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Twilight Zone)"의 영향을 받아 원조 환상특급이 유행하던 시기에 같이 탄생한 대표적인 "환상특급"류의 미국 TV 단막극 시리즈가 바로, "제3의 눈"(The Outer Limits) 입니다. 단막극으로 SF, 환상, 괴기 부류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60년대에 원판이 유행을 했는데, 90년대에 다시 한번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치 "환상특급"도 원판 보다 80년대판이 국내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이 "제3의 눈"도 원판보다는 90년대판이 더 널리 알려져 있지 싶습니다. 다름아닌 90년대 후반, KBS에서 "X파일"을 방영해서 인기를 끌 때, "X파일" 시즌과 시즌 사이, 방송이 쉴 때, 그 쉬는 기간을 때우려고 국내 방송했던 90년대 후반 KBS 심야 방영판 "제3의 눈"을 꽤 여러 사람들이 봤던 것입니다.

"제3의 눈"이 "환상특급"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번째 특징은 암울하고 무섭고 괴기스러운 분위기 입니다. "환상특급" 이야기들이 으시시하더라도 결국은 악이 패하고 선이 이기는 권성징악스러운 내용이 많고, 가끔은 즐겁고 웃긴 이야기들도 많이 섞여 있는 것과 달리, "제3의 눈"은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에 비해서 주인공이 아무런 답이 없는 좌절과 비극에 빠지는 파국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인류가 멸망한다거나, 주인공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죽게된다는 결말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 하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연출도 훨씬 더 어둡게 만들었고, 특히 원판에 비해 90년대판은 공포영화의 자극적인 요소, 그러니까 피가 튀는 장면들이나, 징그러운 특수효과, 노출 장면 등등도 상당히 집어 넣어서 이런 점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제3의 눈"이 갖고 있는 SF 성격 입니다. "환상특급"에도 SF물이 많기는 했지만, 환상특급은 동화 같은 이야기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나오는 과학기술과 상관 없는 순수하게 공상적인 환상물의 비중도 높았습니다. "환상특급" 내용 중에 가끔은 아예 앞뒤 논리를 무시하고, 이야기의 치밀한 배경도 따지지 않고, 그저 몽환적인 분위기, 기묘한 심상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고 이야기의 현실감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꽤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서, "제3의 눈"은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이런 이런 일은 이러 이러해서 일어날 수도 있다"라는 나름대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배경을 항상 들이 대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비록 기술적으로 따져보면 문제가 있어 보이더라도, 나름대로 극중에서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인것처럼 꾸밀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유와 배경설명을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상특급" 몇몇 에피소드들의 꿈 같은 분위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좀 더 현실감 있고, 좀 더 활극 중심의 이야기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는 특징도 있었습니다.

"제3의 눈"은 미국 TV극이라서 인터넷에 비교적 정리된 내용이 풍부한 편이고, DVD를 구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밌게 본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10편 정도만 뽑아서 전체 줄거리와 내용을 돌아 보고자 합니다.


202. 부활 Resurrection


이야기가 시작되면 두 이상한 분위기의 과학자가 인간복제 시험 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후, 이 두 과학자들은 인공지능 로봇임이 드러납니다. 이 두 과학자 로봇은 복제된 인간을 "아담"이라고 이름 붙이고 숨겨 놓고 키웁니다. 알고보니 이 시대는 화학전쟁으로 지구상의 인간은 모두 멸망하고, 인간이 만들어 두었던 로봇 전시용 마을 속에 있는 로봇들만 남아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보안로봇들은 침입자인 인간을 죽이려고 하지만, 과학자 로봇들은 과거의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있어서, 자신들의 임무인 인간을 돕는 일을 수행하고자, 희생적으로 인간이 탈출하고, 이 전시장의 로봇 전원 장치를 끄도록 돕습니다. 마침내 인간은 자신을 공격하던 로봇을 정지시키는데 성공하고, 로봇들의 장치는 계속해서 작동되어 두번째 인간인 "이브"도 복제되어, 다시 인류가 번성하기 위한 조상이 태어 납니다.

기독교 상징을 대거 이용하되, "신"이나 "천사"에 해당하는 위치에 인간의 피조물이자 기계인 "로봇"을 대입해서 모순적인 맛을 이용한 이야기 입니다. 비교적 평이한 이야기로, "제3의 눈"의 독특한 특징보다는 일반적인 SF물의 전형성 그대로 만들어진 이야기 입니다.


