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

2014.03.10 14:38

비밀의 청춘 조회 수: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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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다르크의 얼굴이 카메라의 시선에 커다랗게 잠긴다. 빛나는 성스러움이 수수한 얼굴을 채운다. 곧 하얀 대사가 검은 화면 위에 고혹히 등장한다.

    “은총 속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제게 계속 은총을 내려주실 것이고, 은총 속에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 영화의 판본은 맨 처음의 것은 아니다. 영화의 첫 부분인 해설 자막은 이 영화가 겪어야 했던 수난을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 ‘스타워즈’ 도입부분과 비슷하다. 방식 자체는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단순히 나열하는 평범한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마치 잔 다르크의 화신처럼 검열 받은 영화의 불운함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설명에 따르면 이 영화의 초기 판본들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성녀가 죽은 것처럼 장렬하게 화형 당했다. 

    그리고 어느 날, 80년대에 들어서야 노르웨이의 정신병원에서 잘 보존된 덴마크 판본이 발견되었다. 신의 가호가 있었던 걸까? 영성으로 충만한 이 작품이 세상에서 쫓겨난 자들의 구금된 장롱 속에서 그 야윈 깃털을 숨긴 채 간신히 숨 쉬며 은닉해 있었으니 말이다. 몇몇 조력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드디어 이 영화는 우리의 곁에 날아올 수 있을 만큼 깃털도 자라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100년 전 만들어졌을 그 당시의 모습 자체로 화석 같이 굳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음악이라는 생생한 변주가 곁들어져 있다. 이 영화가 무성 영화였기 때문에 당시 영화가 상영될 때는 현장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방식이었는데, 시중에서 현재 접할 수 있는 이 영화의 판본인 Criterion Collection에서는 리차드 에인혼의 “voices of light”가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 역시 이 판본에 나오는 해설자막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차드 에인혼의 음악들은 1994년에 만들어졌다. 그의 음악은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난 예술적 피조물이기에, 우리는 지금 이 무성영화를 보면서 현대인들의 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음악적 해석을 체험할 수 있다. 칼 드레이어 감독이 어떠한 음악도 배경음악으로 선정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에인혼의 음악은 실로 잔 다르크의 수난이라는 영화를 위해 봉납된 신실한 제물이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며 역사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러한 시도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았을까? 칼 드레이어 감독이 잔 다르크가 치른 전투에서의 수많은 업적을 영화에 형상화하려고 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칼 드레이어 감독을 놀라게 한 것은 고등 교육을 받은 성직자들 앞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소녀 그 자체였다. 이 영화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은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배경이다. 역사적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영화 속에서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본다. 인물들에 대한 강렬한 클로즈업은 신의 의지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교회와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가녀린 소녀의 대립만을 보인다. 그녀의 공적에 대해선 언급도 되지 않으므로,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더욱 무력하고 평범해 보인다. 

    영화가 비추는 소녀의 얼굴과 성직자의 얼굴 주름들은 영화 전체에서 역사적인, 사회적인 맥락을 지워버린다. 우리는 인간인 그들의 감정과 그들의 속마음이라는 미시적 차원에 주목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참된 대립각은 성직자들과 잔 다르크만이다. 내면의 감정만이 핵심으로 부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국적이 아닌 권위자들과 권위 없는 한 소녀의 대화이다. 칼 드레이어 감독이 가장 기본으로 한 것 역시 심문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화록이며, 이 대화록에서 보여준 잔 다르크의 신성함은 자신을 짓누르는 권위에 맞서 대항하는, 그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에게서는 도출될 수 없는, 다른 무언가로부터 발현되는 내적 힘이다. 

    성직자들은 잔 다르크를 조롱하고, 가히 침을 뱉듯 그녀를 이단이라 비난한다. 잔 다르크, 그녀는 그리스도교 정통파 성직자들에게 괴물이다. 서커스의 야수이며,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비천한 여자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자 잔 다르크는 손가락으로 떠듬떠듬 숫자를 센다. 성직자들이 모두 기가 막혀 한다. 주기도문도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낭송조차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널 보내셨다고?”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적어도 부름이라도 받기 위해서 인간에게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유식해야 하며, 교육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남성 옷을 입는 것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남자로 우선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주제에, 잔 다르크는 감히 수많은 질문에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성직자들이 술렁인다. 잔 다르크에게 미카엘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그녀가 보았다는 천사의 존재와 하느님의 형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이 무신론자처럼 보일 때도 있다. 성직자들은 소녀 하나를 앞에 두고 몰락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그들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 안에서 끓어오르는 말들을 하나하나 말하지만, 성직자들 앞에서 흔들리는 두려움까지 숨기지는 못한다. 영혼의 구원을 바란다는 잔 다르크를 향해 성직자들은 신성모독을 외치는데, 그들은 잔 다르크가 신과 영접했다는 사실을 완벽히 부인한다.

