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트 뷰티

2014.06.24 01:15

menaceT 조회 수: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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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grande bellezza (2013)
 
6월 12일, 씨네코드 선재.
 
(스포일러)
 
  ‘위대한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의 영화의 제목, 그리고 ‘로마’라는 공간적 배경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가장 쉽게 연상케 되는 이미지는 아마도 로마의 풍광과 예술품들의 향연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묘사하는 로마는 오히려 노화와 죽음의 기운이 깃든 공간이다. 
 
  주인공 젭이 보기에 로마의 예술은 언제부터인가 정체되어 있다. 로마의 예술인들은 스스로의 예술적 빈곤함을 모호함으로 포장하려 든다. 엘리트주의와 허세에 찌들어 이를 향유하는 로마 사람들은 대부분 그 로마의 예술 안에서 능동적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남들의 평가에 의존하여 수동적으로 예술성을 판단하곤, 일회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거나 혹은 예술 그 자체보다는 예술을 사랑하는 체 하는 본인의 모습을 사랑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수많은 조각 예술품들을 비밀 장소에 보관해 두고서도 이를 단순히 수집해 놓고는 그 옆에서 도박이나 하기 바쁜 노부인들의 모습이나, 콜로세움을 옆에 두고 밤새 벌어지는 VIP 파티와 그 안에서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 등에서, 영화는 이러한 젭의 시선으로 로마와 로마 사람들을 꿰뚫어 본다. 젭은 스스로 로마의 예술가와 인터뷰를 하며 그가 선보이는 예술의 얄팍함을 통렬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예술을 스스로의 치장 도구 정도로 여기는 주변인을 가차없이 몰아붙이기도 하며, 로마를 잠식해 가는 이러한 허위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하기도 한다. 한 때 역사를 찬란히 빛냈던 로마의 아름다움을 바로 근처에 두고서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허울뿐인 거짓 아름다움이 덮어 숨기고 호도하는 상황 속에 사람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바로 보지 못한다. 극중에서 마술사가 기린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선보일 때 하는 말과 같이, ‘모든 것은 속임수’이며 로마는 그 속임수 가득한 겉치장에 잠식되어 있는 것이다. 로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렇게 발견되지 못한 채 낡아 (혹은 늙어) 간다. 그리고 이 로마와 로마 사람들의 묘사는 곧 현대 사회 전반의 예술 소비 행태에 관한 은유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허위에 염증을 느끼며 적대감을 표하는 젭 역시도, 이처럼 거짓된 아름다움으로 스러져 가는 로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40여 년 전 첫 소설을 쓴 뒤로 다시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그는 명사들과의 인터뷰를 잡지에 기고하며 매일 VIP 파티에 몸을 맡기거나 주변인들과 로마의 예술을 비판하고 혹은 누군가와 섹스를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로마의 껍데기뿐인 화려함에 매료되어, 지금은 그저 그 안에 매몰되어, 그 역시 로마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그렇듯 정체된 로마 안에 다시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젭이 바로 옆집에 살던 수배자를 알아보지 못했던 점이나, 콜로세움을 옆에 두고서 그 콜로세움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이 시끌벅적하게 진행되는 젭의 파티-그리고 이 파티에서 젭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소인 편집장은 처음에는 파티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나 곧 파티를 지루해 하더니 소외되어 잠에 빠져 들더니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따로 내버려진 채 깨어난다는 것도-나, 모두 젭의 이러한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로마도, 그리고 젭을 비롯한 로마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늙어가고 있고, 또한 죽어가고 있다. 젭은 스스로 그렇게 늙어 감을, 죽어 감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날 만한 의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다음 소설을 진행시키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에게 있어 처음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존재를 인지시켰던 그 푸른 바다를 단지 자신의 방 천장에 환영으로 투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늙어가는, 죽음으로 향해 가는 로마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영화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죽음’ 그 자체이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누군가의 죽음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음산한 합창이 진행되는 와중에,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아마 그 가이드가 제시하는 방식으로만 분수대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게 되리라. 그런데 이때, 그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외따로 떨어져 로마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 관광객 한 명이 있다. 모두가 수동적인 방식으로 로마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려 들 때, 오직 그 사람 한 명만이 능동적으로 로마의 아름다움을 찾아 본인의 사진 안에 담으려 한다. 그리고 그때 그는 죽는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는 ‘세 가지 죽음’이 관통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수동적으로 로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방식은 앞에서 언급한 로마 사람들의 예술 향유 방식과 같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예술을 판단하고 단지 이를 소비하려고만 드는 그러한 방식은 어쩌면 단순히 시체를 더듬는 행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체된 로마의 예술 하에서 그렇게 죽음으로 향해 간다. 이것이 오프닝 시퀀스에 담긴 ‘첫 번째 죽음’이다. ‘두 번째 죽음’이 바로 능동적으로 로마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섰던 그 관광객의 ‘죽음’이다. 다른 이들처럼 수동적이며 소비적인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은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예술을 대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관광객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그 죽음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에 따르는 결과라는 점에서 다른 관광객의 죽음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영화는 거짓된 아름다움에 잠식되어 스러져 가는 공간 로마 안에 살아 있으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지 모른다. 실제로 극중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는 이들은 모두 로마라는 공간 자체를 벗어나려 한다. 문학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다 미쳐버린 청년은 다른 로마 사람들로부터 정신병자 이상으로는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결국 자살을 택함으로써 로마라는 공간을 벗어난다. 젭의 친구 로마노는 계속해서 로마에 머물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기를 갈구하나 외면 당하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로마 자체를 벗어나 자신에게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한다. 이미 상당히 나이가 들어 남들에게 외면당함에도 스스로의 육체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며 지성 있는 스트리퍼를 꿈꾸던 여인 라모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삶의 방식은 로마의 허위를 비웃던 젭마저도 존중해 마지 않을 정도였으며, 젭은 그녀와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고 그녀로 인해 로마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로이 접근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로마에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그 껍데기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젭이 라모나와 동행하면서 기존에 탐닉하던 허울들보다는 그간 외면했던 그 기저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와 함께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웠을 때, 그간 젭을 호도해 오던 바다의 환영조차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곳에는 그저 천장만이 보일 뿐이다. 그녀는 그렇게 젭에게 깨달음을 주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라모나조차도 결국 병으로 인해 죽음으로써 로마를 떠나고 만다. (공교롭게도 영화 후반부에 젭에게 깨달음을 주며 로마를 떠난 두 인물의 이름이 각각 로마노(Romano)와 라모나(Ramona)로 서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로마’라는 지명과도 닮아 있다.) 이의 연장선 상에서 보면, 오프닝 시퀀스의 그 관광객 역시 능동적인 방식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기에 죽음으로써 로마를 떠난 셈이라 할 수 있다.
 