216. 재세뇌 The Deprogrammers


인류는 파충류와 비슷한 외계인에게 완전히 정복 당했으며, 인류는 외계인의 노예로 복종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외계인의 노예가 되어 철저히 노예로만 자라나므로 노예로서의 운명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고 살아 갑니다.

이러한 노예 중 한명이었던 주인공은 노예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어느날 의문의 무리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그곳은 지구인 저항 단체 같은 곳으로, 인간이 노예가 아니며 외계인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려는 곳입니다. 처음에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반항한다는 것을 도무지 상상도 못하지만, 다소간 가혹한 정신교육과 고문에 가까운 정신적 압력을 통해, 주인공은 외계인과 목숨을 걸고 싸울 용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주인공은 저항단원이 되어 외계인을 공격하려 하는데, 공격하려 하는 순간, 배신을 당해 붙잡히게 되고, 처음 자신에게 정신교육을 시켰던 저항 단체 교관과 외계인이 한 패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알고보니, 애초부터 지구인 저항 단체라는 곳은 없었고, 이것은 단지 인간이 얼마나 반복해서 세뇌, 재세뇌를 반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일 뿐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이제 다시 붙잡혀서 외계인의 노예가 되는 세뇌와 고문을 받게 되고, 끝없는 이 반복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됩니다.

절망적인 "제3의 눈"다운 결말과 저 예산으로 단순하게 꾸민 갑갑한 구성이 어울린 단막극의 묘미가 잘 살아난 이야기 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은 두 개의 정치적, 문화적 대립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서로 선전전을 벌이며 극단적으로 싸우는 상황에서, 어떠한 사람도 도덕적 중용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하는 사회 비판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제시대에 제국주의에 대해 열렬히 비판하기 위해 공산주의자에 합류해서 활동하지만, 그러는 동안 자기가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는 공산주의에 무비판적으로 세뇌될 수도 있다는 부류의 우화라는 것입니다.


307. 수용소 The Camp


역시 이번에도 배경은 외계인에게 점령당한 지구.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한 지는 이미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인간들은 대대로 수용소안에 갇힌 채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이 그 안에서만 태어나고 죽어가며 노예로 살고 있는데, 구석에서 몰래 종교 의식처럼 먼 옛날에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었고, 인간들이 수용소 밖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좋은 사람으로 외계인들을 도우며 일하다가, 수용소를 관리하고 있는 외계인들은 사실 외계인들이 아니라 외계인이 설치한 로봇일 뿐임을 알고, 기계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로봇에 대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결국 반란은 성공하여, 인간들은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나가고 보니, 외계인들이 다른 문제 때문에 지구를 떠난지는 이미 수백년이 지나서, 외계인의 위협이 없어진지 이미 매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였습니다. 지구에는 야생동물 외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로봇들은 자신들의 주인으로부터 다음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수백년 동안 지구가 텅 비어 있는데도 대대로 인간을 수용소에 가두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들은 광활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대지로 다같이 나아갑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서 클라크의 한 소설과 같은 소재를 활용한 이야기 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속이고 수백년 동안 좁은 수용소에 가둬 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수용소의 묘사는 제2차 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를 아주 적극적으로 모방했고, 로봇 대원들의 모습은 정확한 목적에 대한 의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독재 체제를 믿고 따르는 나치 SS를 따라 표현해 두었습니다. 답답한 수용소 문이 열리고 머리 푸른 지평선이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특수효과가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내용 자체로 장엄한 맛이 있기도 했습니다.


312. 이중나선 Double Helix


시즌4의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과도 이어지는 이야기로, 이 2편의 에피소드는 제 생각에는 단연 90년대판 "제3의 눈" 최고의 에피소드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대학교수가 진화를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물고기를 양서류로 단숨에 바꿉니다. 이것은 DNA에 기록된 내용 중에 형질로 발현되지 않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은 데 이것들이 진화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학설에 따라, 이 발현되지 않는 부분들이 활용되도록 하는 기술을 쓴 것입니다.

대학교수는 이 기술을 인간에게도 활용해 보고자 합니다. 대학교수는 자기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해서 진화시키는데, 그러자 몸이 변화하면서 이상한 지도 모양이 피부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지도 대로 찾아 가 보는데, 거기에는 비밀군사기지가 있고, 외계우주선이 숨겨져 있습니다.

