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4.01.25 12:42

menaceT 조회 수:4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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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cerclerouge/40202012326

 

La Vie d'Adele, Chapitres 1 et 2 (2013)

 

12월 3일, 씨네큐브 광화문.

 

  ‘가장 따뜻한 색, 블루(원제: 아델의 삶, 1부와 2부)’를 보았다. 가히 ‘입’과 ‘색’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일러)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유난히도 많이 쓰인 영화인데, 그 안에서도 카메라는 주로 인물의 입을 프레임의 중심에 두곤 한다. 들판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아델과 엠마가 키스하기 직전, 카메라는 태양을 사이에 두고 닿을 듯 말 듯한 두 인물의 입술을 프레임의 정중앙에 둔다(이 장면은 엠마가 아델의 이름을 처음 듣고 ‘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을 되새기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한 편, 아델의 고등학생 시절을 다루는 1부에서는 유독 아델이 입을 헤 벌린 채 잠든 모습을 담은 숏이 자주 등장한다. 다른 감각, 특히 시각이 잠든 사이, 오로지 입만이 카메라 앞에 살아있는 감각으로 숨쉬고 있다. 종종 침까지 흘리면 그 입은 더욱 그 존재감을 더한다. 작품을 통틀어 식사하는 장면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는 것, 또 그때 음식을 먹는 인물들의 입의 움직임 자체가 종종 숏 자체를 장악하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지배하다시피 한 이러한 입의 강조는, 음식을 먹는 행위의 쾌감과 성적 행위의 쾌감, 오르가즘을 연계시키며(엠마가 굴을 먹는 행위를 여성 성기를 빠는 행위와 연관시킨 것을 떠올려 보자.), 아델이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영화의 1부는 아델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 과정의 핵심이 위에서 말했듯 주로 입의 감각을 통해 표현된다. 아델이 아버지가 요리한 스파게티를 게걸스레 먹는 모습은 그녀가 처음 사랑을 시도하는 대상인 토마와의 첫 데이트에서 그녀가 그리스 샌드위치를 게걸스레 먹는 모습으로 재현된다. 게걸스레 먹어 치우는 입의 움직임은 곧 토마와 키스를 하는 아델의 입의 움직임으로 변주되고, 이처럼 식욕과 성욕을 아우른 입의 감각은 토마와의 섹스 장면에서 삽입과 키스가 한 번에 이루어질 때 성기의 감각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엠마의 파란 머리에 매료되어버린 아델은 토마와의 키스와 섹스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그녀는 입을 벌리고 잠든 모습을 통해 입의 감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강조되도록 연출된 잠자리 장면에서 엠마와의 섹스를 꿈꾼다. 입을 통해 이루어지지 못하는 진정한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성욕은 곧 아델이 샐러드만 먹고 식사를 관두는 등, 감퇴된 식욕과 병치된다. 아델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급생 여자아이와 담배를 함께 피우고(입으로 무언가를 빠는 행위) 이어서 키스를 함으로써, 입의 감각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다시 만난 상대방이 아델의 키스에 반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즉, 입의 감각의 공유에 실패하는 방식으로 끝나고 만다.

 

  이러한 시도의 실패 이후 카메라는 학교를 나서는 아델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쭈욱 따라가더니 건물의 문이 닫히는 순간 건물 안 공간에 남아 문 너머 아델을 바라본다. 아델은 이제 학교 안의 인물들로부터 완전히 심리적으로 소외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친구를 따라 게이 바를 찾아간 아델이 그 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 무리를 쫓아 그곳을 나설 때, 카메라가 다시 게이 바 안에서 문 너머로 아델을 바라보는 시점을 취할 때, 다시 한 번 아델과 타인들을 구분 짓는다. 이처럼 연이어 심리적 소외를 겪은 아델이 최종적으로 레즈비언 바에서 파란 머리의 엠마와 재회한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처음 나누는 대화는 그 바의 메뉴인 ‘딸기 우유’의 맛에 대한 감상과 ‘불독 맥주’에 대한 이야기, 다시 말해 입의 감각과 관련된 대화이다. 통성명은 그 이후에나 이어진다. 입의 감각으로 물꼬를 튼 이들의 관계는 곧 들판에서의 키스를 통해 재확인된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엠마와 비로소 입의 감각을 공유한 순간, 그녀는 학교에서 레즈비언으로 몰려 비난 받게 되는데, 상대방들의 그녀를 향한 비난도 ‘성기를 빠는 행위’를 칭하는 언어로 구체화된다.

