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의 비 The Devil's Rain (1975)

2019.01.31 20:12

Q 조회 수:2525

악마의 The Devil's Rain   


미국-멕시코, 1975.       


A Sandy Howard Productions Film, distributed by Bryanston Distributions, inc. 화면비 2.35:1, 1시간 26분. 


Director: Robert Fuest 

Screenplay: Gabe Essoe, James Ashton, Gerald Hopman 

Cinematography: Alex Philips Jr. 

Editor: Michael Kahn 

Special Makeup Effects: Ellis Burman Jr., Tom Burman 

Visual Effects: Don Weed, Linwood G. Dunn, Film Effects of Hollywood 

Music: Alfred De Lory


CAST: Ernest Borgnine (조나산 콜비스), Wiliam Shatner (마크 프레스턴), Ida Lupino (엠마 프레스턴), Eddie Albert (리처즈 박사), Tom Skerritt (톰 프레스턴), Keenan Wynn (보안관), Joan Prather (줄리 프레스턴), Anthony LaVey (제사장), John Travolta (대니) 


photo THE DEVILS RAIN BLU RAY COVER_zpsf8fho1ah.png


1970년대 중-후반부는 고전적인 영미 괴기공포영화의 시대가 저물면서 [엑소시스트] 로 대표되는 새로운 형태의 호러가 떠오르는 시대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윌리엄 프리드킨 명작의 지금 고려하자면 상상을 초월하는 임팩트로 인해 (또한 [로즈마리의 아기] 와 같은 다른 유명한 예도 있었지만) 사탄숭배에 관한 영화들이 일시나마 봇물을 이루었다. 그 영향하에서, 또한 특수메이크업 효과의 괄목할만한 성과 ([엑소시스트] 자체도 최고 장인이자 릭 베이커, 롭 보틴 등 기라성 같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스승이었던 딕 스미스의 특수 메이크업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한편이다)가 헐리웃 호러 장르를 막 강타하려고 하던 시점에서 제작된 것이 이 [악마의 비] 이다. 


지금은 물론 그 준수하고도 이채로운 캐스팅의 명성과, (당시로 보자면) 특수효과의 선진성에 뒷받침되어 상당한 컬트적 악명을 떨치고 있는 한편인데, 현재 시점에서 [2019년] 영화 자체를 허심탄회 감상하건대, 대략 반수 정도의 관객들은 본인들의 예상과 달리 거의 아방가르드적으로 신경을 거슬리는 톤과, 그 반대로 이것 저것 한눈 팔지 않고, 체면 차리지 않고 지옥도를 쳐다 부어버리는 한때의 홍콩영화적인 접근 방식의 과격함에 질려 버려서, "이건 정말 후진 영화다" 라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려버릴 공산이 좀 있다. 사실, 이런 정도의 베테랑 캐스트를 모아놓고도, 이렇게 마치 실험영화라도 만드는 것처럼 관객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헐리웃 영화라는 부조리한 특질이 오히려 이 한편의 명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가설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은 프로덕션 디자이너 출신으로, [아벤저스] (마블 아벤저스 말고 영국의 고전TV 스파이 시리즈) 의 에피소드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복수의 화신 닥터 파이브스], 티모시 돌튼 주연의 [폭풍의 언덕] 등으로 주가를 상승시킨 로버트 퓨스트인데, 앞에서 말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매끄럽고 화려한 비주얼 센스는 이 한편에는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이 한편의 이상하게 껄끄러운 질감은 원래 퓨스트 감독의 과장된 연기와 시각적인 과격함이 맞물려 돌아가는 호러 코메디를 만드려는 의도가 제작진의 비토로 제대로 결과물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세버린 발매 블루 레이에 수록된 톰 스케릿 연기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가 사막에서 에디 알버트가 연기하는 박사님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는 장면은 원래 코메디로 찍을 것을 상정하고 일부러 과장된 연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속사정에서도 일정 유래한 바가 있다. 


