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BBC Sherlock 3, 7-3.

2014.01.27 19:19

lonegunman 조회 수:2904



7-3. 이중주 duet




자네가 무슨 일을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자네가 그렇게 했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거지.

- 셜록 홈즈 (주홍색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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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파스티슈의 고전 '도둑맞은 담배 케이스 (브렛 하트)'는 위대한 탐정 '헴록 존스'가 터키 대사에게서 하사받은 진귀하고도 값비싼 담배 케이스를 도둑맞았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내용을 알고싶지 않은 분들은 두 문단 아래로 내려가십시오.- 우리의 충실한 기록자 왓슨 박사는, 우리의 위대한 탐정에게 일어난 이 어처구니 없는 절도 사건에 기함을 토하죠. 헴록은 차마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도둑질 당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습니다. 왓슨 말고는 누구에게도요. '자네, 나의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 나의 추론을 칭송하며 나의 신뢰를 얻은 사람. 자네, 내가 손짓만 해도 달려오는, 나의 노예. 자네 말고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나.' 왓슨은 (왜인지) 이 말에 감동합니다. 그리고 혹시 어디 떨어뜨린 거 아니냐고 묻지만 헴록은 자기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죠. 왓슨이 서랍은 찾아봤냐고 물어도 헴록은 서랍을 뒤져보기는 커녕 도둑 잡을 생각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추론하는 동안 왓슨이 존경과 찬탄의 의미로 때로는 헴록의 발등을 쓰다듬고, 손등에 입을 맞춰도 헴록은 오직 담배 케이스 생각 뿐이죠. 헴록이 자릴 비운 동안 왓슨은 직접 서랍을 열어보려 하지만, 잘 열리지 않고 손잡이엔 '어쩐지' 비누칠이 돼 있습니다. 용의자를 미행해보는 게 어떻냐는 조언을 남기고 악수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려는 왓슨. 헴록은 '어쩐지' 직접 코트를 입혀주며, '어쩐지' 왓슨의 팔 길이를 재고 소맷자락을 흔들어봅니다. 우리의 왓슨은 집에 돌아가서도 내내 헴록의 사건을 걱정하지만, '어쩐지' 분장한 헴록이 왓슨의 주위를 맴돕니다. 아아, 우리의 가엾은 왓슨은 일말의 의혹도 없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나의 조언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뻤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가 눈을 깜빡인 건 응답 비스무레한 걸 거야.' 얼마 후, 헴록의 부름을 받고 하숙집을 찾아간 왓슨은 뜻밖의 말을 듣습니다. '이 도둑놈아, 내 담배 케이스 내놔.' 헴록은 왓슨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추론을 늘어놓는데, 너무나도 천재적이고 빈틈없고 압도적인 그의 논리에 감동한 나머지 왓슨은 차라리 범행을 인정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변명조차 듣지 않으려는 헴록의 기세에 왓슨은 문득 전에 안에서 뭐가 걸린 듯 열리지 않았던 서랍을 떠올리곤 세게 당겨봅니다. 그 안에는 도둑맞았다던 담배 케이스가 들어있습니다. 원망할 줄도 모르는 우리의 왓슨은 기쁨에 차 헴록을 바라보지만, 헴록은 차갑게 말합니다. '이거, 내가 실수했군. 훔친 담배 케이스를 자네가 이미 거기 돌려놓았을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결국 왓슨은 헴록의 삶에서 영원히 추방당합니다.

언뜻 오만방자한 벽창호 셜록 홈즈와 멍청한 숭배자 존 왓슨을 농담조로 조롱하는 뻔한 파스티슈물 중 하나로 보이는 이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건 역시 마지막 문장 때문일 겁니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요, 헴록과 헤어져 의사 신분으로 돌아간 왓슨은 담배 살 돈도 없던 헴록의 조수시절과는 다르게 유능한 의사로 큰 부와 명예를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충실한 벗 왓슨은 여전히 헴록과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회고합니다. '난 부자가 되었고, 내 명의의 마차와 집도 생겼다. 그러나 내 위대한 친구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가슴에 사무칠 때면 종종 회한에 잠긴다. 그때 내가 -판단력이 흐려지는 바람에- 실제로 그의 담배갑을 훔치지만 않았더라면!'



