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xon in China] 


3막의 오페라 

리브레토: 앨리스 굿맨 

음악: 존 아담스 


장 칭: 캐슬린 김 

팻 닉슨: 재니스 켈리 

마오 체 퉁: 로버트 브루베이커 

초우 언라이: 러셀 브라운 

리처드 닉슨: 제임스 마달레나 

헨리 키신저: 리처드 파울 핑크 


제작: 피터 셀라즈 

무대 디자인: 애드리언 로벨 

의상 디자인: 두냐 라미코바 

조명: 제임스 잉걸스 

안무: 마크 모리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합창단 

지휘: 존 아담스 


2011년 2월 12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News has a kind of mystery…(리처드 닉슨, [Nixon in China] 1막 중에서) 




존 아담스와 피터 셀라즈가 [Nixon in China]를 제작 초연한 것은 1987년이었습니다. 피터 셀라즈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이 무렵 닉슨이라는 인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미국인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70년대에 대한 환멸과 부정이 이어지던 시기였고, 닉슨은 그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올리버 스톤의 저 잘 알려진 영화나 최근의 [Frost/Nixon]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은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캐릭터로 이 사람을 다루고자 생각한 예술가는 거의 혹은 전혀 없었을 겁니다. 


최근작 [Dr. Atomic]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미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오페라로 예술화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기적인 근접성으로 볼 때 [Nixon in China]쪽이 훨씬 급진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 1972년이었으니, 채 20년도 안 되는 시간 간격이 있을 뿐입니다. 닉슨이나 그의 부인인 팻 닉슨, 장 칭, 같은 사람들도 당시에는 멀쩡히 살아 있었고요. 저는 이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정말로 궁금합니다. 특히 젊었을 시절 영화 배우로 활약했던 장 칭 같은 경우는 진짜로 궁금한 경우죠. 


메트로폴리탄의 이번 시즌에서 새로 제작된 프로덕션 중에서 [Nixon in China]는 로베르 르파지의 [니벨룽의 반지]와 더불어서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야심찬 기획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많이 심심한 연출과 무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던 전작 [Dr. Atomic]이 영향을 끼치기도 했을 거라 생각하고요. 


[Dr. Atomic]과 마찬가지로 결과물로서의 이 작품은 꽤 성공적인 편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이 존 아담스의 급진적인 듯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친숙한 음악과 잘 어울립니다.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로서 오페라만큼 적당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영화나 연극보다도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프로덕션은 아마도 피터 셀라즈가 휴스턴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올렸던 이전 프로덕션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라 판단합니다. 유튜브에 휴스턴 영상물 전체가 나눠져서 올라와 있습니다만, 무대 배경이나 소품들, 배우들의 동작, 의상 등등이 모두 대동 소이한 편입니다. 아마도 메트로폴리탄의 거대한 무대에 맞춰서 좀 스케일을 바꾸기는 했겠죠. 셀라즈는 이전의 다른 작품의 프로덕션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기하학적이고 무용같은 동작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2막의 마지막 극중 극에서 닉슨과 팻 닉슨이 적극적으로 극의 진행에 가담하고 있는 부분도 재미있죠. 


 지휘를 맡은 것은 존 아담스였습니다. 초연 당시의 인터뷰 화면과 비교해 보니, 확실히 나이를 많이 드시긴 했습니다만, 이 분 같읕 경우는 정말 나이를 들면서 더 인물이 나아지는, 그런 드문 미노년의 예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마지막 무대 인사에서 보우타이를 풀고 활짝 웃으면서 무대에 올라오시는데 어느 배우보다도 훨씬 멋있었습니다. 물론 복숭아빛 셔츠에 긴 옥 목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쾌활하게 등장한 피터 셀라즈의 무대 매력도 만점이었습니다만. 