  극중에서 젭은 어린 시절, 다른 소년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여성 성기’를 꼽을 때 자신은 ‘노인의 집에서 나는 냄새’를 꼽았노라고, 그리고 그러한 감수성이 자신을 작가의 길로 이끌었노라고 말한다. 즉, ‘늙음’, ‘죽음으로 향하는 그 여정’에 대한 감각이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에 마냥 파 묻혀 있던 젭이, 자신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계기인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 다시 그 감각이 깨어나기라도 한 듯 움직이기 시작하고, 라모나 등의 인물과 조우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일차적으로 예술을 소비해 가며 허위 속에 수동적으로 늙어가고 죽어간다면,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죽음’에 해당하며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의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감각으로써 능동적으로 늙음과 죽음을 취하려 든다면,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죽음’에 해당할 것이며, 오히려 첫 번째 의미로 죽어가는 ‘로마’를 탈출해 새로운 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짓된 아름다움의 ‘속임수’를 극복해 내고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직 언급하지 않은, 오프닝 시퀀스 상의 ‘세 번째 죽음’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죽음은 바로 예술의 속성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관광객은 남들이 바라보지 않던 로마의 풍경으로부터 어떤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광경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런데 과연 카메라에 그 풍광이 담겼을 때, 그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갇힌 것이 그 관광객이 발견했을 진정한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그 순간, 그 진정한 아름다움은 프레임 안에 멈춰 버린다. 다시 말해 ‘죽은’ 형태로 남는 것이다. 예술이 우리의 삶에 잔존해 있는 어떤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할 때, 예술은 보통 현실을 모방 혹은 특정한 틀 안에서 재현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좀 더 발견하기 용이한 형태로 끌어올리려 한다. 예술이 제시하는 이 틀, 이 ‘죽음’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좀 더 우리에게 가깝게 이끌어 오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소멸시켜 박제화해 버리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기린 마술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 그 자체가 어쩌면 ‘거대한 속임수’에 불과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하는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가 현실인 것처럼 제시하는 화면의 연속은 사실 통제된 환경 내에서 연출된 장면들이다. 거짓된 아름다움에 호도되어 죽음(여기서의 죽음은 ‘첫 번째 죽음’)으로 향해가는 로마를 그린 이 영화 자체가 어쩌면 그러한 죽음을 유도하는 거짓 그 자체일 수 있다. 영화의 이러한 허구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바로 ‘편집’, ‘몽타주’이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촬영된 숏들을 이어 붙여 연속된 시간, 공간 안에서 진행된 일인 양 관객을 호도하는 것이 ‘몽타주’의 기본 속성이 아닌가? 영화를 감상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러한 ‘몽타주’의 ‘속임수’에 너무나도 쉽게 몸을 맡기곤 한다. 아니, 그러지 않고서는 영화 감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의 기본을 이루는 ‘몽타주’는 분리된 현실들을 합쳐진 거짓으로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죽음’을 배태하고 있고, 이 죽음은 ‘첫 번째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죽음’으로 향해 가야만 하는 그 한계를 부수어 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극중의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죽음’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몽타주의 경우, A숏에서 인물이 어딘가로 시선을 던지고 있고, 그 뒤에 이어지는 B숏이 어떤 풍경을 담고 있다면, 자연스레 A숏의 인물이 B숏의 풍경을 바라본다는 연속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위에서처럼 A숏과 B숏을 차례로 제시한 후 바로 이어지는 C숏에서 사실 A숏의 인물이 바라본 것은 B숏의 풍경과 전혀 무관한 제3의 무엇이었음을 드러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편집의 가장 기본적인 룰을 부러 박살내는 셈이다. 