셜록 홈즈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언뜻 흔한 크리스티식의 반전으로만 느껴질 이 이야기가 그토록 저를 (그리고 많은 셜록 홈즈의 열렬한 팬들을) 흥분시켰던 건, 부주의한 독자들이 셜록 홈즈 원전에 대해 너무 쉽게 간과하곤 하는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절묘하게 폭로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한 가지는 원전의 행간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두 주인공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영리하다는 걸 알게 된다는 사실. 다른 한 가지는 중요한 사실들을 행간에 감추는 왓슨 박사의 재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입니다. 부주의한 독자들은 이런 주장을 단순히 열광적인 팬들의 충성심, 신격화라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존 왓슨을 두고 좀 멍청한 것 같다 말하는 독자에게 코난 도일 경은 점잖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책을 제대로 안 읽어보셨군요.' 틀림없이 뭔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 쓰라고 '그레잇 게임'이 있는 겁니다.

여기, 무엇이 진짜 원전에 가까운가에 대한 아주 까다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두 명의 셜록 홈즈 중 첫 번째에 우리가 더 익숙한 것은 물론 착시 효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다 독자의, 대중의 탓이기만 하다는 건 좀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냥모고 파이프고 다 집어치웁시다. 셜록 홈즈의, 존 왓슨의 캐릭터에 대해 독자들이 상반된 인상과 해석을 가지고 있는 데에는 뭔가 이야기 자체에 내포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렇습니다. 왓슨의 입을 통해 말해진 것과,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서 보여지는 사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 때로는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하기는 커녕 기반을 흔드는 그런 간극 말입니다. '그레잇 게임'의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그 간극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어쩌면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착시 효과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가장 대표적인 문제를 하나 들어봅시다. 원전에는 '그는 이례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볼 기회는 극히 드물다.(바스커빌가의 개)', '홈즈는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마자랭 보석)'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쿠퍼의 기록에 따르면, 원전 60편을 통틀어 홈즈가 웃은 것으로 칠 수 있는 행동은 총 292회, 로터바크의 통계에 따르면, 60편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홈즈가 정확히 미소짓거나 웃거나 낄낄거린 횟수는 총 199회로, 셜록 홈즈는 회당 최소 3~5회 가량 웃거나 농담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전에 충실한 것입니까. 왓슨의 말대로 셜록 홈즈는 웃음기 없는 인물이라고 믿는 것? 아니면, 홈즈의 행동대로 그가 꽤나 빈번히 웃음을 터뜨렸다고 믿는 것? 

시즌1 때 우리가 했던 작업을 다시 한 번 옮겨봅시다. 원전에서 왓슨은 홈즈가 자신의 출판물을 못마땅해 했다고 주장합니다. 홈즈는 '나도 훑어봤지만, 솔직히 말해 칭찬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 (네 개의 서명)'다며, '자네는 강의해야 마땅한 것들을 이야기로 깎아내렸어.'라고 혹평을 늘어놓았다고요. 그러나 정작 '아, 믿음직한 동지는 항상 도움이 되지, 연대기 작가는 더욱 큰 도움이 되고.(입술이 뒤틀린 남자)', '나의 보즈웰이 없으면 난 어쩌라고.(보헤미아 왕실 스캔들)', '이건 우리 전기 작가님께서 영광스럽게도 내 전기를 써주시기 전까지의 초기 기록들이야.(머스그레이브씨네 의식문)'라는 칭송에 대해선 왓슨은 그저 듣고 넘기죠. 심지어 '자네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번 일을 기록해서 내 성공을 조금은 깎아 내려야 할 거야.(바스커빌가의 개)', '이번 사건을 자네의 기록에 덧붙일 생각이라면 말이지… 그건 제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그 회전이 둔해진다는 사실의 예밖에 되지 않을 거야. 이번 사건으로 내 명성일 떨어질 뻔 했는데 최소한 그에 대한 변명은 할 수 있게 해줘.(프란시스 카팍스의 실종)', '내가 자네에게 좀더 많은 사건을 기록하도록 허락한다면, 이 모험 이야기 덕에 자네 글이 아주 생동감 넘치게 되겠지.(여섯개의 나폴레옹 석고상)' 에서 볼 수 있듯, 왓슨의 기록을 엄청나게 신경쓰고요. 유명세에 시달려서 힘들다며 왓슨에게 출판 금지령을 내려놓고는, 왓슨이 정말 안 쓰니까 결국 못 참고 '왜 콘월의 공포를 발표하지 않나? 그렇게 이상한 사건도 없는데.(악마의 발)'라며 출판하기를 넌지시 종용하기까지 합니다. 대체 홈즈는 왓슨의 글을 좋아한 겁니까, 싫어한 겁니까?