 

  아델은 그러한 또래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엠마와 섹스를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이때의 섹스 씬은 상당히 길게 전개되는데, 이를 연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영화는 두 여자의 입의 궤적을 쫓는 방식을 취한다. 두 여자의 입이 서로의 입으로, 가슴으로, 나아가 성기로 향하는 과정을 따라 섹스 씬이 구성되고, 두 여자 간의 섹스의 특성 상 오르가즘의 순간에서 ‘삽입’이 지워지는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시 ‘입’을 통한 애무이다. 그 뒤, 아델과 엠마는 서로의 집에 초대받아 서로의 부모님으로부터 음식을 대접받고 그 뒤 그 집에서 섹스를 하는데, 이로써 ‘음식을 먹는 행위’와 ‘섹스’가 다시 두 번에 걸쳐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엠마의 집에서는 두 인물이 엠마가 여성 성기와 연관지었던 ‘굴’을 먹은 뒤, 오로지 ‘성기’의 마찰로만 구성된 섹스 씬이 이어지고, 아델의 집에서는 아델이 그토록 게걸스레 먹던 스파게티를 두 인물이 먹은 뒤, 오로지 ‘입’을 통해서만 구현된 섹스 씬이 이어진다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성기’의 감각과 ‘입’의 감각을 연결시키는 동시에, 엠마와 아델이 각각 ‘성기’와 ‘입’으로, 이어져 있지만 온전히 같다고 말하기는 힘든 두 가지의 감각으로 분화되어 있음을 보여주어 둘의 관계 상의 분열을 암시한다.

 

  1부는 이 시점에서 종결되고, 2부에 이르면 아델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고 엠마는 순수 미술 전공 학생 신분을 벗어나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 상태이다. 그리고 둘은 동거 중이다. 1부에서 영화가 전적으로 ‘입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2부는 ‘색’의 이슈를 좀 더 본격적으로 부각하기 시작한다. 1부에서 아델을 사로잡은 엠마의 첫 모습은 ‘파란 색의 머리’로 대변된다. 그러나 1부 내내 파란색이던 엠마의 머리 색은 2부 시작 시점 이후 쭉 아델과 유사한 갈색이다. 대신 1부 내내 엠마의 머리에 머물러 있던 파란색이 2부에서는 아델의 의상 혹은 아델을 둘러싼 공간의 미장센으로 적극 이용되기 시작한다(물론 1부에서도 아델이 엠마를 만난 뒤 조금씩 파란색 미장센이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 엠마에 대한 생각 때문에 토마와의 관계에서 실패한 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델의 모습을 보여줄 때, 아델을 둘러싼 교실의 벽이 새파란 색으로 제시되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델이 근무하는 유치원이다. 그 유치원은 문도 파란색, 창틀도 파란색, 아이들이 쓰는 화이트보드의 테두리색도 파란색, 아이들의 펜 색도 파란색이며, 심지어 아이들이 덮는 담요의 색도 파란색이다. 즉, 아델의 일상적 공간이 파란색이 가득한 미장센으로 구현됨으로써 이미 아델의 일상 자체가 엠마의 이미지인 파란색에 갇혀 버린 셈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아델을 장악한 그 파란색, 그것이 과연 엠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가? 엠마는 이미 머리 색을 바꿈으로써 파란색을 버린 지 오래이지 않은가? 유치원 장면 중 한 씬에서 아델은 각각 색과 요일이 연결된 표를 통해 아이들에게 단어를 가르쳐 주는데, 이때 ‘파란색은 목요일의 색, 초록색은 목요일의 색’이라고 실수로 목요일을 두 번 언급하고 이를 아이들이 ‘초록색은 금요일의 색’이라 수정해주지만 아델은 이를 듣지 못한다. 이 장면은 엠마가 이미 파란색의 영역에서 벗어난 뒤임에도 불구하고 아델이 아직도 파란색의 영역, 목요일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다. 2부에서 엠마가 종종 입곤 하는 외투가 초록빛이 감도는 색임을 고려하면 엠마와 아델의 대비가 더욱 두드러진다. 엠마의 바뀐 머리 색과 위의 유치원 씬을 함께 고려할 때, 결국 우리는 아델이 빠져든 것은 엠마라는 인물의 본질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인물이 표상하는 이미지, 그 인물의 막연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케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2부의 시작을 알리는 파티 장면을 보자. 1부 내내 영화는 아델의 ‘먹는’ 행위를 주의 깊게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2부의 파티 장면에서 아델은 철저히 음식을 요리하고 대접하는 주체에 머물 뿐 다른 이들이 그토록 맛있게 음식을 먹는 중에도 좀처럼 음식을 ‘먹지 않는다’. 1부에서 아델이 성욕 혹은 애정에 있어 결핍이 있을 경우 식욕마저 감퇴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 그리고 그녀와 엠마의 관계가 입의 감각을 통해 전개되고 완성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그녀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는 엠마의 머리가 더 이상 예전처럼 파란색이 아니라는 점에 의해 다시 한 번 강조되고, 나아가 아델이 엠마와 리즈가 사이 좋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질투를 느끼는 모습이 그곳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 속 여인의 모습과 병렬적으로 제시될 때 더욱 명확해진다. 그러던 중, 좀처럼 음식을 먹지 않던 아델이 배우 일을 한다는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서야 비로소 음식을 조금 먹기 시작한다. 부러 먹지 않던 그녀가 먹기 시작한다는 것은, 입의 감각이 그토록 강조되던 이 영화의 태도로 보건대 분명 어떤 중요한 신호일 것이다. 그녀가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맞은편에 앉은 배우와 대화를 시작하는데, 이때 배우는 자신이 액션 영화를 촬영할 때 자신이 유색인종으로서 겪었던 타자화의 경험과 뉴욕이란 도시가 자기에게 주었던 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자화, 그리고 공간의 주관적인 인상. 이러한 언급은 아델이 파란색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엠마를 사실상 타자화해 왔음을 드러내며, 나아가 이것이 아델의 일상적 공간의 파란색 미장센으로 표현된다는 점과도 들어맞는다.

