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드

2014.01.25 12:18

menaceT 조회 수:4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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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cerclerouge/40201828713

 

Mud (2012)

 

11월 28일, 메가박스 코엑스.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머드'의 홍보 카피이다. 이 말은 맞으면서 동시에 틀리다. 이 영화는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남녀의 사랑에만 주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독특한 지역색을 살려 물과 뭍의 경계에서 한 양상의 사랑을 다른 양상의 사랑으로 봉합하는 과정을, 소년들의 성장담과 함께 따라가는 영화이다.

 

(스포일러)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 특성상, 영화 속에 제시되는 집은 대부분 물가에 정박되어 있는 배처럼 제시된다. 물 위에 떠 있으나 뭍 근처에 머무르는, 그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 경계의 공간이 바로 이 영화 속 배이고 영화 속 집이다. 물 위의 섬, 다시 그 위 나무에 박혀 버린 배 근처를 거처로 삼는 머드의 경우가 가장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그의 이름 'Mud'는 물에 젖은 흙, 즉, 물과 뭍을 한 데 아우른 진흙을 뜻하며 이러한 경계적 위치를 더욱 확고히 보여주고 있다.).

 

  그처럼 경계의 공간으로 제시되는 배라는 가정 안에는 모두 사랑에 실패하는 남자들이 머무르고 있다. 엘리스의 아버지 시니어는 엘리스의 어머니 메리 리와 이혼 위기에 처했고, 넥본의 삼촌 겔런은 늘 사랑을 찾아 헤매나 여자에게 욕 먹기 일쑤이며, 노인 톰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죽은 뒤 홀로 타인과의 교류를 끊은 채 살아간다. 머드 역시 주니퍼를 그리워 하지만 본인의 사정 상 섬에만 머무를 뿐이다.

 

  이처럼 사랑을 갈구하나 실패하는 남성들은 뭍과 물의 경계에 멈추어 있는 배 위에 박혀 있는 반면, 그 사랑의 대상인 여인들은 육지와 더 밀접한 관련을 지닌 듯 보인다. 엘리스의 어머니 메리 리는 언제까지 배에서만 살 순 없다며 이혼 뒤 육지로 들어갈 생각이고, 겔런에게 욕을 퍼붓던 여인도 차를 타고 육지의 공간으로 향하며, 머드가 사랑하는 주니퍼는 한 동안 보이지 않더니 육지의 공간에 나타나 모텔에 머물고, 엘리스가 사랑에 빠진 메이 펄 역시 육지의 공간에서만 등장한다.

 

  이를 종합해 보면, 남성들이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하거나 현재 실패하고 있는 사랑을 개선시키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그에 집착하는 모습이, 물로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육지 근처에 정박한 채 머물고 있는 배라는 공간 그 자체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두 소년, 엘리스와 넥본이 머드를 돕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혹은 자전거를 타고 각각의 배와 섬들을, 또는 배와 육지 사이를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아직 어리기에 온전히 물의 영역에도, 뭍의 영역에도, 그 경계인 배의 영역에도 포섭되지 않은 채 그 사이를 오간다. 소년들은 그 공간들을 오가는 과정에서 배의 공간에 머무는 아버지 세대들, 그 극단적인 케이스인 머드, 그리고 육지의 여인들, 또한 이 모두를 감싸고 있는 사랑에 대해 점점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이에 따라 성장해 간다.

 

