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헤드 Bullhead <부천영화제>

2011.07.17 21:54

Q 조회 수:4010

 

불헤드 Rundskop


벨기에, 2011. ☆☆☆★★★


A Savage Film/Waterland/Eyeworks Co-Production.

2 시간 4. 화면비 2.35:1

Director and writer: Michael R. Roskam

Producer: Bart Van Langdendonck

Cinematography: Nicolas Karakatsanis

Music: Raf Keunen

Cast: Matthias Schoenaerts (작키 반마르세닐), Jeroen Perceval (디어데릭 메이스), Jeanne Dandoy (루시아 셰퍼스), Barbara Sarafian (에봐), Tibo Vandenvorre (안토니), Enrico Salamone (크리스천 필리피니), Philippe Grand’Henry (다빗 필리피니), Robin Valvekens (어린 시절의 작키)

 

 

자 부천영화제에서 보는 관객이 하나라도 더 계셨으면 해서 쓰는 글이므로 경어체 안쓰고 엄청 빨리 써서 일단 올리겠습니다. 영화제 끝난 다음에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나 표현이 이상하거나 그런 것들을 고칠 시간이 좀 나겠지요. 지적해 주시는 건 환영합니다만 그자리에서 반영 되지는 못할 지도 모릅니다.

 

부천영화제에서 내놓은 [불헤드] 의 시놉시스를 보면 어떤 영화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가 않는다. 내가 이전에 본 플레미쉬어 벨기에 영화는 찰스 버코우스키의 소설을 영화화했던 [매드 러브] 이외에는 별로 생각 나는 바가 없다. 그래서 뭔가 코믹 스릴러나 그런거 아닐까 하고 보았는데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꽉 들어찬 관객들이 다 완전히 압도되어서 찍소리도 못내고 관람했다.

 

[불헤드] 는 필름 느와르다. 아주 잘 만든 필름 느와르인데, 이상하게도 안소니 만이나 라울 월쉬 같은 현대적인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서부극을 고집스럽게 만든 대감독들의 울적하고 슬픈 내용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고전적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칼싸움 한 두어번 만 보여주고도 숨도 못쉬게 관객들을 틀어쥐고 놔주질 않는 소위 “사무라이 영화” 가 존재하듯이 세상의 서부극에는 총도 별로 쏘지도 않고 대단한 폭력적 사태가 벌어지지도 않는데 (벌어진다 하더라도 화면에는 나오지도 않는데) 연기자들의 공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관객들이 캐릭터한테 얻어 터진 것처럼 파김치가 되어서 극장을 나오는 그런 작품들도 존재한다. [불헤드] 는 정말 그런 영화다. 총쏘는 것은 맨 마지막에 그것도 전혀 멋있지도 않고 사태해결과도 관계 없는 방향으로 등장하고, 폭력 장면은 몇 개 나오지만 장르적인 쾌감은 전무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폭력을 행사하는 자의 울분과 괴로움을 이렇게 처절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막바지에 다다라서 어디 더 이상 틀 데도 없는 상황에 갇힌 자가 뚜껑도 못 열리게 꽉 막아놓은 끓는 주전자가 그냥 뻥하고 폭발해 버리는 것처럼 휘두르는 주먹과 박치기가 [불헤드] 의 폭력이다. 그리고 이 정말 뛰어난 작품은 또 서부극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그러나 아마도 또한 궁극적으로는 같은 의미에서 “카우보이” 에 관한 소묘이자 비극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인공은 작키 반마르세닐이라는 벨기에 농가에서 꽤 큰 외양간을 경영하는 30대 초반의 남자다. 자기 외양간과 거래하는 농부를 협박하는 등장 장면에서 보여주는 첫인상은 좀 못나 보인다. 지나치게 근육질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놀드 슈워처네거 같은 근육맨 스타들의 낙천적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뭔가 어두운 기운이 감돈다. 이어서 관객들은 작키가 벌거벗은 채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는 모습을 본다. 아무리 보아도 당뇨병의 인슐린 주사나 그런 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약도 아닌 것 같은 것이, 당체 약을 놓아도 이 허우대 멀쩡한 남자의 우울한 표정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켈 로스캄 감독은 이미 이 첫 2-3분 정도의 묘사에서 이 주인공과, 인간에 사육되면서 끊임없이 호르몬 주사를 맞고 빨리 자라서 빨리 살이 붙어야 하는 운명인 소들을 잔인하게 연결시킨다. 반마르세닐의 집안은 이미 작키가 어릴 때부터 불법적인 호르몬 주사로 키운 소와 거기서 나온 쇠고기를 팔아서 중산층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한 범죄조직과의 연관은 이윽고 농장주로 변장하고 언더카버 수사를 하던 경찰관이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키는 자신은 전혀 범죄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아버지가 해온 불법 호르몬 투여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축무해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분명히 약기운으로 온통 부자연스럽게 불거진 몸에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화약과 같은 슬픔과 고통을 부등켜 안고 있으며, 그런 그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잘못 건드리는 인간은 묵사발이 되는 운명을 자초하는 것이다.

