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퍼시픽 림

2013.08.21 10:57

이데아 조회 수:3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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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퍼시픽 림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소설 퍼시픽 림을 읽었습니다.

 

소설은 영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펴 뻗어나가지 않고 철저히 영화에 종속되어 영화를 풀어 쓰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인지 영화 제작자 측의 요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역할이 고스란히 소설의 장단점이 되네요.

우선, 소설의 각 장과 단락들은 영화 속 신들과 거의 일치하는 듯 보입니다. 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도 영화에 등장하는 그대로입니다. 흡사 다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화 관람의 자세로 소설을 읽게 되요. 하지만 엄연히 활자와 영상은 다르지 않습니까. 같은 호흡으로 소비할 수 없는 매체인데 소설은 자꾸 영화를 따라갑니다. 영화의 씬 그대로 소설의 각 장으로 옮기니 활자를 통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를 따라 슝슝 서사는 진행되기 때문이지요. 영화처럼 소설도 마지막 대단원과 그 전투를 위해 치닫는데 저는 좀 더 퍼시픽 림의 배경에 머무르고 등장인물들과 교감하고 싶었다지요. 따라서 끊어진 호흡을 추스르느라 그렇잖아도 짧은 소설의 각 장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멈추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편집자도 이 사실을 알았던 것 같아요. 고맙게도 소설 한 장()이 끝나면 한 페이지에서 두 페이지의 길이로 간략한 보고서들이 독자들을 반깁니다. 이 보고서는 퍼시픽 림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가 미처 전하지 못한 정보와 배경지식들을 독자에게 전하며 아울러 캐릭터에 대한 이해 또한 도와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습니다. 여전히 커다란 의문들은 소설을 통해서도 해소가 되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의문이 아니라 이 퍼시픽 림의 세계관에 대한 호기심이자 갈증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첫 도입부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카이주가 등장하고 카이주를 온갖 무기로 격퇴한 후의 패닉, 그리고 브리지의 발견. 외계 괴생명체의 등장에 따른 각계각층의 혼란. 예거 프로그램의 등장, 드리프트 기술의 발전. 처음 예거로 카이주를 격퇴했을 때의 전 인류적 희망.

그러나 영화에 없는 흥미로운 무언가는 없습니다. , 없습니다.

저자를 위해 변명하자면 제 생각에 저자는 기존 영화의 세계관과 상충하는 소설을 쓸 수가 없었을 겁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소설 퍼시픽 림은 영화 퍼시픽 림의 서브이자 종속된 텍스트이니까요. 그래서 저자는 이것저것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까지만 집어주고 아마도 그래서 그랬을거야하는 부분만 긁어줍니다. 영화 속에서 중요치 않은 캐릭터는 소설에서도 중요치 않습니다. 소설만의 사건도 없습니다. 소설만의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각 장 끝마다 있는 짧은 보고서들로 만족하여야 합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퍼시픽 림 소설을 읽느니 영화를 재관람하는 편이 백 배 낫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으므로 이제 소설의 미덕 또한 말씀 드려야 하겠네요. 그것은 다름아닌 재미입니다.

원작이 아닌 소설입니다. 영화가 나온 후 소설이 나왔죠. 그럼 이 소설을 읽는 주 목적은 무엇일까요. 저는 영화의 재미를 소설에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던 겁니다. 아울러 소설도 영화처럼 소비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영화 속 장면들을 끊임없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다 기억나더군요. 그렇게 해서 영화의 대사들과 인물의 행동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준 가이드와 설명을 따라서가 아니라 다시 복기를 하면서 말이죠.

 

재미가 있었어요. 이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소설을 보면 영화가 자연스럽게 생각나 영화관람 시의 재미와 흥분이 영화와 드리프트 한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말로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재미있으셨다면 소설 또한 재미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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