 저는 논서치에서 나온 음반을 갖고 있는데, 이 실황쪽이 녹음을 압도하는 음악을 들려 줬습니다. 아무튼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는 요즘 물이 제대로 오른 듯 하니까요. [Dr. Atomic]의 경우도 순전히 음악 때문에 최근에 소니에서 나온 영상물을 구입했는데 (이전에 이미 암스테르담의 초연 영상물이 오푸스 아르테에서 나왔었죠. 전 물론 이쪽도 갖고 있고요) 이 [Nixon in China]도 꼭 영상물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나오겠죠. 근데 왜 회사를 EMI에서 소니로 옮겼는지가 좀 궁금하군요. 


그러고 보면 제가 현대 작곡가들 중에서 유독 리게티나 존 아담스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이들이 대부분 아날로그적인, ‘실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클 겁니다. 50년대 이후 당분간 유행했던 ‘전자 음악’ 들이 요즘 듣기에 더 낡아빠지게 들리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만, 그게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죠. 아담스는 생존해 있는 작곡가들 중에서 오케스트라의 악기들과 특히 성악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1막의 저 유명한 ‘뉴스’ 아리아나, 2막의 합창단이 대 활약을 하는 팻의 중국 방문기, 그리고 3막의 복잡한 후반부 등에서 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가수들을 이끌고, 그들의 심경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굉장히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에게나 가수들에게나, 연주하기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도 라벨의 [볼레로] 같은 기계적이고 테크니컬한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가수들도 대부분 좋았죠. 제임스 마달레나는 초연 때 이 역을 부른 바리톤인데, 확실히 목소리가 그 때보다 많이 노쇠한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래도 고음이 잘 올라가고, 성량도 아직 부족하지 않은 편입니다. 재니스 켈리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팻 닉슨의 해석도 좋았지만, 누구보다 기억나는 것은 역시 장 칭 역을 부른 캐슬린 김입니다. 이 역의 2막 마지막 부분은 정말 왠만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도 쉽게 소화해 내지 못하는 부분인데, 여기서 정말 그는 압도적인 실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호프만 이야기]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때도 그랬지만, 언제나 전혀 실망시키지 않는 이런 콜로라투라는 흔하지 않죠. 서정적이고 부드러우면서 사색적인 초우 언라이 역을 잘 소화해 낸 러셀 브라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고 보면 리처드 파울 핑크와 제임스 마달레나는 [Dr. Atomic]에서도 충실하게 등장해 줬었죠. 


존 아담스의 설정은 사실 재미있는 데가 있습니다. 닉슨이 일종의 헬덴 바리톤이라면 팻 닉슨 리릭 소프라노고, 장 칭과 마오 부부는 각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와 헬덴 테너이니까요. 아마도 이 인물들의 실제 이미지와 잘 들어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의 그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직접성은, 아마도 지금으로써는 많이 희석된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실제 사건이 일어난 1970년대나, 작품이 초연된 1980년대나 지금으로서는 거의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전의 일들이니까요. 관객들 중에 이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은 대부분 지금으로써는 노년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초연이 시의적절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객석을 한 번 둘러보고 평균 연령을 짐작해 보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실겁니다) 더구나 이 작품이 초연되던 때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세월의 차이가 더 현기증나게 느껴질 겁니다. (얼마전에 오바마와 후 진타오의 정상 회담이 있었죠) 결국 많은 현재 진행형인 미국 예술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점차 고전으로서의 아우라를 획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텐데, 이게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겠지만 – 아무튼 아담스의 작품들은 반복해서 올려질 가치가 있으니까요 – 좀 착찹하고 심란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저에게 리게티나 아담스 같은 사람은 완전히 동시대 예술가로 간주되니까요. 


 p.s.: 휴식 시간에 보니까 토머스 햄슨이 가수들이나 제작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본 공연은 HD live로 방송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관람할 수 있겠군요. 혹시 관객석에서 저를 보실 수도. ☺ 


 아무튼 전반적으로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 오랫만에 굳이 뉴욕을 찾아가서 감상할 가치가 분명 있었죠. 다음 감상 작품은 르파지의 [반지] 중 두 번째 프로덕션인 [발퀴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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