 

  어쩌면 아델은 1부에서 그녀가 사랑에 실패하던 과정 중 일부러 학생 시위 현장에 나가 흥에 겨워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어쩌면 파란 머리의 여자에게 매료되어 사랑을 나눈 것도 어린 시절의 치기에 따라 단지 그 이미지에 매혹된 채 이를 사랑이라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1부 들판 장면에서 엠마는 사르트르를 인용하며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 ‘내가 하는 행위가 곧 나를 규정하게 된다’는 말을 한다. 이때 엠마는 ‘입술의 주름’ 운운하며 입의 감각에서부터 출발하는 방식으로 그 말을 이끌어내는데, 이는 곧 입의 감각으로 출발하고 완성된 아델과 엠마의 관계 역시, 막연한 이미지에 대한 매료에서 출발했지만 입의 감각, 성기의 감각에 바탕한 행위들로 인해 그들의 관계를 규정지은 것일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이토록 불완전한 사랑은 의심과 질투, 불안을 낳고, 아델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이에게 접근한다. 유치원 동료 남성 교사에게 접근한 그녀는 또 다시 키스로, 입의 감각의 공유로 그와의 관계를 진척시키는데, 놀랍게도 아델이 그와 키스를 나누는 숏 바로 다음 숏에서 아델은 잃었던 식욕을 회복한 듯 빵과 커피를 게걸스레 먹어 치우고 있다. 즉, 다른 남자와의 일탈을 통해 아델은 엠마와의 관계에서 서서히 느끼게 된 결핍을 해소하게 되었음을 그런 식욕과 성욕을 아우른 입의 감각으로 다시금 드러나는 것이다. 이때 아델은 엠마에게도 먹을 것을 권유하지만 엠마는 이를 거절한다. 이 장면은 2부 초반, 파티 이후 잠자리 장면에서 엠마가 생리 핑계를 대며 아델의 키스 요구를 거절한 것과도 맞닿아 있다. 아델과 새 남성은 입의 감각을 공유했으나, 엠마는 더 이상 그녀와 입의 감각을 공유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 영화가 구현한 ‘입’의 세계 안에서라면, 아델과 엠마의 관계는 이미 끝난 셈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아델이 차 안에서 남자와 ‘키스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자, 엠마는 ‘그 남자의 성기를 빨았던 입으로 나와 키스를 했냐’며 입의 감각에 따른 논리로 아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그녀를 집에서 내쫓는다.