    이 나이 많고 많이 배운 남성 성직자들의 모습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그들이 과연 성직자인지 세속인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점에 있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그들이 내세우는 가상의 관념으로 떨어진지 오래이며, 그들 안에서 진실한 신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들한테 신의 진리가 먼저인지, 아니면 현실의 복잡한 정치 관계가 먼저인지? 게다가 그들은 신을 보았다고 말하는 잔 다르크를 부정하는데, 그 모습이 시기 어린 질투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그들의 의심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신이 대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여자에게 강림하여 그녀의 조국에 대해 지시를 내리고 그녀에게 길을 제시하였단 말인가? 만약 어떤 길이 필요했다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진한 남성 고위 성직자들에게는 왜 다가가지 않으셨단 말인가? 이성적으로, 인간의 논리와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라는 것이 진정 있다면, 신이 대체 언제부터 미천한 인간에게 그 뜻을 가르쳐주려 했단 말인가? 신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기는 한단 말인가? 그런 것이 가능했던 적은 있는가? 성직자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기에 이르며 결국 그들이 그녀에게 부여하는 괘씸죄는 정치적이고 인간적이다. 그녀를 파괴하는 이유는 남성의 권위에 도전하여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사회적인 것, 그리고 자신들의 세속적 노력과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 무지한 여성이 신을 만났다는 참을 수 없는 ‘불경함’ 때문이다. 

    그들은 신을 보지 못하고, 천사를 보지 못한다. 성직자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의 신을 강요한다. 자신들을 거치지 않은 그녀의 신은 과연 신인가? 그들은 그녀에게 착한 천사와 타락한 천사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가능한가? 그들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이 타락한 지상에서만큼은 권력을 잡은 신의 대리자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이 내려왔다 한들 그 사실을 그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정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신을 진심으로 신실하게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가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서 변질된지 오래이기 때문에, 유일한 길은 그녀를 죄인으로 모는 것뿐이다. 몇몇 양심적이고, 진실한 성직자들만이 자신들의 권위에서 벗어나 그녀를 도와주려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다른 성직자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성직자들은 신이 있는 하늘로 닿기에는 지상의 인간 사회의 굴레에 지독히도 묶여 버렸다. 그들은 지상의 시련을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학식 있는 박사님들이 과연 잔 다르크 너보다 현명하단 말이냐.” 

    잔 다르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신이 더 현명하십니다!”

    성직자들은 잔 다르크를 굴복시키려 한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대치한다. 잔 다르크가 성직자들을 향해 한 명씩 악마라고 가리키며 비난하는 강력한 정서의 폭발은, 무성영화의 역사 안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일 것이다. 

    전쟁영웅인 잔 다르크가 이 핍박 속에서 언제나 꿋꿋한 모습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칼 드레이어 감독은 그녀를 너무나도 인간적인 존재로, 끝없이 절망하고 눈물 흘리는 소녀로 그린다. 그녀가 고통 앞에서 의연함만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강력한 철의 여인을 기대한 사람들로서는 실망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그녀가 고난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그녀의 숭고한 내면의 전장이 가치를 갖는다. 그녀의 표정에서 우리는 대사와 언어가 보여줄 수 없는 심연을 엿보게 되고, 그러한 지경에서 희극배우 마리아 팔코네티는 잔 다르크가 되어 유래 없는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탈바꿈한다.

    이어서 소녀를 윽박지르는 교회의 위협은 절정에 다다른다. 그들은 그녀의 왕, 조국을 들먹이며 그녀가 내면의 소리를 외면할 것을 종용한다. 팔코네티의 얼굴에서 이성이 사라진다. 마침내 잔 다르크가 굴복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성직자들은 그녀를 파문시키지 않고, 그들의 하나님, 과연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를 그들의 보호 안에 죄인의 이름으로 잔 다르크를 수감시킨다. 부조리에 반감을 갖는 이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들이다. 

    삭발한 그녀의 머리카락, 그리고 눈동자에 어린 좌절의 눈물. 잔 다르크는 영화 내내 새처럼 쉼 없이 울지만, 이 장면만큼 그녀가 우는 모습이 가련해 보이는 장면은 또 없다. 잘린 머리카락을 보며 그녀가 슬퍼하는 이유는 이내 밝혀지듯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 즉 신의 말씀을 두려움 앞에 거절한 자기 자신에 대한 모멸감 때문이었다. 곧 재판관들을 다시 소집한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밝힌다. 그녀가 고백한 죄는 바로 거짓말, 신에 대한 불복종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었던 말들을 신의 음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신이 아니라 부정하지 못한다. 죽음이 결국 그녀를 꺾지 못한 것이다.