왓슨은 자신이 홈즈에게 하찮은 존재였다고 회고하며, '나는 하숙집의 명물인 바이올린이나 새그 잎담배, 해묵은 검정 파이프, 색인집 같은 존재였다. 아니면 그보다 더 볼품없는 물건 비슷한 존재였다. 일면 느려터진 내 정신의 작동 방식 때문에 그를 짜증나게 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그 덕분에 그의 섬광 같은 직관과 인상이 더욱 생생하고 더욱 빠르게 번뜩였다. 우리의 동맹 관계에서 내가 맡은 변변찮은 역할은 그런 것이었다.(기어다니는 남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홈즈는 '왓슨, 자리를 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나는 목격자를 곁에 두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독신 귀족)', '왓슨, 자네는 침묵할 줄 아는 굉장한 재능을 지녔어, 길동무로서 그보다 더 값진 미덕은 없지. 정말이지 나한테는 얘기를 나눌 사람이 꼭 필요해.(입술이 뒤틀린 남자)', '자네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스스로는 빛을 발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자네는 훌륭하게 빛을 전달하고 있는 거야.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은 없지만 천재성을 자극하는 훌륭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나 역시 상당 부분 자네에게 빚을 지고 있어.(바스컵빌가의 개)' 등에서 보여지듯 콕 집어 왓슨의 존재를 필요로 하죠. 


명백히 설명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어느 한쪽 입장을 고수하며 '나의 홈즈는 이렇지 않아'에 그쳐선 아무것도 안 되는 지점, 무언가 두 가지 명백한 사실 사이를 중재할- 해석이 필요해지는 지점이죠. 이를테면, 우리 주인공의 성격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시간을 두고 변화해왔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발표된 60편의 작품을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에는 연구자들 사이에 여러가지 이견이 있지만, 거기서 보여지는 셜록 홈즈 캐릭터의 경향성에 대해선 의견을 같이하는 편입니다. 딱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초반엔 냉철하고 신비로운 기인으로, 중반엔 왓슨을 향한 우정이나 의뢰인을 향한 동정심 등 따뜻한 성품을 조금씩 드러내는 인물로, 후반엔 의뢰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좀 뒤틀린 농담이나 장난을 치는 괴팍한 노인네로 변화하고 있다는 거죠. 혹은, 셜록 홈즈의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상대에 따라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왓슨이 글로 직접 묘사한 것이 홈즈가 지니는 보편적인 태도라면, 왓슨의 글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홈즈의 인색하지 않고 다정하기까지 한 감정의 표현들은 유일한 친구 왓슨을 향한 홈즈의 예외적인 태도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또는, 두 가지 해석을 취합해서, 홈즈가 왓슨이라는 친구를 얻게 되면서 성격의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초반의 냉정하고 고립되어 있던 기인이 221B에 입주한 왓슨과의 우정을 통해 숨겨져있던 감정을 드러내다가, 왓슨의 결혼으로 다시 혼자가 되면서 고독하고 괴팍하게 변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BBC 셜록이 취하고 있는 노선은 이 마지막 해석에 가까워보입니다.


