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인의 향기

2011.09.13 21:37

jack 조회 수:4431

 

 

드라마 여인의 향기는 재벌 2세 본부장과 연애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입니다.

 게다가 그 신데렐라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암 환자입니다.

 이제는 식상하다는 걸 넘어서서 어떤 통속성의 아이콘 같은 소재들인데..

그래서 오히려 이 드라마한테 어떤 자신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 화제가 되었던 1편에서,

 주인공 연재가 회사 부장의 얼굴에 이 개자식아-하고 욕을 퍼부으며 사직서를 던질 때,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판타지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대로 그 이후에, 재벌집 처녀 따귀를 때리고, 회사 부장에게 복수하고,

초등학교 때 자신을 짝사랑 했던 의사의 사랑을 받게 되는 유희가 속속들이 펼쳐집니다.

 

게다가 그것 만으로는 판타지가 채워지기 부족다고 생각했는지,

우주의 물리 법칙이 무시되기도 하고,

두 주인공은 꼭 필요할 때 우연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다.

 

보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는 이런 드라마야. 우린 그 점을 잘 알고 잘 써먹고 있지’

-하는 웃음이 뒤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지나치다 싶은 행운과 무리수의 연속이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정도 뻔한 드라마일 것이라는 걸 알고 보는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그동안 채우지 못한 삶의 욕망을

단기간에 쏟아 붓는 캐릭터의 거대한 에너지가

 이 판타지를 밑에서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로 한 이 암 환자의 묘한 활력은

신선하면서 애틋한 복합적인 매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활력이 냉소적이고 무기력한 본부장- 지욱의 관심을 끌게 된다는

그럴싸한 로맨스의 빌미를 제공해 주기도 했고요.

이런 기대치 못한 두 소재의 시너지가 여인의 향기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개가 중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연재는 자신이 암으로 먼저 죽고 나면,

남은 지욱이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때부터 드라마는 갑자기 멜로 신파극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물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인의 로맨스가 멜로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추측컨대 ‘앞에선 유쾌한 판타지를 보여주었으니 이번에는 마음껏 울어 제낄 수 있는 멜로를 보여주자!‘

-라는 계산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드라마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펼쳐 보일 때처럼

‘너네 이런 거 좋아하지?’라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특히 많이 나오는

 소위 ‘명대사’라 불릴 법한 문어체스러운 대사들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고,

심지어 희주의 죽음에도 조금 그런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극의 재미는 여기서부터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초반에 보여주었던 판타지가 그 많은 무리수와 우연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던 것은 암 환자인 연재가 언제나 삶의 의지를 놓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눈물을 짜내기 위해 풀어 놓은 전개는

그 자체로도 너무 진부하다는 느낌이 강해서 이야기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데다가,

지금껏 쌓아왔던 연재의 캐릭터 스스로를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연재의 모습이 슬쩍 이기적으로 비쳐지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론 연재의 절망이 심정적으로야 이해가 가고,

이 신파극을 거치면서, ‘암’만이 꼭 둘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인공들에게 깨닫게 하면서

이야기의 주제를 확고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라는 틀을 놓고 볼 때,

이야기를 이끌던 원동력과 캐릭터의 매력을 스스로 내려 놓으면서까지

이런 전개를 선택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드라마의 갈등은 연재의 욕망을 가로막는 무엇이거나

그 욕망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었어야지 그녀 스스로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결국 그렇게 막장으로 흘렀느냐 ....면 그건 아니고...

 자극적인 소재와 감상적인 전개는 결국 시청률을 끌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래도 이 진부한 전개 안에서 나름의 개연성을 찾아주려 했고

캐릭터들의 행동 동기도 섬세하게 묘사하려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마저도 좀 흐지부지한 구석이 없진 않긴 한데..

 

그래도 드라마가 시사하고자 했던 주제는 정말 되새겨 볼만 하고,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 준비하는 연재의 모습이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으니, 보고 남는게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재벌 2세와의 로맨스 판타지를 줄이고

30대 여성 캐릭터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다른 주변 인물들과의 가능성에 시간을 더 투자했더라면,

드라마가 좀 더 신선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괜찮은 시청률과 인기를 장담하기는 힘들었을지 테지만요.

 

 

김선아의 연기는...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30대 노처녀 연기에 있어서는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여인의 향기에서는 낙천적인 암 환자 캐릭터를 설계하면서

약간 4차원인 것 같기도 하고 시종일관 어딘가 맹-한 듯한 특징을 덧붙이는데,

연재가 남들 눈에 유별나 보이는 행동을 취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 방향이 꼭 최선은 아닐지라도 나름 어울리는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됩니다.

 

살을 많이 빼서 그런지 생방 촬영 때문에 그런지

가끔 수척한 듯한 모습도 일단 환자 역할에는 잘 맞는 것 같고..

무엇보다 우는 연기가 압권입니다.

이전 작품들을 본 적이 없어서 멜로 연기를 선보였던 적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데,

암튼 김선아가 눈물을 터뜨리는 순간 마다,

드라마 앞 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간에 보는 사람을 한방에 훅- 몰입시키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강지욱 본부장 역할의 이동욱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화려하지만 어딘가 어둡고 싸늘한 구석이 있는 마스크는

트라우마를 가진 재벌 2세 역할에 십분 활용되었습니다.

 

은근히 이것저것 개인기를 꺼내 보여주는 여유가 있고,

능숙하게 제어 하는 표정이나 동작들의 타이밍이 코미디를 연기 할 때 특히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감정을 폭발시켜야 할 때..

가끔 표현이 앞선 달까, 좀 과하달까 하는 느낌이 있어서,

대사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연기가 언뜻 피상적으로 보일 때가 있고 그렇습니다.

 

힘을 좀 더 빼고 연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본부장의 트라우마를-마더 콤플렉스 설정을- 너무 쉽게 소비한 각본 탓도 조금 있는 것 같긴 하고요.

 

 

덧붙여서.. 드라마의 방향과는 상관 없이, 개인적으로 재벌녀 임세경과 본부장의 관계가 조금 재미있었습니다.

부모님에 의해 억지로 엮였지만 서로에게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 둘은 어쩐지 가학적인 방식으로 밀당을 하는 괴팍한 커플을 보는 것 같았고,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상처와 진심을 알게되고 연극은 깨어지는 그런 전개를 기대해 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중반에 임세경이 본부장에게 일방적인 호감을 표시하게 되면서 시들시들 해져버렸습니다.

 

 

기타 드라마가 좋았던 점

1. DSLR로 촬영된 반짝거리는 풍경과 배우들.

2. 깨알같은 조연들 연기 – 수간호사. 회사 부장. 붙어 다니는 싸가지 회사 여인네 둘. 오키나와 미스리. 탱고 강사 차지연, 친구 혜원. 특히 연재 엄마 역할 맡으신 김혜옥 분

 

기타 드라마에 대한 불만

1. 제목

2. 남용되는 플래시백, 보이스오버, 슬로우모션

3. 왜 탱고 동작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고 컷으로 다 짤라먹나.

4. 이 때다 싶으면 어김없이 튀어 나오는 OST. 개별적으로는 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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