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온 소년  THE BOYS FROM BRAZIL 


미국-영국, 1978.   ☆☆


A Sir Lew Grade/Producers Circle/ITC Production. 2 hour 5 minutes. Aspect ratio 1.85:1. 


Directed by Franklin J. Schaffner. Written by Heywood Gould. Based on the novel by Ira Levin. Cinematography by Henri Decae. Music by Jerry Goldsmith. Production Design by Gil Parrondo. Art Direction by Peter Lamont. Produced by Stanley O'Toole, Martin Richards. 


CAST: Laurence Oliver (에즈라 리버만), Gregory Peck (요셉 멩겔레), Lili Palmer (에스터 리버만), James Mason (에드바르트 사이버트 대령), Walter Gotell (문트), Bruno Ganz (브룩크너 박사), Uta Hagen (프리다 말로니), Jeremy Black (바비 윌록/사이먼 해링턴/잭 커리), Wolfgang Preiss (로프키스트), Michael Gough (해링턴), Steven Guttenberg (배리 콜러), Denholm Elliott (시드니 베니언), John Rubinstein (데이비드 베네트), John Dehner (헨리 윌록), Wolf Kahler (슈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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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소년] 은 영화팬의 컬렉션 목록이라는 맥락에서 새삼스럽게 거론될 때에는 “길티 플레저” 따위의 렛떼루가 달리기 십상인 그런 한편이지만, 나는 사실 듀나게시판이나 내 블록에 버젓이 타이틀을 올릴 정도의 타이틀이 “길티 플레저” 라고 생각해 본 일은 한번도 없다. “길티 플레저” 라면 남들한테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인정하기가 평소의 나의 공적 가치관이나 영화관에 비추어 볼때 너무나 쪽팔리는 그런 영화를 말하는 거다.  [스카이폴] 을 냉전사고방식에 찌들은 (냉전이 뭔지는 알기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 옹호영화라고 비판글을 쓰는 사람이, 집에서는 [전격! 플린트 특공 대작전] 에서 브래지어를 백기 대신에 나무가지에 걸어 흔들면서 “뇌살 작전” 을 실행하는 그런 장면을 군침을 흘리면서 너무 많이 틀어봐서 디븨디가 닳아버렸다, 뭐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 비로소 “길티 플레저” 라는 표현이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아무튼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올라갈 정도로 공개당시에는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상한 영화” 라는 대접을 받는 과거의 헐리웃 대작이라는 카테고리에 한정해서 고려하더라도 [브라질에서 온 소년] 보다 말도 안되게 허접스럽고 개념이 완전히 상실된 작품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나찌독일이 클로닝 기술과 얽히게 되는 설정이 “말이 안된다” 내지는, 찝찝하게 착취적이라고? 뭔 소리셔… 


일본제 아동포르노와 별반 다르지 않는 내용과 주제를 가지고, 예술적인 자의식과 여성비하의 첨단을 가는 포르노적인 추잡함을 그 나쁜 점만 골라서 반씩 섞어서 만든 것 같은 릴리아나 카바니니의 [나이트 포터] 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으로 출시되는 대접을 받는 세상인데. 무슨 클로닝하고 나찌를 엮었다고 그걸 가지고 시비이신가? 1945년이후로 조금이라도 신봉자를 거느린 사탄숭배부터 지구공동설까지 말도 안되는 유사과학-음모론-비밀결사론중에 나찌독일과 연계가 안 된 것은 아마 한가지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서구의 (일본도 포함해서?) 대중문화상에서 나찌가 인체실험 안해본 유사-발광 (빛이 나는 發光 이 아니고 싸그리 맛이 갔다는 의미의 發狂) 과학적 가설이나 이론은 없을거다. 