교수가 도착하자 우주선은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드디어 이 모든 일에 대한 비밀이 드러납니다. 즉 먼옛날 인간을 탄생시키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가한 외계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외계인들은 만약 인간이 스스로 진화를 조절하는 기술을 가질 수준에 이르른다면, 자신들과 만날만한 수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화를 가속시키는 기술을 이용하면 우주선을 찾아내고 작동시킬 수 있도록 설계해 둔 것 입니다. 이에 교수와 학생들은 우주선을 타고 인간을 창조한 외계인을 만나러 떠나게 됩니다.

실제 생물학의 중요한 이야기 거리 중 하나인 발현되지 않는 염기서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재미나게 공상을 펼쳐 본 이야기로, "외계인이 인간을 창조하는데 관여 했다", "외계인은 신과 같다"라는 부류의 SF물 이야기 중에서 표본이 될만한 내용이라 할만합니다. 물고기가 양서류로 변하거나 피부에 이상한 모양이 튀어나오는 등, 간단하지만 자극적인 특수효과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이야기이도하고, 뒷이야기를 생각하게 하는 신비로운 결말도 재미납니다.

이 이야기에 이어서 시즌4에는 "종의 기원"이라는 속편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속편 에피소드는 우주선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로 다루는데, 우주선이 타고 있는 학생들을 공격하듯이 하여, 학생들은 이상한 장치 같은 곳에 감금되어 실험 따위를 당하는 일을 하면서 머나먼 행성으로 갑니다. 그러나 실은 출발했던 곳인 지구로 되돌아온 것일 뿐으로, 다만 매우 빠른 속도로 우주를 여행했기 때문에 상대론적 효과에 의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의 지구입니다.

사실을 알아보니 이미 지구의 인류는 전쟁으로 멸망한 후이며, 전쟁으로 멸망한 뒤 다시 생태계가 회복된 상황에서 인류를 번성시키기 위해, 지구 밖의 우주선에 학생들을 태워서 보존시켜 두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우주선 안에서 받은 실험은 학생들의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사라져 버린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후손뻘이라 할 수 있는 인간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인류가 겪을 위험을 예상하고 계획해 둔 일임을 학생들은 깨닫습니다. 위 장면은 "종의 기원" 에피소드에 나오는 우주선 내부의 모습입니다.


317. 적합성 연구 Feasibility Study

한 마을이 통째로 외계인에게 납치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외계인을 목격하며 당황하는데, 결국 외계인의 목적은 지구인들이 자신의 환경에서 노예로 일하며 살 수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표본으로 마을 하나를 납치 해 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은 외계인들이 전 인류를 노예로 삼기 전에, 우리가 적합한 종족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자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외계 환경에 노출되면 몸이 돌로 변하는 병에 감염되어 외계 환경에서 살 수 없는 존재인 척 가장하고 스스로 단체 자결해 버립니다.

약간 갈팡질팡 하는 편인 이야기 이고, 곁다리로 흘러가는 주인공의 딸과 주인공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잘 엮여들지는 않았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마을 하나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 버린 장면을 보여주는 특수효과는 재미있고,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 차이도 없는 것 같지만 왜인지 마을 밖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데,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외계로 납치되어 온 것이라는 출발점도 흥미를 자아내는 내용이었습니다.

원판 "제3의 눈"의 리메이크 격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위 장면도 원판 "제3의 눈"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319. 마음과 정신 Hearts and Minds


흉칙한 외계 생명체와 싸우고 있는 특공대 병사들. 그러나 사실은 이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환각제의 영향으로 실제로는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는 것인데 매정하게 싸우게 하기 위해 상대가 흉칙한 외계인으로 보이게 하도록 정신조작을 한 것이 었습니다. 이를 깨닫고 주인공들은 싸움을 멈추려 하지만, 노조 쪽에서도 같은 기술을 쓰고 있었으므로 이들은 흥분한 한 노조원에게 무참히 살해 당하고 맙니다.

비극적이고 무섭게 끝나는 "제3의 눈"다운 결말로 치닫는 이야기와 여기에 어울리는 무서워 보이는 외계인 분장이 잘 잡혀 있는 고전적인 "제3의 눈"다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자체는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 선동과 선전에 지나치게 휩쓸리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할 여지도 역력합니다.