BBC는 존과 셜록의 관계를 이렇게 해석했나보군. -하고 끝내면 저는 '그레잇 게임'을 말할 자격이 없는 거죠. 이러한 노선을 채택한 BBC 셜록이 그리고 있는, 문제의 '원전에 없는' 존와 셜록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들의 근거를 살펴봅시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글쎄, 원전을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니까요. 물론 원전과 대조 가능한 부분은 차후에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원전에서 왓슨은 부활한 홈즈를 본 순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절(빈 집)'을 합니다. 이 부분은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해왔죠. 그러므로 BBC판에서 보인 존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응원했잖아요, 다들 왜 이러십니까.)

존 왓슨의 결혼식. 홈즈라면 과연 신랑 들러리라는 성가신 과업을 기꺼이 맡아 열중했을까요? '글로이아스콧호'에선 홈즈의 대학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빅터 트레버가 나옵니다. 그와의 관계에서, 홈즈가 사교성은 떨어지지만 얼마나 충직한 친구인지 엿볼 수 있는데요, 홈즈는 '그(빅터)의 불테리어가 내 발목을 물고 늘어진 우연한 사고'로 인해 친구가 되었다고 밝히며, 그의 초대로 집에까지 놀러가고, 이후 화학실험을 하고 있는데 '도니소프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는 친구의 전보를' 받고는 '만사를 제쳐두고 다시 북부로' 떠났다고 말하죠. 또, '유명한 의뢰인'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복잡한 정신의 소유자군요, 대단한 범죄자들이 다 그렇죠. 내 옛 친구인 찰스 피스는 바이올린의 거장이었습니다.' 누구나 왓슨의 충견과 같은 충직함을 칭송하지만 홈즈라고 친구를 우습게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셜록 홈즈는 친구가 범죄자여도, 그의 개가 다리를 물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가 부르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셜록의 연설. 아무리 시리즈가 마음에 안 들어도 셜록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가 감동으로 끝을 맺는 들러리 연설에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은 분은 드물 거라 생각합니다. 왓슨에 대한 홈즈의 찬사어린 평가는 위에서 많이 언급했으니 넘어가고, 홈즈가 정말로 그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나요? '늘 감탄을 해주니 기쁘기 그지없군. (바스커빌가의 개)' 감사도 잘 하고, '왓슨, 문을 두드려 깨워서 미안해.(얼룩띠)', '제발 용서해줘. 나는 이걸 하나의 어려운 문제로 보고 그것을 풀기에 너무 열중했기 때문에, 자네에게는 가슴 아프고 슬픈 추억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어. (네 개의 서명)' 진심어린 사과도 할 줄 알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여섯개의 나폴레옹 석고상'에서인데요, 홈즈가 말채찍으로 나폴레옹 흉상을 내리친 극적인 순간, 레스트레이드와 왓슨은 그 안에서 드러난 상상도 못한 진실을 마주하곤 '연극에서 위기가 해결된 순간'을 본 관객처럼 넋이 나간 채 박수를 칩니다. 그러자 홈즈는 '창백한 두 볼이 빨개지더니, 관객의 경의에 답하는 대 극작가처럼 고개를 숙여' 인사하죠. 왓슨은 기록합니다. '그러한 순간에는 홈즈도 잠시 완벽한 추리의 기계이기를 멈추고, 존경과 갈채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에 냉소하지도 않았다. 남다르게 자존심이 강하고 내성적인 천성이라 세간의 평가를 경멸하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도, 한 친구의 자발적인 경탄과 찬사에는 깊이 감동할 줄도 알았던 것이다.' 다른 얘긴데, 여기서 왓슨은 홈즈가 얼굴을 붉히며 감사한 대상이 '한 친구'라고 말합니다. '한 친구'라고요. 바로 옆에 레스트레이드가 있는데. 넘어갑시다.

고주망태. 이건 변호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작가들이 무진장 좋아해서 오만데 다 갖다 쓰는 '셜록 홈즈의 사생활 (빌리 와일더)'에서 왓슨이 홈즈의 7%코카인을 5%로 몰래 희석시키는 아이디어를, 반대로 알콜 도수를 높이는 걸로 변주해서 가져다 쓴 걸로 보입니다. '셜록 홈즈의 사생활' 갖다 쓰는 거에 대한 짜증은 여러번 냈으니 넘어갈게요.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몰리의 계산으로 '알딸딸할만큼' 취한 상태에 있었던 셜록이 알콜 도수 올라간 걸 눈치 못 챈 건 익스큐즈해줘도 될 것 같습니다. 셜록 말마따나 '실전 경험이 없으니까.'