파티 장면에서처럼 같은 공간 안에 놓여 있음에도 분리되어 있는 공간들, 외따로 산만하게 연주되는 음악들을 제시함으로써 연속성을 부수는 것도 크게 보면 이러한 편집 상의 일관성을 부수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극중 인물들이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듯하다 알고 보니 그것이 비행기에서 나오는 불빛이었음을 드러내는 등, 관객들에게 일종의 ‘페이크’를 먹이는 시도들도 꾸준히 등장한다. 즉, 영화는 온갖 시도들을 통해, 영화라는 예술이 기본적으로 ‘속임수’에 기반해 있음을 지속적으로 관객 앞에 드러냄으로써 사실상 ‘자살’을 행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이러한 ‘자살’을 통해 영화가 기본적으로 배태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속성, 그 ‘세 번째 죽음’을,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한 ‘두 번째 죽음’으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영화의 이러한 형식 상의 자살은 젭의 깨달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문학을 탐닉하던 청년이 죽었을 때, 젭은 라모나에게 장례에서의 행동 양식들을 가르치더니 스스로 장례식에서 슬픔을 연기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때까지 젭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자신을 뽐내기 위한 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장례식에서 돌아와 라모나와 함께 침대에 누웠을 때, 라모나는 대뜸 자신의 병을 고백한다. 여기서 젭에게 죽음은 더 이상 자신을 치장키 위한 무대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허울’이 ‘진짜’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다음 숏에서 젭이 계단을 올라와 라모나에게 말을 거는데 라모나가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이전 숏에서 라모나가 자신의 병을 고백했기 때문에 라모나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을 암시하는 신호나 다름없다. 그러나 잠시 후, 라모나가 움직임으로써 방금 전의 그 죽음의 암시는 거짓임이 드러나게 된다. 즉, 허울에서 진짜로 전환되었던 죽음이 또 다시 가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제 둘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거기에는 여태껏 젭이 바라보던 바다의 환영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허울로 기능하던 것이 라모나라는 인물로 인해 그 허울로서의 한계에 이르러서는 그 밑의 ‘천장’이라는 진실을 까발리며 사라지는 전복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또 진짜 바다의 모습이 이어진다. 또 한 번의 전복. 그리고 곧, 라모나가 ‘정말로’ 죽었음이 드러난다. 가짜 죽음이 또 다시 진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짧은 씬 안에서 수도 없이 이어지는 가짜와 진짜의 자리바꿈은, 이 영화가 자신의 속임수를 까발림으로써 자살을 택하는 방식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런 연이은 자리바꿈을 통해 구현된 라모나의 죽음 뒤에 이어진 성녀와의 만남으로 젭이 깨달음에 이르는 결말부는, 영화가 스스로 자살을 택함으로써 얻어낸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녀가 처음 로마에 찾아와 유명인사들과 계속해서 악수를 나누고, 젭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음에도 자신이 입을 열지 않는 대신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그녀의 대리자가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지점까지만 해도, 그녀는 로마를 잠식한 그 거짓된 껍데기를 그대로 닮아 있는 듯 보인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늙어 죽음이 머지 않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결국엔 ‘첫 번째 죽음’의 또 다른 예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사라졌던 그녀가 젭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젭의 방에서 잠든 채 발견되는 순간부터 그녀의 존재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한다. 극중에서 모두가 젭의 집으로 파티를 즐기러 올 때에도 그의 방까지 허락된 이는 거의 없었다. 