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2013.10.20 09:52

menaceT 조회 수:5491

 

Gravity (2013)

(3D ATMOS)

 

10월 17일, 메가박스 코엑스.

 

  90분 동안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 동안 극장 의자에 짓눌려 있는 느낌이었다. 대단하다.

 

  알폰소 쿠아론의 연출은 이 영화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영화들, 특히 '칠드런 오브 멘'에서 돋보였던 빼어난 롱테이크 연출을, 그는 이 영화에서도 놀라운 형태로 구현해낸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풍광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익스플로러 호를 만나면, 그때부터 제트팩을 이용해 익스플로러 호 주변을 유영하는 코왈스키를 따라 회전해 가며 자연스럽게 다른 대원 및 스톤 박사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코왈스키에게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이따금 인물들의 시점을 따라 움직였다가 돌아오기도 하면서, 정적인 듯 보이면서 역동적이기도 한 움직임으로 인물들을 한 숏 안에 효과적으로 묶어내는 동시에 우주의 공간감까지 살려낸다. 스톤 박사가 분리된 뒤, 공포에 질린 그녀의 얼굴을 헬멧 밖에서의 클로즈업으로 잡던 카메라가 자연스레 헬멧 안으로 줌인해 들어가더니 회전해서 스톤의 1인칭 시점을 보여주다 다시 3인칭 클로즈업으로 돌아가 헬멧 밖으로 줌아웃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숏 안에 담아낸 롱테이크는 또 얼마나 유려한가? 영화 전체적으로 이토록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장면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관객이 긴장감을 잠시도 풀 새가 없게 만드는데, 알폰소 쿠아론 이 정도면 연출괴물인 듯. 이 과정에 있어 쿠아론과 전작 작업도 같이 했고 영상 시인이라는 테렌스 맬릭과도 '뉴 월드' 때부터 쭉 함께 작업해 온 명망있는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공 역시 컸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산드라 블록도 여태껏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

 

  코엑스 M2관에서 봤는데, 3D 효과나 돌비 애트모스 믹싱된 사운드도 정말 좋았다! 우주 공간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설정 덕에 다른 영화에 비해, 그리고 영화 속 상황에 비해 굉장히 고요한 영화이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음향이 두드러지는 영화이다. 꼭 메가박스 코엑스 M2(영통 M2)관이나 CGV 왕십리 아이맥스(울산삼산 아이맥스)관에서 보시라.

 

  사실 스토리랄 게 거의 없는 영화이지만, 그 간단한 이야기 안에서 인물의 심리를 굉장히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기에 영화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무중력의 우주를 주 무대로 삼고 있음에도 영화의 제목은 'Gravity', 중력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극중 인물들도 무중력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늘 마치 중력처럼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기를 갈구한다.

 

  영화 초반만 하더라도, 코왈스키는 우주를 유영하면서도 지구를 바라보며 그 풍경에 찬탄하고 지구에서의 일들을 습관처럼 언급하는데다 종종 컨트리 음악을 듣는다. 스톤 역시 '고요함' 때문에 우주가 좋다고 말하지만 익스플로러 호에 꼿꼿하게 연결된 상태이다. 모두와 연락이 끊긴 채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무중력의 한가운데 놓이는 순간 공포가 찾아오고, 서로를 끈으로 연결한 뒤에야 그들은 비로소 안도한다. 죽어버린 그들의 동료 역시 지구의 가족들의 사진을 매달고 있다. 또한 코왈스키는 스톤을 안심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걸며 자신과의 연결을 확인시키는가 하면, 스톤의 고향, 스톤의 가족, 스톤의 이름의 유래 등을 묻는다.

 

  그들은 그렇게 '가족', '고향', '과거', '타인의 목소리'와의 연결을 통해 꾸역꾸역 자신들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발디딜 땅을, 나아가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그들이 한 번씩 자신의 눈을 '파란색'이라 말했다가 '사실은 갈색'이라 고쳐 말하는 것도,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색인 '파란색'과 실제 지구의 땅의 색인 '갈색'의 대비를 통해 지구에 대한, 중력에 대한, 연결에 대한, 존재의 뿌리에 대한 그들의 갈구를 드러낸다.).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 공간에서, 그들은 자신의 존재의 뿌리나 다름없는 자신이 떠나온 공간이나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해 줄 타인과의 연결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화될지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우주의 고요함을 찬미하던 스톤의 경우 이러한 점이 더욱 역설적으로 보여진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일시적 연결과 분리를 반복해 가며, 또한 끝없이 열려 있는 우주란 공간과 우주선이나 우주복 등 닫힌 좁은 공간을 대비해 가며,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심리를 심도있게 담아낸다.

