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Gravity

2013.10.18 19:07

Q 조회 수:6586

그래비티 Gravity

 

United States, 2013.       

 

A Esperanto Filmoj/Heyday Films/Warner Brothers Production. 1 hour 31 minutes. Aspect ratio 2.35:1.

 

Directed by Alfonso Cuaron. Written by Alfonso and Jonas Cuaron. Cinematography by Emmanuel Lubezki. Edited by Alfonso Cuaron, Mark Sanger. Music by Steven Price. Production Design by Andy Nicholson. Visual Effects Supervisor: Tim Webber. Special Effects Supervisor: Neil Corbould, Ian Corbould, Manex Efrem. Visual Effects Companies: Framemore, Rising Sun Pictures, Prime Focus World, Nvisible, Peanut FX, 4DMax, The Third Floor.

 

CAST: Sandra Bullock (라이언 스톤 박사), George Clooney (맷 코왈스키), Ed Harris (휴스턴 본부 목소리), Paul Sharma (샤리프 박사 목소리), Orto Ignatiussen (아닌각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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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의 배급을 맡은 워너 브라더스라는 스튜디오의 (다른 미국 스튜디오들에 비해서) 막강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요즘이다. 무엇보다도 1시간 30분밖에 안되는 영화의 알맹이를 다 까벌려서 보여주는 그런 예고편을 흘리는 바보짓을 하고 싶은 유혹이 대단했을텐데, 참말로 교활하게 호기심을 왕창 돋구고 영화의 실제의 성격은 가르쳐주지 않는 예고편을 잘 만들었더군 (본편을 보러 갔을 때 관람한 로버트 드 니로와 실베스터 스탈론이 공연한 모 영화... 제목 까먹었다... 는 그와는 정 반대되는, 내용을 아예 다 미리 말해주는 바보스러운 예고편이 달려있더라).

 

사실 알폰소 쿠아론의 [인간의 아이들] 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마도 디스토피아 테마의 SF 작품중에서는 내가 본 중 베스트 열 편안에 들어가는 최고작중 하나로 꼽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 한편을 완전히 능가할 수 있는 그런 한편이 나오지 않나 하는,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기대를 지니고 봤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러한 (아마도 언리얼리스틱한) 기대에 부응하는 한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영화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단언컨데 아마도 2013년에는 IMAX 내지는 3-D 로 이 한편이 보여주는 임양감, 서스펜스와 장엄한 비주얼을 능가할 영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나에게는 극히 만족스러운 한편이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 그런 영화 들고 와서 괜히 비교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내가 보기에는 [그래비티] 는 한 20년 지나서도 여전히 관객들이 손바닥에 땀을 쥐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볼 수 있는 “현대의 고전” 의 반열에 충분히 올라갈 능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는 나름대로 다 즐기면서 보았던 금년 여름의 [맨 오브 스틸] 이나 [퍼시픽 림] 등의 기타 다른 초특급 특수효과로 버무려진 블록버스터들과는 일단 다른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할 한편이다.

 

[그래비티] 를 보고 나서 많은 사람들-- 나의 바깥분도 포함해서-- 이 “의외로 통속적이고 미국적인 내용” 이었다는 감상을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뭐 “미쿡”을 아무리 싫어하셔도 별 수 없는데,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지금 전세계에서 “미쿡” 밖에 없으니 “미쿡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 (세계에서 “막장드라마” 를 제일 잘 만드는 문화가 한국이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전혀 말이 안되는 얘기는 아니다. 물론 크로아치아나 포르투갈이나 페루의 막장드라마가 어느 정도 막장인지 우리는 모르니까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세계의 어떤 제작자들이 막장드라마를 만드려고 벤치마킹을 했을 때 그 작품에 당연히 “한국적” 인 내용이 담기고 등장인물들이 “한국식” 대사를 읊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것은 기술적인 측면에 관한 얘기가 아니고 [그래비티]가 (테드 창과 같은 하드 SF의 경우는 더욱) SF 라는 “세계관” 의 중심에 서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우주에 있어서의 인간의 제대로 된 위치 (proper place)” 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쿠아론 감독의 작가적 시점이 미국식 상업영화와 어정쩡하게 타협한 결과물이 [그래비티]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우주공간에서 유영하는 것을 현기증이 와락 날 정도로 실감나게 찍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쿠아론 감독의 “작가적 시점” 이라는 얘기다. 괜히 또 작가주의 어쩌구 하면서 미쿡영화라는 걸 가지고 폄하하려고 하지 마시라.