403. 상대론 Relativity Theory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외계 행성을 탐사하러 갑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장비와 무기가 거의 없는 원시적으로 보이는 외계종족이 있습니다. 인간들과 외계인들은 충돌하게 되고, 마침내 과격한 인간들의 주장에 따라 발견된 외계종족을 전멸시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들은 사실 무기가 없는 원시적인 외계 종족이 아니라, 매우 발달한 외계종족인데, 인간들이 발견한 외계인들은 이웃 행성으로 자연관찰 소풍을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는 어린이 외계인들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전속력으로 도주하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분노한 외계인 본토에서는 주인공 일행을 단숨에 전멸시키고, 주인공 우주선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대함대로 이끌고 보복하기위해 지구를 파괴하러 떠납니다.

풍자적인 소재를 응용한 SF물의 전형을 잘 따라가는 이야기로, 얼핏 보면 혐오스러워 보이는 외계인의 겉모습을 잘 꾸며서 정서적 흐름이 무척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의 대함대가 지구로 출동하는 결말은 그 파국적인 맛이 묘하게 통쾌한 데가 있기도 하고, 애초에 왜 아무도 없다고 한 행성인데 이상한 외계인이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끌고 나가다가 풍자적인 답을 제시하는 솜씨도 매끄럽습니다. 제국주의적인 팽창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412. 최종 시험 Final Exam

한 따돌림 받던 대학생이 상온 핵융합 장치로 도시를 파괴한다면서 인질극을 벌입니다. 대학생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협박합니다. 협상가가 투입되어 언쟁을 하는 과정에서 대학생은 점차 마음을 돌리게 되는데, 대학생은 요즘 같은 시대는 이미 자기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있을 만한 기술적인 시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 상온 핵융합 기술은 누구나 너무나 간단히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테러리스트와 범죄자에게 악용되어 세상은 곧 멸망할 것이라는 말도 합니다.

협상가의 기지로 대학생은 저격당하고 인질극은 끝이 나는데, 또다른 학생이 또 핵융합 장치를 떠올리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이 마지막 장면 입니다. 학생을 말대로, 세상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막상 갈등이 생겨나고 해결되는 인질극 자체는 좀 심심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흥미로운 소재 두 가지를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소위 말하는 "시대 정신" 이론을 한 가지 극단적인 형태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즉, 사회와 역사가 집합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특정 개인이나 어떤 천재가 변화를 이끌지 않더라도 그러한 역할을할 인물은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0세기초에 아인슈타인이 없었더라도 누가 되었든 그 시대 상황에서 누군가가 똘똘한 사람 한 명이 상대성이론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혹은 중국 고전식으로 말하면,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생각 입니다. 이게 좀 극단적으로 미신스럽게 나아가면 아이디어의 기(氣)가 세계의 공기 중을 떠돌고 있는 데 이것을 누군가 붙잡으면 된다는 따위의 "백번째 원숭이 현상"으로까지 비약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막나가지 않고 적당히 그럴싸한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소재는 "기술 발전에 따른 필멸론" 입니다.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한 사람이 점점 더 강력한 기술, 강력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고, 그것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한 사람이 지구를 날려 버릴 정도의 힘을 손쉽게 가질 수 있는 기술 수준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세 살 아이라도 청나라 황제의 사고전서 보다 훨씬 더 많은 량의 책과 정보를 인터넷에서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듯이, 언젠가는 슈퍼마켓에서 부탄가스를 사듯이 핵폭탄과 같은 힘을 한 사람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거라는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철 없는 어린이, 미치광이, 악인과 같은 정신 나간 놈이 재미로 인류를 몰살시켜버리는 것이 가능해지고,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꽤 있을 것이므로, 그런 수준으로 기술이 발달하는 순간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이 극히 높아질 거라는 생각 입니다.

이 두번째 생각은 "왜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대놓고 지구에 찾아오는 뛰어난 외계문명이 발견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으로도 잠깐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 공간을 손쉽게 이동할만한 정도의 기술을 가진 문명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면, 손쉬운 우주여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 행성을 멸망시킬 힘을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시대가 먼저 오게 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우주여행 시대에 도달 하기 전에 문명은 필연적으로 멸망해서 없어질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다는 것입니다.


511. 면도날 Ripper

19세기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의 연쇄살인마인 면도날 잭을 수사하는데 관심이 있는 주인공은 마침내 면도날 잭의 정체를 발견합니다. 바로 면도날 잭은 인간에게 기생하는 외계인으로 인간의 몸밖으로 튀어나올때 인간을 찢어 내고 나오기 때문에 잔혹한 칼질 살인 처럼 보인 것입니다.

