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바이럴 ANTI-VIRAL.


캐나다,  2012.    ☆☆



An Alliance Film/TF1 International/Telefilm Canada Release, Rhombus Media Production with the participation of Ontario Film and Television Tax Credit, Ontario Media Development Corporation, Canadia Film or Video Production Tax Credit.  1시간 47분.   1.85:1 aspect ratio.    


Written and directed by: Brandon Cronenberg, Producer: Niv Fichman, Cinematographer: Karim Hussain, Music: E.C. Woodley, Costume Design: Patrick AntoshProsthetics Makeup: Trason Fernandes, Makeup Design: Catherine Davies Irvine. CAST: Caleb Landry Jones (시드 마치), Sarah Gadon (한나 가이스트), Malcolm McDowell (어벤드로스 박사), Nicholas Campbell (도리언), Douglas Smith (에드워드 포리스), Sheila McCarthy (데브 하비), Reid

Morgan (데릭 레싱), Elitsa Bako (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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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마치는 루카스 클리닉이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세일즈맨이다. 루카스 클리닉은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병원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환자의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SNS나 뉴스 프로그램에 항상 회자되고 있는“명사”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기타 질환이 생기면 그 명사들을 광적으로 숭배하는 팬들에게 그 감기 또는 다른 병들을 일부러 옮겨주는, 치료원의 기능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버린 기괴한 상술행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 그는 한나 가이스트라는 천사같이 아름다운 은발 미녀의 몸에서 배양한 단순포진 (헤르페스 심플렉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감기 들렸을 때 입술에 물집 나는 정도의 증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성기에 발생할 수도 있는 성병입니다) 균을 가이스트에게 쏙 빠져있는 어린 남자 고객의 입술에 주입하는 시술을 한다.


아파트에 돌아온 그는 그러나 곧 자신의 몸속에서 다른 병원체를 빼내서 모종의 기계에 투입하는 작업을 완료한다. 즉 회사를 속이고 병원체를 암시장에 빼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기계는 클라이언트의 몸에서 배양한 병원체를“브랜드” 로 재구성해서 불법복제를 막는 (!)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장치인데, 마치는 그 베타 버젼을 집에 몰래 꼬불쳐두고 써먹고 있다. 마치는 자신의 몸에 온갖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주입해서 회사 바깥으로 빼돌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 점차 몸이 쇠약해지고 관객들이 보기에 정말 불편하고 불쾌해 질 수 밖에 없는 갖가지 생리현상을 겪게 되는데, 어느날 한나 가이스트가 정체불명의 질환에 걸려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당연히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를 숙주로 거친 병원체들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고, 마치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자기 몸에 주입한 병원체가 한나의 목숨을 빼앗은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서부터 루카스 클리닉의 업주 도리언, 루카스 클리닉과 경쟁 상대에 있는 보 & 테서라는 회사, 한나 가이스트의 주치의 아벤드로스 박사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이 모두 마치의 육체를 노리기 시작하면서, 오시이 마모루 아니메 뺨치는 이리 얽히고 저리 배배 꼬인 부조리적 스릴러 플롯이 펼쳐진다. 그런데 마치 자신도 가이스트의 병원체의 숙주 노릇을 하다가 (그녀처럼, 또는 그녀와 함께) 죽기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빨리 이 병원체를 몸에서 빼내고 건강을 되찾고 싶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SF 장르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영화를 보지 않고 내가 위에 써놓은 대략의 줄거리만 읽더라도 [안티바이럴] 이 여느 사회풍자적 블랙 코메디를 표방하는 SF 와 --좋든 나쁘든간에--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재능이 넘치는 명사들과 동화된 나머지, 그들과 똑같은 집에 살고 똑같은 모습을 지니고 싶은 욕망의 주책없는 발현은 요즘 세상의“팬덤”들이 지닌 보편적 모습이며, 특히 대한민국처럼 연예인을 밥으로 여기는 과잉발달 대중소비사회에서는 토악질이 날 정도로 매일 보고 사는 현실세계의 상황이기도 하다. 문제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스타가 걸린 병을 자기 몸에 옮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되려면, 우리가 사는 현실사회의 과장된 모습과는 뭔가가 다른 차원의 인식의 변화가 필요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안티바이럴] 은 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명사들을 팔아먹고 사는 미디어” 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는 규정으로 정리될 수 없다. 그렇게 정리되기에는 너무나 과격하게 불쾌한 방식으로 미적이고 철학적인 자기 완결성을 가진 세계에서 구현되고 있는 한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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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마치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당장이라도 아파트 벽에서 석회나 석면 가루가 부석부석 흐트러질 것 같은, 우중충한 구름 밑에서 씰그러지게 황량한 중소 도시이며 동시에 사물의 경계선이 무(無) 로 허물어지는 실험실, 랩코트, 병원의 인공적인 하얀색에 압도당하고 있는 공간의 연속이다. 극채색의 새빨갛고 샛노란 병문안용 그리고 고객 접대용의 꽃들을 제외하면 잔디라던가 가로수라던가 고양이, 개 한마리 구경할 수 없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안티바이럴] 의 세계는 근미래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태도가 극도로 추상화된 “욕망”과 “집착” 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거세된 합성인간들이 사는 세상처럼 보인다. 영화가 시작해서 10 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관객들은 화면 가득히 남자의 입술 안쪽을 까뒤집고 주사 바늘이 파고 들어가는 영상 뿐만 아니라, 주인공 마치가 면봉을 자기 콧구멍에서 거의 눈알이 있는 부위까지 닿을 정도로 깊숙 ~ 하게 찔러넣는 (…. ) 장면을 접사로 견뎌야 하는데, 이정도는 그냥 맛보기에 불과하다.