스토리는 사탄의 저주와 관련된 서브장르의 속성을 고려하더라도 빈한한 편에 속하는 데, 기본 골격은 사탄숭배자 콜비스가 이끄는 사교 집단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를 훔쳐서 도주한 프레스턴 집안의 자손들로부터 명부를 탈환하기 위해 습격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저주나 마법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설명이 안되고 있는데, 17세기에 화형 당한 (프레스턴의 조상들을 포함한) 사탄 숭배자들의 영혼은 거대한 양 (羊)의 해골 모양의 유리 용기 (容器) 에 담겨진 채 (이 용기는 그냥 그릇이 아니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의 포탈 같은 것인 모양이다. 이 부분의 비주얼은 꽤 효과적임), 한없이 쏟아지는 폭우에 의해 영원토록 고통을 받고 있다. 콜비스는 명부를 돌려받으면 이 영혼들로 하여금 현대의 자손들의 육체에 전생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고, 리처즈 박사는 오히려 이 용기를 파괴함으로써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립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듯 하다" 라고 유보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블루 레이로 돌려본 것을 포함해서 한 대여섯 번은 감상한 한 편인데도, 이 부분이 논리적으로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확실하게 파악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악마의 비" 라는 구상은 영화 내내 숨이 턱 막히는 먼지 바람이 불어 제키는 사막지대의 황량하고 건조한 환경에 대한 대비라는 비주얼적이고 촉감적인 질감의 환기라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사탄숭배의 논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깊이 천착해 봤자 캐낼 알맹이가 별로 없다. 


photo THE DEVILS RAIN- CORBIS BAPHOMET_zpsobg9ms33.jpg 


그런 널널하고 불명료한 각본에도 불구하고, 일급 캐스트는 프로페셔널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 트렉] 의 원조 커크 선장 윌리엄 샤트너는 일가의 장남인 마크의 위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적절히 표현해주고 있고, 감독으로도 유명했던 대배우 아이다 루피노와 기본적으로는 이리저리 상황에 치어서 쏘다니는 역할인 차남 톰 역의 톰 스케릿도 다 준수하다. 물론 이 한편을 견인하는 기관차의 기능은 명 악역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맡고 있는데, 고압전류에 감전된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용모에도 불구하고, 감칠맛 나게 대사를 읊는 그 낭랑한 목소리에 담긴 위력을 비롯해서, 뿔이 난 산양에 베이스를 둔 것 같은 약간 치졸한 괴물 메이크업을 하고 등장해도 전혀 카리스마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알렉스 필립스 주니어가 맡은 파나비젼 (주로 로드쇼 대작에 사용되었던 토드 AO-35 렌즈를 썼다고 한다) 촬영과 글렌 캠벨, 비치 보이스등과 협연했던 재즈 작곡가 알 드 로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무조주의 (無調主義) 적 음악 등 정통적 호러영화의 요소로서 효율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아무튼 이 영화의 컬트적 명성의 핵심은 리처드 박사의 주장대로 "악마의 비" 가 담은 용기가 깨뜨려지자 교회당의 천장이 파괴되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그 비에 맞은 숭배자들이 진흙이 물에 녹듯이 흐물흐물 용해되어 버리는 클라이맥스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 한편을 어릴 적 AFKN 에서 처음 봤다. 아마도 칼러 방영이 시작된 거의 직후에 심야 방송으로 틀어주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엑소시스트] 의 무삭제 판본도 제대로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개념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초현실적으로 과격한 호러 장면을 TV 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하면서 넋을 잃고 화면에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어린 눈으로도 단지 배우들이 푸른색 종이찰흙을 여기저기 처바르고 허우적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세련된, 녹아서 육신의 부피가 줄어드는 (!)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등, 특수 메이크업 효과 팀 ([캣 피플] 과 [육체 강탈자의 침략] 1978년판에서도 실력을 과시한 톰 버먼과 그의 동료들이 담당) 의 디자인과 기법의 우수함을 놓치기 어려웠다. 