정리합시다. 원전에서도 홈즈는 말과 행동을 통해 왓슨을 향한 우정과 감사를 수없이 표시했습니다. 홈즈는 진정 왓슨을 필요로 한 것 같고, 따로 살 때는 같이 사건 해결하자고 제 발로 찾아가기도 여러번이었고요, 범인을 향해 '만약 왓슨이 죽었으면 너도 죽었어!'하던 '세 명의 개리뎁'이야 말해 뭐합니까. 홈즈를 향한 왓슨의 우정 또한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거고요.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왓슨은 홈즈가 냉정하고 냉담하며, 자신의 존재는 섀그 잎담배 그보다 못한 하찮은 것이라 진술하고 있는 걸까요. 독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만들어야 할, 그래서 왓슨의 기록과 실제 홈즈의 행동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는, '도둑맞은 담배 케이스'에 버금갈만한 동기가 원전 속 왓슨에게도 있는 걸까요. 

당연하게도, 또한 타당하게도 '안전'이라 대답할 수밖에요. 범죄를 다루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왓슨이라면 둘의 우정이 범죄자들에게 손쉽게 이용당할 약점이란 걸 모를 리 없지 않았겠습니까. 실제로 '금테 코안경'에서 한밤에 찾아온 의뢰인을 향해 홈즈가 '이런 밤중에 설마 우릴 죽이러 온 건 아니겠지요.' 섬뜩한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베일을 쓴 하숙인'에선 왓슨이 '최근 (221B의) 서류를 입수하여 없애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에 대해 아주 강력히 비난하는 바이다. 그처럼 무도한 행위의 배후는 익히 알고 있으니, 만약 그런 시도가 거듭될 경우, 나는 셜록 홈즈의 이름으로 해당 정치인과 등대, 길들인 가마우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대중 앞에 낱낱이 공개할 권한이 있음을 밝혀둔다. 이 말을 이해할 독자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고 우리로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를 향해 강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왓슨은 언제나 본인이 갖고 있는 무수한 기록들 중 관련자들의 안전을 위해 발표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발표된 것들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유추하지 못하도록 고유명사나 디테일들을 왜곡해서 발표한다고 직접 밝혀왔습니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 두 사람의 모험과 그 기록의 발표는 이토록 신중을 기할,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럴진대,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그 두 사람의 우정이 범죄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안전지대에 있다는 행복한 상상이야말로 오히려 비현실적이죠. 그들의 우정은 전쟁터 복판에 던져져 있고, 시즌3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됩니다.