 

  그 뒤 일련의 장면들에서 영화는 파란색 미장센을 더욱 강조하며 아델을 파란색의 감옥 안에 더욱 옭아맨다. 엠마와 헤어진 이후 아델은 오히려 자신이 사랑했던 엠마의 이미지에 더욱 사로잡혀 그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착이 정점에 이른 장면이 해변가 장면이다. 아이들(이들 중 여러 명이 파란색의 수영복을 입고 파란색의 모래 삽으로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은 흙으로 한 여자 아이의 몸을 덮는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아델이 아이들을 다른 교사에게 맡기곤 파란색의 하늘 아래 파란색의 물로 헤엄쳐 들어가더니 물 위에 눕는다. 흙에 덮인 여자 아이의 몸처럼 아델은 오롯이 파란색에 묻혀 있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아델은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엠마와 재회한다. 저 멀리서 들어오는 엠마는 파란색의 통로를 지나 들어온다. 엠마를 처음 보았던 그때처럼 엠마가 파란색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마침 만난 장소도 ‘식사’의 공간이기에, 그 파란색은 더더욱 관계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있으리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아델의 맞은편에 앉은 엠마는 여전히 갈색 머리, 초록빛 옷의,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그 모습 그대로이다. 아델은 음식을 집어삼키는 엠마의 손을 혀와 입으로 애무하기 시작하지만, 리즈와 함께 아이까지 키우고 있는 엠마는 그녀의 입을 통한 애무도 거부하고, 또한 주문한 커피도 마시지 않은 채 (입에 기초한 두 가지 행위 모두를 거부한 채) 자리를 뜬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언가를 물고 빠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기가 어미의 젖에 집착하는 구강기적 특징이다. 성인이 된 2부의 시점까지도 입의 감각에 집착하며 사랑을 확인하려 하는 아델의 모습은 이러한 구강기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엠마가 이미 파란색을 자기에게서 지워낸 이후에게도 아델은 여전히 파란색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또한 아델이 구강기적 특징을 보이는 것도, 모두 아델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으며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엠마는 계속 자신의 예술을 세상에 알릴 방법에 골몰하지만, 아델은 오로지 파란색의 과거에만 머무르려 한다. 이는 아델이 파란색으로 가득 채워진 미장센의 공간, 유치원에서 일상을 보내며 어린이들, 심지어 방학 때는 성장이 더딘 미숙아들을 가르친다는 점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아델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아이들이 파란색의 물건들로 공부를 하고 파란색의 이불을 덮듯 아델 역시 파란색의 공간 안에 갇힌 형상으로 묘사됨으로써 그들과 같은 입장으로 묶이게 된다. 또한, 일련의 유치원 장면들은 1부에서 아델이 가르침을 받던 고등학교 문학 시간 장면들과 대구를 이루며, 아델이 아직 실질적으로 고등학생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1부의 문학 시간 장면들이 주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 혹은 '사랑의 감정'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문구들을 읊으며 아델이 엠마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미리 묘사했다면, 2부에서 아델이 유치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은 좀 더 노골적으로 ‘입의 감각’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델이 학생들에게 ‘부엌에서 어머니가 양파를 요리하신다.’ 라는 문장을 받아쓰도록 하는 장면, ‘필요 없어요’ 라는 동화의 첫 부분으로 코끼리가 피스타치오를 먹기 위해 코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묘사되는 장면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필요 없어요' 동화의 경우, 코끼리가 피스타치오를 먹는 행위가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로 연장시키는데, 이를 통해 먹는 행위와 예술의 연결점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이러한 먹는 행위와 예술의 대비는 파티 장면에서 아델이 엠마에게 질투를 느끼는 순간, 모두가 먹고 있는 와중에 아델의 심리가 뒤편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 장면과 일치되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는 연출로도 등장한 바 있다. 이는 '먹는 것을 즐기는' 아델과 '예술을 업으로 삼는' 엠마의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아델과 엠마의 대화 중 엠마가 아델에게 글을 쓸 것을 권유하며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할 때, 아델은 '네 옆에서 요리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지금도 행복하다'라고 답한다. 엠마는 예술을 '자아의 발현 수단'으로서 언급하는 반면, 아델은 '현실에의 천착'을 '요리'라는 이름으로 대신해 표현하는 것이다. '입'과 '색', 영화의 핵심적인 요소인 이 두 가지는 다시 '말초적인 쾌감'과 '그 쾌감의 원인이 되었던 어떤 이미지'로서 아델을 과거라는 시점에 가둔 채 성장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엠마는 더 이상 이러한 미성숙한 아델의 모습에 응답해 오지 않는다. 미성숙의 영역에 아직 머무르고 있는 아델과 달리 엠마는 변하고 있기에.

