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리(Carrie, 2013)

2014.01.23 22:02

샌드맨 조회 수:2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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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영화, 특히 히어로물 쪽에서 두드러지긴 하지만 최근 소재고갈에 시달리는 공포 영화쪽에서도 리메이크/리부트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텍사스 체인톱 연쇄살인사건'의 레더 페이스가 20여 년의 공백을 깨고 2000년대 돌아온 것을 필두로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프레디,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제이슨, '할로윈' 시리즈의 마이크 마이어스 등 80-90년대를 주름잡았던 공포영화 캐릭터들이 최근 대거 귀환했죠. ...뭐 대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실망만을 남겨줬습니다만. (특히 할로윈 시리즈는 답이 안 보이는군요...=_=;; 마이어스 디자인은 참 좋았는데)


킴벌리 피어스 감독, 클로이 모레츠 & 줄리안 무어 주연의 본작 역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씨씨 스페이식 주연의 1976년 영화 '캐리'의 동명 리메이크작입니다. 


광신적인 어머니와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 고통받던 소녀가 자신에게 잠재된 염력을 깨닫게 되고 졸업식 무도회날 피의 복수를 벌이게 되는 내용의 영화 원작은 당시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와 관능과 폭력에 일가견이 있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연출이 이어지며 큰 화제를 낳았고, 여전히 공포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죠. 학교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던 도중 첫 생리를 하게 된 캐리가 비명을 지르는 오프닝 장면에서 캐리의 몸을 훑어내리는 카메라웍(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참 이런 관음적인 장면을 잘 찍어요...=_=;;)이나 클라이막스 부분인 무도회장에서 피범벅이 된 캐리의 광기어린 모습, 그리고 마지막 장면 등은 여전히 회자되는 명장면이고요. 


이 유명한 원작 영화가 37년만에 리메이크된다는 소문을 접했을 때 꽤 기대가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깜찍한 외모가 무색하게 유혈낭자한 액션을 선보였던 '킥애스', 음울한 분위기의 뱀파이어 소녀를 연기했던 '렛미인' 등을 통해 헐리웃의 가장 돋보이는 하이틴 스타 중 하나로 떠오른 클로이 모레츠가 주인공 '캐리'로, 그리고 헐리웃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중 하나인 줄리안 무어가 캐리의 어머니로 출연하여 원작영화 못지 않은 라인업을 완성하며 과연 과거의 '캐리'와 어떻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기대되었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관이 명관입니다...=_=;; 최악까진 아니지만, 실망스러웠던 리메이크작 리스트에 올려야 할 영화이고 특히 출연진의 이름값을 감안했을 때는 더욱 아쉬워지는 작품이죠. 


일단 실망스러운 점은 연출입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호러 명작을 거의 40여년만에 리메이크했다면 뭔가 과감한 재해석이 있어야 했을텐데, 이 영화는 그저 76년작의 따라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76년작에 비해 원작소설에 좀 더 가까운 묘사도 있고, 오프닝 장면에서 울부짖는 캐리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등 시대성을 반영한 장면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76년작과 95% 이상 판박이입니다. 그렇다고 같은 장면이라도 더 좋은 때깔로 더 자극적으로 뽑아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하긴 오프닝부터 여주인공의 전라노출과 하반신을 클로즈업했던 브라이언 드 팔마의 변태적인 연출을 능가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만, 원작과 별 차이 없을 뿐 아니라 더 밍숭맹숭하기까지한 리메이크작이라면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죠. 


두번째 실망스러운 점은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한 캐리의 캐릭터입니다. 저도 클로이 모레츠를 매우 좋아합니다만, 캐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씨씨 스페이식이 76년작에서 보여준 캐리의 모습은 완벽했습니다. 깡마르고, 병적으로 창백하고, 내성적이며 어딘가 불안해보이고, 꾸며놓지 않으면 전혀 돋보이지 않는 평범한 외모에 신경질적이었죠. 평범한 미운오리새끼였던 그녀가 무도회장에서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나 첫 날개짓을 하려는 순간 다시 추락하고, 피범벅이 된 채 잔혹한 복수를 벌이는 모습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죠. 


이에 비해 클로이 모레츠의 캐리는 일단 너무 예쁩니다. 그냥 부스스하게 다녀도 눈에 띌만큼 빼어난 미모다보니 아이들에게 놀림감이란게 도무지 설득력 있어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작은 얼굴과 짧은 목 때문에 어깨가 넓어보이는 클로이 모레츠이다보니 깡마르고 창백했던 76년작의 캐리에 비하면 너무 건장해보이기도 하고요. 또, 클로이 모레츠가 미래가 매우 촉망받는 영건이고 하이틴 스타답지 않게 어두운 영화 경험이 많긴 하지만, 76년작 '캐리' 이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1회 수상 및 6회 노미네이트, 골든글러브 3회를 수상한 대배우 씨씨 스페이식에 비하면 연기력 면에서도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최악까진 아닌 영화입니다. 탄탄한 원작소설이 있는만큼 이야기도 여전히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습니다. 캐리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오히려 76년작보다 더 낫다고 느껴지는 면도 있고요. ...다만 76년작이 워낙 걸작이다보니 둘을 견주었을 때 연출이든, 연기든, 하다못해 화면 때깔이든 나은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이고, 이걸 볼 바에야 그냥 76년작을 다시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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