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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우르줄라 포츠난스키 (지은이) | 안상임 (옮긴이) | 민음사 | 2014-03-21 | 원제 Funf (2012년)


파이브 - GPS 보물찾기가 연쇄 살인의 힌트로 이어진다면?

 어렸을 때 누구나 보물찾기를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서 혹은 교회에서 말이다. 어린이대공원 같은 유원지에 가서 미리 선생님들이 숨겨 놓은 쪽지를 찾는다. 보물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 연필이든, 공책이든, 그때는 보물이 적혀 있는 쪽지 한 개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이런 보물찾기를 어른들이 전세계적으로 하고 있다면? 민음사에서 최근 출간된 『파이브』는 이색 스포츠, 놀거리로 2000년부터 전세계적으로 퍼진 '지오캐싱'을 소재로한 스릴러 소설이다. 지오캐싱이란 보물찾기의 어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는데, GPS(위성항법장치) 좌표를 토대로 보물을 찾는 것이다. 누구나 락앤락 같은 통에다가 물건을 숨겨놓고 지오캐싱 사이트에 좌표를 올려둔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그 좌표를 GPS 기계로 찾아서 보물을 찾고 다시 다른 물건을 넣어둔다. 이런 식으로 보물찾기는 무한히 이어지고 수 천번의 보물을 찾은 사람들도 나타나게 된다. 이로써 GPS 좌표를 찾아 가면서 매번 색다른 장소도 가게 되고,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장소에도 도달하게 된다. 매일 비슷한 산에 오르는 것보다, 좀 더 게임 같은, 모험 요소가 들어가 있다. 찾기 어렵게 숨겨놓은 경우도 있고, 미스터리를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주말마다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찾은 상자 안에는 과연 어떤 물건이 있을지 기대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 '지오캐싱'은 전세계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십 만원 상당의 GPS 기계를 사야 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이 게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바뀌었다. 모든 스마트폰에는 GPS 모듈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장비를 마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지 GPS 좌표를 추적할 간편한 어플만 설치하면 된다. 평소 여행을 즐겨하지 않던 사람도 이 지오캐싱을 핑계로 다양한 곳을 여행할 수도 있고, 마침 지방에 가서 지오캐싱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추리/스릴러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이 '지오캐싱'이 어떤 미스터리 소재로 적절하다는 것도 바로 깨닫을 것이다. 익명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게임을 즐긴다는 점이나, 미스터리를 풀어서 좌표를 찾아가기도 하고, 그 좌표 안에 어떤 물건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점 등에서 말이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맞춤으로 만든 게임 같이도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반대로 이 지오캐싱이 먼저 있었고, 소설이 나왔다. 그러나 이 소설의 서사를 끌어가는 힘은 지오캐싱이라는 게임에 있다. 게임의 룰을 하나씩 숙지하면서, 게임의 규칙 속에서 단서를 쫓아간다. 범인이 만들어낸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느 스릴러 소설처럼 이 소설에서도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한 여자가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죽었는데, 주인공인 베아트리체는 피해자의 발바닥에 이상한 숫자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음을 발견한다.(그녀는 섬세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고, 사건 현장을 볼 때 '잠수' 하듯이 몰입해서 세세히 살핀다.) 그 숫자는 GPS 좌표다.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다. 왜 피해자의 발에 GPS 좌표가 새겨져 있단 말인가. 범인은 보통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게임에 초대하는 숫자인 셈이다. 그 좌표를 통해 간 곳에는 락앤락 통이 있다. 그 안에는 잘린 손과 쪽지가 있다. 이 손의 주인은 누구일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바야흐로 연쇄 살인의 시작이다. 어느덧 베아트리체는 범인의 게임에 말려든다. 이대로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건은 더 이상 추적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쪽지에 적힌 대로 스테이지2로 가기 위해, 다음 좌표를 받기 위해 쪽지에서 수수께끼처럼 단서에 나온 사람을 추적한다.