 

  그 후, 엠마의 전시에 초대받은 아델은 또 다시 관계의 회복을 기대하는 듯 파란색 옷을 차려 입고 전시회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의 엠마는 빨간색의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품 이야기를 나누던 누군가가 ‘엠마의 과거와 현재가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말한다. 전시회에 전시된 그림 중 엠마가 아델을 그린 초상화에는 파란색이 쓰였고, 엠마가 임신한 리즈를 그린 초상화에는 빨간색이 쓰였다. 1부에서 아델과 엠마가 대화를 나누던 중 엠마가 아델에게 어떤 화가를 아느냐고 묻자 아델은 ‘피카소… 그리고 피카소’라고 대답한다. 피카소의 화풍은 시기에 따라 ‘청색 시대’와 ‘장및빛 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시대’로 향한다. 즉, 영화 속 엠마의 화풍이 파란색의 영역에서 빨간색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극중 아델의 입으로 유일하게 언급되는 화가인 피카소의 화풍 변화와 맞물려, 파란색으로 상징되는 아델이 온전히 ‘과거와 미성숙’의 영역으로 소외되어 버렸음을 다시 한 번 못박는다. 이 영화의 원제인 ‘아델의 삶, 1부와 2부(La Vie d’Adele: Chapitres 1 et 2)’가 피카소의 청색 시대 대표작이자 실패한 사랑의 흔적을 파란색으로 표현해 낸 작품의 이름인 ‘삶(La Vie)’과 맞물려 있다는 것 역시 아델의 이러한 처지를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전시회의 관람객들이 전시회장 안에 놓인 디저트들을 게걸스레 집어먹는 와중에도 아델은 차마 무언가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구석으로 가 들고 있던 와인만 재빨리 목에 털어 넘긴다. 그리고 그녀가 남기는 인사는 “맛있었어요”. 입의 감각에서 시작된 관계는 이렇게 입의 감각으로 마무리된다. 그녀는 그곳을 나서기 전에 2부 도입부의 파티에서 만났던 배우와 재회한다. 그 배우는 이미 부동산 중개업자로 진로를 바꾼 뒤이다. 그는 또 다시 뉴욕에 가 볼 것을 아델에게 제안한다. 그를 뒤로 하고 아델은 전시회를 나선다. 그리고 자신이 전시회장으로 올 때 걸어온 바로 그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 배우였다가 부동산 중개업자가 된 그 남자가 아델을 찾아 달려 나오지만, 그는 아델이 되돌아간 길로 가려다 정반대의 길로 향한다. 예전의 불완전한 사랑에 집착하는 아델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행위가 상징하듯, 그녀가 입은 옷의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영역’으로 그렇게 소외되어 버린다. 진로를 바꾸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남자는 정반대의 미래의 영역으로 그녀를 찾아 나서므로 그녀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전작 ‘생선 쿠스쿠스’에서 요리와 인생을 한 데 묶어 그려낸 바있다. 어쩌면 그에게는 입의 감각이야말로 인생의 정수를 담은 감각일지 모른다. 이번 영화 역시 1부에서는 입의 감각을 바탕으로 한 여성의 사랑의 시작과 그 전개를 영화적 언어로 치환해 표현해 낸다. 그러나 2부에 이르러 케시시는 이러한 입의 감각을 곧바로 미성숙의 증표로 변형시키더니, 나아가 그녀를 매료시킨 ‘가장 따뜻한 색’, 파란색을 적극 차용한 미장센이 그녀가 어떻게 상대방의 본질이 아닌 이미지에 취해 그 사랑을 탐닉해 왔는지를 드러내며 그녀가 사랑에 실패하고 ‘과거와 미성숙’의 영역으로 소외되어 버리는지를 처연하게 그려낸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를 탁월하게 이용한 연출과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가 어우러져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각 장면장면마다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의 결이 느껴지도록 한 것도 대단하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그 느낌이 워낙 생생한지라, 내가 이 3시간이란 시간 동안 한 인물의 인생, 그 1부와 2부를 함께 보내 온 것이라 착각할 만한 경험이었다.

 

  영화의 원제는 ‘아델의 삶’ 뒤에 ‘1부와 2부’라는 부제를 붙였다. 고등학생 시절 엠마와 만나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는 부분을 1부, 성인이 되어 엠마와의 사랑에 실패함에도 이를 놓지 못하고 과거의 영역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는 부분을 2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구분에 있어 영화는 굳이 ‘상, 하’ 등 그 종결을 확실시하는 구분법을 사용하는 대신, 미완의 가능성을 품은 ‘1부와 2부’라는 구분법을 사용하였다. 영화 속 아델은 아직 젊다. 우리가 관찰한 것은 고작 그녀의 인생의 일부분은 1부와 2부뿐이지만, 아직 젊은 그녀의 생에는 분명 3부, 4부, 그리고 그 이후의 수많은 속편들이 존재할 것이다. 앞으로의 그녀의 생이 어떠한 모습을 하든지, 나는 내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하며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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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드라마] BBC Sherlock 3, 7-3. [3] [1] lonegunman 2014.01.27 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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