프레데릭 포사이스나 마이클 크라이톤 같은 유명작가들이 간혹 보면 괜히 자기네들 작품의 서스펜스와 긴장을 강화시키기 위해 얼추 리얼리스틱한 설정을 공을 들여 쌓아놓았다가는 일부러 모래성 으깨듯이 우루루 부시고는 하는 트릭들을 잘 써먹는데, 레빈은 그런 (많은 독자들이 “영화적” 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접근방식은 쓰고 있지 않다. 레빈 작가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단서를 먼저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지극히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 에즈라 리버만이라는 굉장히 미국 좌파 유대인 지식인적인 나찌 헌터— 의 발품을 파는 수사활동을 따라감으로서 진상을 끼워 맞추는 퍼즐형 미스터리의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뭉근한 기본 구조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풍에는 유태계 영미권 작가들이 지닌 독특한 유머감각과 아이러니가 살아 있으며, [빠삐용] 의 프랭클린 샤프너 감독은 둔중하고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접근방식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은근한 유머와 아이러니를 잘 살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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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소년] 은 1970년대 말 당시에 (연합군의 비호하에) 수많은 전범 클라스의 나찌들이 남아메리카에 망명해서, 스와스티카 깃발을 버젓이 걸어놓고 슈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 (“도나우” 라고 읽는 건 일본식인가?) 강] 을 틀어놓고 제3 제국의 영광을 기리는 잔치를 벌일 정도로 잘먹고 잘살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나찌 전범중에서도 가장 끔직한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의 범죄를 저질러온 요셉 멩겔레 박사가 아마존의 자신의 아지트로부터 파라구아이까지 왕림해서는,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진 여든 몇 명의 아무런 특이한 점이 없는 중년의 하급 관료 남성들을 사고로 위장해서 암살하라는 지령을 네오나찌의 요원들에게 내리는데, 그 지령의 내용과 멩겔레의 등장 사실이 젊은 이스라엘인 운동가 콜러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어버리는… 아니더라도 참 카리스마가 부족한 스티븐 굿텐버그) 에게 포착되어 오스트리아에 사는 베테랑 나찌 헌터인 에즈라 리버만에게 전달된다. 리버만은 콜러의 친구들인 과격한 (과격하다고 해봤댔자 “독도수호특공대” 정도도 안되는) 이스라엘인 운동권들과 긴장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진상에 접근한다.


뭐 여기까지 얘기하면 이 영화에 대해 한마디도 들은 일이 없으신 분들도 대충 진상이 무엇인지 짐작하시겠지. 아니 나찌독일이 나서서 클로닝을 한다는데… 뭐 롬멜장군을 클론한다는 얘기겠수? 흥미있는 것은 멩겔레박사의 작전이 (어쩌면 나찌답지 않게?) 의외로 우생학적인 유전자맹신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과학자답게 [브라질] 에 나오는 멩겔레는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본인이 자라난 환경도 될 수 있는 한 그 역사상의 본인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러한 원래 환경을 복제하려는 작위적인 행위가 미스터리를 생성하고 다시 또 계획의 원대한 전모를 리버만이 밝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작극술에는 프로다운 치밀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프로페셔널하게 밀도 있는 전개가 주는 재미 말고도, 비교적 젊은 시절의 브루노 간츠가 클로닝의 원리를 설명하는 독일 과학자로 등장하고, 멩겔레박사한테 온갖 구박을 받는 나찌 요원 문트역으로 007시리즈의 고골장군역으로 낯익은 월터 고텔이 나오는 등, 연기자들 보는 재미가 쏠쏠한 한편인데, 무엇보다도 이 한편이 기억에 남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인공과 그 적대자의 역할을 맡은 로렌스 올리비에 경과 그레고리 펙 영감님의 연기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분 다 거의 미스캐스팅에 가까운 배역이라는 점인데, 그러한 배역과의 위화감이 오히려 관객들의 눈을 떼놓을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기능하고 있다. 로렌스경의 경우,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아니 저 위대한 배우가 왜 저런 허접한 영화에 나와야 하나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쯧쯧” 이라는 논조의 잡언을 수없이 들어야만 했듯이,  “마구잡이 출연” 을 하신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영화를 하나 하나 놓고 보자면 나이드신 명배우의 이름값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명연기도 많이 보여주셨다. [재즈 싱어] 나 [벳치] 같은 쪽팔리는 예가 있는 반면 [리틀 로맨스] 의 프랑스인 소매치기, [마라톤 맨] 의 나찌 치과의사 쩰 (아카데미상 조연상후보), 존 바담판 [드라큘라] 의 반 헬싱교수등의 훌륭한 연기들이 존재한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 의 에즈라 리버만의 연기도 당연히 후자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리버만은 보편적인 인류애로 가장한 민족주의적 결기로 활활 타오르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고 지극히 서민적인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거만한 권력에 짓밟힌 존재들에 대한 긍휼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배려심 넘치는 노인으로 그려진다. 원작의 리버만은 좀 더 노암 촘스키라던가 그런 풍채의, 곱슬머리에 안경을 쓴 날카로운 유태인 지식인의 이미지에 가까운데 비해, 로렌스 경이 그리는 리버만은 나찌즘이라는 막강한 악과 맞서 싸우면서 몇번이나 좌절감을 맛보고 거꾸러지면서도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낙관을 저버리지 않는 골수 휴머니스트이다. (아마도 레빈에게 캐스팅의 절대권한이 있었다면 로렌스 경과 같은 귀족적인 이미지의 영국배우를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까봐 허둥거리고, 어쩌면 초라하게 늙은 스스로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리버만이 끝까지 자신을 더러운 유태인 개라고 밖에 여기지 않는 나찌들과 맞서 “말로니여사! 당신은 더이상 간수가 아니란 말요! 당신은 이곳의 죄수란 사실을 명심하시오!” 라고 사자후를 토하는 장면의 기백이 그 절제된 연기로 인해 더욱 인상 깊어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로렌스 경의 나약하게까지 보일 수 있는 섬세한 연기에 반해서 그레고리 펙이 이 한편에서 보여주는 그것은 정말 다른 영화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관이다. 펙은 훌륭한 연기자이지만 이분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인의 능글맞은 이중성, 비인간적인 무도함이라는 성질을 표현하는데 부적절한 면모를 지닌 분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한편의 펙 영감님은 무슨 심리적 갈등의 묘사고 뭐고 이런 거 싸그리 무시하시고 완전히 멩겔레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인간으로 그리는데 한 치의 망서림도 없이 맹진하신다. 그 결과는… 한시도 딴눈을 팔 수 없는 괴연 내지는 명연, 그러나 역연 (力演) 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도 딴지를 걸 수 없는, 그런 연기다.  보고 있으면 진짜 “멩겔레가 자신의 연기를 보고 ‘그레고리 펙 이놈을 죽여라!’ 라고 뚜껑이 열려서 브라질 어딘가에서 기어나올 것을 기대” 하고 이런 연기를 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물론 이토록 볼륨이 올라가게 되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그런 효과도 피할 수 없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성대한 나찌 파티에서 자기가 분명히 다른 중년 남자 표적들을 죽이라고 지령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를 데리고 흥청망청 놀고 있는 문트와 맞닥뜨리자, 이 짜슥이 내 명령을 어기고 감히! 하면서 파티장을 뒤집어 엎고 마구 두들겨 패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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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마지막의 욕하는 대사를 펙 영감님께서는 마치 [줄리어스 시저] 에서 카에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도다!” 하고 선언하는 것처럼 읊으신다. 하아… @_@ 