 이 소설은 범인을 좇는 노력과, 범인이 남긴 지오캐시를 찾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는 소설이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힌트가 전무하기 때문에 베아트리체와 동료인 플로린은 상당히 애를 먹는다. 이는 베아트리체 시점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명탐정이 나와서 재빨리, 활극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훨씬 사실적이고, 섬세한 심리묘사와 함께 진행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그런 사실성과 심리 묘사에 있다. 스릴러 소설답게 연이은 살인 사건과 이어지는 단서 등이 게임처럼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며, 정교하게 짜인 플롯이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실제 있을 법한 배경과 심리 묘사가 독자를 이 소설 속 세계로 끌어들인다. 베아트리체는 이혼녀이고, 두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 새벽마다 전화하는 전남편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두 아이에 대한 연민과 걱정, 남자 상사의 핀잔과 압박(그러면서도 남자 동료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내는 점이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동료에 대한 애정이 섞인 혼란스러운 마음, 문자까지 보내오는 정체불명의 범인에 대한 두려움. 이런 심리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무런 약점 없는 히어로 같은 탐정이 아니라,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한 여성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헤어진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전남편의 괴롭힘과 애정을 쏟고 싶어도 직업상 쉽지 않아 복잡한 감정이 드는 두 아이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번민하고 방황하고 좌절하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때로는 답답하고, 갑갑하게 느껴지지만, 일반적인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준다. 그럼에도 베아트리체가 소설 내내 끌려다니기만 하고, 여러 상황들의 압박 속에 놓여 있기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만약, 시리즈의 시작이라면, 점점 성장하는 베아트리체를 보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 작품만으로는 베아트리체가 큰 사건을 통해 좌절하고 앞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지점에서 소설이 끝난 느낌이었다. 정당한 두뇌 대결이라기보다는 베아트리체는 어쩔 수 없이 범인보다 한 발 느리게 가고, 마지막까지 큰 반전을 만들지는 못한다. 이 점이 주인공의 활약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소설이지만, 그만큼 작가가 주인공을 활약하게 만들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설계한 대로 이야기를 밀고 나갔다는 소리도 된다. 결국 이 소설은 주인공의 활약에 포커싱을 맞춘 게 아니다. 죄의식, 죄책감. 살인의 동기와 범인이 소통하는 자로 베아트리체를 삼은 이유는 같다.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면 인간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놀이. 만약 내가 뭘 했다면, 어쨌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 그것은 무한하고 한 번 벌어지면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아닌 이상 돌이킬 수 없으며, 시간을 역전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한계는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만약'을 되풀이한다. 자신을 자책한다. 이 소설은 결국 이 '만약'이 만든 또 다른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의 동기와 베아트리체가 형사가 된 동기는 유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이 소설의 방점이 찍혀 있다.
 무려 526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만큼, 중간중간 늘어지거나, 지루한 듯한 느낌도 있다. 긴박하게 흘러가지만 심리묘사가 지나치게 많은 탓이기도 하다. 사건의 진상은 이미 수많은 소설에서 다룬 내용이지만, 그건 이미 이 장르의 축적된 역사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지오캐싱'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인물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고, 플롯의 완성도가 높은 점은 이 작품을 잘 만든 스릴러 소설로 추천할 수 있게 한다.
 소설을 읽고 나서 섬뜩한 살인이 얽혔음에도 불구하고 '지오캐싱'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해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만들고, 베아트리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와 베아트리체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소설들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찬찬히 쌓아올린 심리와 사건, 마침내 밝혀지는 살인사건의 진실과 그 결말. 모든 사건이 끝나도 삶은 지속된다. 지오캐싱이 끊임없이 색다른 장소로, 색다른 물건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이 소설 역시 수많은 스릴러 소설들과 함께 독자를 유혹한다. 함께 사건의 진상이라는 보물을 찾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GPS 좌표를 찾아 떠나듯, 책장 속으로 떠난다. 그 속에는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읽고 나면 읽었다는 흔적을 리뷰로 남기고, 다른 보물을 찾는다. 지오캐싱에는 여러 약어를 사용하는데, 보물을 숨긴 자는 오너라고 부르고, 보물을 남긴 곳에는 TFTH. Thanks for the hunt(찾아 줘서 고마워)라는 약어를 쓴다. 보물을 책으로 바꾸자면, 쓴 사람은 작가, 남기는 글에는 TFTR. Thank for the read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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