 목욕을 하는 모습을 훔쳐본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유일한 여성인 소녀는 모든 남자들이 탐내는 여성의 파편화된 육체이며 불타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녀의 신체는 남성들이 갖는 절시증의 대상이며, 육체적 욕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소녀는 심지어 팬옵티콘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욕망을 풀어주어야만 한다.

    영화 의 결말에서 소녀는 팬옵티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동정해야 했고, 할아버지에게 자신을 바쳐야 했다. 소녀를 가지고 싶어 한 할아버지의 욕망은 그로써 해소되고, 비로소 소녀의 탈출을 용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의 욕망에는 구원이 필요하며 그를 위해서는 여성의 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이다.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철저한 일방향이며 인간으로 설정되는 유일한 주체가 남성뿐임을 전제한다. 팬옵티콘은 영화 속의 인물만이 아니라 영화 외부의 세계에서도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속에서 여성은 영원한 응시의 대상, 절시증의 수단이며 주체가 될 수 없는 객체이고 무엇을 선택하든 남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자발적인 구원자도 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할아버지라는 남성의 구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외부세계로 나간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팬옵티콘임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 젠더 분석이 가장 주요했던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굉장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성과는 별개로 제가 느낀 그대로의 감상이 이 글의 본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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