셜록 홈즈의 감정을 드러내보이겠다는,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관계에 집중하겠다는 BBC 셜록의 계획을 두고 2년 전 시즌2를 리뷰하며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셜록 홈즈가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감정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변해서, 인간 세상의 일원으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면- 참 훈훈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묻고 싶은 건, 그렇게 돼서 셜록 홈즈 자신에게 좋을 건 뭡니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합니까, 셜록 홈즈가 뭐가 모자라서? 2년의 세월을 건너, 제 물음에 제가 답하자면, BBC 셜록은 셜록 홈즈가 그래야 한다고, 셜록이 사회성을 배우고, 인간 관계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사람이 필요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는 참으로 아름답고, 위아더월드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셜록이 인간 관계 속에서 한 단계 성장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원전에서 드러나는 셜록 홈즈 캐릭터의 성격 변화를, 혹은 다양한 성격의 측면들을 존 왓슨과의 관계 속에서 읽으며, 그동안 기록하는 행위 뒤에 숨겨져 있던 존 왓슨이라는 존재가 기록되어진 셜록 홈즈라는 인물에게 사실은 어떤 의미였겠는지를 추적합니다. 이제는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일은 결코 황당무계한 추측이 아닌, 원전의 근거를 통한 재구성- '그레잇 게임'의 규칙을 통해 이루어지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줍잖은 성장, 발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할 때 일어나는 불가피한 변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변화가 아름답고 달콤하거나 교훈적이고 발전적일 거라고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추태(1화)와 고독(2화)과 실수(3화)를 야기하는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셜록 홈즈가 성장하기 위해 그것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전쟁터에서 홀로가 아닌 존 왓슨과 함께 살아남기를 택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거죠. 셜록 홈즈가 존 왓슨의 기록 속에서-왓슨이 표면으로 드러낸,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만들려던-와 같은 외로운 총잡이로 남는 게 가능하려면, 역설적이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곁에 존 왓슨이 없어야 합니다. 마이크로프트의 지적처럼 애초에 '엮이지를 말았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시즌3가 이 모양 이 꼴인 겁니다. BBC 셜록이 PG13으로 맞춰진 탈색된 모험담 혹은 성장담을 담기보단, 셜록 홈즈의 모험담이 모두 사실이라는 '그레잇 게임'의 관점에서 셜록 홈즈에게 실제로 일어난 존 왓슨이라는 사건의 씁쓸한 이면을 검열하지 않고 공평하게 담은 결과인 거죠. 원전에 활자로 적혀있지 않은 걸 한다고 모두 원전을 파괴하는 건 아니라는 '그레잇 게임'의 교훈을 다시 상기해봅시다. 존 왓슨은 셜록 홈즈의 '유일한 친구(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였고, 우정은 감정적인 것이며, '감정적인 것은 전부 냉정하고 올바른 이성과 상반되는 것(네 개의 서명)'이어서, '정신에 어떤 강한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은 아주 민감한 연장에 모래가 낀다거나 고성능 렌즈에 흠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보헤미아 스캔들)'입니다. 간단한 논리의 연쇄로 우리는 존 왓슨이 셜록 홈즈라는 고성능 렌즈에 생긴 흠이며, 끼인 모래라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죠. (공평하게 말하자면, 셜록도 존에게 그렇습니다. 다만 보통 사람은 애초에 별로 성능좋은 렌즈가 아니어서 티가 잘 안남.) 외로운 총잡이가 버디무비 식의 2인조가 되면서, 우정만 취사선택할 순 없어요, 하나를 택했으면 다른 하나도 따라 오는 겁니다. 그렇게 간단하죠. 그러니까 그게 싫으면 다시 한 번, 엮이지 말라는 마이크로프트 말을 들었어야 해요. '형은 나보다 뛰어나. (그리스인 통역사)' -원전은 언제나 옳다니까요. 

그러나- 원전을 읽는 것과 티비판을 보는 것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티비판에는 왓슨의 검열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원전에선 암시되거나 함축되어 있던 셜록 홈즈의 감정이 별 수 없이 표면상에 드러나고, 둘의 우정은 시청자건 관계자건 범죄자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저에게 2화 '세 사람'의 서스펜스는 굉장했습니다. 범죄의 서스펜스가 아니라, 이 벌거벗은 우정으로부터 귀결될 끔찍한 사태를 예감하는 서스펜스가요. 친한 친구가 결혼식 들러리를 선다,라는 이 단순 명쾌한 에피소드가 저에겐 공포 그 자체였어요. '결혼식 중간에 가버리는 들러리가 어디있어.'라던 허드슨 부인의 예언이 실현되던 마지막 씬에선 그냥 쓸쓸해서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더군요. 사실 원전에서 왓슨의 결혼 이후 점차 쇠약하고 괴팍하고 고독해지던 홈즈의 모습은, 왓슨 덕후인 저조차 왓슨을 원망하게 해왔습니다. '왓슨은 나를 버리고 아내한테 갔는데, 그건 우리의 관계에서 내 기억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는 혼자였다. (피부가 하얘진 병사)'