이 외계인은 지구에 불시착 했는데 현재 지구 기술로는 우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계속 이렇게 떠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외계인이 또다른 희생자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옆에 있다가 범인으로 몰려서 억울하게 검거 당합니다.

미래가 아닌 과거를 배경으로 SF스러운 이야기를 펼치는 "스팀펑크"류의 이야기를 "제3의 눈"다운 으시시한 괴기 분위기로 매끄럽게 끌고 나간 이야기 입니다.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몰래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게 아니라, 지구에 불시착해서 영영 돌아가지 못하고 지구에 몸을 숨긴채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 수 밖에 없다는 심경도 꽤 재미난 소재인데 잘 엮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703. 어떤 거듭남 A New Life

주인공은 속세를 떠나서 사는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지도자를 따라 무리들과 함께 떠납니다. 떠나는 버스 속에서 이들은 돌아오는 길을 포기하고 영영 모르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같이 잠든채로 정처 없이 떠납니다.

자연 속에서 수도하듯이 사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주인공. 그런데 주인공은 그곳에서 지도자로서 종교적인 추앙을 받는 인물을 목격합니다. 주인공은 나중에 불만을 느껴 탈출하려 하는데 아무리해도 그곳을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알고보니 그 곳은 단순히 외딴 산 속이나 숲 속이 아니라, 꼭 숲과 산처럼 꾸며 놓은 거대한 외계인의 우주선 속으로, 지구해서 멀리 떨어진 머나먼 우주 한복판 이었습니다. 이것은 외계인이 노예들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종교를 만들어서, 몇 세대 후에는 자발적으로 열광적으로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게 하려는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절망하지만, 망망한 우주 가운데의 우주선 속에서 이제 더이상 갈 곳도 없습니다.

맹목적인 믿음과 사이비 종교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영적인 치유"와 "자연속에서의 깨달음"을 위해서 각박한 문명의 도시 생활을 떠난다는 이 젊은이들의 태도는 60년대 히피족 문화를 비추어 꾸며 놓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매트릭스"나, "트루먼 쇼"처럼 내가 믿고 있는 세상이 실제 세상이 아니라, 어떤 동물원 같은 곳일 뿐임을 깨닫는 도약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이도 합니다. 거대한 우주선 속에 꼭 지구 같은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는 면에서는 "다크 시티"와 같은데, 여기서는 "다크시티"와 달리 도시가 아니라 산과 숲이라는 자연풍경을 꾸며 놓았습니다. 그래서 풀밭과 나무들이 가득한 풍경이,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과 차가운 기계 우주선 속에 담겨 있는 정원에 불과하는 그 대조의 충격과 환상적인 심상이 더 강렬하게 사는 맛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3의 눈"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작하는 장면이 재미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처음 시작하면 화면에 무슨 전자공학용 장비와 같은 오실로스코프 화면 같은 것만 대뜸 나옵니다. 그러면 성우의 나래이션이 "여러분의 텔레비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기괴한 분위기로, 성우는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시청자 여러분이 보고 듣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것이며, 우리가 시청자 여러분을 "제3의 눈"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파로 중계하게 되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재미나게 활용하고 그러면서 묘하게 으시시한 분위기도 살짝 자아내는 이 시작 장면은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원판 시작 장면)


(90년대판 시작 장면 - 좀 더 대중적인 판도 You Tube에서 검색됩니다.)

이것은 60년대 원판 "제3의 눈"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인데, 저는 원판 "제3의 눈"의 극히 선명하고 단순한 연출이 요란하고 화려한 90년대판 시작장면보다 더 재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국내 방영된 시즌들은 90년대판 시즌4 무렵 정도까지가 아닌가 짐작하고 있습니다.

90년대판 시리즈는 원판 제작진인 미국측 제작진 보다는 캐나다측 제작진이 주로 중심이 되어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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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크라잉 게임 - 반전(反轉) 이기도, 반전(反戰)이기도 [2] [1] 뻥이요의역습 2011.03.18 4150
563 [영화] 잃어버린 주말 The Lost Weekend [3] [26] 곽재식 2011.03.19 4973
562 [영화] 살인청부업 Murder by Contract [1] 곽재식 2011.03.23 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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