 

이것은 영화의 만듦새 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도 해당되는 얘기다. 산드라 불록과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충분히 아카데미상을 싹쓸이할만큼 훌륭한 연기이지만, 마치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 또는 잉그릿 버그먼과 케리 그랜트가 우주복을 입고 유영을 하면서 영화를 찍었을 때 읊었다 해도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그런 종류의 대사를 읊는다. 이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대사들이 “리얼리스틱” 하냐 마냐 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질문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둥둥 떠다니는 지구를 머리통에 이고 칠흙같은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사람들의 대사가 “리얼리스틱” 하면 얼마나 리얼리스틱하겠는가. 아마도 우리 자신이 그런 상황에 간다면 평상시에는 쪽팔려서 혓바닥을 꼴깍 삼키고 싶을 수준의 온갖 아마추어 시인류의 잡상들이 터져나올께 뻔한데 (어떤 분들은 인정하고 싶으시지 않겠지만 이런 경험을 실제로 하면 지구상에서는“기독교가 쪽팔려서 기독교인이라고 인정 못하는” 분들이 하느님을 “재발견” 하는 사태도 많이 발생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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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자. [그래비티] 는 나에게는 무슨 하드 SF 액션 대작 그런 거 아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주 “속된” 의미로의 “영적인”  영화였다. 왜 신교신자분들 식으로 말하자면 “은혜 받는” 영화 있잖나. [인간의 아이들]에서, 성모 마리아의 잉태와 예수재림에 관한 이야기를 (맨발로 다니면서 맹견들도 꼬리를 흔드는) 성 프란시스코의 모습을 한 성 요셉의 시점에서 풀어나갔던 쿠아론 감독이 극도로 절제되고 간략화된 상징을 통해서 신앙 (“하느님” 이라는 존재의 상정이 불편하다면 “자아” 에 대한 “신념” 이라고 불러도 좋고 “생명” 에 대한 “믿음” 이라고 일컬어도 무방하다) 을 잃었던 한 불행한 사람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문자 그대로 “무한히” 펼쳐진 암흑의 우주와 대면한 극한 상황에서-- 신앙을 다시 찾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암흑의 우주는 그 자체로 죽음이며, 도중에서 한 캐릭터가 설파하듯이 영구한 고요함이 깃든 타나토스 (Thanatos) 이다. 그러한 죽음의 고요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을 선택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고통스럽다. 환멸과 실망과 죄책감과 회한에 시달려야 한다. 먼저 암흑세계로 떠나보낸 사랑하는 이들, 존경하는 이들, 믿을 수 있었던 벗들에게로 몸의 모든 힘을 빼고 떠내려져 가기를 거부해야만 한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공포와 맞먹고,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산드라 불록이 연기하는 라이언 스톤 박사가 우주복을 벗어 던지고 속옷만 걸친 채 여린 몸을 구부리고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모습은 자궁 속의 태아를 연상 시킨다. 헬렌 하드에이커 교수의 연구서를 읽고, 일본과 미국의 대중문화속에 드러난 자궁속에 떠다니는 “태아” 와 생명줄을 달고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복을 입은 비행사들의 이미지의 접합점에 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나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인간의 모습들은 그 자체로서 사회적, 문화적 외피가 벗겨진 원초적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전형적인 기억들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톤 박사가 인공위성의 잔해들을 포함한 온갖 장애물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스토리는, 물론 쿠아론 감독의 장기인 노컷 롱테이크의 시퀜스를 통해 심장을 꽉 틀어쥐는 서스펜스와 더불어 너무나 절묘하게 전달되고 있지만 결국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삶에 희망을 잃고 죽음에 접근한 한 사람의 신앙/신념/믿음의 회복이다.

 

이 주제가 천박하고 시시하고 “미쿡적” 이라고 느끼시는 분들은 그러므로 [그래비티] 보시고도 별로이실 수도 있다. 아니면 3D 아이맥스로 보여주는 우주공간과 인간 첨단 기술의 장렬하면서도 긴박한 묘사에 압도되어서 이런 주제의식은 그냥 까무룩 잊고 넘어가실런지도 모르겠다. 나야 뭐... 난 [벤허] 를 스무번째 보고도 예수님이 벤허에게 물을 주는 장면에서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다. ^ ^ 쿠아론의 카톨릭적 (텔리야르 드 샤르댕적?) 작가적 시점이 껄끄러울 리가 있나.

