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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코시건 5 : 마일즈의 유혹 l 보르코시건 시리즈 5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은이) | 김창규 (옮긴이)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4-02-10 | 원제 Cetaganda (1996년)



 『마일즈의 유혹』은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드디어 오랜 기간 기다려온 『보르 게임』 다음 시점의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책이다. 이전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에서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이 나왔지만, 일종의 프리퀄로써 마일즈 보르코시건이 주인공이 아니고, 그의 부모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맥마스터 부졸드 여사가 굳이 한국 내에서 출간 순서를 정해준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었다.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은 『전사 견습』(구판 『마일즈의 전쟁』)은 완전히 다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이어 읽은 현재 전자책으로는 무료로 풀려 있는 『보르 게임』은 여전히 동일한 재미를 준다. 그리고 드디어 오랜 시간이 지나, 국내에서도 『보르 게임』 다음 이야기가 나왔다. 『보르 게임』까지 읽은 독자들이 애타게 기다린 다음 책. 사실 어느 정도 이전작보다 재미가 많이 떨어지면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전사 견습』이 시리즈의 최고 재미있는 작품이고 나머지는 그에 걸맞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걱정을 날려버릴 만큼, 『마일즈의 유혹』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으며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부졸드 여사의 클래스를 증명하는 소설이었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똑같이 기대하게 만들 만큼, 완성도가 높았고 흥미로웠다.
 여기서 마일즈 보르코시건, 우리의 주인공은 우주에서 네이스미스 제독으로 함대를 지휘하고 누군가를 감언이설로 꾀지 않는다. 그보다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 역할에 가깝다. 이미 행복한책읽기 SF 무크지에 공개된 중편 「슬픔의 산맥」에서 탐정 역할을 선보인 적이 있는 마일즈이지만, 이 소설은 장편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마일즈가 명탐정이며, 이를 우주 배경에서 다른 행성에서 추리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소재 설정이고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이 개성이 있고, 시리즈 전체에서 이 작품만의 독특한 재미를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의자에 앉아서 사건을 꿰뚫어보는 안락의자형 탐정이라기보다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하드보일드형 탐정과 닮았다.
 눈에 띄는 엄청난 미인의 사건 의뢰, 계속되는 정체불명의 위협, 때로는 얻어맞고 목숨에 위협을 당한다는 점, 미스터리의 배후자가 여러 명이고 쉽게 밝혀지지 않는 것, 그럼에도 미인과 함께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면서도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는 점. 그렇지만 결국 진실에 도달하는 것. 그렇지만 하드보일드 탐정은 적당한 보수를 받으며 미인과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미인은 홀연이 떠나고 탐정은 의연히 다른 사건으로 나아간다. 이런 하드보일드 소설을 연상케 하는데,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점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세타간다 행성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센타간다라는 행성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SF적 재미도 동시에 느끼면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세타간다'인데 일반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는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고 낯설어할 것을 염려해서 '마일즈의 유혹'으로 바꾼 듯이 보인다. 내용을 따지고 보면 '마일즈'가 미인에게 유혹을 당해 사건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마일즈가 사건을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태도는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가장 큰 심리적 이유는 미인에게 잘 보이고 보상 받으려는 태도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유혹당한 마일즈인 셈이다. 그렇지만 앞서 『전사 견습』과 『보르 게임』에서도 마일즈는 사랑을 얻지 못했듯이, 이번 권에서도 사랑을 얻지는 못한다. 그게 이 소설의 구성상, 또 구도상 어울리는 결말이기는 하지만, 마일즈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일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쉽게 자랑할 수 있을 만한 공헌을 한 것도 아니다. 적국에서 벌인 모험과 적국에게 받은 훈장. 모험의 결과를 널리 알릴 수 없지만, 마일즈는 그 훈장이 자기자신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아직 마일즈는 성장하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자기 증명이 필요했고, 이 모든 행동이 처음에는 유혹을 받아 진전되었다고 해도, 끝까지 돌파해나간 것은 자기 증명의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일즈에게 적국에게 받은 훈장이라고 해도 결코 우주 공간에 던져버릴 수 없다. 기형의 몸이라도, 작은 키에 쉽게 부서지는 뼈를 가졌더라도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미인에게 닥친 위험을 막고, 세타간다의 잘못된 야망을 막았다는 그 증거를 소중히 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마일즈가 훈장을 보는 장면은 유독 마음에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그 감정이 이해될 뿐만 아니라, 마일즈라는 인물이 한층 더 이해되고 사랑스러워지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똑똑하지만 난쟁이 같은 소년이 바로 마일즈다. 마일즈가 키가 훤칠하고 건장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 소설의 매력은 반의 반도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일즈는 육체적으로 연약하고, 마치 뛰어난 정신이 좁은 육체 속에 갇혀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이 소설은 흥미진진하다. 끊임없이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고, 사랑에 실패하며,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애정어린 시선으로 마일즈를 보게 된다. 마일즈는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린다. 우리도 무언가 결여된 것들이 있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 필사적이 되며, 매번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일즈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어떤 점을 보는 것 같기 때문에. 그래서 마일즈를 보면 자기 자신의 한 부분을 보는 듯한 공감대가 느껴지기 때문에 쉽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응원하는 시선으로 읽게 된다.
 기대한 것보다 더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사건이 끝날 때까지 명확한 게 하나도 없어서 긴박감이 느껴졌다. 적국에서 움직이는 마일즈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마일즈가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범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독자도 함께 마일즈의 시선으로 범인을 찾기 때문에 추리소설의 재미가 가득했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자체의 믿음을 가지게 만든 한 편이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 보르 게임 그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도 마일즈의 다양한 모험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위험에 처하고, 또 어떤 꾀를 발휘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갈지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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