이런 (아마도 점잖게 지능적이며 자기 정당화의 기술에 능했을 역사상의 요셉 멩겔레와는 전혀 닮지도 않은) 막장스러운 자태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만들어낸” 모 인물의 클론인 소년과 대면하게 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함과 더불어 나찌즘에 대한 불타는 광신을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표현하시면서, 로렌스 경과 장렬하게 육탄전을 벌이시기까지 한다. 대단한 연기자의 투혼이라고 할 밖에… 


앙리 드카에 촬영감독이 담아낸 서유럽의 풍광도 멋지지만, 이 작품의 품격을 몇 단계 높이는데 어마어마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이다. 골드스미스는 서스펜스니 액션이니 이런 요소들은 다 뒤로 제쳐놓고 바그너와 요한 슈트라우스 이 두 작곡가를 독일어 문화의 어두움과 빛으로 상정하고, 그들의 음악의 스타일에 맞추어진, 경쾌하면서도 중후한 월츠를 메인 테마로 삼고 있다. 리버먼의 인도주의적인 결정으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로 찌들은 시골) 어딘가에서 나찌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임을 암시하는 엔딩에 이르기까지의 걸린 골드스미스의 배경음악을 한번 음미해보시기 바란다. 구슬프고 운명적이면서도 미래의 밝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월츠가 어느 순간에 보탄의 흡뜬 눈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억압의 멜로디로 변하는 마법을 들으실 수 있다.  


  좋은 판본을 구입하시고 싶은 분들께는 영국에서 원래 제작회사 ITV 에서 직접 출시한 블루 레이를 추천한다. 아티잔인가에서 내놓은 미국제 디븨디는 엄청 싸긴 한데 디븨디기술 초기에 나온 작품이라 화질이 엉망이다. 블루 레이의 가격도 사실 얼마 안되고, 유럽제이지만 마스터즈 오브 시네마 등과 달리 리젼코드 프리다.  


  영화음악의 팬들께는 인트라다에서 출시된 2장짜리 CD 를 추천하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이미 절판된 모양이다. 아마존에 가보니 70불이나 받아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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