  소년들의 시선으로 접하는 사건과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뭍과 물의 경계에 머무는 남성들이 하나 같이 미성숙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모두 타인과의 올바른 소통 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를 숨기기 위해 부러 강한 척 하곤 하는데, 시니어가 '가장'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장면이나, 시니어와 톰이 각각 엘리스와 머드에게 'sir'라 불리는 데서 느껴지는 엄격한 상하 관계 등이 그 점을 암시한다. 그러한 미성숙함은 과거의 사랑의 실패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거나, 혹은 현재의 사랑이 실패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며, 그들의 배가 마치 성장을 멈춘 소년처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정박한 채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다만 넥본의 삼촌 겔런만은 조금 독특한 케이스인데, 그 역시 시니어, 톰처럼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능숙하지 못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를 감추기 위해 스스로를 부풀리지 않는다. 엘리스나 머드가 각각 자신의 아버지인 시니어, 아버지나 다름없는 톰을 대면할 때 'sir'라 호칭을 붙이는 것과 달리, 넥본은 부모가 없는 자신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삼촌 겔런을 그저 이름으로 부른다. 이는 영화 내에서 시니어나 톰 등이 배 외의 공간에 있는 모습이 좀체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겔런은 물로 나가 심지어 잠수복을 입고 잠수까지 해 조개 등을 따거나 그 안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는 등의 모습으로도 차별화된다. 즉, 겔런은 일견 뭍과 물의 경계에 머무르는 듯 하지만 다른 아버지들과는 달리, 아니 오히려 엘리스와 넥본에 가깝게 자유로이 공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소년처럼 보인다. 넥본이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겔런이 스스로를 넥본과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 설정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점은 엔딩에서 넥본과 겔런이 조금 특별한 위치에 서는 것과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머드의 경우는 어떠한가? 영화의 도입부에서 엘리스는 새벽에 몰래 깨어나 자신이 살던 배를 나서던 중 창 너머로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훔쳐 본다. 그 뒤 그는 넥본과 함께 보트를 타고 섬으로 가, 나무 위에 박힌 보트를 발견하고 거기서 머드와 처음 만나게 된다. 머드는 어딘가 신비로워 보이고, 그의 셔츠와 권총에 대한 이야기와 살인의 고백은 엄청난 위압감을 주기도 하며, 넥본에게 '네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 못한 예의를 내가 알려주겠다' 말하는 등 마치 아버지처럼 엄격한 상하 관계를 형성하려 드는 모습도 엿보인다. 그런데 그러한 머드가 주니퍼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는 엘리스에게 미성숙하면서 사랑에도 실패한 아버지의 완벽한 대체자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제 갓 엘리스가 메이 펄에게 첫사랑을 느끼게 된 시점에서, 시니어는 사랑은 거짓이라 말하고, 겔런은 끝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번번이 미성숙함으로 일을 망치는데다 가벼운 연애관을 가진 듯 보이고, 톰은 머드가 나쁜 여자를 사랑해 인생을 망쳤다고 말한다. 이처럼 다른 어른들이 모두 엘리스 자신이 꿈꾸는 사랑을 욕보일 때 머드는 마치 자신의 사랑의 이상향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스와 넥본이 머드를 도우면 도울수록 엘리스는 서서히 자신이 머드에 대해 생각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평가들을 그의 주변인들로부터 듣게 된다. 또한 주니퍼가 다른 남자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되고 나아가 그녀 스스로 머드와 함께 떠날 수 없다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됨으로써 머드의 사랑이 끝난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메이 펄과의 사랑도 자신의 일방적인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머드의 사랑은 결코 이상향이 아니었고 결국 자신의 사랑에도 실패한 그는, 머드를 도우려던 행동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머드가 실상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는다. 머드 역시 사랑에 실패하고 겁먹은 미성숙한 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는 상황에서 영화는 또 다른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머드가 비로소 배와 섬에서 벗어나 육지로 향하는 계기는 주니퍼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뱀에 물려 위험에 빠진 엘리스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뱀에 물려 죽을 뻔한 머드를 주니퍼가 병원으로 옮기던 순간 시작된 머드와 주니퍼의 사랑이, 유사 상황을 통해 머드와 엘리스의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다(머드와 주니퍼의 관계는 머드가 주니퍼의 모텔 앞으로 찾아가 손인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아가 외부에서 머드를 죽이기 위해 등장한 남성들과 머드가 격전을 벌이게 되는 순간에도, 주니퍼는 완전히 부재해 있는 대신, 시니어와 엘리스, 톰과 머드, 두 부자가 머드와 엘리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묶인 채 등장하게 된다. 심지어 그들과 격돌하게 되는 대립 세력 역시 부자 관계로부터 파생된 남성의 집단이 아니던가? 즉,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 실패한 자리에 똑같이 실패를 겪은 미성숙한 남성들의 연대와 부자 관계의 사랑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끌어간 것이다.

 

  총격전이 끝나고, 머드가 떠내려가는 모습을 유일하게 보는 사람은 이 영화 속 어른 중 가장 솔직하며 소년 그 자체에 가깝던 겔런이다. 그는 머드를 발견하는 순간 진주를 발견한다. 엘리스가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이 메이 '펄'이었고 그녀에게 엘리스가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던 데서 드러나듯 진주는 곧 순수한 사랑 그 자체를 의미했다. 이제 그 진주가 머드의 존재 그 자체와 동일시된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사랑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머드가 주니퍼를 놓은 대신 엘리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톰과의 관계를 회복한 것처럼 사랑은 늘 그곳에 있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우리는 세 부자, 혹은 유사 부자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게 된다. 두 명의 동등한 소년처럼 관계를 맺고 있던, 미성숙하나 결코 제자리에 천착하지 않는 겔런과 넥본만이 그들의 기존의 삶을 유지한다. 한 편, 시니어와 엘리스의 경우, 엘리스의 사고 이후 뒤늦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뒤, 시니어와 엘리스의 미성숙 및 성장 불가의 상징이었던 배는 부서지고, 시니어는 엘리스로 하여금 어머니를 따라 육지의 공간으로 향하게 한다. 여인들이 머물던 공간으로 더욱 깊숙이 다가선 엘리스는 이제 더욱 성숙한 자세로 사랑을 배워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톰과 머드는 둘 모두 과거의 사랑에 천착하던 자세를 버리고는, 멈춰 있던 배를 비로소 더 넓은 물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그들은 이제 사랑에 의존하기보단 조금 더 동등해지고 공고해진 유사 부자 관계 하에서 애정을 나누며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며 세상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제프 니콜스 감독은 전작 '테이크 쉘터'에서 중산층 남성이 가장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종말의 전조와 겹쳐 보인 바 있다. 이제 '머드'에서 그는 미성숙하고 연약한 남성들이 서로를 보듬고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이 남성들에게 무의식 중에 강요하던 강한 남성성과 가장의 무게로부터 남성들 스스로 벗어나는 방법은, 같은 고통과 불안을 공유했던 혹은 공유하게 될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서의 연대 하에서, 어떠한 허위도 없이 더 오롯이 순수한 소년으로 남거나, 조금 더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거나, 모든 짐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라 그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테이크 쉘터'만큼 무서운 에너지로 사람을 몰아가는 작품은 아니지만, 지역의 색을 살려 물과 뭍을 오가는 조금은 느슨한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는 미성숙한 남성들, 소년들의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소년들은 사랑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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