 다른 시놉시스에는 다 까발겨놓았지만, 스포일러로 미리 알고 보는 것보다는 모르고 보는 것이 그 황당함과 충격의 레벨에 있어서 몇 배 차이가 나기때문에 최소한 여기서는 밝히지 않고 넘어가고 싶은, “명사”들의 조직세포 클로닝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인기업종의 묘사, 그리고 제정신이 나간 마치가 가장 흉칙한 방식으로 기계와 합체되는 악몽 장면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함 등, [안티바이럴] 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일면으로는 멜랑콜리하게 슬프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명사” 들의 육체를 문자 그대로 빨아먹고 사는 “사생팬” 들의 마침내 괴물이 된 모습을 명료하게 묘사해냈다고도 할 수 있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칼자루 잡은 손을 한번도 놓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과 미적 감성의 영화가 딴 사람도 아니고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아들의 데뷔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나 “만든 얘기” 같지 않나?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할까. 브랜던 크로넨버그가 이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강변한다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만, 거꾸로 유명한 아버지의 영화를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의 제자들이 모사 (模寫) 해서 그 테크닉을 흡수했던 것처럼 좋은 것을 배우는 의미에서 베껴낸 것이라고 하기에는 브랜던 자신의 개성이 과격할 정도로 강하게 전달된다. 물론 젊은 객기에서 관객들에게 한 방 먹여주려고 일부러 신경을 건드리는 요소를 강조한 것 같은 측면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고, 또 아버지 영화에 은근슬쩍 언급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한나 가이스트의 성기가 질[膣] 이 아닌 돌연변이형이라서 범 남성들과 육체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설정은 [데드 링어] 에서 따온 것 같다), [안티바이럴] 과 비교하면 아버지 크선생님의 초기 호러 영화들-- [광견병 환자들], [놈들은 몸 안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심지어는 [더 브루드] 까지도-- 은 충실하게 '50- '60년대의 저예산 호러영화의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아버지 크선생님의 초기 호러 작품에 비하자면 [안티바이럴] 은 그 컴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치적 세력들의 존재와, 시간에 쫓기면서 ([D.O.A] 처럼) 도덕적인 애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자아의 붕괴를 겪는 주인공, 이거야말로 팜므파탈이라는 영화적 전형의 크로넨버그식 “물질화”가 아닐까 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는 한나 가이스트의 존재 (그녀를 사랑하면 병균에 옮아 죽는다! 아니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아냐 그녀는 내 속에 아직 살아있어! 기타 등등), 관객의 불안과 불편함을 쎄게 건드리면서도 일정의 “구역질나는 아름다움” 을 추구하는 영상미 등의 요소에 있어서 SF 호러보다는 필름 느와르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튼 브랜던 크로넨버그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데뷔작이고 차기작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성취이다.


연기자들도 의외로 좋다. [X-MEN: First Class] 에서 초음파를 구사하는 초능력자 밴시로출연한 바 있는 케일립 랜드리 존스가 거의 모든 화면에 다 등장하는 주인공역을 맡아서 열연을 보여주는데, 인상이 표백제에 며칠 담갔다 끄낸 타블로같다 (^ ^ 크크). 목소리가 자꾸 잦아들어가서 대사를 알아먹기 힘들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불만이 없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한나 가이스트역의 사라 게이던이 수퍼모델 스타일의 쭉빵미인이 아니고 약간 구식 유럽형 은발미인이라는 것도 괜찮다. 말컴 맥다웰과 크로넨버그 영화의 베테랑인 니콜라스 캠벨 두분 다 시의적절한 조역 출연이신데, 개인적으로는 루카스 클리닉에서 일하는 마치의 동료들이 눙치고 떠드는 대사들이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데 이 부분을 좀 매끄럽게 다듬었더라면 하는 불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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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마디. 어차피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리적인 불편함을 겪지 않고 보실 수 있는 분들은 비교적 적은 수일테지만, 한국 관객분들에 있어서 잇몸에 박히는 주사바늘 등의 극한적인신체손상 묘사 등보다도 훨씬 더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요소를 하나 지적하려고 한다. 그건 바로 주인공역 랜드리 존스의 얼음처럼 창백한 흰색 피부에 다다다다 나있는 주근깨.... 다... ;;;; 이거 글로 읽기만 해도 피부에 소름이 쫙 돋고 그런 분들은 행여 이 작품 보시지 마시기 바란다. 심장마비 걸리실 거다 분명히 경고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최소한 어깨는 가리는 정도로 옷을 입고 나오기때문에 멀쩡한데 도중에 엄청나게 접사로 보여주는, 병원체에 감염되어서 몸이 심하게 아픈 장면 등에는 스킨 메이크업을 거의 안 하고 나오는데, 정말 이런 류의 피부를 보면 불쾌감 느끼는 분들에게는 살인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감독도 아마 그러한 효과를 어느정도는 고려하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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