 

[인간의 아이들] 을 능가할 만큼 감동적이고 뛰어난 한편이었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역시 약간 충분히 풍미가 깃들이기 전에 마시게 된 술처럼, 모자라는 구석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비티] 자체도 대단한 영화이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위에서 얘기한 이유들 때문에 별로이실 분들은 제외하고) 에게 추천드리지만, 정말로 나를 바짝 엎드리게 만들 한편은 [그래비티] 를 보고 누군가가 만들 “[그래비티] 를 능가하는” 우주와 인간에 관한 어떤 작품이 되지 않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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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칭송과 감탄사를 늘어놓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쓸 건덕지가 없는데, 몇 가지만 지적하도록 하자.

 

첫째, [그래비티] 는 내가 이때까지 본 3D 작품중에서 아마도 3D 버전이 2D 버전에 비해 예술적으로, 드라마적으로,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이다. [호비트] 속편의 3D 예고편과 비교를 하면 너무나 그 차이가 명백하다. 전자도 아마 최고 수준의 3D 를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기술의 등급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호비트] 속편의 경우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그림책, 이른바 팝업 아트북같은 느낌을 주는 데 비해 [그래비티] 의 경우는... “공간에 빠지는” (immersive) 느낌을 실제로 준다고나 표현해야 할까? 가뜩이나 아름다운 영상이 3D로 보자니 완전히 혼을 빼놓는다.

 

스포일러가 될 까봐 조심스럽지만 극중 한 캐릭터가 흘리는 눈물이 무중력 상태에서 영롱한 색깔의 진주처럼 방울진채로 공중을 떠도는 신이 있는데 2D로 봤을때보다 3D 로 봤을 때 더 그 아름다움이 굉장했다. 화염이나 파편 등 다른 물체나 상황의 3D적 묘사도 두말하면 잔소리.

 

둘째, [인간의 아이들] 에서도 그랬지만 어떻게 잡다한 기술적 설명을 대사나 너레이션을 통해서 구구히 늘어놓지 않고, 관객들에게 어떤 상황의 공간성과 시간성 (앞으로 몇분내에 어떤 일을 해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난관이 가로놓여 있는가 기타 등등) 을 명료하게 전달하느냐 하는 이슈에 있어서 쿠아론 감독은 가히 천재급이다. 이걸 제대로 못하면 서스펜스도 나발도 없을 뿐더러 관객들이 캐릭터들에게 몰입할 수가 없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같은 경우가 이 이슈를 완전히 뭉개놓는 최악의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쿠아론 감독은 도대체 어떻게 이걸 이리 잘 해내는지... 그 수완을 해독 (解讀) 해내는 재미만 가지고도 한 서너번은 거뜬히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세째, 오프닝에 “우주공간에서는 소리가 없다” 라는 자막이 뜨길래, 타이 파이터는 우엥~ 하고 날라가고 X 파이터는 키융~ 하고 날라가는 [스타워즈] 등과는 물론 차별화되었겠지만  “무한우주의 압도적인 적막감”같은 것을-- 글로 쓰기야 얼마나 쉽나!-- 정말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하고 궁금했는데... 한다.

 

묘사한다. 뭐 할말이 없다. 직접 보시라고 할 밖에.

 

스티븐 프라이스라는 신예 작곡가의 음악이 엄청나게 다채롭게 여러가지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도 대단히 훌륭한 음악이다. 이것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퍼시픽 림] 의 라민 자와디의 스코어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영화음악” 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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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어렸을 때 나름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개성에 매력을 느꼈던 관객의 하나로서, 빨리 출세한 다음에 그냥 주류 스타로 자리매김한 듯 보였던 (아카데미상까지 받았으니) 산드라 불록이 스톤 박사 역할을 맡아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다.

 

조지 클루니야 뭐 제작 감독까지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중견인사이니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비티] 의 불록에서는 거의 일인극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대스타의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피드] 와 [더 네트] 시절의 약간 맹꽁한 듯 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미국인 여성의 건강미와 또록함이 느껴지던 그 산드라 불록을 스톤박사의 캐릭터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 나만이 아니길 바라며, 그린 스크린 앞에서 논산훈련소 신병같은 중장비를 짊어지고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찍었을 텐데, 오스카를 두번 거머쥘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내용의 댓글을 다실 때에는 경고문을 적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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