 

(스포일러)

 

  스톤이 한참을 헤맨 끝에 ISS에 들어섰을 때 우주복을 벗고 웅크리는 모습을 마치 자궁 안 태아의 모습처럼 연출한 장면이 특히 이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그녀가 딸을 잃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장면은 더욱 크게 와닿는다. 지구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딸을 잃은 어미였던 그녀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사고로 지구라는 존재의 뿌리, 혹은 또 하나의 어미로부터 분리될 위기에 놓인 딸의 입장이 된 것이다. 그 상황에서 딸의 죽음은 그녀에게 현재의 자신의 문제처럼 다가오게 되며, 그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분리의 공포나 잠깐의 연결이 주는 안도감은 더욱 현실의 깊이를 갖고 드러난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고 지구로 갈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 지구와 연결된 라디오를 통해 말도 통하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 웃음 소리, 개 짖는 소리, 아기의 옹알이 소리, 자장가 소리를 들으면서 생을 포기한 채 죽은 딸의 곁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모습도, 시뮬레이션으로 접해 봤으나 잊고 있던 방안을 맷의 환영과 함께 떠올리는 모습도 결국은 모두 스톤의 '중력'의 갈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자가 다다를 수 없는 외부의 '중력'을 갈구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자신이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외부의 '중력'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실상 내부에서 생성된 그녀 자신의 '중력'을 통해 스스로 존재를 확신하게 되는 과정이다.

 

  이전에 그녀가 함께 작업하던 이들이 대부분 남성성의 목소리로 등장했다는 점이나, 그녀의 '아버지'가 '아들'을 원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남성'의 이름을 붙였다는 점, 코왈스키가 스톤에게 'Mister Stone'이 있는지, 즉 그녀가 'Mrs. Stone'인지 여부를 묻고, 가족의 존재를 물음으로써 딸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써 가정 안에서의 그녀의 위치를 확인시키려 했다는 점(코왈스키는 '안 좋은 예감'을 말할 때마다 지구에서의 일화를 끄집어내는데, 이때 그가 불러내는 이들 역시 그의 '아내', '여동생', '남성인 줄 알았으나 남성이 아니었던 털 많은 여성' 등이다. 그는 영화 내에서 스톤을 도와주는 조력자이지만 그 역시 여성의 외부에서 여성을 타자화하는 인물이기에, 이중적 성격을 지닌 '외부의 중력'이기에 궁극적으로는 스톤이 홀로 서기 위해 떨쳐내야 하는 존재이다.)을 다시 떠올려 보자. 이는 코왈스키와 스톤 모두 누군가로부터의 '중력'을 갈구한다는 것뿐 아니라, 스톤이 그간 가정 안에서의 어머니, 아내로서 타자화된 여성성 아래 짓눌려 있지 않았는가를 의심하게 한다. 그의 반증처럼 그녀는 코왈스키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그의 줄에 매달린 채 끌려다니며 그의 존재에 의존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소유즈에 들어서기 직전 코왈스키를 떠나보내고, ISS에 들어서서 태아의 포즈를 취하며 재탄생을 예비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점점 그 타자화된 여성성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제 그녀는 딸을 그리워하며 자살을 시도하다 남성성인 코왈스키의 환영을 보게 된 끝에, 코왈스키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그 동안 지고 있던 딸의 죽음이란 짐까지 함께 우주에 남겨두려 한다. 그렇게 그녀는 남성과 아이의 형상을 한,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타자화할 수 있는 그 어떤 형태의 족쇄도 벗어던진 채 다시 중력의 영역으로, 지구로 향한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그 동안 그녀가 의지해 온 외부의 '중력'은 다르게 말해 그녀를 타자화한 시선들이었다. '무중력'의 공간인 우주에서 그녀는 비로소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그녀를 타자화하는 '외부의 중력'을 떨쳐내고 스스로 자신을 재규정하는 '내부의 중력'을 획득한 것이다. 모든 연결의 소멸, 중력과의 분리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진정한 중력, 진정한 내적 확신의 순간을 영화는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 지구로 돌아온 그녀가 마치 자궁 같던 우주선에서 양수와도 같은 물과 함께 나와 세상 빛에 감탄하며 첫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땅을 딛는 마지막 장면은, 존재의 뿌리로부터 분리되어 떠돌던 그녀가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의 확신을 되찾고 홀로 설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뜨는 영화의 제목 'gravity', 이는 스톤이 다시 딛게 된 지구의 중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외부에의 의존을 떨치고 마침내 되찾게 된 자기 존재의 확신 그 자체를 가리키며 묵직하게 가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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