 

작키는 분명히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이다. 본인이 의도한 바와 관계없이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구조와 거기에서 배태된 사회의 규범과 도덕, 그리고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위선과 그들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망, 그 사이에 치어서 발버둥치지만 헤어나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속으로 빠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80년대의 한국과 달리 (사실은 한국이라고 다른 것도 없었지만) 그런 “의식화” 가 진정한 해결책을 마련해 주기에는 그가 처해있는 상황은 불가항력적이다. 왜 작키는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로스캄은 영화가 제 2 막으로 들어갈 즈음 해서 일시에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되돌리는 대담한 모험을 감행하고 우리는 작키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하지만 결코 차마 고개를 돌리지 않는 적나라한 묘사를 통해 알게 된다. 이 이유는 나는 스포일러로 밝히지 않겠지만 이것 역시 서부극의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숫소에 행하는 어떠한 행위의 직설적인 “인간판” 이라는 것만 말해둔다. 이 플래쉬백을 통해서, 그리고 그 플래쉬백에 의해 촉발된 작키의 행동에 의해서 우리는 작키 혼자만의 문제인 줄 알았던 이 영화의 문제가 그의 가족, 형제, 어릴 때 친구, 어릴 때 적, 그의 아버지의 동료, 그의 아버지의 동료의 동료, 그의 아버지의 적의 딸 이런 식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우주의 타락과 비겁함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 부위에서 피를 흘리는 예수님 조상을 보고 기절하는 어린 작키의 가슴아픈 장면이 보여주듯, 그는 이러한 “쎄련된” 프랑스어권 벨기에인들에게 멸시당하고 사는 “깡촌놈” 플레미쉬 사회의 대속양, 아니 그 사회를 위해 호르몬으로 부풀림을 당하고 “맛있는 스테이크 고기” 로 띄이고 갈리고 잘라져서 판매될 숫소인 것이다.

 

 

퀜틴 타란티노 영화같으면 잔혹한 요설 조크의 펀치라인으로 “그새끼가 알고 보니… 지 뭐야” 라는 식으로 일회 사용되고 말았을 설정이 여기에서는 너무나 강력한 포스를 가지고 영화 전체를 뒤덮으면서 관객들의 면상에 로케트펀치를 날린다. 그러나 그러한 폭렬적인 감정과 상황을 다루는 데도 로스캄 감독의 손길은 차분함을 결코 잃지 않고 복잡하게 구성된 미스터리와 경찰 스릴러와 가족 멜로드라마의 중층적서사를 콘트롤하는 고삐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들이 1 1.5 를 각각 알고 있고 경찰이 2.5 를 알고 있다면 관객들은 3을 알고 있어서,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보짓이 아닌 논리적인 행동을 하는 데도 결과적으로는 일이 꼬이고 망치고 작살나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그런 각본을 쓰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러나 거기다 한 수 더 떠서 로스캄 감독은 모든 캐릭터들에게 일정량의 욕망과 타협점을 부여하고 또 그것들을 그들의 재능 또는 기능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에봐라는 여자 경찰이라는 캐릭터를 예로 들자면, 그녀는 굉장히 신중하고 그물을 넓게 치는 유능한 경찰이지만 항상 피곤에 지쳐 있고 사람이 뭔가 앞뒤가 안맞는 말을 하면 일단 의심을 해야하는 직업의식에 투철하다. 그래서 2.5 까지밖에 파악이 안되었지만, 맨 나중에 마침내 3으로 의식이 전환되면서 폴리스카를 달리면서 짐짓 중얼거린다. “우리가 이미 늦었어, 그렇지?” 이런 툭 던지는 대사 하나까지도 그 캐릭터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캐릭터 쓰기는 멋진 “말이 되는” 서사를 쓰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폴 베르회벤의 [블랙 박스] 와 네덜란드산 윤회 (輪回) 호러 영화 [레프트 뱅크] 등에 출연했던 작키 역의 마티아스 쇼에네어츠, 그에 못지 않게 죄책감과 체화된 비겁함으로 괴로와하는 친구 디어데릭 역의 예론 페르체발을 비롯한 연기진도 잘 해줬지만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창동 작품처럼 감독이 연기자들을 조지지 않으면서 필요한 부분을 쏙 쏙 빼가서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황량하면서도 포근한 것 같기도 한 초원을 찍어낸 (그리스 사람 이름같이 들리는) 니콜라스 카라캇차니스 촬영감독의 공로도 만만치 않다.

 

나는 [밀레니엄] 3부작 (최소한 제 1) 이나 [메스린] 2부작이 둘 다 [불헤드] 보다 상업영화로서 훨씬 더 짜임새있게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이 작품들보다 [불헤드] 를 더 사랑한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올드 보이] 를 처음 봤을 때의 턱이 마루바닥에 떨어지는 경악에 비교할 수는 없어도, 이러한 남들이 모르는 훌륭한 영화를 예상치 않게 보게 되는 것이 영화제에 출석하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필름 느와르와 복잡한 인간상을 정치하게 그려낸 비극적 영화의 팬들분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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