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2010.09.10 00:47

milk & Honey 조회 수:12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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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단조로운 일상에 길들여진 인간을 깨웁니다. 그 모험의 목적과 끝이 평화로운 일상의 탈환 혹은 유지라는 것은 반어적이지요. 판타지세상의 모험은 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주인공이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서 겪는 일이기도 하고 한편 우리와 다른 존재가 인간의 세상에서 겪어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의인화된 동물을 주인공을 한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지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 제작을 맡고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감독한 ‘마루 밑 아리에티’는 후자에 속합니다. 물론 아리에티는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소인의 존재지만 인간에게 다른 종류의 타자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병약하고 외로운 소년 쇼는 심장수술을 앞두고 요양차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외갓집에서 지내러 옵니다. 거기서 그는 풀숲을 뛰어다니는 작은 존재에 대해 알게 되지요. 이미 어머니로부터 ‘소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다 고립되었다는 처지의 특수성은 이 이질적인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렇지만 마루 밑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던 아리에티네 집은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들킨 이상 이곳을 떠나는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는 내내 고어 비번스키 감독의 1997년 작 ‘마우스 헌트’가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의 소소한 물건으로 꾸민 아기자기한 살림살이, 그리고 들킴, 방역회사 사람들의 방문 등. 둘의 차이점이라면 결말이겠습니다. ‘마우스 헌트’는 결국 꼬마쥐와의 공생을 받아들이고 모두들 행복해지지요. ‘마루 밑 아리에티’는 그와는 방향이 살짝 다릅니다.

 

음악과 미술은 당연히 ‘지브리’스럽습니다. 모험이 펼쳐질, 자연 가득한 다른 세상으로 차를 몰고 오솔길을 가는 장면은 ‘센과 치히로의 모험’, ‘이웃집 토토로’의 첫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외갓집과 마루 밑 아리에티의 아기자기한 유럽 농가를 닮은 아리에티의 집, 그리고 쇼의 집안에서 3대째 내려오는 바로크식 인테리어의 인형의 집은 시각적인 호사를 누리게 합니다. 또한 작품 속에 배치된 각종 자잘한 소품들은 우리에겐 별것 아닌 조그마한 일상품들이, 이를테면 작은 집게가 아리에티의 머리핀이 되기도 하고, 옷핀이 국자걸이가 되기도 하며, 우표가 멋진 장식그림이 되기도 하는 등 눈으로 하는 소꿉놀이의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음악도 이 잔잔한 이야기를 잘 따라갑니다. 또 아리에티가 아버지와 밤중에 물건을 ‘빌리기’ 위해 부엌에 들어섰을 때, 그 경이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영화는 도마소리, 식기 딸각이는 소리, 음식물 튀기는 소리 등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리에티는 세계화의 조류에 사라져가는 소수민족의 은유로도 읽힐 수 있고, 어린 날을 환기하는 매개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다른 이 존재를 한쪽의 질서로 편입하지 않고도 얼마든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독립성을 지켜주기에, 이 우정엔 이별조차 기쁠 수 있음을, 태생적으로 오만한 자기중심주의를 가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한, 영화가득 서려있는 ‘지브리’스러움은 한편으론 매너리즘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줍니다. 발전없는 지브리의 세계에 정착한 저같은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끼겠지요. 다만 저와 비슷한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생각을 하면 조금 암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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