공정을 기하기 위해 존 왓슨의 변화도 언급해야죠. 외딴 섬이었던 셜록에 비하자면야 미미해보일 수 있지만, 셜록이 곁에 없는 한 달만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에 시달리는 3화는 곧장 시즌1 도입부의 처참했던 존을 상기시킵니다. 마약중독자 아들 때문에 친구로서 조언을 얻으러 메리를 찾아온 케이트를 보고 '이런 건 셜록 홈즈를 찾아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당연한 듯 묻던 존을 보십시오. 인간의 감정을 보지 못하고 개인의 비극을 의뢰인의 사건으로만 파악하는 누구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놈을 잡으러 사건 현장에 출동하는 모습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요. 3화에선 알아서 총을 챙기며 셜록과 함께 범법을 저지르러 달려갑니다. 원전을 살펴보면- '네 개의 서명'에서 존은 '나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오면서 여러 나라에서 여러 동물들을 사냥해 보았지만 이 템스강에서의 광기 어린 인간 사냥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통쾌한 사냥을 해 본 적은 없었다.'고 서술합니다.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튼'에선 한 술 더 떠 '이제 법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흉악범이었다. 법의 도전자가 아니라 수호자였을 때 느꼈던 것보다 더욱 강렬한 열정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나는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위험이 즐겁고 흥분되기만 했다.'고 말하죠. BBC판에서 존이 전투에 중독되어 그걸 즐긴다고 말하는 셜록의 근거는 여기에 있을 겁니다. 


서곡에서 언급했던 최초의 셜로키언 로널드 녹스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셜록 홈즈에 관한 모든 연구는 결국 존 왓슨에 대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BBC 셜록이 그러한 노선을 따르든 말든 시청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고,'그레잇 게임'이고 나발이고 관심 없고, 그냥 원전의 안전한 세계에서 두 남자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보고 싶은 거라고요. 그건 틀린 게 아닙니다. 정당한 거고, 그냥 취향인 거죠. 그 경우 시청자의 취향과 제작진의 취향이 다른 겁니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시청자의 요구에 해당하는 작품은 그라나다 TV판의 셜록 홈즈에 가깝고, BBC 셜록은 원전의 에피소드들을 재구성한 파스티슈의 영역에 걸쳐 있으니까요. 그러나 많이들 지적하는, 덕후들 신경쓰다가 드라마 이상해졌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작진이 덕후들 구미에 맞추려고 이상한 짓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덕후라서 자기들 구미에 맞는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거든요. 팬덤이란 그런 겁니다. 밖에서 볼 땐 되게 이상한 짓들이 안에선 되게 당연하죠. 온건한 시청자들이 보기엔 '왓슨이 홈즈 차갑고 냉정하댔잖아! 셜록은 존 앞에서 방싯방싯 왜 저러는 건데!' 싶은데, 셜로키언들이 보기엔 '홈즈는 총 292회를 웃었고, 그 중에 가벼운 미소는 103회, 나직한 웃음은 31회, 폭소는...'인 거죠. 둘 중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른 게 아니에요. 둘 다 정당하고 둘 다 원전을 파괴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므로 BBC 셜록의 방향이 싫으신 분은 주저 말고 그냥 싫어하시면 돼요. 덕후가 만들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덕후가 만들어서 나쁜 점도 있는 겁니다. 어느 하나만 취사선택할 순 없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그냥 단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의아하셨던 거라면, 그럼 아쉬운대로 제 리뷰라도 읽어보시면 되겠군요. :) 단단히 꼬았던 팔짱을 풀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지 이해해본 뒤, 그리고 다시 드라마를 보시는 거죠. 제가 장담하건대, 이들이 하고 있는 이상한 짓은 셜록 홈즈 이름만 끌어다가 이상한 짓 하던 헐리웃판과는 차원이 다른 이상한 짓이에요. 전부터 원래 길었지만 이번 장은 앞 장보다 짧게 써야지 짧게 써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자꾸 더 길어지고 있는 (원전 얘기만 하려했는데, 다른 파스티슈 작품은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급해도 제목이나 언급하려 했는데. ...이제 저도 모르겠어요. 될대로 되라 하고 있어요.) 이 지난한 리뷰를 감수해볼 가치가 있으리라 소망해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BBC 셜록은 원전을 파괴했어!'라고 외치는 시청자들에게 코난 도일식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할 순 있게 되겠죠. '책을 제대로 안 읽어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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