물론 이런 과격한 특수효과가 (특히 45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관객들을 오싹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느냐 하면, 글쎄, 그 부분에서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다. 모든 대놓고 비현실적인 호러 효과가 그렇듯이, [악마의 비] 의 인체 용해 장면도 특정 관객들에게는 무섭지는 않고 그냥 찝찝하고 너저분하게 다가올 뿐일지도? 이 대대적인 쇼우케이스 시퀜스 이외에도 사탄숭배자들은 "영혼이 부재" 한다는 컨셉에 바탕을 둔 듯, 눈알이 없이 안과가 텅 빈 모습을 하고 등장하는데 이 메이크업도 CGI나 광학적인 화면의 조정을 하지 않고 물리적인 효과이다 (블루 레이의 고해상도로 대형 스크린에서 보면 그 "텅 빈 공간" 이 사실은 검은색 천을 덧붙인 것이라는 것이 폭로되고 있기는 하다). 최소한 나한테는 [악마의 비]와 같은 영화는 아직도 물리적인 특수효과, 특히 특수 메이크업의 (저급한 CGI 에 대비했을 때) 강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 하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 존 트라볼타가 출연한다는 말을 들으신 분들 계실지 모르겠다. 사실이긴 한데, 트라볼타 보시려고 새삼스럽게 찾아보실 만한 역할인지는 의문이다. 워낙 이분의 턱 (과 보조개) 이 특징적이라서 알아보기는 할 수 있는데, 예의 눈이 텅 빈 메이크업을 하고 출연하는 (덕택에 얼굴의 인상이 하관에 집중됨) 엑스트라보다 반 단계 정도 우위의 사탄숭배자 역이라서, 이걸로 "[악마의 비] 에서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라고 까지 주장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명부를 찾았습니다!" 라고 대사를 한 마디 하고 나서는, 곧장 비를 맞고 부글부글 거품을 뿜으면서 녹아버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굳이 찾아서 보신 팬 여러분들의 심기를 거스를 것 같기도 하고. ^ ^ 


photo THE DEVILS RAIN- TORMENTED SOULS_zps2ur38zgr.jpg


세버린에서 멋있게 디자인된 슬립케이스와 더불어 회심의 특별판 블루 레이를 2017년에 출시했다. 복원판이라고는 하지만 영상의 약간 거칠고 조악한 느낌은 고대로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원래 색감이라던가 비주얼 디자인이 그랬던 모양인 듯 하고 (메인 타이틀에는 여전히 잡티나 줄 등이 눈에 띄지만 본편에는 그런 문제는 없다). 오히려 이 블루 레이 판본의 큰 차이는 DTS 2.0 로 믹스된 오디오에서 들려지는데, 다른 버전에서 알 드 로리의 음악이 이렇게 명료하게 청취가능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서플 중에서는 톰 스케릿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버먼의 엄청나게 솔직한 인터뷰가 무척 재미있다. 스케릿은 참 품위있고 관대한 분이라는 인상을 주고, 버먼의 얘기를 듣자니 이 프로덕션에 여러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컬트영화로서 좋았던 나빴던 간에) 결과물의 부조리한 질감에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북미 사탄교 (!)의 사제로 악명 높았고, 이 한편에 단역으로 출연까지 한 안톤 르베이의 전기 작가와 (엄청나게 점잖은 ^ ^) 현직 사탄교 사제들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는데, 뭐 각자의 신념 (신앙?) 에 따라 판단할 일이지만, 이 한편에 르베이가 출연하고 사탄숭배의 자문을 해줬다고 주장한 것은 프로모션의 일종이었던 듯 하다. 세버린의 블루 레이는 리젼 코드 프리 (한국에서 돌리기에는 북미와 같은 리젼 A 면 문제가 없긴 하지만) 이고, 우 (優) 등급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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