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람소리 The Wind    


미국, 2018.     ☆☆☆★★


A Soapbox Films/Divide/Conquer/Mind Hive Films Co-Production, distributed by IFC Midnight. 1시간26분, 화면비 2.39:1 


Directed by Emma Tammi. 

Screenplay by Teresa Sutherland. 

Cinematography by Lyn Moncrief. 

Production Designers: Courtney Andujar, Hilary Andujar. 

Special Makeup Effects: Jennifer M. Quinteros. 


CAST: Caitlin Gerard (리지 맥클린), Ashley Zukerman (아이작 맥클린), Julia Goldani Telles (엠마 하퍼), Dylan McTee (기디언 하퍼), Miles Anderson (목사). 


photo THE WIND- BABY IS DEAD_zpsylztjiv4.jpg


서부극과 호러의 이종교배는 내가 좀 더 자주 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많이 시도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최근에 [본 토마호크]의 S. 크레이그 잘러가 식인종 호러 서브장르와 서부극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해서 나름 히트를 쳤지만,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서부극-호러 혼종 작품은 이런 식의 "정치적인 불공정함" (소위 말하는 "언PC함"-- "정치적 공정함" 이라는 말도 사실 공화당 보수 찌질이들이 자신들의 무례하고 개념없는 행동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인데 주류 미디어가 이치들에게 "클릭수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대폭적으로 영합하는 바람에 이제는 대~ 한민국의 뭘 모르는 아해들까지도 멀쩡한 사람들을 씹는 전문용어로 써먹게 된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인류의 유행어의 역사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한심하다) 을 까는 것을 배때기에 배지로 붙이고 자랑하는 타이틀들이 아니라, 원래 한 세기를 넉근히 넘어가는 오래된 역사를 통해 서부극 장르 내에서 천착하고 집착해온 주제들의 "그림자" 의 부분을-- 서부극 내부의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공식으로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 드러내놓고 주제 내지는 제재로 다루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 고전적인 예를 들자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초기 감독작품인 [황야의 스트렌저 High Plains Drifter] 는 마카로니 웨스턴적 서부극의 외연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초자연적인 아우라가 엄청나게 강해서, 마치 유령 건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러영화로 해석을 하고 관람해도 어색하지가 않다. 여기에 더해서 말하자면 1940년대부터 아주 오랜 전통이 있는 "심리 서부극" 의 여러 요소들은 호러 장르와 일맥 상통하는 영화적 언어와 문법을 개발해왔고, 이러한 요소들은 조금만 적응시키면 화자나 캐릭터들의 주관적인 경험과 기억을 공포의 주요 자원으로 삼는 모더니즘적인 호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과 살육의 희생자들이 "귀신"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런 패턴을 상정해 보실 수도 있겠고, 딱히 잘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스코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디아블로] 처럼 캐릭터의 인격이 "선" 과 "악"으로 분리되는 호러를 직접적으로 다룬 타이틀도 존재한다. 


[악마의 바람소리]는,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내가 관상한 영화 중에서는 바로 이러한 호러-서부극의 혼종성의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악마의 바람소리] 는 여성 각본가와 감독이 협업을 한 작품인데, 드러내놓고 페미니즘적인 사상적 내용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지 몰라도, 보통 서부극에서 흔히 배경이나 조연급 캐릭터로 밀려나기 쉬운 여성 캐릭터들이 겪는 무서운 광기나 악마의 유혹으로 치닫게 될 정도의 소외감과 억압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먼저 2.39 대 1 이라는 극단적으로 넓은 와이드스크린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에는 양 옆을 잘라먹을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비스타 비율로 보면 임팩트가 떨어질 것이 확실한 한편이라는 것을 독자분은 명심하시길) 을 원용한 비주얼이 인간을 끝없이 왜소하고 동떨어진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 한없이 확장되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경관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운드 디자인도 새삼스럽게 인간의 목소리처럼 의음적 장치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관객들의 신경을 긁어내리면서, 그 소음 안에서 벼라별 의미가 담긴 "소리"를 읽어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자연의 바람소리를 위시한 음향을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photo THE WIND- LIZZIE_zpsciwmuy8n.jpg