극중에서 그가 섹스를 나누던 장면이 한 번 나오지만, 그때의 섹스도 젭의 방이 아닌 그 여자의 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젭의 방이 허락된 존재는 오직 라모나 뿐이었는데, 그 영역으로 그 성녀가 들어와 잠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성녀는 지금껏 보여 왔던 그 이미지와는 달리, 진정한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식물의 뿌리만을 먹는다는 것, ‘성녀’라는 칭호로 불리길 꺼려한다는 것도, 그녀가 껍데기에 갇히기보다는 본질을 바라보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요소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젭이 잠에서 깨었을 때, 그의 집 테라스에는 철새들이 멈추어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다. 어딘가로 날아가야 할 새들이 로마, 그것도 젭의 집에 머무르고자 하는 그 모습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두 번째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해 놓고서는 로마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이를 지켜보던 성녀는 젭에게 ‘뿌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더니, 입김을 후 불어 새들을 모두 로마로부터 멀리 날려 보낸다. 그리고 로마로부터 날아간 그 새들처럼 젭도 로마를 떠나 바다로 향한다. 이처럼 영화의 형식 상의 자살은 라모나의 죽음에서 성녀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젭을 천장으로 접하던 가짜 바다에서 실제 바다로(극중에서 젭은 라모나의 죽음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한 번, 성녀의 인도로 로마를 떠나는 장면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진짜 바다를 접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의 길로 인도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나타남’으로 대체되는 것은 ‘죽음’을 통해 오히려 그 이후의 ‘생’에, ‘진정한 아름다움’에 가 닿고자 하는 ‘두 번째 죽음’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첫 번째 죽음’을 닮은 것으로 오해 받던 성녀의 ‘늙음’이 결국 ‘두 번째 죽음’과 닮은 것으로 밝혀진다는 점은, ‘첫 번째 죽음’으로 향해 갈 수 있던 속성을 자살을 통해 ‘두 번째 죽음’을 향하도록 바꾸어 놓은 이 영화의 시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즉, 영화 속의 성녀는 이 영화의 의도 및 바람을 그대로 형상화한 캐릭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제 영화의 엔딩은 로마 안의 성녀와 로마 밖의 젭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로마의 외부로부터 로마의 내부로 들어온 그 성녀는 늙어가고 죽어가는 그 로마라는 땅 위에서, 자신의 늙음과 죽어감을 통해 역설적으로 로마를 구원하려는 듯 보인다. 그녀는 ‘늙음’ 그 자체나 다름없는 야윈 몸으로 성당의 계단을 무릎 꿇은 채로 오른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움직임이 그 자체로 죽음으로 향해 가는 과정처럼 고되어 보이지만 동시에 성스럽다. 마침내 계단을 모두 올랐을 때 그녀는 마치 새로운 예수와도 같이, 로마의 늙음과 죽음 자체를 첫 번째 의미로부터 두 번째 의미로 돌려놓음으로써 상징적으로 로마를 구원한 듯 보인다. 성녀 캐릭터 자체가 영화의 의도와 바람을 담고 있다고 볼 때, 성녀를 통한 로마의 구원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가 닿고 싶은 목표라 할 것이다. 영화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엔딩 크레딧 씬에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로마의 풍경을 관조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궁극적 목표를 긍정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한 편, 로마의 내부에 머무르다 드디어 로마의 외부로 벗어나게 된 젭은, 자신이 처음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목도했던 그 시절 그 장소로 돌아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쓰겠다던 두 번째 소설의 구상을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소설이 시작한다. ‘결국엔 모든 것이 속임수다.’” 젭의 두 번째 소설이 인용문으로 시작한 것처럼, 이 영화 역시 하나의 인용문으로 시작했다. 공상을 통해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을 노래하며, 모두의 삶이 결국엔 허구이고 죽음으로 향해 가는 여정임을 알리는, ‘밤의 끝으로의 여정’의 인용문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인용문 그대로 ‘영화’라는 공상의 영역에서 삶 위에 켜켜이 얹힌 허구성을 까발리고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에 가 닿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젭의 두 번째 소설도, 그 소설 자체가 하나의 ‘속임수’일 수밖에 없음을, 예술이 배태하고 있는 그 ‘죽음’의 존재를 긍정하는 데서 시작하고 것이다. 이제 그렇게 그의 두 번째 소설도 죽음으로써 또 다른 생에, 진정한 아름다움에 가 닿는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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