    이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그녀의 비극에서 바로 그녀의 성스러움이 태어난다. 그녀는 못 배웠고, 비천하고, 죽음을 무서워하는 보통의 인간이다. 곧 이제 화형 당한다는 말에 잔 다르크의 오른쪽 뺨이 근육경련을 일으킨다. 그녀를 도와주던 성직자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말을 아직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질문한다. 하나님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르다고, 자신이 그의 자식이며, 신이 자신의 승리와 순교, 죽음까지 약속했다고 말하는 잔 다르크. 

    성직자들이 마지막 미사를 준비한다. 그녀를 경멸했던 자들도 이제 함부로 다시 비웃지 못한다. 그녀는 마지막 고해, 미사를 받는다. 잔 다르크를 음해하고자 했던 성직자가 그녀의 미사 장면을 몰래 훔쳐본다. 그녀의 신실하고 순수한 믿음이 부러웠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심지어 자격을 갖추는 것까지도 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항상 실천이 어렵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결국은 그 남자의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잔 다르크의 죽음이 다가오면서 민중들이 그녀의 죽음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잔 다르크의 화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그녀는 십자가를 끌어안고 너무 오랜 고통을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끝까지 주님을 찾는 그녀, 아이가 젖을 물다가 갑자기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젖을 문다. 신이 그녀를 보고 있을까? 십자가조차 빼앗겨지고, 그녀는 끝없이 울며 화형대 앞에 혼자가 된다. 교회 지붕의 끝, 십자가에서 새들이 날아가고, 나무 장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죽는 걸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눈물조차 뜨거운 열기를 식혀 잔 다르크를 지상에서 구원 받게 해줄 수는 없었다. 

    민중의 누군가가 성녀를 화형 시켰다며 소리를 내지르고, 성의 병력은 민중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교회의 이름으로 죄인이 된 성녀를 성녀라 불렀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폭압의 상황에 놓인다. 계속 불타는 그녀의 시신을 앞에 두고 마지막, 혼란의 대치 상황이 발생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그녀의 위대함을 칭송하며, 그녀가 프랑스인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 찬양한다. 나 같은 경우 종교인이 아니기에 그녀가 보고 들은 것, 혹은 그러했다고 믿은 것에 대해서는 사실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요컨대 그녀가 신의 이름을 걸고 나온 광인이었는지, 아니면 진정한 기독교의 수호자였는지 말이다. 기독교적 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나의 논평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에 나온 그녀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그가 형상화한 대화록 안에서의 잔 다크르가 어떤 인물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잔 다르크가 진정 신이라는 존재를 순수하게 믿은 사람이며, 지상의 모든 욕망과 공포라는 감정들로부터 연유되는 시련들을 통과하여 자신이 가야 한다 믿은 곳으로 갔다는 사실 말이다. 한 특정 종교의 힘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럴 거면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이 믿는 신의 길을 따르는 데 실패한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기 자신의 ‘도덕률’, 내면의 소리,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믿어냈다는 점이다. 그게 신이든 마귀든 무엇이든 다른 인간들의 억압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바늘 같이 소름끼치는 눈치를 받으면서, 이 사람들이 나를 해코지 할까봐 무서워 덜덜 떨게 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내면을 지켜낸다는 것, 그 행위는 종교를 믿든 안 믿든 해내기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잔 다르크, 그녀는 그것을 해낸 사람 중 한 명이다. 내가 그녀가 믿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해서, 그녀가 나에게 성녀가 아닐 이유는 없다. 단지 그녀가 무식하고 순수해서 가능했던 일인 걸까? 글쎄, 원래 가장 순수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에 가장 솔직하기 마련이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그런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대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는지? 멀리 안 가서도 개인성이 역사상 가장 존중 받는 지금의 시대에서도 우리 모두 잘못된 일이란 걸 알아도 대부분 다 군말 없이 까라면 까라는 대로 하지 않나. 종교의 이름이든 무엇이든 아닌 걸 아니라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 용기가 필요한 일은 항상 그 자체로 성스럽다. 그리고 억압이 크면 클수록, 지켜내기 어려운 일이면 어려운 일일수록 그 성스러움을 기억하는 사람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는 것이 이치이다. 칼 드레이어도 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잔 다르크의 수난'이라는 놀라운 성스러움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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