주인공의 이름이 "리지" 인데 클로이 소비니 주연의 [리지] 처럼 영화가 결말로 치닫으면서 과거에 벌어졌던 끔직한 사건의 진상이 점차 드러나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리지] 보다는 훨씬 범죄 미스터리의 요소가 약하고, 그 대신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반항 Repulsion] 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녀의 주관적 경험에서 바라본 괴이한 사상 (事象)을 코멘트를 일일이 넣지 않고 관객들에게 구현해 보여주는 것을 일차적인 서사의 골격으로 삼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인간 공동체로부터 십몇 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맥클린 부부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현대의 감각으로 금방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고, 대문간에서 바라보았을 때 겨우 불빛이 서로 지평선에 떠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진 "이웃" 인 하퍼 부부와 막역한 친구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듯이, 이 두 커플은 서로에게 표면적인 공감과 예의를 갖춰 대하면서도, 기묘하고 껄끄러운 긴장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리지의 남편과 리지보다 젊고 "예쁜" 엠마의 남편은 서로 반드시 "술친구" 가 되지 않더라도 이내 같은 남성들의 관심사를 통해 같이 행동을 하게 되는 데 비해서, 리지와 엠마는 청교도적으로 "좋은 아내" 로서의 역할을 다 하면서도 사실상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남편들에 대신해서 독립된 생활을 유지하고 "가정"을 지켜낼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에는 엽총을 다룰 수 있는 기술도 포함된다) 한다는 점에서, 결코 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 연설을 하게 만든다던 지 그러한 쓸데 없는 짓을 하지 않고도 19세기 서부의 여성들의 "강인함" 에 대한 칭송이 그들의 근본적인 사회적인 착취와 소외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처음에는 엠마의 소녀스럽고 감정에 치우치는 행동에 가볍게 짜증을 내는 것으로 보였던 리지는, 그러나 그녀 자신의 자녀에 관한 불행한 과거가 밝혀지고, 개척지에서 공동체와 소외되어 존재하는 여성들을 유혹하고 타락의 길로 이끈다고 말해지는 "악마" 들의 존재를 (처음에는 엠마가) 의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차 관객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변화를 보여준다. 리지를 연기하는 케이틀린 제라드의 독단장이라고 해도 좋을 장면들이 영화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무엇보다도 단장의 슬픔과 분노를 포함한 감정을 철저하게 억압하고 기능적으로 "가정 (household)" 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통해 약간씩  내면의 음영을 드러내는 절제된 연기를 피로해주고 있다 (제라드는 [소셜 네트워크]로 데뷔한 후 주로 TV에서 활동한 연기자인데 [Insidious: The Last Key] 에도 출연한 모양이다). 


photo THE WIND- DESOLATE_zpswjg9g6jy.jpg


이 한편의 약점이라고 한다면 "악마" 들이 직접 리지와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승전결의 "승" 에서 "전" 으로 넘어가는 분절인 중반부의 묘사를 들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런 장면을 삼입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이것이 호러영화라는 것을 잊어버릴 까봐 약간 서사에 에너지를 부여하고자 했던 계산이 개입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나한테는 그 지점까지 직설적으로 표현은 안되었지만 강렬하게 억압적으로 다가왔던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중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지나치게 "보통 호러영화" 스러웠다고나할까. 그 부분에 비하면 늑대에게 잡혀먹였다고 생각한 염소가 멀쩡히 "다시 살아나서" 리지를 빤히 쳐다보는 장면 등의 잦아들어 보이는 "호러 효과" 가 훨씬 더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테레사 서덜란드 각본가와 엠마 태미 감독은 잘못하면 무척 불쾌하고 구원이 없는 파멸적인 서사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리지와 엠마를 비롯한 캐릭터들을 함부로 다루지도 않고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벌하거나 지나친 연민을 표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제작진의 접근 방식이 오히려 캐릭터들이나 서사에 몰입을 방해하는 관객분들께서도 충분히 계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나는 [악마의 바람소리] 가 이렇게 극단적이고 궁극적으로는 정말 몸서리쳐지게 끔찍한 상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캐릭터들에게 끝까지 공감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높게 평가하고 싶고, 그 결말에 감동적이라고 까지 부를 만한 진한 여운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강하게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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